소설방/모래시계

<제1회> 모래시계

오늘의 쉼터 2018. 10. 12. 22:39

<제1회> 모래시계

# 1 경찰서 유치장 (밤)


태수의 패거리들 상처 나고 찢긴 몰골 그대로 잡혀 들어와 있다.

 더러는 잠들어있고, 더러는 자신이나 남의 상처를 보살피기도 한다.

그 중에 태수와 종도의 모습이 보인다. 그 역시 여기저기 얻어맞아 찢겨 있다.

유치장 문이 열린다.


순경 : 나와.


영문 몰라 보는 얼굴들.


순경 : 다 나와 니들.



# 2 새벽의 경찰서 앞


태수 패거리들, 줄레줄레 나와서 어정쩡하니 섰다. 태수, 한 곳을 본다.

 새벽어둠을 뚫고와 서는 승용차 뒷좌석에서 내리는 성범. 하나둘 달려가 형님…

성범, 그 중에서 겸연쩍은 듯 다가서는 태수의 어깨를 툭 쳐준다.



# 3 나이트클럽 밀실


태수, 빤히 보고 있는 곳에 앉아있는 박 의원. 태수의 옆으로 소두목 부두목 격의 성범,

패들 주루루 서서 차례로 하나씩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있다.


이동일 : 이동일입니다.


태호 : 오태호라구 헙니다.


인사하는 이들을 따라 고개를 주억 거리며 보고 있는 박 의원.

성범, 그 옆에 앉아 있다.


태수 : 박태숩니다.


종도 : 이종도입니다.


인사하는 이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박 의원, 태수를 다시 본다.


박 의원 : 가만있어 봐. 우리 언제 본 적 없나.


태수 : ……


박 의원 : 자네 눈이 기억나. 그래 내가 자넬 알구있어.

 (성범을 향해) 이봐요 박 사장. 내가 국회의원 짓을 두 번씩 해먹는 데는 비결이 있어.

첫째는 돈이고, 둘째는 이 비상한 기억력이야. (태수를 향해) 이름이 뭐라고.


태수 : 박태숩니다.


박 의원 : (성범에게) 이 친구도 이번 일에 따라가나?


성범 : (계속 불퉁한 얼굴) 보내라면 보내고 말라면 말고 시키는 대로 허겠습니다.


박 의원 : (상관없이 껄껄 웃으며) 내가 뭘 아나. 이번 일이야 우리 박 사장이 알아서 해줄 일이고,

나야 경찰서에 전화질하는 것밖엔 할 줄 아는 게 없어. (태수를 향해) 어이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지?


방의 저 쪽 구석에 그림자처럼 서서 혼자 양주를 따라 마시고 있던 장도식, 태수 쪽을 본다.



# 4 고속도로.


새벽의 고속도로 위를 세대의 전세버스가 줄줄이 달리고 있다.



# 5 서울 입구 톨 게이트.


매표원, 버스 기사에게서 표를 받는다.

무심히 돌아본 매표원의 눈에 출발하여 지나쳐가는 버스의 내부가 보인다.

버스에는 이십대 초반의 건장한 사내들이 가득 타고 있다.



# 6 서울, 전당대회장 내부.


아침, 대회장의 준비가 끝나가고 있다.

현수막이 걸리고 의자들을 정돈하고…

한 쪽 구석에 국회의원 곽과 그 비서들, 노주명과 그 부하들의 모습이 보인다.

곽 의원이 무언가 얘기하고 노주명은 무게 있는 모습으로 듣고 있다.

이만치에서 일을 하고 있던 젊은 당원 두 명, 그 쪽을 바라보며 수근거리다가

노주명의 부하 중의 한 명이 이쪽을 바라보자 찔끔해서 입을 다문다.



# 7 서울시내.


건달들을 태운 버스가 말없이 진행하고 있다.

창문으로 들여다보이는 내부에서 한 사내가 일행에게 피켓을 나눠주고 있다.



# 8 대회장 외부.


노주명, 그 부하들과 나서고 있다.

행동대장격인 정인재, 노주명을 위해 차문을 열어준다.

노주명, 차에 타기 전에 다시 한 번 입구 주위를 둘러본다.

정장을 차려입은 그의 부하들이 진을 치고 있다.

만족스러워 차에 탄다.

차문이 닫히고 출발하고 지나가는 차에 대고 그의 부하들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인다.



# 9 서울 길.


버스가 커브길을 돌았을 때 거기 앞에 순찰차 두 대가 기다리고 있다.

버스 세 대 줄줄이 멈춰 선다.

순찰차 안 서 경찰관은 무전으로 무언가 보고를 받는 듯 싶다.

이윽고 순찰차 출발해가고, 버스는 그 뒤를 안내 받는 듯 따라가기 시작한다.

구석 쪽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다가 출발해가는 버스를 지켜보고는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장도식이 탄 차다.



# 10 대회장 내부.


방청객들이 삼분의 일 너머 의자를 채우고 있다.

단상에 놓인 의자에 의원들이 몇몇 앉아 있다가, 새로 들어서는 의원들과 악수를 나눈다.


사회자격의 사내가 마이크를 점검한다.

기자들이 몰려있는 곳에서는 플레쉬를 체크하고 있다.



# 11 대회장 입구.


당원들이 들어서는 입장객들에게 팜플렛과 머리띠 등을 나눠주고 있다.

당원들과는 별도로 노주명의 부하들,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입구 가까이에서 들어오는 입장객들을 살피고 있던 행동대장 정인재, 문득 돌아본다.

골목길 저만치에 순찰차 두 대가 나란히 길을 메우며 들어서고 있다.

밝은 낮에 헤드라이트를 켠 것이 왠지 마음에 걸린다.

이만치에서 부하 중의 하나 옆의 동료에게 담배불을 청한다.

무심히 돌아본 곳. 순찰차 뒤로 따라 들어서고 있는 버스들…

순찰차는 계속 진행하여 입구를 지나쳐가고 버스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선다.

그 쪽을 보며 담배불을 붙이던 부하, 입에 물었던 담배를 떨어뜨린다.

순식간에 버스에서 튀어내리는 건달들… 저마다 손에는 피켓들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자유수호청년단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행동대장 정인재, 소리 지른다.


정인재 : 막아!


정인재의 부하들 우루루 달려 나가는데 버스에서 내린 지방 건달들은 들고 있던 피켓을

각목으로 쓰면서 무조건 패기 시작한다.

그 뒤의 버스에서도 건달들이 우루루 달려 나온다.

느지막이 두 번째 버스에서 내리는 태수와 종도. 종도는 눈이 빛나며 상황을 살피는데

태수는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둘러보고 있다.

주위의 싸움으로 밀려오는 자들을 슬쩍슬쩍 몸을 움직여 피하고 있다가 태수 문득

한 곳으로 시선이 간다.

저만치 높은 곳에서 지휘를 하는 행동대장 정인재, 그는 골목 반대편에서 합세하기 위해

와아 달려오는 자기 패들에게 빨리 오라고 소리 지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가까이로 오는 지방 아이들을 위세좋게 쓰러뜨리고 있다.

이만치 경찰차 뒤로 승용차 한 대가 보인다.

승용차 뒷좌석에 타고 있는 사내. 장도식. 무언가 눈에 띤 듯, 상체를 일으켜 본다.

그가 보는 곳에 태수가 싸우는 패거리들을 뚫고 나가고 있다. 

정인재를 향해. 걸리는 이들은 주먹으로 갈기 거나 밀어젖히면서.

싸움은 전적으로 서울의 정장을 입은 사내들에게 불리하다.

정인재는 다급해지기 시작한다.

더구나 골목 반대편에서 이쪽을 향해 오던 자기 패들은 경찰들의 저지선에 막히고 있다.

이건 심상치 않다.

정인재, 입구 쪽으로 뛰기 시작한다.

일단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그러나 미처 입구에 닿기 전에 누군가에게 허리를 잡혀 뒹군다. 태수다.

쓰러지며 정인재는 경찰 쪽을 본다.

경찰들은 이쪽의 싸움이 마치 남의 일인 듯 구경만 하고 있다.

정인재는 태수를 밀쳐내고 안으로 튀어든다.



# 12 대회장 내부.


밖의 소란에 불안 해 웅성거리던 사람들, 놀라 보면 입구 문이 박차지며 정인재가 뛰어든다.

그러나 정인재가 이쪽을 향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뒤에서 따라 뛰어든 태수에게 잡힌다.

정인재는 뒤돌아서는 여세로 태수에게 한방 먹이고 단상을 향해 뛴다.

단상에는 국회의원들이 불안해서 서 있다.


정인재 : 피해! 의원들 피신시켜!


그러나 그 뒤를 악착같이 따라 뛰는 태수, 사람들이 앉은 의자를 넘고 걸리는 사람들을 젖히며

다시 정인재를 잡는다.

이번에는 정인재가 휘두르는 주먹을 피해 한 방을 먹인다.

나가 넘어지는 정인재. 그리고 그 순간 대회장의 문이 왈칵 열리며 지방의 건달들이 와아 몰려든다.



# 13 대회장 외부.


입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순찰차.

나와 있던 경관은 차에 달린 무전기로 뭔가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고 있다.

저만치 대회장이 보인다.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비서관들, 의원을 보호하여 나서게 하고 있다.

창문에서 간신이 나온 의원 경찰을 발견하고 뛰어온다.

그러나 경찰들은 차에 타더니 출발해버린다.

어이없는 의원과 비서관들… 이만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장도식이 탄 차도 빠져나가고 있다.



# 14 여관.


마당에 이리저리 모여 있는 건달들…

(정당대회가 끝난 뒤 숙소인 여관에 몰려있는 상태.)

그들 사이를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는 진수의 시선에서…



# 15 여관 복도.


역시 바쁘 게 지나가는 진수의 시선으로…

열려져있는 방문으로 보이는 방안 마다 건달들 가득하다.

고스톱을 치고 있거나 드러누워 주간지를 읽고 있거나 여럿이 모여 힘자랑을 하고 있 거나…



# 16 특실 앞.


도착한 진수, 노크를 하려는데 안 에서 문이 열리며 나서는 당사무총장과 성범, 그 뒤로 종도.


사무총장 : 어쨌 거나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여관비는 이틀 후까지 미리 계산을 해놨으니까 애들 서울 온 김에 실컷 놀 게 하시지요.


성범 : (시큰둥하게) 고맙수.


사무총장 : 아, 그리고 이거. (두툼한 봉투를 내민다) 술값 좀 더 넣었습니다.

애들 입단속도 좀… 하하


성범 : (받아서 뒤의 종도에게 넘긴다)


사무총장 : 그럼 이만…(악수를 청하고)


성범 : (대충 받는다)


진수, 길을 비켜주고. 사무총장, 문 밖에서 기다리던 비서와 가고. 진수, 방으로.



# 17 특실 안

진수가 방문을 닫자 성범 카악 가래를 돋군다. 일도, 얼른 재떨이를 대준다.

성범 뱉는다. 백민재와 일도, 태수는 방 안에 있는 상태.


진수 : 장 선생이란 분이 좀 뵙자는데요.


성범 : 장 누구?


진수 : (명함을 내민다)


성범 : (명함을 보고는 휙 던진다)


종도, 얼른 떨어진 명함을 주워 힐끗 보고 갈무리한다.


성범 : 태수, 니가 가봐라.


태수, 일어서며 잠바를 걸쳐 입는다.


성범 : 대충 맞장구나 쳐주다 와. 난 내려갔다구 하구.


태수 : 내려가시 게요?


성범 : 벌써 내려갔다니까.


태수, 웃고 방을 나선다. 종도 슬쩍 그 뒤를 따라나선다.

문이 닫히고, 성범, 영 개운치 않은 얼굴로 담배를 찾아문다.

일도, 얼른 불을 켜 댄다.


성범 : (연기를 내뿜으며) 잘못 껴들었어. 기분이 드러워.


백민재 : 어쨌거나 잘 끝났는데 뭐, 고만 성질 가라 앉히슈.


성범, 더욱 성질이 나며 담배를 집어던진다.

일도, 얼른 주워서 재떨이에 비벼끈다.


 

# 18 남산 식물원.


장도식과 태수.


장도식 : 자네 말이 통하는구만 박태수라구 했지?


태수 : (언짢아서 딴데를 본다)


장도식 : 나는 지금 기회를 주고 있는 거야. 닭장을 나와서 하늘을 날수 있는 기회.


태수 : 선생님 저… (생각해보고) 나랏일 하는 분이라고 들었는데요.


장도식 : 그런 셈이지. 봉급이 거기서 나오니까. (농담이라도 한 것처럼 웃는다)


태수 : 나랏일에 깡패 키우는 일도 들어갑니까?


장도식 : 아아 말을 쪼끔 바꿀까. 그 깡패라는 거 말이야, 그거 시각의 문제예요.

왜정시대 때 우리 독립군들을 일본 순사들은 깡패라구 불렀거든. 결국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거에 따라 깡패도 되고 애국지사도 되는 거지.


태수 :  (멀거니 보다가 히히 웃더니 끄덕인다) 듣기 좋군요.


장도식 : 이왕 주먹을 쓰는 거. 나라를 위해 써보자, 이 얘기야.


태수 : 우리 형님 말씀하군 좀 다른데요.


장도식 : 이성범이?


태수 : 형님 말씀이 깡패가 정치에 껴들면, 결국은 사형을 당하게 돼 있다구요.


장도식, 보다가 느닷없이 웃기 시작한다.

아주 우스운 말을 들었다는 듯 태수의 어깨를 쳐가며 계속 웃어댄다.



# 19 볼링장.


공이 핀을 맞추는 장쾌한 소리들…

태수, 옆라인에서 공을 던지는 모양을 보며 빈손으로 흉내를 내보고 있다.

(태수는 볼링장이란 곳에 처음 와 본 것.)

태수의 옆에 붙은 종도.


종도 : 이런 기회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 너. 장 선생 같은 빽이 두 번 잡아질 줄 아니.


진수, 볼링 구두를 들고 달려와 태수가 갈아 신는 걸 거든다.

태수, 옆라인에서 하는 걸 구경해가며 신고


종도 : (계속) 우리 언제까지 시골에서 썩을 순 없잖어.

장 선생 같은 분이 뒤만 봐준다면 이건 땅짚구 헤엄치기야.


태수, 볼링공을 들어 살펴본다. 구멍을 발견하고 손가락을 넣어본다.

옆라인의 사람들을 보며 따라해 본다.


종도 : 혹시 아냐, 너 국회의원이 될지두 몰라. 목포 신 선배 알지. 나랏일 봐주구,

돈벌구 지금 당에 무슨 간부래잖아.


태수, 딴 공을 들려다가 놓고 그대로 돌아서 뚜벅뚜벅 종도 앞에 와 서더니.


태수 : 나한테 말하지 말고, 형님께 말해. 결정은 형님이 하는 거니까.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서 공을 집어든다. 종도, 갑갑하다.

태수, 공을 굴려본다. 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힘만 들어간 공이 힘차게 옆길로 샌다.

태수, 아아 고개를 갸웃한다.


종도 : (단념하지 않고 태수 옆으로 붙으며 주위를 살피고) 애들은 태수 니 말을 따르잖어.

민재형두 니 말이라면 오케이구.


태수, 힐끗 종도를 보더니 다시 공을 굴린다. 핀이 두어 개만 겨우 쓰러진다.

태수, 안타까운 표정. 던지는 폼을 연습해본다.


종도 : 굳이 성범이 형님한테 걱정 시켜드릴 필요는 없을 거 같애.

형님은 사실 이제 나이가 드셨잖냐.

그냥 우리끼리 일 끝내버리구, 형님께는 나중에…


순간 태수, 공을 들어 냅다 던지는 바람에 (마치 핸드볼 공을 던지듯) 종도,

움찔해서 말을 멈춘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공…

주위의 몇이 돌아본다. 태수, 라인을 보고 있다가 종도를 향해 돌아선다.


태수 : 종도야.


종도 : (기가 질리는 기분) 어.


태수 : 안 들은 걸루 할 게.


종도, 시선을 떨군다.

태수, 종도의 어깨를 쳐주고 입만으로 웃어 보이고 다시 공 쪽으로 간다.

종도, 그런 태수의 뒷모습을 본다. 태수, 이번에는 스텝을 밟아 굴려본다.

두어개를 남기고 쓰러지는 핀들… 태수, 한주먹을 흔들어 만족감을 표시한다.


 

# 20 골목길


산동네로 오르는 길. 태수 편지 봉투의 주소를 다시 본다.

앞에는 박태수 귀우라고 쓰여 있고, 뒤에는 봉천동 주소 밑에 강우석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옆의 집 주소들과 대조하며 걸어 오른다. 여간해서 찾아지지 않는다.

한숨 쉬는 기분으로 돌아서다가 이제껏 걸어 올라온 길 저 아래 올라오고 있는 사내를 본다.

성인이 된 우석이다. 태수, 반가운 마음에 혼자 웃는다.

우석도 무심코 고개를 들다가 태수를 본다. 우뚝 선다. 태수, 뚜벅뚜벅 다가가 그 앞에 선다.

우석, 하도 의외라 멀뚱하게 바라보고 섰다.

태수, 우석의 어깨를 툭 친다. 우석, 그제야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는다.



# 21 화장실 뒤.


고등학생인 종도를 비롯하여 남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고 있다.

자막 : 1976년 겨울.

당시 불량학생들 특유의 옷차림으로 옷깃을 벌리고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한 학생이 망을 보고 있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명기, 마지막으로 다 타들어간 담배를 한모금 더 피우고 끈다.



# 22 교실 안 


고등학생인 태수. 선생과 앞에 서 있다. 전학생이다.


선생 : 오늘부터 함께 공부하게 됐다. 어이 강우석 옆자리 비었지.


고등학생인 우석이 고개를 들어본다. 그 옆자리가 비어 있다.



# 23 교실 안


고등학생들 특유의 시끌벅적한 점심시간. 태수, 도시락을 꺼내는데 앞에 와서 서는 영철.


영철 : 야, 니 저번 학교에서 몇 등했노?


태수 : (어처구니없어 본다)


영철 : 한국말 모르나. 니 몇 등했었노 말이다?


태수 : (피식 웃더니) 내 성적은 알아 뭐할래?


영철 : 니 성적은 내가 알아 뭐하노? 싸움 말이다. 니 싸움 몇 등했었노?


옆자리의 우석, 그들을 힐끗 쳐다본다.



# 24 학교 뒷동산


교복의 아이들 삼삼오오 몰려가고 있다.

가방들은 하나씩 끼고 구경거리가 난 것이다.



# 25 뒷동산


아이들이 비잉 둘러서 있는 가운데 태수, 어정쩡하니 서있다.

성가신 얼굴이다. 그 맞은편에 한 무리의 패거리가 서있다.

종도와 그 패거리들이다.

종도, 재미있는 얼굴로 뒷전에 있고. 그들이 내세우는 덩지 큰 명기가 교복 웃저고리를 벗는다.

태수의 뒤에는 영철이 흥분해서 보고 있다.

태수는 여전히 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다가오는 명기를 보고 있다.

명기는 태수를 얕보듯 주위의 아이들을 향해 두 손을 흔들어보이고는 성큼 다가와 그대로

주먹을 휘두른다.

한방에 끝낼 작정이지만 태수, 슬쩍 피한다. 아이들의 함성.

명기, 몇 번 더 공격을 해오지만 태수는 피하기만 한다. 그

러면서 명기의 실력을 가늠하고 있다. 아이들 점점 흥분한다.

붙어 임마. 패. 등등 거친 응원이 나온다.

순간 태수 명기의 공격을 피하는가 싶더니 돌려차기로 한 방을 먹인다.

방심했다가 나가떨어지는 명기.

함성이 오른다. 종도, 신경질적이 되어 본다.

나가떨어졌던 명기, 약이 바싹 올라 일어선다.

태수, 그제야 가방을 한 쪽에 던져놓는다.

영철, 얼른 뛰어 들어와 가방을 들어 나간다.

명기, 달려들지만 일방적으로 당한다.

연거푸 쏟아지는 태수의 주먹을 피할 길 없이 맞으며 아이들이 몰려선 곳까지 밀리다가

엉덩방아를 찧어버린다.

아이들 명기를 일으켜 태수에게로 밀어내고, 명기는 헛손질을 몇 번 해보지만

제 풀에 다시 무릎을 꿇는다.

태수, 우뚝 선 채 종도 패거리들 쪽을 본다. 아이들 일순 조용해진다.

태수, 손을 들더니 종도를 정확히 찍어서 가리킨다.

종도가 그 패거리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태수, 손가락을 까딱까딱 나오라고 손짓을 한다.

아이들 일제히 종도를 바라본다. 종도 잠시 당황하다가 앞으로 걸어 나온다.

태수 앞까지 오더니 순간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고는 한 손을 내민다.


종도 : 나 오종도야. 반갑다야.


태수, 그런 종도를 보다가 그만 피식 웃어버린다.



# 26 태수의 방

 

문틈으로 보이는 밖의 모습.

아침나절의 요정집 아가씨들이 보인다.

속옷 차림의 여자도 있고, 마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고 있기도 하고

짧은 치마 밑으로 다리가 드러나 보이고 있다.

종도와 명기, 영철 서로 고개를 박고 밖의 모습을 보다가 후다닥 제자리로 와서 앉는다.

태수 한 쪽 벽에 기대어 친구들의 모습에 웃고 있다.

학생방으로서는 과하다싶 게 치장을 해놓은 방이다.

문이 열리며 아가씨 둘이 큰 상을 들여온다.

손님상처럼 갖가지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져있는 상이다.

아이들은 상의 풍성함에 질리고 아가씨들의 향내에 질려 있다.

그런 아이들에 짖궂음이 발동해서 아가씨1 옆에 있는 명기의 허벅지를 스윽 쓰다듬는다.

명기, 경직되는데.


아가씨1 : 어마 체격도 좋아라. 이 가슴근육좀 봐. 학생, 운동하나봐.


아가씨2 : 얘봐 얘봐. 언니한테 무슨 경을 칠려구. (그러면서 슬쩍 태수 옆에 붙어 앉는다.)

아무리 그래두 난 우리 도련님이 제일 멋지더라. 도련님 언제 스무 살 되지?


태수는 항상 당하는 일이라 별 반응도 없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태수모친 들어선다.

세련된 요정 마담다운 옷차림.


모친 : 이년들이 썩 못나가?


아가씨들, 후다닥 나가면서도 아가씨2, 태수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을 잊지 않는다.


모친 : 어서들 들어요. 모자란 거 있으면 부르고. 어서 수저 들고. 그렇지.

(대견해 죽겠어서 보다가) 가만 있어봐. 일요일인데 맥주 한잔씩 들지뭐.

맥주야 술도 아닌데 내 갖다 줄께. (서둘러 나간다)


아이들 조용해져서 식사를 하다가 영철 문득 고개를 들더니 심각하게.


영철 : 태수 니 몇 번 해봤노?.


태수 : 뭘?


영철 : 여자들하고 그 거 안 있나. 니, 해봤재? 그쟈.?


명기 : (영철의 머리통을 때려) 밥이나 먹어라.


영철 : (벌컥 화를 내어) 사람이 밥만 묵고 사나. 니는 평생 밥만 묵고 살끼가.



# 27 요정집 앞 밤.


손님을 배웅하는 아가씨들과 태수모친.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사내들…



# 28 태수의 방.


태수, 책상 앞에 앉아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

잘 안 된다. 머리통을 벅벅 긁다가 문득 돌아본다.

모친, 옆으로 길게 누워 태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앞에는 작은 술상을 놓고 있다. 모친은 늘 그런 식으로 태수를 바라보곤 했다.


태수 : 왜요. 또.


모친 : 아냐 공부해. 그냥 좋아서 그런다. (어지간히 취해 있다)


태수 : (할 수 없다는 듯 웃는)


모친 : 그냥 보기만 해두 좋아. 왜 엄마가 보면 방해되니? (일어나 앉으며)

일루와, 잠깐만 엄마하구 있어봐.


태수 : (할 수 없이 그 앞에 가서 앉는다)


모친 : (정종을 한잔 따라주며) 한잔만 할래? 이거 마시면 공부하는데 방해될까?


태수 : 주세요.


모친 : (반가와 따라주고)


태수 : (마신다)


모친 : 한잔 더할래?


태수 : 내일 시험이에요.


모친 : 아 참 그래 내일 시험이라구 그랬지. 내 방으로 건너가야지. 공부해야지.

우리 태수. (갑자기 급해져서 술상을 챙겨 일어서려다가 다시 주저앉아 태수를 본다)

어떤 땐 깜짝깜짝 놀래. 왜 어제 아침인가.

니가 마루에 이렇게 걸어 나오는데 가슴이 덜렁 내려앉는 게…. 니 아버진 줄 알았다.

(태수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문득 후후 웃는다) 너 여드름 났구나. 이봐라. 얘. 두 개나 났다.


태수 : (웃고 만다.)


(시간 경과)


태수 이불을 내려 잠든 모친에게 덮어주고 베개도 베어준다.

술상을 옆으로 밀어놓고 태수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

모친은 어린애처럼 잠이 들어 있다.



# 29 버스 정류장.


버스가 서며 안내양이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대성고생들…

그 뒤를 거칠게 쫓아 내리는 상고생들…. 병석을 선두로 하여 훨씬 숫자가 많다.

도망치던 대성고 학생들 중에 걸음이 빠르지 못한 학생들은 상고생들에게 잡히며 얻어맞는다.

그 중에 한 대성고 학생 영철, 뒤를 돌아보며 죽을힘을 다해 뛰다가 누군가에게 막혀선다.

보면 종도패에 둘러싸인 태수. 금방 죽을 것 같던 영철의 얼굴이 금방 바뀌면서 헤 웃음이 떠오른다. 그때까지 일방적인 수세에 몰려있던 대성 아이 중의 하나 의기양양해지며 잡혀있던 멱살을 거칠게 뿌리친다.

뿌리쳐진 병석, 인상을 쓰며 주먹을 치켜드는데 그 손이 잡힌다. 태수다.

순간 주먹이 나르고 병석이 나가떨어진다.

신호처럼 와아 달려드는 대성고 학생들… 이제 거리의 패싸움은 역전된다.

도망치는 상고생들. 와아 쫓는 대성고생들. 그중에 제일 신이 난 영철.



# 30 당구장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혀 구르는 당구알.

청년 건달들 이리저리 당구를 치거나 잡담을 하며 놀고 있다.

그 중에 교복 상의를 풀어헤친 상고생1, 2 어울려 당구를 치고 있다.

상고생1, 신중하게 큐대로 당구알을 겨냥한다.

마악 치려는 순간 벌컥 열리는 문.

그 바람에 헛치고 인상을 써서 돌아보면 병석을 비롯한 상고생 두어 명이다.

입술가 등이 터져있는 병석 등,


상고생1 : 뭐야?


병석 : 당했어. 또 그 자식이야.


구석에 등을 보이고 있던 성범 돌아본다.

앉아있는 위치나 옆에서 시중을 드는 청년 등으로 봐서 그가 보스임을 알 수 있다.



# 31 학교 외경

 

빈 운동장에 들리는 모친의 소리.


모친 : 정학이라뇨. 아니 우리 애가 정학이라뇨.



# 32 교무실


한 쪽 구석에 태수, 난처해서 서 있다.

모친, 계속 떠들고 있고, 그 앞에 교감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다른 선생들 힐끗 거리며 구경만하고 있고.


모친 : 우리 앤 에미인 제가 제일 잘 압니다. 지가 먼저 싸움을 걸 애가 아녜요.

이번 일두 그래요. 전후좌우 사정을 먼저 따져봐 주셔야 되잖겠어요.

제가 알기론 그 쪽 학교 애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답니다.


교감 : 제 얘기는….


모친 : 저 쪽에서 먼저 싸움을 걸어오는데 사내가 돼서 도망을 쳐야겠어요?

아니믄 그 자리서 두 손 묶어 놓구 죽게 맞아줘요?


교감 : 애들이 백주대낮에 길거리에서 패싸움을 했어요.

양 쪽 학교 애들이 수십 명씩 패를 지어가지구…


모친 : 사내애들이 돼갖구, 친구가 맞는데 그럼 모른 척 할 수 있어요?

이 학교에선 그렇게 가르치나요? 친구가 맞아두 상관마라. 정학 맞지 않을려면,

너 혼자 도망쳐서 잘 먹구 잘 살아라. 그렇게 가르쳐요?


교감, 어처구니가 없어 말도 안 나온다.



# 33 교무실 앞 복도


태수모친, 태수를 앞세워 나오며 교감에게 구십 도로 절을 한다.


모친 : 시끄럽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교감 : (마주 절하여) 아닙니다.


모친 : 이번 주말 쯤해서 선생님들 한번 초청할 게요. 꼭 좀 와주셔요. (다시 절한다)


교감 : 아예 …


모친 : 꼭 오셔야 돼요. 기다리겠습니다.



# 34 길.


노을이 지는 한적한 길…. 저 앞에 다리가 있고, 그 밑으로 작은 내가 흐르고 있다.

태수모친 앞서 걷고 있고 태수 그 뒤를 따라 걷고 있다.

모친, 다리를 건너지 않고 다리 밑으로 내려간다.

태수 의아하지만 잠자코 그 뒤를 따른다.



# 35 다리 밑.


쭈그려 앉은 모친, 하염없이 흐르는 내를 바라본다. 태수 말없이 그 뒤에 앉아 있다.

그러다가.


모친 : (내를 바라보는 채로) 공부만 하기가 힘들지.


태수 : ….


모친 : 힘들지 그럼… 집이라구 들어와 보면, 술파는 년들만 득실 거리구,

에미라고는 늘상 술에 쩔어있구, 밤마다 니나노 소리에 젓가락 두들겨대구,

공부를 어뜩 게 해…… 태수야 나 말이지. 골백번두 더 생각해봤다.

때려쳐야지. 술장사 때려치구 보따리 장사래두 다시 시작해야지.

그럼 우리 태수, 조용한 집에서 공부만 할 수 있을 텐데… 근데 말이야….

태수야 나… 자신이 없어. 다시 보따리 이구 길거리루 나갈 자신이 없어.

나 있지. 다신 그 고생을 하기가 싫어. 미안해서 어쩌니…


태수가 앉은 곳에서는 모친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기웃해서 모친의 기색을 살핀다. 모친은 울고 있다.


모친 : 게다가 우리 태수 부끄럽다구 하지 않구, 친구들두 집에 썩썩 데려오구,

니가 그래주니까 믿거라하구, 자꾸 미루구 미루구… 태수야 나 미안해서… (운다)


태수, 어쩌지 못해 그저 앉아 있다. 이제 주위는 어둠에 잠겨가고 있다.


모친 : (울다가 한숨을 쉬고 울음을 그쳐 눈물을 닦는다.

한숨 쉬고 고무신을 벗어 털고 다시 신어 주섬주섬 일어선다. 돌아서는데)


태수 : (그 앞에 와 등을 내민다.) 업히세요.


모친 : 얘는…


태수 : 어서요.


모친 : (웃는데 다시 눈물이 난다)



# 36 다리 위.


교복을 입은 태수 모친을 업고 걷고 있다.

고즈넉이 걸으며 엄마는 묻고 아들은 대답한다.


모친 : 안 무겁니?


태수 : 아뇨


모친 : 무거울 텐데…


태수 : 안 무거워요.


모친 : 그래두…


다리 끝 전봇대에 방범등이 켜져 있다.



# 37 교실 안 


쉬는 시간. 우석 공부를 하고 있는데,

보고 있는 책 위에 짚어지는 손. 올려다보면 태수가 내려다보고 있다.


태수 : 나 공부 좀 가르쳐주라.


옆의 학생들 몇 의외의 소리에 쳐다본다.


태수 : 너 전교 1등이라며. 날 한 번 잘 가르쳐봐라.

그 대신 (말하기가 어색하지만) 널 귀찮게 하는 놈들이 있으면 내가 정리해줄게.


우석 : (보다가) 싫어.


태수 : (허 웃더니 머리를 긁적거린다.) 싫다….

(그러더니 더 미련 없이 책상을 밀어 자리에 앉는다. 우석의 옆자리다)


우석 : (자기 책을 보다가 옆을 보면)


태수 : (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있다. 우석의 거절에 유감도 없이 벌써 잊은 얼굴이다.)


옆자리에서 지켜보던 아이들 지들끼리 쑥덕거리며 웃는다.

우석, 생각해보다가, 책을 보는 자세로 불쑥


우석 : 둘 다는 못해.


태수 : (돌아본다)


우석 : 둘 중에 하나만 해. 공부든 싸움질이든. (그제야 태수를 돌아본다) 그럴 수 있어?


태수 : (유쾌하게 웃는다.)



# 38 골목.


하교 길의 태수와 우석. 걸으며 공부하는 중.


우석 : 리베비씨 노불래요.


태수 : 리베비씨노불래 젠장.


우석 : 나마알씨 인황염아.


태수 : 나마알씨…(중얼중얼) 인황염아.


우석 : 나가 뭐야.


태수 : 나….


우석 : 나트륨.


태수 : 알어.


우석 : 마는.


태수 : 망간 (기분좋다. 하나는 안 다)


우석, 자아식해서 웃다가 앞을 보고 멈칫 선다.

길 앞 저만치 앉거나 기대 서있는 상고생 2와 병석, 청년 두엇. 상고생2.

손을 들어 태수를 가리킨다. 태수 뒤를 돌아본다.

두 명의 청년이 다가오고 있다. 우석, 태수를 본다.

태수, 성가시게 되었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는다.


태수 : (우석에게 낮 게) 너 먼저 가라.


우석 : 뭐야.


건달1, 다가오고 있다.


태수 : 얼른 가.


건달1 : 니가 박태수냐.


태수 : (똑바로 쳐다본다)


건달1 : (아주 귀찮은 일이라는 듯) 우리 형님께서 널 좀 보자신다.


우석 : 무슨 일이야.


태수 : (갑갑하고 초조하다) 넌 빠져.


태수, 한걸음 나아가려는데 우석 그 앞을 막는다.


우석 : 약속했잖아. 이제 싸움질 안 한다구.


보던 건달1, 한방 먹일 생각으로 우석의 멱살을 틀어잡는다.

건달1, 임마 너, 하는데 태수 얼른 그 사이로 끼어들며.


태수 : 어디루 가면 됩니까?



# 39 창고.


성범의 패들이 아지트 삼아 쓰고 있는 곳. 한 쪽에는 낡은 당구대도 하나 마련되어있고,

한 쪽에서는 화투판이 벌어지고 있다가 들어서는 태수 쪽을 돌아본다.

청년들에 둘러싸여 들어선 태수. 기다렸던 상고생1이 마주 나와 선다.

선배들 앞에서 폼을 잡으려는 생각으로


상고1 : 넌 인사할 줄도 모르냐?


태수 그 쪽은 보지도 않고 주위를 둘러본다.

상고1 약이 바싹 올라 성큼 다가서더니 그대로 한방을 먹인다.

보이지 않는 한 쪽 구석에 있던 성범 담배를 빼어물며 돌아본다.

옆의 부하, 얼른 성냥불을 부쳐준다.

태수, 맞은 턱을 움직여본다.

상고1, 싸울 태세를 끝내고 있지만 태수는 여전히 그대로 서 있다.

부두목격의 일도 껄껄 웃으며 다가오더니 태수의 등을 두들긴다.


일도 : 마 겁먹을 거 없어. 니 솜씨가 좋다구 해서,

구경 좀 할려구 그러니까, 맘놓구 한번 붙어봐.


태수 : 싸워서 이기면 보내줍니까?


일도, 허허 웃는다.


일도 : 임마 잘 싸우면 우리편 시킬려구 데려온 거야. 스카우트. 스카우트 몰라?


상고1 :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일도 : 넌 가만있어 짜샤. 얘 말하는 게 이쁘잖아.


그러는데 태수 돌아서 문으로 간다. 체격이 좋은 청년 한 명 문을 가로막는다.


일도 : 너 뭐하냐.


태수 : 가겠습니다.


구경하던 청년들 중에 몇이 킬킬 웃는다.


일도 : (웃음기가 가신다) 이놈의 자식이.


일도, 태수의 뒷덜미를 잡아 중앙으로 끌어내는데 순간 태수,

잽싸게 몸을 비틀어 들고 있던 가방으로 일도를 치고 빠져나와버린다.



# 40 창고 밖


창문으로 안 을 보고 있는 우석.

그 시선에서 보이는 안의 상황. 태수는 재빨리 난로 가를 확보하더니

난로가에 쌓여있는 장작 중의 하나를 집어 들고 주위를 둘러본다.

모두하고라도 싸우겠다는 태세이다.

보고 있던 우석, 체념하여 시선을 떨구고 돌아서려다가 움찔 다시 안을 본다.

창문 안 저 쪽에서 태수,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손을 양 쪽으로 좌악 벌린다.



# 41 창고 안


흥미 없이 앉아있던 성범, 고개를 돌려본다.

양팔을 벌린 채로 태수, 투욱 장작을 떨어뜨린다. 순간 얼핏 웃는 듯 싶다.

약이 올라있던 일도 다가오더니 태수가 떨어뜨린 장작을 줍는가 싶더니

그대로 태수를 후려친다.

무릎을 꺾었던 태수, 잠시 후 다시 일어선다.

눈빛은 일도를 노려보고 있지만 반격의 기색은 없다.

일도, 더욱 약이 올라 팬다.

상고생1도 달려들어 패는데 합세한다.

주위에 둘러섰던 건달들도 자기 앞으로 떨어지는 태수를 잡아 팬다.

그렇게 맞으면서도 태수, 그 때마다 일어서려고 한다.

여전히 반격은 없다. 성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보고 있다.

창문 밖에서 우석도 보고 있다.

잠시 후 방안은 조용해진다.

합세하여 때리던 일도 등, 어처구니없는 기분으로 보고 있는 중앙에 태수,

엉망으로 맞아 엎어져 있다.

그러면서 일어서려고 애쓰고 있다.

간신이 일어서는가싶더니 다시 배를 움켜쥐고 주저앉고 만다.

일도, 당황스러운 기분이 되어 성범을 본다.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간다.

태수도 간신이 고개를 들어본다. 거기 우석이 들어서고 있다.

우석, 주위의 건달들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곧바로 태수에게 온다.

먼저 바닥에 떨어져있는 태수의 가방을 주워 어깨에 끼워멘다.

태수, 앞에 한 무릎을 꿇어 앉아 태수를 본다.


우석 : 걸을 수 있어?


태수 : (일그러진 얼굴로 미소 짓더니) 나 약속 지켰다.


우석, 울컥 치미는 눈물을 억누르고 대신 태수의 한 팔을 들어 자기 어깨에 두른다.

힘을 주어 일으킨다. 일도, 어이없어 그 앞을 막으려는데.


성범 : 보내줘라.


일도 : 형님.


성범, 짜증스러운 얼굴을 지어보인다. 쓸데없는 짓 말라는… 일도, 물러난 길을,

우석, 태수를 부축해서 걸어나간다. 모두, 보고만 있다. 나간 둘 뒤로 문이 닫힌다.


일도 : 그냥 보냅니까?


성범 :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퉤 뱉는다) 다시 온다.

언제구 다시 올 놈이야. (그러더니 피식 웃는다)



# 42 태수의 집 마당


요정의 아가씨 두 명 살금살금 별채로 다가간다.

창문 너머로 방안을 들여다 보며 킬킬 웃는다.

그들이 들여다보는 방안에 공부하고 있는 우석과 태수.



# 43 절간의 방안 


우석, 공부를 하는데 옆자리의 태수, 졸다가 상에 머리를 박는다.

잠결에 이마를 어루만져보고 아예 상에 엎드려 버린다.

우석, 책을 보면서 익숙한 솜씨로 옆에 놓인 사전을 들어 태수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깜짝 놀라 깬 태수 저도 모르게 후려칠듯 한 손이 올라가지만 으이그 참는다.

다시 책을 잡아보다가 에라 뒤로 누워버린다.



# 45 절의 부엌


망을 보는 우석. 비빔밥을 만들어 우석에게 먹이는 태수.



# 46 시냇가


겨울눈이 쌓여있는 계곡물에 들어가 책을 읽고 있는 태수. 그 위 다리에 앉아있는 우석.


(시간 경과)


우석, 공부하다 내려다보면 태수가 보이지 않는다. 놀라서 뛰어내려오는 우석.

물에 숨어있던 태수, 우석을 끌어넣어버린다. 웃고… 둘의 우정이 깊어가고…



# 47 밤, 절근처


닭을 쫓아가는 우석.



# 48 밤, 절 근처


모닥불에 구워지고 있는 닭. 입가에 검뎅이 묻어서 구워진 닭을 맛나 게 먹는 우석과 태수.



# 49 빈교실

 

모두가 하교한 뒤의 교실, 한가한 저녁 햇살이 들고…

우석, 한손만 사용해서 서툴게 풍금을 치고 있고,

태수, 책상 위에 올라가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

얼굴 아래 바닥에는 국사책이 펼쳐져있어서 오르고 내릴 때마다 용을 쓰며 책을 보고 있다.

마침내 지쳐서 벌렁 드러누워 버린다.

그 얼굴에 내리는 햇살. 고개를 뒤로 꺾어 보면 친구 우석은 풍금을 치고 있다.



# 50 교실 안 

 

시험이 끝났다. 뒤에서부터 시험지를 걷어온다.

마지막까지 옆 친구의 답안지를 보며 하나라도 더 적어 넣는 학생 등…

우석 옆의 태수를 본다.

답안지를 내놓고 난 태수 책상에 엎드려 있다. 우석, 툭 친다.

반응이 없다. 다시 한 번 세게 친다. 태수, 그대로 옆의 바닥에 굴러 떨어진다.

우석. 들여다보면 책상 사이 바닥에 댓자로 누워 눈을 감고 있던 태수 한 눈만 뜨고 본다.

자기 딴에는 만족한 시험… 비시시 웃어 보인다. 우석, 그 얼굴에 가방을 떨어뜨려버린다.


# 51 요정 전경



# 52 아가씨들 방


아가씨들 서넛 둘러앉아 떠들어대며 화투를 치고 있는 한 쪽의 흑백텔레비전에서

뉴스를 방송하고 있다.

(1975년 4월 8일 박대통령 긴급조치 7호 선포와 서울대 임시 휴강, 고대 휴교령에 대한 뉴스)

아가씨 한 명, 뉴스를 보고 있다가


아가씨1 : 학생들은 휴교를 하구 기생들은 휴업을 하구 좋네에.


아가씨2 : 광 값 안 받어?


아가씨3 : 그런 건 챙겨주는 게 아니야.



# 53 요정 방 앞 복도


앞서가는 한복을 곱 게 차려입은 아가씨, 손님이 없어 조용한 긴 복도를 걸어가

한 방문 앞에 멈추어 선다.

눈웃음을 쳐보이고  을 향해


아가씨 : 언니 모셔왔어요.


모친 소리 : 그래 기다리신다.


아가씨 방문을 맵시 있게 연다.

태수, 무뚝뚝하니 방안으로 들어간다.



# 54 방 안


상 뒤 보료에 앉은 박 의원. 그 옆에는 모친이 앉아 있다.

태수, 선 채로 뚝뚝하니 인사를 한다. 이런 자리가 내키지 않는다.


박 의원 : 어허 그놈 참 눈빛이 좋구먼.


모친 : 박 의원님이시다. (의원에게) 좋은 말씀 좀 많이 해주세요.


박 의원 : 좋은 말씀 같은 건 나 할 줄 몰라요.

국회의원이라면 사기꾼인걸. 사기꾼이 무슨 좋은 말을 해. 근데 윤 마담 그 거 알아요?

사기꾼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 벼룩이 간 빼먹는 사기꾼이 있는가 하면,

한 나라를 등쳐먹는 사기꾼도 있고… 나야 어중치기고. (모친에게 술을 쳐준다.)


모친 : (황송하게 받아 고개를 돌려 마시고)


태수 : (그런 모습들을 힐끗 본다.)


박 의원 : 고 3이라고 했나?


태수 :


박 의원 : 실은 내가 군의 모친에게 청했어.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말이야.

나야 어중치기 사기꾼이지만 내 옆에는 쓸모 있는 정보꾼들이 있거든.

그들이 그러더구만. 모 고등학교에 박태수란 아이가 있는데 괜찮습니다.

이 지방 고등학교의 학도호국단장이니 서클 애들이니 다 그 아이 손아귀에 있댑니다아.

그런가?


태수 : 그렇습니까?


박 의원 : 그래서 말이야. 군 같은 청년을 내가 좀 미리미리 사귀어 둘려구 그래.

요즘 정치는 젊은애들 눈치를 얼마나 잘 보느냐 이게 참으로 중요해.

금번에 대통령 각하께서 긴급조치 내린 거 이거 참 외람된 말이지만

그게 다 대학생 무서워서 그런 거 거든. 안 그래요 윤 마담 (마담의 무릎을 슬쩍 친다)


태수 :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


모친 : (웃기만)


박 의원 : 일단 대학생이 되었다 허면 이거야 원 나 같은 늙은이는 거들떠나 봐야 말이지.

고개가 이렇게 왼쪽으루 삐딱하게 돼 가지구 하하하 (정색을 하더니) 이봐요 태수군.

사내란 보다 큰 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이야. 잔물에서 놀아봤자 잔챙이 대장밖엔 못해.

어떤가 이 사기꾼 밑에 와서 놀아보지 않겠나?



# 55 방 문 앞 복도


문을 닫고 나서던 태수, 멈춰서 안의 소리를 듣는다.


박 의원 (소리) : 윤 마다암


모친 소리: 술 쏟아요오


모친의 교태로운 웃음소리…

태수,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가 돌아선다.



# 56 태수의 방


영어 사전을 뒤지던 우석, 방에 들어서는 태수를 본다.


태수 : (방바닥에 벌렁 드러눕는다.)


우석 : 왜?


태수 : (불쑥) 박정희 대통령은 어느 대학 나왔냐?


우석 : (어이없지만) 육사 나왔대지. 왜.


태수 : 나 대학 정했다.


우석 : 무슨 소리야?


태수 : 나 육사간다.


우석 : (웃는다.) 글쎄 왜?


태수 : 대통령 될려구.


우석 : 안에서 무슨 일 있었니?


태수 : 대통령이 되면 우선 쓰레기 같은 것들을 싹 청소해 버릴 거다.

다 청소해 버리구 새루 시작하는 거야.



# 57 육사 전경


스케치…

면접장에 대한 안내 벽보.



# 58 면접장 앞


순서를 기다리는 고등학생들….



# 59 면접장 안


태수, 차렷자세로 서있다.

그 앞에는 장교복을 입은 면접관들…

그 중 가운데의 장교, 태수의 서류를 보고 있는데

그 옆에 앉은 보다 낮은 계급의 장교, 다른 서류 한 장을 건네주며 뭐라 낮게 귀엣말을 한다.

또 다른 장교도 몸을 기울여 그 말을 듣는다.

서있는 태수, 불안해진다.

그들의 얘기가 끝난 듯 가운데의 장교, 태수를 본다.

태수 더욱 몸을 꼿꼿이 한다.


장교 : 아버님 성함이 박인술 맞나?


태수 : 예 그렇습니다.


장교 : 1956년 사망. 맞나?


태수 : 예 그렇습니다. (대답해놓고 슬쩍 그들의 기색을 살핀다. 뭔가 심상치 않다.)



# 60 태수모친의 방


한복을 입은 모친, 앉은 채 침묵하고 있다.

그 앞에 앉은 태수, 모친만 보고 있다.

모친 주전자를 들어 정종을 따르는데 그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주전자에 남은 술은 얼마 안 되어 술잔을 반도 채우지 못한다.

모친 술잔을 들지만 마시지는 않고 도로 내려놓는다.


모친 : 사람들 참 용치. 나는 벌써 잊었는데 사람들은 여태 기억을 하네.

용키두 하지. (이윽고 결심한 듯) 니 아버지… 빨치산이셨다.


태수 : (언뜻 감이 안 오는)


모친 : 육이오 끝나구 나서두 지리산에 계속 남아서… 그러니까 니 아버지 빨갱이였어.


태수 : (그제야 감이 왔다.)


모친 : 그때 니 아버진 대학생이었구, 난 은행다녔드랬다. (미소가 어리는 듯도 싶다.

문득 손에 끼고 있던 가락지를 보여준다) 이거 느이 아버지가 준 거다. 전에 말해줬었니?


태수 :


모친 : (가락지를 보는 얼굴에 미소가 잦아들며) 니 아버지 산에 들어가구

겨울이 두 번 지나구 토벌대한테 잡혔단 소릴 들었어.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니 아버질 찾아갔지. 이듬해 풀려나셨어.

그래서 다 끝난 줄 알았지. 이제 다 끝났으니까 니 아버지랑 둘이 행복하게 살면 되는구나하구…

널 임신한 걸 알게 됐을 때 그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어. 아버질 데려가구 그리구 아버진….

그래두 태수 니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웃는데 눈물이 고이고 있다.) 아들일 줄 어찌 알았을까……

지리산 골짝에다 니 아버지 장례를 치뤘다. 남의 눈을 피하느라구 묘비두 못 세웠어.

그래서 다신 찾을 수가 없었어. 찾을 수가 없드라구 암만 찾아봐두 그게 다 그 골짝 같아서…

어쩜 그렇게 다 똑 같은지…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태수 : (모친을 위로해주고 싶어 움직거리지만 다시 그냥 그대로 앉아 있다.

어찌 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 61 지리산


초겨울….

이름 모를 골짜기의 모습…

마른 나뭇가지…

쌓여서 아스러져가는 낙엽들…

그 사이에 모친 혼자 앉아 있다.

술을 마시고 있다.

맥놓고 앉아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 일어선다.

술기에 비틀 거리면서도 고무신을 터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자리를 뜨려다가 다시 한 번 산을 본다.

계곡의 모습들…



# 62 기차역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다.

모친 술에 취한 기가 가시지 않은 걸음으로 대기 벤치에 앉는다.

바람이 불고….

저 멀리 기적소리…

기차가 다가오고 있다.

모친, 비틀 거리며 일어선다.

불어오는 바람에 스카프가 날려 기차선로 위에 떨어진다.

모친, 다가오는 기차 쪽을 본다.

취중에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

모친, 선로 위로 내려서 스카프를 집으려 한다.

사정없이 달려오는 기차.

모친, 문득 기차 쪽을 본다.

판단정지… 세상의 침묵…

기차는 모친이 있던 자리를 지나가고 하늘로 날리는 스카프.



# 63 화장터


요정의 아가씨들 몇 명 울고 서있는 가운데 관이 화장터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쓸쓸한 장례식이다.

학생복 차림으로 일을 거들던 우석 걱정스레 돌아본다.

태수, 상복을 입고 마치 유령 같은 몰골이다.

화장터의 불길.

인부들 관을 넣을 준비를 한다. 태수, 넋이 나간 얼굴로 보고 있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인부들 서서히 관을 불길로 밀어 넣기 시작한다.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높아진다.

순간 태수 관 위로 뛰어올라간다. 미친 듯이 관을 불길에서 먼 쪽으로 끌어낸다.



# 64 지리산


태수, 모친의 재를 산 계곡에 뿌린다.

그 옆 저만치에 서서 지켜보는 우석.

그들 둘만의 쓸쓸한 배웅이다.

태수 우뚝 서서 둘러본다.

그의 모친이 그러했던 것처럼…



# 65 요정


비질이 안 된 마당….

며칠새 썰렁해지고 쇄락해 보이는 집안 …

여태 걸려있는 근조등은 한 귀퉁이가 찢겨져 바람에 날리고 있다.

태수, 마루 한 쪽에 걸터앉아 있다.

무표정하게 그렇게 앉아 있다가

부시럭거리며 주머니에서 가락지를 꺼낸다.

모친이 보여줬던 그 가락지다.



# 66 사진관 내부


거울을 보며 옷깃을 매만지는 태수.

교복의 맨 윗단추를 풀어봤다가 다시 잠가봤다가…

그 뒤에서 영문을 몰라 보고 있는 우석.

태수 뒤에 있는 우석을 거울 앞으로 끌어낸다.


태수 : 세수했지?


우석 : 뭐하자는 거야?


태수 : (우석의 모자를 비뚜름하게 멋을 내어 준다. 자기 모자도 비뚜르게 쓴다)

 

우석 : (자기 모자를 다시 바르게 쓴다) 갑자기 사진은 왜.


태수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준다.


우석 : 뭐야?


태수 :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다시 맨 윗 단추를 풀어본다. 이쪽이 나아보인다)


그동안 우석 봉투 안의 것을 꺼내본다. 돈이다.


태수 : 니 대학등록금이야.


우석 : 야.


태수 :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잔소리 말구 받어. 그리구 너 대학가.


우석 : 넌.


태수 : 난 안 가.


우석 : (태수를 잡아 자기 앞으로 돌린다) 태수야 (더 말하려는데)


태수 : 법대 가겠다구 했지. 넌 법대 가. 난… 나두 갈 데가 있어.


마주 보는 둘. 그 뒤에서 사진사가 사진기에 필름을 넣고 있다.


(경과)


사진기 앞에 선 둘.

그 앞에 가리개 밑으로 머리를 넣은 사진사.

사진사 하나아

태수, 얼른 우석의 모자를 비뚜르게 한다.

사진사 두울

우석 얼른 모자를 바로 쓴다.

펑 소리와 함께 빛.



# 67 우석의 자취방


우석의 책상 위에 놓인 사진.

앞의 씬에서 찍은 그것.

문이 열리고 먼저 들어선 우석, 뒤를 돌아본다.

태수 어정쩡하니 따라 들어온다.

우석, 태수와의 만남이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다.

고개를 설레설레 웃으며 웃옷을 벗는다.

그 사이 태수, 책상 쪽으로 간다.

그 책상 구석에 놓여있는 사진틀 하나.

고등학생 교복을 입은 태수와 우석이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다.

손을 뻗어 잠깐 만져본다.

그리움이 밀려드는데


우석 (소리) : 저녁 안 먹었지?


태수 : 어 (얼른 손을 뗀다)


돌아보면 우석, 등 뒤에서 그 사진을 보고 있다.

태수, 어색해지며 책상에 쌓여있던 책들 중에 하나를 본다.

넘겨보면 까맣게 적혀있는 법률조항…


태수 : 여전하구나, 너.


우석 : (대답이 없다)


태수 : (돌아선다)


우석 : (따뜻이 보고 있다) 넌 어때.


태수 : 난…(웃어버리는)


우석 : (손을 뻗어 태수의 얼굴을 돌려본다)


태수의 옆얼굴에 남아있는 상처


우석 : 여전히?


태수 : 그렇지 뭐.


우석 : 으이그. (손등으로 태수의 가슴을 퍽 친다)


태수 : 어 (복싱 자세를 취한다)


우석 : (그런 태수의 머리칼을 북 헝클어뜨리고 어질러진 방안을 대충 치우기 시작한다)


우석 : 얼큰하게 찌게해서 먹자.


태수 : 좋지.


우석 : 자구 갈 거지?


태수 :


우석 : 갈 데 없으믄 여기 있어. 자취방이니까 안 집 눈치 볼 것두 없어.


태수, 따뜻한 느낌에 잠기는데 돌아보는 우석.

그 시선에 무안해지며 불쑥


태수 : 술 없냐?



# 68 시간 경과


태수는 이불에 길게 기대어 소주를 마시고 있다.

그 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

우석이 뭐라 답도 하기 전에 문이 벌컥 열리며 혜린이 고개를 들이민다.


혜린 : 우석 씨


그러다가 태수를 보고는 놀라 고개를 빼냈다가 다시 들여다보고는

대충 고개 숙여보이고는 우석을 향해 나오라고 손짓을 한다.

우석, 엉거주춤 나간다.

그 자세 그대로 기대 있는 태수. 그 시선에 보이는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

잠시 후 우석이 다시 들어오더니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나가며 괜히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우석 : 옆방 사는 친구야. 같은 대학 다녀. 돈을 꿔달라네.


우석이 나가고 나서 태수. 빙글 몸을 돌려 엎드린 자세로 열려진 문틈으로 밖을 본다.

마당에 마주 선 둘. 혜린은 돈을 챙기고, 우석이 무슨 말을 했는지

웃으며 머리로 우석의 어깨를 박는다.

시간이 급한지 뒷걸음질로 대문 쪽으로 가면서 계속 우석에게 말을 한다.

우석 잠깐 혜린을 불러 세우더니 흘러내린 목도리를 다시 잘 감싸준다.

태수 다시 몸을 돌려 이불에 기대앉아 술을 마신다.

피시시 웃음이 나온다.

좋아하는 친구는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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