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

<475)>46장 국개위 - 3

오늘의 쉼터 2018. 5. 29. 16:17

(949) 46장 국개위 - 5




“형님, 무슨 일요?” 

조치규가 불퉁스럽게 묻자 최만철이 입맛부터 다셨다.

오후 6시 반, 인사동의 삼겹살 식당 안이다.

이곳은 한때 최만철과 조치규가 단골로 다녔던 식당으로 주인은 그대로였지만 손님이 많이 바뀌었다.

최만철과 조치규도 오랜만에 오는 셈이다.

식당 안은 언제나처럼 시끄럽다.

그리고 손님 대부분이 노조 간부들이다.

둘은 안쪽 칸막이 방에 마주 보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얼굴은 가려졌지만 소음은 다 들린다.

“할 이야기가 있어.” 

소주병을 들면서 최만철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조치규는 현(現) 민노총 위원장. 금속조노위원장으로 있다가 최만철이 민노총을 배신하고

서동수 측근으로 간 후에 선거로 뽑혔다.

강경파였던 최만철의 직속 후배로 ‘최후임’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최만철이 공생당 국개위 위원이 되면서부터 조치규는 최만철을 ‘반역자’로 매도했다.

그런 상황에서 최만철이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으니 조치규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치규의 잔에도 술을 채운 최만철이 술잔을 들고 말했다.

“너, 나한테 반역자라고 한다면서?” 

“그럼 아닌가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조치규가 바로 말을 받았다.

전 같았다면 벌써 귀싸대기를 맞았을 것이다.

나이가 50이라도 그렇다.

엄격한 위계, 서열은 군대 이상이다.

그때 최만철이 말했다. 

“야, 니가 주관해서 각 노조 위원장을 모아놓고 납득시켜.”

조치규가 심호흡을 세 번 했다.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는 중이다.

그러고 나서 회심의 강펀치를 날릴 작정이다.

정색한 최만철이 말을 이었다.

“각 사업장, 그렇지, 금속노조부터 시작하는 것이 낫겠다.

노조가 결의하는 형식으로 말이야. 사측하고 합의서 형식이 보기 좋겠다.” 

“…….” 

“10년 무분규 결의부터 해외사업장과 동급수준으로 보수를 하향 조정하고

근로시간대 생산비율도 해외시장과 같이, 그리고…….” 

“잠깐만요.” 

마침내 말을 막은 조치규가 길게 숨을 두 번 뱉더니 최만철을 보았다.

“형님, 미쳤어요?” 

“아니?” 

정색한 최만철이 고개를 저었다. 

“나 안 미쳤다.

그렇지, 해외사업장 어디라고 비교할 것도 없이 현 보수에서 50% 수준으로

임금을 동결하는 게 좋겠다.” 

“정말 거기 가더니 미치신 것 같구먼.” 

“그럼 당장 임시직은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있을 것이고 10년 무분규 선언을 하면

사측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거란 말이야.

거기에다 근로자 임면권을 사측이 행사한다는 조항을 넣으면…….” 

“아이, 씨, 이건…….” 

마침내 어깨를 부풀린 조치규가 엉덩이를 반쯤 들었을 때 최만철이 말했다.

“이대로 가면 1년쯤 후 북한 출신 고급 인력으로 너희 노조원이 싹 바뀔 거다.”

조치규가 눈만 치켜떴고 최만철의 말이 이어졌다.

“아마 1년 반 후에는 현재 임금의 30% 수준으로 북한 노동자들이 90% 이상을 차지하게 될 거야.

남북 연방법을 적용하면 그래.” 

“…….” 

“말 잘 듣고 머리 좋고, 책임감과 열의로 가득 찬 새 노동력이지.

너희들 어떻게 할래? 데모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최만철의 눈빛이 강해졌다. 

“국개위를 왜 만들었는데? 우리가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야.

기득권 다 버리고, 서동수 씨는 재산 다 버렸어. 남은 건 불알 두 쪽이야.”

세상에, 서동수를 그렇게 말하다니. 






(950) 46장 국개위 - 6




“서울시청 앞 데모대 천막이 어제 철거됐습니다.” 

유병선이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4개 단체에서 거의 3년 가깝게 설치해둔 건데 어제 갑자기 철거했습니다.

지금 시청 앞 사진을 보시지요.” 

서동수 앞에 사진 서너 장이 놓였다. 한랜드 장관실 안이다.

오후 2시 반, 서동수가 잠자코 책상 위에 펼쳐진 사진을 보았다.

깨끗하다.

항상 데모대 천막이 쳐졌고 머리띠와 구호가 찍힌 상의를 입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 없어졌다.

그때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다 알아서 철수한 것입니다.” 

유병선이 들고 있던 서류를 펼쳤다. 

“군부대 이전을 반대했던 3개 지자체에서 반대를 철회한다는 공식 발표를 했지만

정부에서는 이미 늦었다고 통보했습니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유병선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

“국개위 국무위에서 이미 3개 지자체에 대한 행정조치를 끝냈거든요.”

시범 케이스다.

정부는 정부 사업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지자체에 정부 예산 지급을 동결시켰다.

자급 수준 20% 미만의 지자체들이었으니 당장 모든 사업이 중지되고

지자체 내 공무원 월급도 지불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다 ‘국민정서’라는 ‘국개위 지원세력’이 있다.

정부 사업에 지역 이기주의로 반발하는 그 지역의 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땅값 떨어질까봐 군부대 이전을 반대했던 지자체들은 이미 땅값이 폭락하고 있다.

아뿔싸, 하고 반대를 철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때 서동수가 유병선에게 지시했다.

“그거, 국방부 장관의 발표, 자세히 못 봤는데 한번 보여주지.”

“예, 장관님.” 

유병선이 서둘러 방을 나가더니 1분도 안 돼 비서실 직원 둘과 함께 들어섰다.

둘은 벽에 장치된 TV로 가더니 곧 디스켓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화면에 국방부 장관 한상태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목소리가 울렸다. 

“군(軍)의 이동과 군 장비의 배치를 일일이 지역 주민의 여론을 듣고 실행할 수는 없습니다.” 

눈을 치켜뜬 한상태가 서동수를 노려보았다. 

“남북·평화 공존 시대가 됐다고 하지만 아직 연방이 되려면 몇 달이 남았습니다.

군은 그때까지 맡은 바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한상태를 보았다.

한상태는 누가 시켜서 저 말을 한 것이 아니다.

몇 년 전에는 미사일 기지 한 곳을 설치하는데도 지역 주민과 정치인들의 방해로

전국이 혼란에 휩쓸렸다.

지금은 달라졌다.

남북이 신의주 특구 이후로 공존 시대가 됐는데도 군은 할 소리를 한다.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저런 군 지휘관이 있어야 돼.” 

서동수가 정지된 화면의 한상태를 보았다. 

“저런 지휘관이 있어야 국격이 높아지는 거야. 군인이 정치인에게 휘둘리면 안 돼.”

직원 둘이 물러가고 유병선과 다시 둘이 남았을 때 서동수가 물었다.

“기업 분위기는?” 

“좋아지고 있습니다.” 

유병선의 표정이 밝아졌다.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계를 대지는 않았다.

사회 분위기 여론조사를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서동수는 여론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는 인간이다.

그때 유병선이 서류를 들추더니 말을 이었다. 

“최만철 위원장이 제안한 ‘참기 운동’이 번지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욕심을 참고 견디자는 갖가지 표어가 만들어졌습니다.” 

서동수가 머리만 끄덕였다.

그러나 강요하면 안 된다.

자발적으로 번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기가 필요하다.

신의주 특구, 한랜드, 유라시아 진출, 그것도 부족하다.

내가 할 일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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