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7) 46장 국개위 - 3
이틀 후 평양 주석궁 안,
커다란 원탁에 남북한 정상과 한랜드 장관 서동수가 둘러앉았는데 언론에서는 3자회담이라고 했다.
오후 3시 반, 셋은 각각 좌우에 측근 둘을 대동하고 있었으므로 원탁에는 9명이 앉은 셈이다.
이런 3자회담은 처음이다.
그동안 남북한 정상회담이 몇 번 있었지만 경제, 평화 등을 주제로 모호한 합의를 내놓고 결과는
미미했다.
정상들의 실적 쌓기용이라는 평가만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목표가 확실하다.
핵 폐기 등 중국의 압박에 대항하려는 남북한, 그리고 한랜드 정상회담이다.
그래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지금 한국은 세계 3대 강대국(强大國)인 중국·미국·일본에 대항하고 있는 것과 같다.
중국과는 이미 국교가 단절되다시피 한 상태이고 미·일 양국은 남북한을 적국(敵國)처럼 대하고 있다.
그때 김동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난번 군부의 일부 친중(親中)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실패했는데
이번에도 준동할 기미를 보였습니다.”
김동일이 쓴웃음을 지으며 조수만과 서동수를 보았다.
“그래서 조금 전에 주모자를 모조리 체포했고 오늘 중으로 잔당들까지 소탕을 끝낼 예정입니다.”
놀란 서동수와 조수만이 숨을 들이켰고 김동일이 말을 이었다.
“북조선은 쿠데타에 대비한 방지 장치가 철저하게 돼 있지요.
70년 동안 3대에 걸쳐서 발전시킨 기술입니다.
이건 노벨상감일 것입니다.”
조수만과 서동수는 축하할 수도, 거들 수도 없는 내용이었기에 숨만 쉬었다.
그때 김동일이 말을 이었다.
“이번 평양 3자회담은 쿠데타 주동세력을 주석궁으로 모으는 수단으로 사용됐지요.”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이자 조수만이 따랐고 곧 양쪽 수행원 넷이 이었다.
그러나 김동일의 좌우 측근들은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를 든 김동일의 얼굴에 다시 쓴웃음이 떠올랐다.
“우리 북조선의 학자, 군 전략가, 당 원로들의 의견을 총합한 결과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말씀하시지요.”
연장자인 조수만이 먼저 대답했고 서동수가 따랐다.
“예, 듣겠습니다.”
어깨를 편 김동일이 앞에 놓인 서류를 읽었다.
“북조선에 핵이 있는 한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일까지 3국이 압박해도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핵을 가진 남북한연방은 아시아의 중심이 되고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입니다.”
김동일이 말을 마쳤지만 조수만과 서동수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둘 다 만감(萬感)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그때 김동일이 시선을 서동수에게 돌렸다.
“그런데 중국 동성의 기반은 흔들릴 것 같군요. 대안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바로 말한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중국법을 많이 어겼으니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중국 동성은 계속 번창할 것입니다.”
중국 동성에서 일하는 중국인 사원이 20만 명 가까이 된다.
그들이 낸 세금으로 중국 정부가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조수만이 말했다.
“주변 정세가 급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기회에 남북 대선을 2개월쯤 당겨서 3개월 후에 실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때는 양국이 준비가 다 돼 있을 것 같습니다만.”
김동일이 좌우 측근들을 둘러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럼 이것을 정상회담의 합의문에 넣지요.”
조수만이 밝은 얼굴로 말하더니 둘을 번갈아 보면서 웃었다.
“이제는 두 분 중 어느 분이 연방대통령이 되셔도 마음이 놓입니다.”
948) 46장 국개위 - 4
“김동일이야.”
아베가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좌우 양쪽에 앉은 경제상 아소 다로와 방위상 이나다 도모미,
그리고 총리실 부속실장 도쿠가와의 표정이 모두 어둡다.
아베가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동의 근원지는 김동일이라고.”
의자에 등을 붙인 아소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아소는 아베보다 연상인 데다 정치 경력도 선배이며 총리도 지낸 거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베의 최측근 겸 조언자, 또는 견제 역으로 정국의 중심을 잡고 있다.
아베의 시선이 셋을 훑고 지나갔다.
“김동일은 처음부터 북한을 남한한테 넘기려는 수작을 부린 거야.
북한의 주류인 공산당 측에서 보면 매국노지.
신의주와 경제 발전을 내세우며 나라를 서동수에게 팔아먹은 놈이라고.”
그때 아소가 입을 열었다.
“총리 각하, 이번 북한의 쿠데타가 또 불발로 그쳤다면 더 이상 제동장치가 없습니다.
서동수를 중국 동성으로 압박하는 카드도 애당초 기대할 것이 못됐으니
이제 남북한연방의 핵 보유는 기정사실화될 것 같습니다.”
아베가 호흡을 조절하자 이나다가 나섰다.
“총리 각하, 이 기회에 일본의 핵무장 필요성을 한번 띄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베와 아소의 시선이 마주쳤다.
도쿠가와는 말석에 앉아 시선만 내리고 있다.
오늘 평양에서 개최된 3자회담 내용과 상황을 분석하고 보고하는 자리인 것이다.
도쿠가와는 아베와 아소 둘만 참석하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신임 방위상으로 임명된
이나다가 참석한 것에 조금 놀랐다.
이나다는 57세, 여자지만 극우 인사다.
방위상은 국방장관에 해당한다.
방위성 경력도 전무한 이나다가 방위상에 임명됐지만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총리의 권한인 것이다.
도쿠가와는 시선을 내린 채 아베의 용병술에 다시 감탄하고 있다.
이나다를 이 자리에 데려온 목적은 저 말을 유도해내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때 아베가 입을 열었다.
“방위상의 사견(私見)으로 한번 띄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방어 개념으로 띄우겠습니다. 사견을 전제로 하고 말입니다.”
이나다가 씩씩하게 말했을 때 도쿠가와는 소리 죽여 숨을 뱉었다.
손발이 맞는다.
이나다는 중의원 출신의 극우파이며 매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부인하고, 전범재판의 당위성을 부인했으며
계속해서 핵무장 의욕을 내비친 전력이 있다.
이런 인물을 방위상으로 내세운 아베이니 손발이 맞을 수밖에 없다.
“도쿠가와.”
아베가 불렀으므로 도쿠가와가 머리를 들었다.
“예, 총리 각하.”
“서동수가 대마도를 수복하겠다고 여러 번 강조한 적이 있어.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예, 있습니다.”
바로 대답한 도쿠가와가 어깨를 펴고 똑바로 아베를 보았다.
“현재 한국 측에서는 대마도에 대한 자료 수집이 거의 완료된 상태입니다.
지금은 대마도 관광객이 대마도에 관한 자료집을 들고 확인하고 다니는 상황입니다.”
“망할 놈들 같으니.”
그때 이나다가 나섰다.
“한국인의 대마도 출입을 금지하시지요, 각하.”
그때 아베와 아소가 시선을 마주치더니 동시에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것을 본 도쿠가와는 외면했다.
역시 경륜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인간은 쓰이는 용도에 따라 인정을 받거나 매장을 당한다.
그래서 용인(用人)이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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