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손자병법

9篇 (11) ‘하지 않는다’는 말은 곧 ‘한다’는 말이다.

오늘의 쉼터 2018. 1. 14. 00:08

손자병법(孫子兵法) 9篇 <행군편(行軍篇)>
<적의 내정을 확인하라>
‘행군’이란 군대의 행진이나 전투에 있어서의  행진,주둔,정찰,작전과 통솔 등

모든 것을 널리 포함하고 있다. 

손자는 지형과 전투 배치를 네 가지로 구분하였다.

산악지대, 하천지대, 저습지대, 평지에 따라 전투배치는 각각 달라야 한다고 하였다.

이 행군편은 전투에 임하는 최후의 주의 사항인 것이다.





(11) ‘하지 않는다’는 말은 곧 ‘한다’는 말이다.


辭卑而益備者(사비이익비자) 進也(진야)

말은 겸손하면서도 대비를 굳게 하는 자는, 진격하려는 것이다.

辭强而進驅者(사강이진구자) 退也(퇴야)

말은 강경하게 하되 나아가 달리는 자는, 퇴각하려는 것이다.

無約而請和者(무약이청화자) 謀也(모야)

궁약함이 없이 화(和)를 청하는 자는, 책모가 있는 것이다.


외교사령(外交辭令)이란 말이 있을정도로 원래 외교접촉은 듣기 좋은 말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요이상으로 이쪽뜻에 영합하거나 온갖 아부를 하며 은밀히 군비를 증강하고

있을때는 반드시 가까운 시기에 진격해 올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반대로 사신이 자신있게 큰소리를 치며 어마어마하고 극단적인 말을 남기고

부리나케 돌아 간다면 실은 퇴각할 작정임이 틀림없다.


또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까닭이라면 몰라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화의를 청해

오는일이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남모를 계략이 숨겨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진용을 재정비하기 위하여 시간을 벌자는 속셈따위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의 이면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는 말과 속셈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 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반드시 부자연한 과장이 뒤따른다. 

근본은 상대의 그와 같은  행동에 충분히 수긍이 갈만한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이다.

그것을 유리하게 해석한다면 엉뚱한 속임수에 떨어지게 될것이다.

당연히 눈치채야 할 계략에 걸리면 그것은 어느모로 보나 이쪽의 실수가 된다.

한대 맞고 나서 비겁 하다고 떠들어 보아야 소용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쪽의 무지만을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예화] ‘하지 않는다’는 말은 곧 ‘한다’는 말이다.
辭卑而益備者(사비이익비자) 進也(진야)

말은 겸손하면서도 대비를 굳게 하는 자는, 진격하려는 것이다.


전국시대 때 진(秦)나라는 호상(胡傷)을 장으로 삼고 병력 20만 명을 주어,

한(韓)나라의 알여(閼與)를 포위 하게 하였다.

이에 한의 이왕(釐王)은 곧 사신을 보내어 조(趙)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군신을 모아놓고 알여를 구할 수 있는지를 물으니,

조의 명장 염파(廉頗)와 악승(樂乘)은 말하였다.
"길은 멀고 또 험한 곳입니다. 구하기가 어렵겠습니다"
그런데 조사(趙奢)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길이 먼데다 험하고 좁다면 예를 들어 두 마리의 쥐가 구멍 속에서 싸우는 격이니,

용기있는 장군이 있는 편이 이길 것입니다"


이 말에 조의 왕은 곧 군사 5만명을 주어 조사를 장으로 삼고, 알여를 구하게 하였다.

조사는 조의 수도 한단(邯鄲)에서 나오자,

겨우 30 리쯤 행군한 곳에 포진하고 오로지 방벽(防壁)을 굳힌 후  28일 동안,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바로 근처까지 적의 척후대가 밀려와 싸움을 걸어도 조사는 나가서 싸우려고 하기는커녕

더욱 방벽을 굳히기만 하였다.


진의 호상은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사신을 조사에게 보내어 싸울 것을 전하였다.
"우리 진나라는 알여를 공격하여 곧 함락 시키겠다.

싸울 생각이 있거든 빨리 해야지 늦으면 소용이 없어진다"
"천만에, 인방에서 급보가 들어와  한단을 수비하고 있는 것이다.

진나라와는 싸울 생각이 없다"

조사는 이렇게 대답한후 진의 사신을 후대하고 방벽등도 구경시켜 주었다.

사신이 돌아가서 보고하자 그제서야 호상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수도에서 30리쯤 나와 더 이상 군을 진격 시키지 않고 방벽만을 굳히고 있는 상대라면

싸울 의사가 없다고 보아도 좋겠지. 알여는 이미 내 것이로구나"
그리하여 호상은 조사의 군에 대비함이 없이 알여의 공격에만 전념 하였다.
그러나 조사는 진나라 사신을 보내기가 무섭게 곧 군사를 무장시키고 출발하였다.
주야 겸행하여 2일과 하룻밤이 걸려서 국경을 지나 알여에서 15리 쯤 떨어진 지점에

도착하자 포진을 하고 누(壘)를 쌓는한편 1만명의 군사를 파견하고 북상(北上)하여

산성을 점거했다.

 이것을 보고 호상이 크게노하여 군사일부로 알여를 포위하니 조의 군사가 습격해 왔다.

그러나 이미 조의 군대를 잔뜩 업신 여긴데다 산성까지 정압(征壓) 당하고 있어서

싸울 실마리 조차 잡지 못한 채 헛되이 비석(飛石)과 화살의 밥이 될 뿐이었다.

이 때 조사는 번개같이 군사를 풀어서 공격하여 진의 군을 크게 격파 하였다.

뿔뿔이 흩어져 패주하던 진의 군은 마침내 알여의 포위를 풀고 퇴각하였다.


대국 진나라를 상대로 알여의 성을 구한 조사는 진실로 용기가 있는 장수였다.
정면대결로는 도저히 승리할수 없는 우세한 적에 대하여 싸우지 않으려는 척하여,

적이 방심하고 무방비 상태에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일거에 분쇄하는 신중한 전법을 썼던 것이다.


[예화] ‘한다’는 것은 곧 ‘안한다’는 것이다. 

辭强而進驅者(사강이진구자) 退也(퇴야)

말은 강경하게 하되 나아가 달리는 자는, 퇴각하려는 것이다.


오(吳)나라의 왕 부차(夫差)는 북쪽 정벌 이후 진(晉)나라의 정공(定公)과 황지(黃地)에서

회합을 가졌다.

주왕실(周王室)을 받들고 중국의 패자로서 제후에게 호령을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틈을 타서 월(越)의 왕 구천(句踐)이 오나라를 공격하였다.

월의 군사 5천 명이 오나라를 침입 하더니,

드디어 오의 태자를 포로로 삼기에 이르렀다.

빗살이 떨어져 나가듯  패전의 보고가 부차에게 이르렀다. 

누설을 겁낸 부차는 사자를 막하에서 목을 베었다.


그러나 "주실(周室)에서 오(吳)는 형의가계(家系)이므로 오가 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주(周)와 동성(同姓)인 희성(姬姓) 중에는 오가 자작(子爵)인데 대하여 진(晉)은 백작이므로

마땅히 진이 장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시비가 끝없이 계속되는 회맹(會盟)은 용이하게

결착이 날것같지 않았다.

사태를 우려한 오의 왕 부차는 대신들을 모아 놓고 의논하였다.


"사태가 이러한데 회를 중단하고 귀국 하는 것과, 회를 속행 하여 진을 앞지르는 것 중

어느 편이 좋을까?"
그러자 왕손락(王孫駱)이 말하였다.
"절대로 회를 속행하여 진을 앞질러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앞지를 수가 있겠는가?"
"오늘 밤 싸움을 걸어서 민심(민심)을 넓힌다면 반드시 앞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의 왕 부차는 무장군사 3만명을 인솔하고 진의 군으로부터 1리쯤 떨어진

지점으로 가서 천지가 울릴 정도로 함성을 올렸다.

진의 군에서는 무슨일인가 싶어서 동갈(董褐)에게 밖의 정세를 살피게 하였다.

그러자 오의왕 부차가 스스로 나와동갈에게 말하였다.


"내가 주군을 모시는 것도 오늘에 있고, 주군을 모시지 않는 것도 오늘에 있다"
이 말을 듣고 놀란 동갈은 급히 진 안으로 들어가서 진 정공에게 보고 하였다.
"오의 왕의 안색을 살피니 크게 결심한 바가 있는 듯합니다.

독살을 꾀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진정으로 상대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여 진정공은 맹세의 피를 먼저 마시는 것을 오나라에 허락하니

오의 왕 부차는 그날 중으로, 무사히 회맹을 끝내고 귀국할 수가 있었다.

대개 유리한 태세로 빨리 물러가고 싶을 때는 대언장담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