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손자병법

6篇 (12) 판단 자료를 주지 말고 비밀리에 준비하라.

오늘의 쉼터 2017. 12. 30. 12:58

손자병법(孫子兵法) 6篇 <허실편(虛實篇)>
<주도권을 잡으려면>
여기서는 전투에 있어서  승리의 비결이란,

아군의 실(實)로써 적의 허(虛)를  찌르는 것이다.

그 전술은 적에게 조종당하지 않고 오직 적을 조종하는 데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용병하는 방법도 상황에 따라 천변만화하나, 항상 적의 실(實)을 피하고 허(虛)를

쳐야 한다는 것이 이 편의 요지이다.





(12) 판단 자료를 주지 말고 비밀리에 준비하라.


形兵之極(형병지극) 至於無形(지어무형)

병사를 형(形)하는 극치는, 무형에 이른다.

無形(무형) 則深間不能窺(즉심간불능규)

무형이면, 곧 심간(深間)도 능히 엿볼 수 없고, 

智者(지자) 不能謀(불능모)

지자라도, 꼬할 수가 없다.

因形而措勝於衆(인형이조승어중)

형에 의하여 승리를 중(衆)에다 두면,

不衆能知(부중능지)

중은 알아도 능히 알지 못한다.

人皆知我所以勝之形(인개지아소이승지형)

사람은 대개 내가 승리한 까닭의 형은 알지만,

而莫知吾所以制勝之形(이막지오소이제승지형)

내가 승리를 억제하는 까닭의 형은 알지 못한다.

故(고) 其戰勝不復(기전승불복)

그러므로, 그 전승은 다시 하지 않고,

而應形於無窮(이응형어무궁)

더욱이 형의 무궁함에 응해야 한다.


전쟁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형이라고 보이는 뜨렷한 것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어느 것이라고 요량할 수 없도록 언제 어느 때든 변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무엇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모습이야말로 진형의 극치가 될 것이다.


이쯤되면 아무리 은밀하게 탐색을 해도 도저히 실체를 잡을수는 없을 것이며,

일체가 일정하지 않으므로. 아무리 지모가 뛰어난 명장이라도 그 정체를 추측할수 없게 된다.

 적이 만약 이러한 진형을 취해 오면, 이쪽은 이렇게 움직여서 이렇게 된다는 것과

이렇게 하면 승리를 할수 있다는 것만은 철저하게 해두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가는 알지 못한다.


적과 전투를 하여 승리를 얻은 진형은 다 경험하는 것이나,

과연 이 쪽의 어떠한 형이 상대를 격파하였는지,

그 가장 중요한 점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므로 변점무쌍한 전승의 진형이란 같은형이 두번씩 반복될 수가 없을 것이고,

또 일정한 것이 아닌만큼 때에따라 또는 형에따라 무한하게 생겨나는 것이다.


무형(無形)의 형(形)이라고 하면 추상적인 것 같이 들리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취급 되고 있다.

싸우는 태세, 즉 가장 좋은 진형은 따지고 보면, 전혀 형태가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 된다.

조직에 얽매여 꼼짝도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싸움의 형은 아니다.

최고의형으로 조직 되어 있다면 그것은 자유자재로 변화 하면서도

조직의 본질을 잃지 않을 것이다.

상대에게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다.

그러한 형이야말로, 진정한 전투형이라는 것이다.

일의 내용이 바뀌면 방법도 달라지게 되므로 부득이 조직을 변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변경 때문에 가령 일시적이라고는 하더라도 연락이 늦어 지거나,

인계가 순조롭지 못하여 사고가 생기고 혹은 기동력이 둔해져서 능률이 떨어지는 수도 있다.

 이것은 본래의 조직이 형을위한 조직으로서 진정하게 살아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형의 무궁함에 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화] 판단 자료를 주지 말고 비밀리에 준비하라.   

形兵之極(형병지극) 至於無形(지어무형)

병사를 형(形)하는 극치는, 무형에 이른다.

無形(무형) 則深間不能窺(즉심간불능규)

무형이면, 곧 심간(深間)도 능히 엿볼 수 없고, 

智者(지자) 不能謀(불능모)

지자라도, 꼬할 수가 없다.


무슨 일을 하든지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난 스파이가 들어 와도 헛수고이다.

또 지자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손자는 형을 나타내지 않는것이 전쟁에 있어서 가장 좋다고 말하고 있는것이다.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에 패하고 회계산(會稽山)에서 구원을 받아 돌아온지

7년이 지난 때였다.

나라의 힘도 겨우 충실해 지고 백성들은 구천에게 은혜를 느껴서 오나라에 보복을 하려고 하자,

대부(大夫) 봉동(逢同)이 간하였다.
"우리 나라는 이제 막 국세를 회복하여, 상승을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시 전쟁 준비를 시작한다면 오나라는 근심을 하고 반드시 공격해 올 것입니다.

맹금이 먹이를 공격할 때는 반드시 그형을 숨기는 법입니다.

당분간은 오나라에 원한을 품고 있는 제(齊),초(楚),진(晉)나라 3국과 화친 하도록 노력하고,

오나라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오나라 왕이 신이나서 싸움을 가볍게 생각하게 되었을 때가 기회입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으며, 대부 종(種)이 월의 왕에게 간하였다.
"오나라 왕의 정치를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근래 교만해진 것 같습니다.

식량을 빌려 달라고 청을 하고 실정을 탐지해 보십시오"
과연 오나라 왕은 월나라에 식량을 주었고, 월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다시 3년이 지났다.

월의 왕 구천은 범려(范蠡)에게 물었다.
"이제 오나라를 공격해도 좋지않을까?

오의 왕은 충신인 오자서(오자서)를 죽이고,

그 후로는 아첨하는 자만을 상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범려는 아직 시기가 되지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다음해 봄,오의 왕은 북상하여 황지(黃地)라는 곳에서 제후를 모았다.

정병은 모두 왕을 따랐으므로, 오나라에는 노약자와 어린이만이 남아있었다.

이에 때를 맞추어 범려는 기회가 왔음을 왕에게 고하였다.
월의 왕은 성난 파도와 같이 오나라로 진격해 들어갔다.

오의 군대는 대패 하였다.
다시 4년이 지났다.

오나라의 정예는 거의 제와 진나라와 전투에서 전사 하였고 백성은 피폐되어 있었다.

월나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나라를 공격하여 각처에서 크게 격파시켰다.

오의 도읍을 3년동안 포위하니, 오의 군대는 완전히 격멸당하였다.

 마침내 오의 왕은 자살하고 월의 왕 구천은 20여 년의 복수를 끝냈다.
자기를 나타내지않고 상대의 형세를 탐색하여 거기에 대응함으로써 드디어 승리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