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손자병법

4篇 (9) 간부는 솔선하여 몸을 닦으라.

오늘의 쉼터 2017. 12. 27. 17:42

손자병법(孫子兵法) 4篇 <군형편(軍形篇)>
‘군형’이란 군의 배치형태를 뜻한다.

군의 힘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은 세력이다.

그리고 이 세력은 군의 배치 형태에 따라서  강하거나 약하게 된다. 

군의 행동은 개개인의 행동의 집합이 아니라 군이라는 한집단의 일부분으로서

개개인의 행동이 존재한다.







(9) 간부는 솔선하여 몸을 닦으라.


善用兵者(선용병자) 修道而保法(수도이보법)
군사를 잘 사용하는 자는 도를 닦고 법을 보존한다.
故(고) 能爲勝敗之政(능위승패지정)
그러므로 능히 승패의 정치를 잘 한다.


이 조항의 도와  법이란 제1장 시계편에서 나온 도,하늘,땅,장수,법의 오사(五事) 주의

도와 법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政)이란 갖춘다거나 이(理)를 바로 잡는다는 것으로서 정치를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설명이 다시 한번 오사칠계의 근본 이념으로 되돌아 간다.

이상적인 싸움은 도의적인 점에서 결여되는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를 반성하고,

다시 곡제(曲制), 관도(官道), 주용(主用)의 법에 미비점이 있는지 없는지를 재검토 한다.

그럼으로써 승패라는 점에 대하여 착오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군형과 태세의 좋고 나쁨은 요컨대 싸움의 근본이념을 적용시켜 재검토해 보아 실수없이

만사가 완비되어 있으면 적합하고, 미비한점이 있으면 부적합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싸우지 않고도 승산은 내 손아귀에 들어있는 것이니,

군형문제도 근본이념이 그 바탕이 되어 실제로 올바르게 행해지고 있는지 없는지에

귀결하게 된다.


[예화] 간부는 솔선하여 몸을 닦으라.
善用兵者(선용병자) 修道而保法(수도이보법)
군사를 잘 사용하는 자는 도를 닦고 법을 보존한다.
故(고) 能爲勝敗之政(능위승패지정)
그러므로 능히 승패의 정치를 잘 한다.


장군 이광(李廣)은 농서군(隴西郡)  성기현(成紀縣) 사람이다. 

그의 조상은 이신(李信)인데, 진(秦)나라의 장군이되어 연(燕)나라의 태자 단(丹)을

추적하여 포박한 인물이다.

이광의 집안에는 대대로 궁술(弓術)이 전해 내려 왔다.


한(漢) 문제(文帝) 14년에 흉노(匈奴)가 소관(蕭關)에 침입 하였을 때,

이광은 종군하여 흉노를 공격하였다.

말위에서 활을 쏘는데 능하기 때문에 많은 적을 죽이고, 혹은 포로로 잡았다.

그래서 문제는 이광을 칭찬하였다.


"아까운 일이다.

그대가 고조 황제 때 태어 났더라면 문제없이 만호후(萬戶侯) 정도는 되었을 텐데"
또 다시 경제(景帝) 6년에 흉노가 크게 일어나 상군(上郡)에 침입 하였다.

경제는 만일을 염려하여 이광에게 총애하는 환관을 보호하도록 명하였다.

어느날 100기 정도의 군대로 환관을 지키고 있는데, 수천기의 흉노가 있는것이 보였다.

흉노가 이광등을 보고 미끼로 생각 하였는지 산위로 올라가서 진을 치니,

이광이 인솔하고 있던 병사들은 놀라 도망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광이 말하였다.


"우리들은 본대에서 수십리나 떨어져 있다. 

이런 상태에서 100기 정도가 도망을 치면,

흉노가 뒤쪽에서 쏘아대므로 곧 전멸해 버릴 것이다"

이광은 100기를 이끌고 전진하여 흉노의 진에서 2리쯤 떨어진곳에 정지한뒤

말에서 내려 안장을 풀게하였다.

병사들이 겁을내자 이광은 다시 말하였다.

"저놈들은 우리들이 도망칠 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안장을 풀고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서 미끼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과연 흉노들은 공격을 하지 않고 떠나 버렸다.

이광은 말위에서 활을 쏘는데만 능한것이 아니라 병법에도 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청렴하였다. 은상이 하사되면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음식도 병사들과 같이 먹었다.


이광은 40여년간 2,000석의 녹을 받았는데,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집에는 전재산이라곤 거의 없었다.

그러나 재산에 대하여  말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동료인 장군 정부식(程不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광의 군은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 

병사를 즐겁게 해주므로  모두들 이광을 위하여 목숨을 내걸고 있다"

흉노는 이광의 지략을 겁내고, 병사들은 이광을 따르기를 기뻐하였다.


무제(武帝) 4년,이광은 대장군 위청(衛靑)을 따라 흉노를 공격하였다.

그러다 우연히 길을 잃게되어 대장군보다 전장에 늦게나타난 일이 있었다.

이에 화가난 대장군은 그것을 책하고 기록계를 이광에게 파견하고 조사하여

보고할것을 명하였다.

그러자 이광은 말하였다.

"내 부하들에게는 죄가 없다. 내자신이 길을잃은 것이다.

보고문은 내가 쓰겠다"

그리고 다시 부하들을 향하여 말하였다.

"성인이 된 후 흉노와 크고 작은 싸움을 70회나 해 왔다.

이번에 대장군을 따라 출정하여 선우의 군사와 대치하게 되었는데,

돌아오다 보니 길을 잃고 말았다. 천명(天命)으로 생각할수 밖에 없다"

이광은 말을 마치자 스스로 목을 잘랐다.

이광은 길을 잃은 책임을지고 법의 규칙을 명백하게 한 것이다.

이광의 군사들은 모두 소리내어 울었다.

백성들도 그 소식을 듣고  이광을 위하여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역시 길을 잃었던  우장군 조식기(趙食其)는  그 죄로 사형에 처해질 예정이었으나,

돈을 내고 평민이 되었다.

이광과 같은 장군 이야말로,

"병을 선용하는 자는 몸을 닦고 법을 지킨다"는

말에 걸맞는 모범적인 장군일 것이다.

전쟁도 포함하여 모든것은 인간 윤리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