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孫子兵法) 2篇 <작전편(作戰篇)>
작전편에서는 전쟁을 하는데 거액의 비용이 든다는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만 전쟁을 할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전쟁은 빈틈없는 전략으로 오래 끄는 것보다 다소 졸렬해도 빠른것이 좋고,
군수품이나 군량은 적의것을 빼앗아야 한다는 것 등을 강조하고 있다.
(11) 식량은 상대편에게서 탈취하여 쓰라.
故(고) 智將務食於敵(지장무식어적)
그러므로 지혜로운 장수는 힘써 적에게서 먹는다.
食敵一鐘(식적일종) 當吾二十鐘(당오이십종)
적의 1종을 먹는 것은 아군의 20종에 해당되며,
萁稈一石(기한일석) 當吾二十石(당오이십석)
콩깍지와 볏짚 1 석은 아군의 20 석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명민한 장수나 지도자는 가능한 한 적지에서 적군의 식량을 활용하는 데 힘쓰는 것이다. 적의 1종을 활용하는 것은 자국에서 수송하는 20종의 분량과 필적 하고 콩깍지나 볏짚 120근은 자국의 2,400근에 해당한다.
이 조항도 실례이므로 별로 해석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다만 적지에서 조달하는 자급자족은 자국 생산의 20배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영리한 지도자는 가능하면 자국이 곤궁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말이다.
20배라는 숫자의 근거는 없으나 아마도 손자가 실전에서 얻은 경험에 따라
산출 해낸 숫자일 것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경우에 거기서 생기는 손익으로 그 사업이 경영 된다면 경상이익이나
자본금에 손을 대어 그 사업을 운영하는 것보다 20배의 경제에 필적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실례적인 숫자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제1장 시계편의 "무릇 이 다섯가지는
장수로서 들어 알지 못하는자가 없을 것이다. 이를 아는자는 승리하고..."에서 병법의
기본이 되는 진수를 체득하고 읽으면 충분히 배울 점이 있고 활용할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화} 식량은 상대편에게서 탈취하여 쓰라.
智將務食於敵(지장무식어적) 食敵一鐘(식적일종) 當吾二十鐘(당오이십종)
지혜로운 장수는 힘써 적에게서 먹는다.
적의 1종을 먹는 것은 아군의 20종에 해당한다.
한무제(漢武帝)의 원정(元鼎) 4년에 남월(南越)에서 반란 기세가 보였다.
무제는 장삼(莊參)에게 군사2,000명을 주어 남월을 토벌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장삼은 2,000명의 병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며 사퇴해 버렸다.
그러자 겹현(郟縣)의 장사인 한천추(韓千秋)가 자진하여 나섰다.
"그렇게 조그만 나라는 용사 200명이면 충분합니다. 소신이 정복하고 오겠습니다"
무제는 기뻐하며 한천추에게 명하여 군사 2,000명을 인솔하고 남월의 국경을 넘게하였다.
남월로 들어선 천추의 군사는 몇군데 작은 마을을 격파하자 의기양양해졌다.
남월의 장수 여가(呂嘉)는 일부러 길을 내주고 양식 보급 도방해하지 않으며 한천추의 군을
유인해 들였다.
원정군으로서는 식량보급이 가장 머리를 썩히는 일이다.
이미 휴대식량은 다 떨어지고 대규모의 보급 부대도 없이 진격해 온 한천추의 군은
계략인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양식을 보급하면서 전진 하였다.
그런데 남월의 수도인 번우(番禺)까지 40리밖에 남지 않은 지점에서 돌연 여가의 군에게
포위 공격을 받아 전멸 되고 말았다.
양식 보급에만 마음을 쓰느라고 전투 준비를 허술하게 하였던 것이다.
여가는 "적에게서 탈취하여 먹으라"는 손자의 병법을 역이용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무제는 크게 노하여 원정 5년에 근위사령관인 노박덕(路博德)을
복파(伏波)장군에 임명하고, 열후(列侯)의 봉작을 맡고 있는 상훈국에 딸린
무관 양복(揚僕)을 누선(樓船)장군에 임명하여 죄인 및 강회(江淮) 이남에 속한 해군을
합하여 10만명을 이끌고 남월을 토벌하라고 명하였다.
원정6년 겨울, 누선장군은 정병을 이끌고 공격을 개시하였다.
누선장군의 공격은 날카로워 심협(尋陜)을 함락시키고 이어서 석문(石門)을 격파한 후
수많은 남월의 배와 식량을 입수 하였다.
이 식량의 획득으로 누선장군의 부대는 보급 문제를 거의 해결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병사들은 배가터지도록 먹고 원기백배, 용약전진하여 남월군의 예봉을꺾고
약속한 지점에서 복파장군의 부대를 기다렸다.
복파장군은 죄수부대를 인솔하고 전진하였으나, 양식보급이 시원치 않아 고생을 거듭하다가
약속 기일에 늦고 말았다.
누선장군의 부대와 합류하였을 때는 1,000여 명의 병력 밖에 남지 않았다.
두 부대는 군사를 합쳐 전진 하였으나 배부르게 먹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누선장군 부대의
행군이 빠라 한 걸음 앞서 번우에 도착하였다.
번우에서는 여가의 군이 성에 웅거 하여 방비를 굳히고 있었다.
먼저 번우에 도착한 누선장군은 공격하기 좋은 동남쪽에 진을 쳤으며,
늦게 도착한 복파장군은 서북쪽에 진을 치고 교전을 기다렸다.
잠시후 날이 저물자, 누선장군은 맹공을 가하여 남월의 전위 부대를 격파하고
불을 질러서 성을 태웠다.
성의 서북쪽에 진을 치고 있던 복파장군의 군은 병력이 겨우 1,000여 명으로
극히 허술 하였으나, 이미 남월까지 복파장군의 용명이 선전되어 있는데다
날이 어두운 덕택으로 적은병력이 탄로나지 않았기 때문에,
성안의 여가의 군도 복파장군의 진을 공격하지 않고 누선장군의 군하고만 교전하였다.
누선장군은 더욱더 역공을 하여 적의 성을 불태웠으므로, 성안의 적은 그날 새벽에
전원이 항복 하였다.
또 탈주하였던 여가도 복파장군의 부대에게 잡혔다.
이렇게 하여 남월은 평정되었으나 그 공으로 복파장군은 급료가 증액 되었을 뿐이고,
누선장군은 장양후(將梁侯)에 임명 되었다.
이 논공행상의 차이는 결코 누선장군이 뛰어나고 복파장군이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누선장군은 심협, 석문을 격파 하고 뜻밖의 대량의 양식을 손에 넣게 되었기 때문에
보급 문제를 해결한 데 있었고, 복파장군은 보급에 애를 먹었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소설방 > 손자병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2篇 (13) 적에게 이기고 강함을 더한다. (0) | 2017.12.22 |
---|---|
2篇 (12) 격한 노여움이 없으면 적을 죽이지 못한다. (0) | 2017.12.22 |
2篇 (10) 중원에서 힘이 다하면 나라는 피폐된다. (0) | 2017.12.22 |
2篇 (9) 재력이 마르면 곧 구역이 급해진다. (0) | 2017.12.22 |
2篇 (8) 멀리 수송하면 백성이 가난하다. (0) | 2017.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