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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부 거의 모든 사랑의 법칙 1

오늘의 쉼터 2017. 8. 11. 00:40

제7부 거의 모든 사랑의 법칙 1




엄마가 사라졌다.
 

감쪽같이. 자취도 없이.

 

“아버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빨리 실종 신고를 해야 된다니까요.”
 

오빠는 제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쳐댔다.

 

“…좀 더 기다려 봐라. 네 엄마가 그럴 사람이 아니야.”
 

아버지가 맥없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엄마가 뭘 어쨌다는 거예요?
무슨 사고가 난 게 분명하다구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모르세요?
납치, 아니면 뺑소니. 아무튼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단 말이에요.”
 

오빠의 말과 아버지의 말은 미묘하게 어긋났다.

50대 가정주부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그녀의 아들은 ‘실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그녀의 남편은

내심 ‘가출’이라고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야 원, 경찰서에 신고하러 갔다가 ‘가족끼리 의견 통일해서 오세요’라는

충고를 듣고 쫓겨날 지경이었다.

 

“야, 너는? 넌 생각 없어? 엄마 어디 간 거 같아?”
 

오빠가 소파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나를 채근했다.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모르게,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휴, 저걸 그냥. 넌 걱정도 안 되냐? 엄마가 이틀 째 소식이 없는데.”
 

오빠가 험하게 눈을 흘겼다.

 역시, 안 되는 집구석에서는 힘을 합쳐 일을 해결하기도 전에 내분 먼저 일어난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들어갔다.

반질반질 엄마의 손때가 묻은 낡은 주방기구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붙박여 있었다.

개수대에 지저분하게 쌓여있는 설거지 감을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냄비 세 개와, 세 벌의 수저. 그것들은 엄마의 부재를 요란하게 증거하고 있었다.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찌꺼기는 차례로, 신라면, 생생우동, 짜파게티의 흔적이었다.

 

엊저녁, 외출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집에 엄마가 없는 것을 알고 투덜대면서
신라면 하나를 끓여 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아침에 등산회 모임이 있어 부랴부랴 외출했다 들어와 보니 엄마가 없었다는 거다.
 

“밥통에 밥은 없고 별 수 있냐. 우동 하나 끓여 먹었지.”

 

아버지가 변명하자 오빠가 탄식했다.
 

“오 마이 갓. 그럼 엄마가 언제 나갔는지도 정확히 모른다는 거잖아요.”

 

“아니. 나는 밤에 들어왔다가 또 어딜 나갔나 보다 했지. 요새 어디 집에 붙어있어야 말이지.”
 

어스름 해가 진 뒤에도 엄마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자

아버지는 은근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버튼을 누르면서


“이게 미쳤나”


를 약 열번 가량 중얼거렸음이 틀림없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안내음만 되풀이되었다.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아버지, 장남에게 연락을 취했다.

오빠가 달려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쨌든 저녁밥은 먹어야 했으므로, 짜파게티를 해 드신 거다.

 

나는 팔소매를 걷고 설거지통에 손을 담갔다.
고무장갑도 끼지 않은 채 수세미를 들고 냄비바닥을 벅벅 문질러댔다.
흰 거품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만 싶었다.
콸콸 떨어지는 수돗물 소리 너머로 거실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어제 아침이네.
그때 별일 없었어요? 또 싸우신 거 아니에요?”

“싸움은 무슨. 네 엄마가 기어오른 거지.”

 

그래도, 일단은 다행이었다.
실종보다야, 본인의 자발적인 의지가 개입되어 있는
가출 쪽이 남겨진 자들을 좀 덜 막막하게 만든다.
아버지의 표현에 의하면, 사단은 콩자반으로부터 일어났다.
 어제 아침, 콩자반이 반찬그릇에 따로 덜어지지 않고
밀폐용기 그대로 식탁에 올라 있었다고 한다.
 

“난 딱 한마디 했을 뿐이다.

이걸 지금 먹으라는 거냐고. 그런데 네 엄마, 갑자기 뚜껑을 확 닫더니

그냥 조용히 냉장고에 넣어버리는 거야.

세상에, 그깟 콩자반 때문에 집을 나갔다는 게 말이 되냐?”

 

아버지 입장에서야 ‘그깟 콩자반’일 터였다.
 

“어디 전화해볼 만한 데 없나?

강릉 삼촌네는 안 가셨을 거고, 엄마 친구 누구 없어?

아, 그래. 김포아줌마한테 한번 해볼까?

전화번호부 어딨지?”

 

오빠 입에서 ‘김포아줌마’라는 말이 나오다니.
 

“안 돼!”

 

나는 비명을 지르며 거실로 뛰어나갔다.
내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뭐 좋은 일이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 근처 찜질방에 갔을 거야.

뻔하지, 뭐. 엄마가 갈 데가 어디 있어? 좀 있음 들어올 거야.”

 
의뢰인의 무죄석방을 위해, 서투른 거짓말을 늘어놓는 얼뜨기 변호사가 된 것 같다.
아아, 엄마는 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제7부 거의 모든 사랑의 법칙 2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과연. 엄마는 다음 날 아침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기도 계속 꺼져 있었다.
엄마가 가 있을 만한 곳을 떠올려본다.
강릉의 외삼촌? 토론토의 이모?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머릿속을 뱅뱅 도는 이름은 오직 하나뿐이다.
설마 두 사람, 같이 있는 건 아니겠지…제발….
 
“이따가 몇 시에 올 거냐?”
 

출근하는 척, 집을 나서는 내 뒤통수에 대고 아버지가 소리쳤다.

 

“여기로 퇴근하라고요? 힘들어서 안 돼요.”
 

양심이 콕콕 찔렸다.

하지만 퇴직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나는 바로 아버지의 전속 가정부로 옭매이게 될 것이다.

엄마가 사라진 마당에 이 따위 계산이나 하고 앉아 있다니,

나라는 인간의 이기심에 기가 질렸다.

 내 이기적인 유전자의 대부분은 부계로부터 온 것이 확실했다.

 

“그럼 내 밥은 어떡하고? 계속 라면만 먹으란 말이냐?”
 

아아, 밥. 아버지의 거룩하신 밥. 더 이상 말해 뭐하랴.

조금 전 내가 급히 차려낸 아침 밥상 앞에서조차 국이 없다는 둥,

계란프라이 대신 계란부침을 해오라는 둥 반찬 타박을 자행하던 분이 우리 아버지다.

어디 가서 굶고 있을지도 모르는 엄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막상 나오긴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무작정 광화문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며칠 전 아침, 짐을 들고 집을 나섰을 엄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엄마의 기분도 이랬을까. 많이 막막하고 조금 홀가분하고 또 하염없이 외로웠을까.
문득 엄마의 모든 것을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김포아줌마’의 존재까지도.
 

자동차가 분당에서 광화문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러나 지금으로서 최선의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 보였다.

세종문화회관의 돌계단 위에 서서 나는 버튼을 꼭꼭 눌렀다.

그의 전화기는 꺼져 있지 않았다.

 

“여보세요.”
 

나직한 중년남자의 목소리. 나는 숨을 쉬지 않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이정례씨 아시죠?”
 

“예에… 압니다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저는, 딸 되는 사람인데요.”

 

나는 서른두해 동안 쌓아온 교양을 총동원하여 찬찬히 말을 이으려고 노력했다.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저희 어머니가 지금 집에 안 들어오고 계세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내 귀로 전해 듣는 순간 예기치 못한 모멸감이 치받쳐 올랐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저희 엄마, 지금 어디 계신지 혹시 아세요?”

 

“…글쎄.”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처음 듣는 이야기라 좀 당황스럽네요. 이상하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

 

이번에는 내 쪽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감지되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나는 공손하고 무기력하게 중얼거렸다.
 

“저기, 잠깐만요. 은수양.”

 

남자는 내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
엄마의 거취를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무참한 속도로 가슴이 내려앉았다.
 

“시간이 괜찮으면 잠깐 좀 봤으면 싶은데.”

 

약속장소에 도착해서야 내가 그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아는 것은 그의 뒷모습과, 목소리뿐이다.
그러나 그쪽에서 먼저 나를 알아보았다.
 

“어머니 젊었을 때하고 아주 똑같네. 빼다 박았어.”

 

나는 이마를 조금 찌푸렸다.
엄마를 닮았다는 소리야 워낙 많이 들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 아저씨의 감탄에는, 우리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을 잘 알고 있다는
뉘앙스가 들어 있지 않은가.
둘 사이의 역사가 대체 얼마나 되었기에?
 

흰색이 더 많은 머리칼, 검버섯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피부,

 셔츠 안에 감춘 묵직한 아랫배까지. 엄마의 남자친구는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평범한 초로의 남자였다.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을 우리 아버지와 별로 큰 차이도 없어 보였다.

아버지보다 더 핸섬하지도 않고, 세련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엄마는 왜? 지금 이 순간, 엄마 남자친구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보다 더 가엾은 사람은 이 서울 하늘 아래 없을 것이다.

 

“은수양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은 쭉 했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 이렇게도 만나게 되네.”
 

나는 대답 대신 한숨을 안으로 삼켰다.

 
“정례하고는, 한 고향에서 자랐어요.”
 
[정이현 글/권신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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