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연인들의 비밀 7
누가 나를 건드려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솜털만 닿아도 확 달려들어 물어뜯어버리고 싶었나 보다.
“얘가 미쳤나?”
엄마가 나를 노려본다.
나 역시 엄마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엄마는 스물다섯에 나를 낳았다.
서른두 살에 그녀는 꼬물거리는 두 아이를 둔 어미였고, 학부형이었으며,
결혼생활 십년이 다 되어가는 주부였다.
엄마의 서른두 살에 대해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다.
공평하다.
엄마 또한 지금의 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니까.
쉰여섯 살의 엄마가 한숨을 내쉰다.
“휴우, 관두자. 밥은 다 먹은 거야? 어리굴젓 무쳐왔는데 좀 더 먹지?”
상대가 남자였다면 아마 그쯤에서 접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엄마다.
자궁 밖으로 나를 밀어내는 순간 나에게 맹목을 약속한 사람,
오로지 나만을 당신 인생의 고갱이로 여겨야할 사람,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나를 배신할 수 없는 사람.
그래서 나는 소리친다.
“그러니까 앞으론 연락 없이 오지 말아요. 남의 집에 오면서 그 정도는 기본 아니야?”
“내가 남이니?”
“당연히 남이지. 엄마가 나에요? 아니잖아.
엄마는 엄마. 엄마 몸을 가지고 엄마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거고.
나는 나. 내 몸을 가지고 나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고.”
유치하고 치졸하다.
이유 없이 반항하는 여중생의 입에서나 나올 만한 대사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아릿한 통증이 가슴에 번진다.
엄마도 더는 참지 않는다.
“알아. 나도 아는데, 나도 너 같은 딸 어떻게 사는지,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무심하고 싶어 죽겠는데,
그게 안 되니까 어쩔 수가 없어. 네가 참아.”
엄마의 콧구멍이 벌름거린다. 종
종 닮았다는 말을 듣곤 하는 엄마와 나의 얼굴.
작고 동그란 코의 모양새는 틀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방의 인생에 마음대로 개입해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칫솔이 몇 개든, 누가 와서 자고 가든, 내가 엄마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듯이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
엄마는 고통을 받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나는 입술을 깨물며 소망했다.
“.......내가 어쩌다가 우연히,
그래요, 우연히 엄마의 어떤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쳐요.
그래도 난 엄마한테 따져 묻지 않을 거야.”
엄마의 눈동자가 와락 흔들리는 것을 나는 아프게 지켜보았다.
입 속의 혀 때문에 질식해버릴 것만 같았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짧은 문장을 엄마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무슨 말인지 진짜 몰라요? 이렇게 힌트를 줬는데?”
우리는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서로 다른 이방(異邦)의 언어를 허공에 뱉어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먼저 고개를 돌린다. 엄
마는 대답 없이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돌아서는 엄마의 딱딱한 등 너머로 거센 물결이 위태로이 일렁이는 것 같다.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는 본능적인 예감이 고개를 든다.
나는 참았던 말을 뱉었다.
“나한테는 다 얘기해도 되잖아요. 나한테는.”
그 말을 하는 순간,
엄마에게 느끼고 있는 배신감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된 기분이었다.
엄마는 아주 잠깐 동작을 멈추었으나,
곧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황히 내 방을 빠져나갔다.
반쯤 먹다 남은 식은 밥과, 공기 중에 뻐드러져 이미 삭아가기 시작한
초라한 반찬들과 함께 나는 홀로 남겨졌다.
탁자를 주먹으로 탕탕 내리쳤다.
모두들 나를 떠나가고, 나는 모두를 떠나게 한다.
무너지듯 탁자에 이마를 묻었다.
엄마에게 왜 터무니없이 못되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왜 뛰어나가 엄마를 잡지 못하는지,
나는 왜 이렇게 못나게 태어났는지,
아무 것도 모르겠다.
손끝 하나 까딱할 수도 없는 무기력한 자책감이 가슴을 후려친다.
누군가에게 나의 불행을,
그 불쾌한 진실을 남김없이 폭로하고 싶어서 숨이 막힌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찾아 든다.
태오에게 문자메시지를 쓴다.
‘잘 지내니? 나는 잘 못 지내.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전송 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 이토록 못난 내가.
제5부 연인들의 비밀 8
‘씹다’라는 표현을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껌을 씹다,
고기를 씹다,
친구를 씹다,
그리고 문자를 씹다.
태오는 나에게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
오래 망설이다 마침내 내 손을 떠난 문자메시지는 후라보노 껌처럼,
마블링 잘 된 꽃등심처럼, 얄밉게 구는 친구처럼, 그에게 장렬히 ‘씹힌’ 것이다.
보낼까 말까 갈등이 컸기에 충격도 컸다.
어리벙벙하기도 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기만 하면 태오는 허겁지겁 그 손을 붙잡으리라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 근거 없는 오만은 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던 것인가.
몸으로 몸을 때리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었다.
내가 무례라는 손바닥을 휘두르자 태오는 침묵이라는 검으로 맞받아쳤다.
칼날이 예리하게 내 손금을 벴다.
표면적으로 일상은 조용히 흘러갔다.
태오가 해주던 콩밥이 떠오를까봐 전기밥솥을 열지 않았고,
엄마가 만들어온 반찬들이 눈에 띌까봐 냉장고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유준은 선배가 하는 무역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는
“여덟시 출근이야. 못 믿겠지? 실은 나도 그래.
아침에 못 일어날까봐 요즘 아예 밤을 새버린다니까”
고 너스레를 떨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를 바라보는 것처럼 불안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에 실린 장난기는 여전했지만 그래도 제법 의젓한 기운이 묻어나서 마음이 놓였다.
“얼른 첫 월급 타야 우리 은수 맛있는 거 사줄 텐데.
근데 사회생활이 원래 이렇게 빡센 거냐?
일단 적응 좀 하고 정신 좀 차린 다음에 본격적으로 오은수 관리모드 들어갈 테니까
딱 그때까지만 딴 놈들 만나고 다녀라.
오빠가 태평양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지.”
유준은 나를 위해서 백수 생활을 청산했다고 주장하였으나,
그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나긴 피터 팬 생활에서 벗어나 ‘멀쩡한 사회인’으로 극적인 전향을 하려면,
스스로를 멋쩍지 않게 만들어 줄 로맨틱한 핑계가 필요했으리라.
“월급 받는 대로 다 쓰지 말고 정기적금 먼저 들어.
아무리 금리가 바닥이라도 은행에 꼬박꼬박 넣는 게 젤 안전한 거야.”
그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어줍은 충고의 전부였다.
“이번 일요일, 시간 어때요?”
김영수가 물어왔을 때 나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일하는 직원 하나가 대전에서 결혼식을 하거든요.
혼자 가기 심심한데 은수 씨가 친구해주면 고마울 것 같아요.”
잠시라도 고향을 떠날 일이 생긴다는 건 언제나 대환영이다.
짧은 여행 제의를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일요일 오전, 경부 고속도로의 사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서울요금소를 지나면서부터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자동변속기에 무방비로 올려두고 있는 김영수의 오른 손등을 지그시 훔쳐보았다.
우리 사이에 아직 아무런 스킨십도 없었다는 걸 이 남자도 의식하고 있겠지?
그의 손 위에 돌연 내 손을 포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불쑥 궁금해졌다.
“재미없는 얘기 하나 해 드릴까요?”
김영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평소 재미있는 얘기라고는 한 적이 없는 이 남자가 ‘재미없다’고 강조하다니,
그 수준이 궁금해서 귀가 쫑긋 섰다.
“며칠 전 출근하는데 차가 유난히 막혔어요.
오늘보다 더요.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 속수무책으로 서 있다가 아무 생각 없이 룸미러를 보게 됐죠.
뒤차 운전자는 여자였는데, 거울을 꺼내 들고 화장을 고치더라고요.
잇새에 뭐가 끼지 않았나 살펴보기도 하고, 립스틱도 다시 바르고, 뺨에 분칠도 하고요.
그래도 차가 꼼짝을 않는 거예요.
이번엔 그 여자, 전화기를 높이 치켜들었어요.
전화기 액정을 보면서 한손으로 V자를 그리기도 하고 활짝 웃기도 하고….
첨엔 뭘 하는지 몰랐었지만 곧 알게 됐죠.
혼자 셀카를 찍고 있다는 걸.
그녀는 앞차 룸미러에 자기 행동이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인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 테죠.
그녀의 눈에 보이는 건 운전석 위로 조금 튀어나온 내 뒤통수와,
내 차의 브레이크등뿐이었을 테니까.
어이없어서 허허 웃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이거 남 일이 아닌 거예요.
그럼 십 분 전부터 지루하게 서있던 내 앞차 운전자는
룸미러 속으로 내 행동 하나하나를 낱낱이 다 보고 있었던 거잖아요.”
어쩐지 으스스해지는 얘기였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글쎄요.”
“얼른 선글라스를 써 버렸어요.”
이 남자에게 처음으로 동질감을 느꼈다.
[정이현 글/권신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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