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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건달바 전투 3 - 행성에 들어서자 환락의 도시가

오늘의 쉼터 2016. 6. 26. 16:15

제10장 건달바 전투 3


- 행성에 들어서자 환락의 도시가



보생과 흡혈귀들은 삼장법사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살려주시고 앞 길을 열어주시니

저희는 법사님의 보이지 않는 호법(護法)이 되어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옛날 서역에 갈 때는 많은 불보살이 길을 인도해주시고 신령들이 우리를 지켜주었다.

12신장(神將)과 5명의 게체(揭諦), 4명의 공조(功曹), 18명의 호교가람(護敎伽藍)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들이 있었어. 지금은 파멸의 시대라.

우주의 삼라만상이 무너져 적막과 죽음에 빠지는 때에 이르고 보니

불보살들은 서역에 갇혀 계시고 곁에는 선한 신령들이 없구나.

나는 너희들을 게체, 즉 불법을 수호하는 귀신인 키르티무카라고 부르겠다.

진짜 게체처럼 우리를 지켜다오.”

 

흡혈귀들은 큰 소리로 일제히 대답했다.

 

순간 나는 따끔거리는 듯한, 부글부글 끓는 듯한 느낌과 함께 번쩍 눈을 떴다.

나는 너무 황당해서 잠시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정은 어깨에서부터 팔목 근처까지 살이 갈라진 채 피를 쏟고 있었고

팔계는 목에서 피를 흘리며 엉망이 된 얼굴로 쓰러져 있었다.

우리가 자던 숙소는 지붕이 날아가고 깨어진 돌조각과 유리조각이 흩어져 엉망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 난장판의 극치 속에서 삼장법사는 단정하게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얘들아, 이게 어찌된 일이냐?”

 

“이 악독한 원숭이 대가리 놈아! 전부 네가 저지른 일이잖아!”

 

오정이 나에게 이빨을 으드득 갈아붙이고 눈알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평소 유순한 오정이 이렇게 불덩이 같이 화가 난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나는 또 다른 악몽 속으로 들어온 듯한 공포를 느끼며 억지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가 아니었어. 지하동굴의 흡혈귀들이 내 속으로 들어와 나를 제압하고

내 몸을 숙주로 만들어버린 거였어.”

 

“오공의 말이 맞다. 그만 화를 풀도록 해라.”

 

가부좌를 틀고 있던 스승이었다.

스승은 유체이탈(幽體離脫)의 피로 때문에 가쁜 숨을 내쉬었다.

스승은 막 자신의 육체를 떠나 나의 육체로 들어왔고 흡혈귀들을 물리치고

교화한 뒤 다시 자기 몸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스승은 나에게 흡혈귀들에게 들씌워진 내가 집을 부수고 죽이고 다치게 한

마을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용서를 구하라고 명했다.

고민하던 나는 근두운을 타고 가까운 도시로 날아가 내 은행 계좌로부터

온라인으로 현금을 인출했다.

 팔계의 귀뜸이었다.

 

“이럴 때는 현금이라는 투척무기가 있어야 돼.

수표는 안돼. 현금에만 에너지가 담겨 있거든.

사과 박스 하나 가득 현금을 담아서 앞에 놓고 죽을 죄를 졌나이당 어쩌구 넙죽 절해 봐.

우주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아직 현금 든 사과박스만큼 무서운 무기를 본 적이 없어.

모든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가. 열 박스면 살인죄가 날라가고 백 박스면 역적도 대통령으로 변하지.”

 

정말 팔계가 전수해준 사과 박스 투척술법은 무척 신묘했다.

강력한 살기가 10초 만에 스르륵 풀어지고 다시 10초가 지나면 그 얼굴에 희벌쭉 웃음이 피어났다.

마을에서의 사고를 수습한 우리는 서둘러 산길을 올라갔다.

 

검은 닭 행성으로 통하는 초공간의 구멍 앞에서 스승은 지프를 세우게 했다.

스승은 뭇 산들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뱀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바로 보생이 데리고 온 업금강과 연화금강의 무리 199명이었다.

뱀의 형태를 한 그 많은 불꽃들은 스승의 정수리 위로 날아와서 안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들은 스승의 도력에 정말 놀랐다.

스승의 몸에는 하나만 있어도 도시가 황폐화될 무서운 흡혈귀가 199 마리나 살고 있는 것이다.

그 흡혈귀들은 스승의 영력(靈力)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고 있었다.

 

초공간을 지나 검은 닭 행성으로 들어서자 지프는 잘 포장된 아스팔트를 달리게 되었다.

싱그러운 냄새가 풍기는 숲과 맑은 개울들, 그리고 그림 엽서에 나오는 것 같은

예쁜 소도시가 잇달아 나타났다.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한여름이라고 오정이 알려주었다.

낮에는 후덥지근했고 밤은 짧았다.

스승의 엄명으로 탁발을 나가야 했는데 그것은 그것 대로 재미있었다.

이 별은 인심이 후했다.

 24시간 편의점 같은 곳에서는 유통기한이 끝나가는 음식들을 산더미처럼 내주었다.

우리는 탁발을 나간다고 교대로 도시로 들어가서 스승의 눈을 속이고 노름을 하다가

얼른 음식을 얻어 돌아오곤 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일주일을 달려간 우리는 드디어 환상적인 대도시에 도착했다.

은하계의 모든 논다니들이 모인다는 넓고 개방적인 항구 도시, 금향 특별시였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도시를 불야성(不夜城)처럼 밝히고 있었다.

도시의 하늘에는 이상하게 요사스러운 빛이 감돌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흥청거리며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취향 때문에 생긴 기운이라고 생각했다.

 

골목마다 멋진 음악이 들려오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걸어가고 있었다.

팔계는 끙, 끙 한숨을 쉬며 허리를 뒤틀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근교에서 자야지.

스승만 잠들면 동생들과 몰래 빠져 나와 카지노로 달려갈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