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가자 서역으로 4
- 8기통 지프를 타고 초공간을 향해…
무기를 파묻고 옷과 식량을 나눠주고 절로 돌아온 우리는 풀이 죽었다. 스승의 빡빡한 성품을 보니
앞으로의 고생길이 눈에 선했다. 무슨 혼이 씌어서 서역 행을 자청했는지 벌써부터 후회가 막심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스승은 우리를 보자 괴나리 봇짐을 지고 길을 재촉했다. 지프차도 두고 걸어가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정말 기겁을 했다.
“서역 행성까지 얼마나 먼 길인지 아십니까? 아무리 빈 몸으로 가도 텐트와 방한복 1벌씩과 사흘치의 비상식량은 가지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빌어먹어야 한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잘 곳도 구걸할 곳도 없는 황무지가 수두룩하다니까요. 예전처럼 용마(龍馬)도 없는데 이걸 누가 짊어지고
가란 말씀입니까?”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 하지 않느냐. 힘들게 걸어가는 것이 수행이야. 미지(未知)의 길을 구름 따라 물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서 의연하게
재액과 환난을 겪고 물방울 같은 배움을 얻는 것이 수행자니라.”
“하이고, 재액과 환난요? 그런 거 차 타고 가도 코피 터지게 많습니다. 또 옛날처럼 어느 귀신이 잡아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져버리지나
마세요.”
팔계도 정색을 하고 손을 내저었다.
“스승님. 걸어가다간 날 샙니다. 우리가 늘어진 개팔자도 아니구요. 초공간의 재앙 때문에 도탄에 빠진 중생들을 구제하러 가는 마당에 일부러
천천히 가다뇨? 그러는 사이에 우주가 정말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집니다.”
노트북 컴퓨터를 두드리던 사오정은 지도와 계산을 담은 모니터 화면을 스승 앞에 펼쳐 보였다.
“스승님, 제가 길을 잡아봤습니다. 우리는 초공간의 구멍을 찾아서 서쪽의 다른 별로 가고 거기서 다시 더 서쪽의 별과 통하는 구멍까지 가서
또 다른 별로 이동합니다. 가장 빠른 지름길을 택해도 무려 9개 별을 오랫동안 가로지르면서 4만 2천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합니다. 차로 하루
12시간 700킬로미터씩 달린다고 잡아도 두 달 걸립니다. 말을 타고 가면 아홉 달. 걸어서 가면 2년 하고도 두 달이 더 걸립니다. 요마를
만나지 않고 무사히 길만 간다고 가정할 때 이렇습니다.”
스승은 그제서야 뒷짐을 지고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스승은 착잡한 표정으로 발길을 뗐다. 지프 앞에 선 스승은 못마땅한 눈으로 안을
기웃거렸다. 후면에 넓은 짐칸이 있고 좌우는 넓었으며 타이어는 높고 모양은 납작한, 다소 볼썽 사나운 4인승 지프였다.
“온갖 이상한 별을 다 지나가야 할 텐데 이 차가 제 구실을 하겠느냐?”
우리는 눈썹을 치켜 세우고 입을 모아 아우성쳤다.
“이 지프가 생긴 건 좀 무식해도 지구인이 만든 차량 중에 최곱니다. 허머라고 미군들이 쓰는 건데 낙하산을 매달아 비행기에서 던져도 아무
탈이 없어요.”
“8기통 4륜 구동에 무게 4톤, 배기량 5730cc, 190마력이라구요. 60퍼센트 경사의 비탈길도, 눈길, 빙판길, 사막, 늪지도
거뜬히 통과하고 1.3미터 깊이의 강물도 단숨에 건너가요.”
간신히 논쟁이 끝났다. 우리는 내용물을 많이 드러낸 짐칸에 휘발유와 예비용 타이어를 넉넉하게 실었다. 우리가 작업을 하는 동안 스승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북한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맨발에 불결한 옷을 입은 냄새 나는 아이들은 이 푸른 눈의 미국인 여승에게 남다른 애착을
느끼는 듯 스승의 손에 매달려 울음을 터트리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사오정은 스승의 감화력에 찬탄했지만 나는 코웃음을 쳤다.
“물주가 떠나면 누구나 슬프고 아쉬운 거야. 일종의 재정적 충격이지.”
우리는 우마왕과 의사들의 전송을 받으며 심원사를 출발했다. 우리가 탄 지프는 산길을 덜컹거리며 달려 평평한 평지로 들어섰다. 전쟁 전 북한
사람들이 닦아 놓은 도로는 패이고 부서진 상태로 눈이 닿는 곳까지 똑바로 펼쳐져 있었다.
“자,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운전대를 잡은 저팔계가 쾌활하게 물었다. 조수석에 앉은 사오정이 손을 내저었다.
“잠깐만 기다려. 디지털 전쟁 탓인지 이 나라는 초공간의 구멍이 도처에 생겼어. 각각의 구멍이 어느 별로 통하는지 검색하는 자료마다 다른
대답이 나오네. 아수라장이야.”
4인승이라고는 하지만 작은 식탁만한 팔걸이를 치우면 4명씩 8명이 앉아도 좋을 만큼 실내 공간은 널찍했다. 팔걸이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땀을 뻘뻘 흘리던 사오정은 이윽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듯 했다.
“됐어. 일단 시도해보자. 쭉 직진했다가 다음 네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줘. 그런 다음 한참 가야 해.”
지프는 힘찬 엔진 소리를 내며 좌우로 황폐한 논밭들이 펼쳐진 평야를 가로질렀다. 네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자 다시 계곡이 나타났다. 검문소를
한 번 만났지만 나의 섭혼술로 별 사고 없이 통과했다. 1시간 정도를 달리다가 사오정은 오른쪽으로 돌라고 말했다.
“됐어. 조금만 더 가면 초공간의 구멍이야. 나의 계산 대로라면 우리는 냇가의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통통통 6개의 경유지 별을 건너서 첫
번째 목적지인 야마 행성에 도착할 거야. 옛날 우리가 염마국(閻魔國)이라고 불렀던 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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