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신행마동

第 二十八 章 恨天二奇의 屈伏

오늘의 쉼터 2016. 6. 7. 17:38

第 二十八 章 恨天二奇의 屈伏



얼마 전부터 무림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들이


천하의 각 세력들 사이를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무공의 깊이는 강호에서 흔히 볼 수 없을 정도 였으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 중의 수 명은 이미 등천마세에도 잠입해 있었다.
어깨에는 비스듬히 걸린 도(刀)!


그들은 군중 속에 숨어서 등천마세의 주인이 바뀌는 대 역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공천의 처참한 죽음도 목격했고 미쳐버린 마금석도 보았다.
그러다 한 흑의인이 분해되어 죽어가는 처참한 광경도 보았다.
그런데 한천이기가 무적검이라고 알려진 젊은 고수를 향해서 무심코 불렀던 이름,


그 이름이 그들을 일제히 한 곳으로 모이게 했다.
그곳은 등천마세의 인적이 끊긴 곳,


바로 미쳐서 떠나버린 마금석의 전각이었다.


{틀림없이 소일초라고 불렀소. 그리고 무적검 역시 부인하지 않았소.}
여섯 명의 인물 중 한 명이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보기에는 우선 나이가 맞지 않지않습니까?}
다른 한 명이 말했다.


{이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오.


비록 장주께서 우리에게 많은 재량을 주셨지만, 일단 먼저 보고하도록 합시다. }
{좋습니다. 그럼 대정(大鼎)형께서 보고 하십시오.


우리는 이곳에서 계속 그를 관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때는 무심히 흘려들었는데,


그 원천기란 청년이 주소아란 이름도 부른 것 같소.


바로 무적검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은데,


그것은 바로 작은 주모님의 사질녀(師姪女)분의 이름과 같은 거요.


이건 보통 이상한 문제가 아닌 것 같소.}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소일초라는 이름은 아주 이상해서 보통사람이 지을 이름이 아닙니다.}
숙의를 거듭한 그들 중 한 사람이 빛살처럼 빠르게 등천마세를 빠져나갔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일제히 각기 다른 방향으로해서 소일초의 전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 ×


{한천이기의 충성수를 어떻게 상대하시겠어요?}
취풍녀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소일초가 대답않고 덮석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갑작스런 그의 태도에 취풍녀가 당황하며 주소아를 보았다.
주소아는 못본 척 가만히 있었다.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잠자던 취풍녀의 욕구가 손잡힌 것 하나에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사마귀는 마금석이 미치는 것을 본 터라


소일초의 갑작스런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제기랄...! 정말이야, 너도 몸 속에 충성수를 가지고 있어.}
소일초가 투덜거렸다.
순간 취풍녀를 몸이 가늘게 떨렸다.


얼마 전에 본 그 처참한 광경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그럼 어...어떻게 하죠?}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소일초는 다시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사마귀들의 손을 차례로 짚었다.


사마귀 역시 충성수를 마신 흔적이 있었다.
{이건 생각도 못했어.


그들은 우리와 가까이 있는 것을 잘 이용한 거야. 멋지게 당했어.}
주소아가 말했다.
사마귀와 취풍녀는 조심스럽게 주소아와 소일초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일초는 천천히 방안을 걸어 다니며 골몰히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로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소아! 등천마세의 모든 놈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나 아니면 구해주어야 하나?}
사마귀와 취풍녀는 의아했다.


자기들이 중독되어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인데


소일초는 등천마세 모든 사람들의 생사를 거론하는 것이다.
역시 주소아도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주소아는 그의 눈을 빤히 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보려는 듯 한 번 깜짝이지도 않고 있었다.
{네 뜻이 그렇다면 살려주도록 하자. 하지만 잘하는 지는 결정이 서지않아.}
소일초는 주소아의 눈에서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은 죽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고마워, 왠지 나는 자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두려워 져.


네가 사람을 죽이는 것도 그다지 좋게 생각되지는 않아...무공은 좋지만 피와 죽음은 싫어.}
주소아는 눈에 눈물을 담고 있었다.
소일초가 고개를 저었다.
{소아 너도 많이 변했어!


나 역시,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문제로 고민할 우리가 아니었는데...}
{우린 많이 자랐잖아. 변하는 것이 당연한 거야!}
주소아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주소아,


그녀는 지금 가장 감성이 풍부할 나이에 이른 것이다.


비록 몸은 완전한 발육을 했지만, 한 조각 낙엽을 보고도 감상에 젖어들고


작은 일에도 울고 웃는 방년의 나이인 것이다.
이 점은 소일초 역시 마찬가지 였다.


생각이 많아지고 깊이 생각하는 일이 요즘 들어서는 부쩍 많아졌다.
동선장에서 그가 보던 책도 원대(元代)의 희곡인 고칙성의 비파기(琵琶記)였다.
그 비파기를 읽으면서 깊이 빠져 주인공의 행동과 처지 하나하나에 자신이 희비를 경험했던 것이다.


스스로 호걸로 자처하던 그 인지라


주소아에게 책을 보고 눈물을 흘렀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던 것이다.
{충성수를 해독할 수는 있는건가?}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투귀가 참지 못하고 그들의 감상을 깨뜨렸다.
{네! 간단해요. 세째 아저씨.}
주소아가 눈물을 지우며 방긋웃었다.
와아-!
사마귀와 추풍녀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소일초가 원천기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지는 않고,


게다가 등천마세의 모든 인물들의 생사를 거론하자


아예 다 죽이고 함께 죽으려는 것으로 생가했던 것이다.


털석털석------
사마귀는 의자에서 내려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죽었구나 하다가 긴장이 다 풀린 것이다.
그때 주소아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러자면 배를 가르고 오장을 뒤집어서 깨끗한 물로 씻어야 해요.}
그말에 취풍녀와 사마귀는 넋이 나가 버렸다.


오장을 뒤집어서 물로 씻는다니...


그냥 죽인다는 이야기 아닌가?
정말인가 싶어서 모두 소일초를 바라본다.
소일초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언니! 우릴 속였군요.}
취풍녀가 자기보다 열살은 더 적은 주소아를 언니라고 부르며 달려들어 겨드랑이를 간질렀다.
사마귀는 긴박한 상황에서 깜찍스럽게 속이는 그녀가 기가 막히는지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큰아저씨한테서 배웠을 뿐이예요.}
{하하하하...}
방안가득 웃음이 흘러 넘치면서 침울하던 분위기는 완전히 가셔버렸다.


× × ×


다섯 명의 신비한 도객들은 갑작스럽게 안으로 부터 터져나오는 웃음소리에 당황했다.
지금, 무적검의 처소는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의 긴장과 분노로 가득차 있어야 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들은 누구의 저지도 받지 않았다.


등천마세의 삼대금역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이미 이곳에 운집해 있던 고수들은


한천이기의 거처로 된 등룡각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들어가서 부딪쳐 보자. 적의를 가지지 않은 이상 다른 변고는 없을 것이다.}
한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왔군! 안으로 들어오시지!}
도귀가 웃음을 그치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다섯 도객들은 흠칫 놀라며 어깨에 걸린 도를 한 번 잡아본 후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무적검을 만나러 왔소.}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대표로 말했다.
소일초와 주소아 등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서로 담소하고 있었다.
단지 도귀만이 일어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무적검을 만나려는 사람이 상당히 많군,


앞서 만나고자 했던 사람이 모두 죽었다는 걸 알고 있을 지 모르겠군.}
{우리는 단지 무적검을 한 번 만나려는 뜻 밖에 다른 의도는 없소.}
순간 소일초와 주소아의 눈이 마주치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일제히 소리쳤다.
{장충보(張充寶)!}
{장아저씨!}
도귀와 말하고 있던 도객은 망연히 그 두사람을 보았다.


{조아저씨와 진아저씨,두 분 권아저씨도 오셨군요.}
주소아가 기뻐하며 달려가는 데 다섯 도객은 주춤주춤 물러서며 어깨의 도를 끌러들었다.
사마귀의 안색이 확 변했다.
{백인장(百刃莊)!}
대뜸 투귀는 도망부터 칠려고 했다.
백인장의 도객들의 도(刀)는 여러가지 였으나 그 도신(刀身)에 새겨진 문장만은 동일했다.


바로 그 도를 사용한 초대 백인도객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어린도를 포함하여 백인장에는 초상이 새겨진 백자루의 도(刀)가 있고,


그 도 하나하나 마다 고유의 전래 도법이 있었다.
백인장의 수 백 명의 사람들 중에서 백인도객은 오직 백 명 뿐,


백인도객은 백인장의 자랑이고 자부심이며 모든 것이었다.
초상이 새겨진 도는 원로들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전에는 가졌겠지만 후손에게 물러주고 자기는 다른 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백인도객들을 본 사마귀는 자신들의 무공이 높다고 하지만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망치려는 투귀의 덜미를 주귀가 잡아당겼다.
{우리는 백인장의 새로운 실력자를 믿으면 돼.}
그가 다른 세사람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소아는 달려가다가 그들이 도를 뽑아 들자 딱 멈추어섰다.
{우리는 당신들이 누군지를 정확하게 알고자 합니다.


가능하면 숨기지 말고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장충보가 도를 옆으로 비켜들고 신중하게 물었다.
그들은 지금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자신들의 추측이 사실로 나타나기를...
소일초가 그들의 앞으로 격동된 모습으로 다가갔다.
{장충보, 아니, 이제는 장도객이라고 불러야 겠지? 오랫만이오. 신물을 보여드리겠소.}
그는 신중하게 말하며 품에서 청옥소도,


즉 패도구룡인을 꺼내어 높이 들었다.
청옥소도에서 맑은 푸른 빛이 어른 거리며 실내를 환하게 만들었다.
{오오!}
{오...!}
다섯 명의 백인도객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외쳤다.
{백인무적(百刃無敵) 수신호정(修身護正)!}
소일초가 청옥소도를 장충보의 앞에서 보였다.
{확인해 보시오.}
무릎을 꿇고 장충보가 두 손으로 받으며 말했다.
{관례에 따라 장충보가 확인합니다.}
그는 신중히 청옥소도를 살펴보았다.


과연, 아홉마리의 용이 휘감고 있는 청옥소도는 진품이었다.
그는 정중히 두 손으로 받쳐서 소일초에게 돌려주었다.
무릎을 꿇은 채 긴장된 눈으로 장충보를 바라보던 네 도객이 일제히 외쳤다.
{조영후가 소장주님을 뵙습니다.}


{진관평이 소장주님의 무사하심을...}
소일초는 청옥소도를 회수하여 품속에 넣었다.
그러자 다섯도객이 일어섰다.
{소장주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곳에서 만나다니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진관평이 일나자 마자 물었다.
{소아! 이제 인사하도록 해.}
{장아저씨, 진아저씨, 조아저씨... 저는 주소아예요. 안녕하셨어요?}
다섯 명의 백인도객, 장충보, 진관평, 조영후, 그리고 권일화와 권일수 형제...


그들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이야기를 듣고 기뻐마지 않았다.
그리고, 소일초와 주소아는 백인장이 파양호 밑으로 숨어있다가


이제서야 다시 일부 선발대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백인장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가 그기에 있었던 것이다.


소선풍도 건강을 되찾은 지 오래로 무공은 그전 보다 훨씬 더 깊어졌다고 한다.
사마귀도 멋적게 다섯 도객들과 인사를 하고 거듭거듭 잘 부탁한다고 했다.
진관평이 색귀를 보고 입을 열었다.
{색...}
{그냥 색귀라고 부르시오.


앞으로 함께 지내게 될 터인데 서로 편안하게 부르도록 하시오.}
소일초가 진관평에게 말했다.


그는 이제 백인장의 도객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어 어투를 조심스럽게 하고 있었다.


그 역시 백인장의 장주가 지켜야 할 율법이 어떤 것인지를 잘알고 있는 터에


이렇게 성장한 지금도 어린애 처럼 막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말에 사마귀도 고개를 끄덕였다.
{색귀! 그래 우리 나이도 비슷한 듯 하니 모두 친구처럼 지내세.


그런데, 자네 아정(阿貞)을 기억하나?}
색귀의 얼굴이 확 변했다.
어떻게 그녀를 모를 수 있는가?


백인장에 잡혀가 갇혀 있었던 것도 모두 그녀와의 사건으로 말미암아서 인데...
{아직 잊지 않고 있는 모양이군,


그녀는 아직도 자네 부인이라면서 수절하고 있다네!}
색귀의 중후한 얼굴은 바닥을 향해 수그려졌다.
모두 조용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색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둘째야! 이젠 너도 정착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마침 그녀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다하니 정착을 하려무나!}
주귀는 술을 들이켰다.
이런 남녀간의 문제는 누구도 개입하기 힘든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은 단지 색귀가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진도객! 그녀가 나를 용서할 수 있겠소?}
색귀가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그럼! 용서하고 말고... 자네같이 멋진 남자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진관평이 그의 손을 잡았다.
주소아가 웃었다.
{이제는 멋지게 술이나 마셔요. 제가 솜씨를 부려 볼께요.}


* * *


-등천마세의 새주인 탄생했다.


이 소문은 무리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급속도로 번져갔다.
등천마세가 사파의 하늘이었기에 소문은 보다 확실히 중원인들의 가슴을 파고 던 것이었다.
등천마세의 새주인, 그는 무적검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적검!


그리고 그에 대해 무림에 알려진 바는 전무(全無)하다.


전무하기에 더욱 무서운 느낌을 중원인들의 가슴에 심어 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중원은 특히 정파무림인들은


등천마세의 새로운 주인이 탄생했다는 사실에 전율과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 동안 등천마세의 움직임이 지극히 잔잔했기에 정파무림은 공존했고


폭풍전야 같은 정적을 잠시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지 않았던가?
비록 등마제가 무림에 소란을 일으키기는 했으나 일부에 국한 된 사실일 뿐이었다.
한데 등천마세의 힘을 일통한 인물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무림인들은 새로운 전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등천마세의 잠재력은 이 새로운 주인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중원의 처처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필연처럼 혈겁이 발생했다.


무림은 바야흐로 풍운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무림인들은 온 신경을 무적검이라는 인물에게 쏟기 시작했으며


그에 대해 구구한 억측이 무림을 횡행하기 시작했다.


-무적검!
그는 마도 사상 최고의 기재이다.


그는 전설로 내려오는 마교(魔敎)의 교주라고도 한다.
그의 등장은 정도무림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필연처럼 정은 땅에 떨어지고 마는 충천하는 상황으로 돌변하게 될 것이다.
정천보가 등천마세를 멸하고 이 땅에 정의 뿌리를 내리려면 시간을 지체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정천보는 지금 등천마세를 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천하는 등천마세에 먹히고 말 것이다.


이것은 뜻있는 강호인들의 애절한 충고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문이 무림을 강타했다.


-정천보는 이미 움직였다.
정천보의 실질적인 핵심부 인물인 탕마사십사객(蕩魔十四客)들은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탕마사십사객들은 정천보가 탄생시킨 최고의 살수(殺手)들로서


그들은 각자가 한 시대를 패주할 수 있으리만큼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다.
지금 그들은 무적검을 척살하기 위해 움직였다.


탕마사십사객-!
그들은 정파무림의 최후의 희망이었다.


그들의 최후 목적이 바로 정파무림의 운명과 직결되는 것이기에


정파무림인들의 시선은 그들의 움직임에 집중이 된 것이다.
정천수호군주 왕혜려,


그녀는 등마제의 참담한 패배에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탕마사십사객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무림은 풍운대격변에 휩싸인다.


× × ×


장안(長安)에서 북으로는 수(隋)나라 때 만든


광통거(廣通渠)라는 운하(運河)가 지금까지 존재한다.
운하를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천 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흐른다.
돌고 도는 역사의 영고성쇠를 침묵으로 지켜온 이 천년의 운하에


언제까지나 그래왔을 황혼(黃昏)은 다시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천지는 노을에 잠기고 만화백초(萬花百草)가 강변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지금,


한쌍의 아름다운 남녀가 흐르는 물을 보고 앉아 있었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다름아닌 소일초와 주소아였다.
천천히 한 잔의 술이 그의 입술을 적시고 다른 잔이 주소아의 입술로 흘러든다.
부드러운 미소가 서로의 눈에서 눈으로 전해지고


감미로운 사랑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사방을 포근히 감싼다.
이미 여러 순배의 술이 돌았는 듯 주소아의 얼굴은 발그레하다.


그녀는 입가에 묻은 술을 소매로 훔쳐내며 병을 들어 소일초의 빈잔을 채워준다.


세상에서 가장 술을 좋아하는 한 쌍이라면 바로 이들일 것이다.
술기운이 도는 듯 조금식 흔들리는 주소아의 머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게 했는데...


그녀는 자리를 살그머니 옮겨서 소일초의 옆에와 기댄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황혼에 붉어진 물결을 쳐다보며


손을 들어 소일초의 목뒤로 보낸다.
황홀한 사랑의 감정이 두 사람을 행복으로 이끌고,


가벼운 입마춤은 그들의 영원한 사랑의 맹세였다.
소일초의 손은 비스듬히 기대고 누운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내리고


주소아는 그의 품에 얼굴을 뭍은 채 나지막히 얘기한다.
{어머니 보고싶지 않아?}
{별로..., 언제나 나는 작은 어머니가 돌봐왔는 걸.}
{너는 좋겠다. 나 한테는 한 분도 안게신 어머니가 둘이나 있으니...}
{우리 어머니가 네 어머니도 돼잖아. 부러워 할께 뭐있어?}
{내가 부모도 없이 자랐다고 좋아하지 않으시면 어떡하지?}
주소아는 머지않아서 만나게 될 소선풍과 이주용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하다.


그녀로서도 어른들의 반응이 두려운 것이다.
소일초의 사랑은 오직 자기 뿐이지만 어른들은 어떻게 나올 지 모른다.


특히 소일초의 친어머니 이주용은 성미가 보통이 아니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그렇게 걱정돼? 너에겐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배경이 있는데...}
{할아버지? 어디 계신 지도 모르는 걸...}
{어쩌면 아버지는 알고 계실 지도 몰라.


그리고 이제 세상에 정식으로 이름을 알려야겠어.}


{할아버지께서 나를 찾아오시게?}
{그래! 그리고 나는 그분의 독문표기를 알아.}
주소아가 머리를 들면서 물었다.
{뭔데? 바로 네개의 혈기(血旗)야.


작은 어머니께서 전에 일러주신 적이 있어.


우리가 혈기를 사용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직접 찾아오시겠지.}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서로가 껴안고 갈대에 몸을 뉘였다.
{그런데 소아, 등천마세의 힘이 생각보다 더 가공한 것같지!?}
{그래, 하지만 우리가 충성수를 다 해독해버리면


한천이기는 통제력을 잃어버리게 될테니까 등천마세는 간단히 해체할 수 있어.}
그렇다.


그들이 얼마동안 등천마세에 있으면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실질적인 등천마세의 힘은 엄청난 것이었다.


등마제가 바로 한천녀의 손에 죽어버린 등천마세의 대교주 오공천이 주도한 것이었다.
오공천(吳恭天)!
그는 등천마세의 안으로 잠재된 내분을 억제하기 위해


그 욕망의 분출과 새로운 고수들의 영입을 위해 등마제를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 세월 동안 등마제로 인해 등천마세의 힘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한 것이었다.
{한천이기는 서로 부부가 되었으니 모든 것은 원천기가 주도할 거야. 그는 진정한 야심가거든.}
소일초가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면서 말했다.
그의 팔을 베고누운 주소아는 한 손을 그의 가슴에 얹고 스다듬었다.
{원천기는 천지파멸보다는 아무래도 요즘 무림에 뜻을 더 두고 있는 것 같지?}


{그들은 우리를 영원히 수족처럼 부리고 싶어 안달하지.


이미 등천마세에서 권력의 맛을 본 그들이야. 야망은 이제 그들의 모든 것이 되었을 거야.}
소일초는 잠시 말을 끊었다.
{강한 무공, 냉철하고 뛰어난 머리, 충분히 천하를 넘볼 만 하겠지!}
{그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주소아의 말에 몸을 일으키며 옆의 갈대를 꺽었다.
{이렇게!}
그는 지금이야말로 자신과 한천이기가 중대한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등천마세의 힘,


그것을 그들의 뜻대로 천지파멸에 사용하거나


무림을 피로 씻는 야망에 사용하게 할 수는 없다.
그는 호정수신(護正修身)을 외치는 백인장의 차대 장주인 것이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그와 한천이기는 서로의 뜻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혈투를 벌여야 한다.
하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한천이기와 어떻든 한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다.


그들도 그다지 밉지만은 아닌 인간들인데


혈투를 벌여야 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못된다.
때문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들의 처리 문제로 고심해온 것이다.
소일초가 주소아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다음 순간 그는 어두워 오는 하늘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한천이기! 이제 그만 나오너라!}
소일초와 주소아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허공에서 환상같은 그림자가 소일초와 주소아의 앞으로 떨어져 내린다.


눈처럼 흰 백발을 표표히 날리고 있는 두 사람,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아직 이십 대,


바로 한천이기,


칠십이기재들 중 최후로 살아남은 인물들인 것이었다.
그들은 고요하며, 죽음같은 회색으로 빛나는 눈빛으로 소일초를 한 동안이나 주시했다.
{소일초! 당신은 갈등해서는 아니되오.}
원천기의 말이었다.
그리고 한천녀의 말이 뒤를 이었다.
{우리는 이 땅에... 이 하늘에... 천지파멸의 뜻을 칠십이기재들을 대신하여 펼칠 것....


그것이 이 땅과 하늘에 만개할 때까지 당신은 우리와 뜻을 함께 해야합니다.}
소일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너희들의 뜻이지 나의 뜻은 아니다.


나는 너희들 처럼 한(恨)도 깊지 않고 세상을 저주할 생각도 없다.}
{당신의 뜻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마교의 교주인 마교지존이기에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만 것입니다.}
한천녀의 말은 어떤 강력한 힘을 함축하고 있었다.
{마교지존은 너희들이 붙인 말에 불과하지 않느냐?


한천녀, 너희들이 정통마교를 멸망시키고도 뻔뻔스럽게 그렇게 말하다니


후안무치(厚顔無恥)란 너희들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주소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역시 우리가 만든 마교칠십이절기를 익힌 사람,


당신도 우리의 뜻을 따라야 하오.}
한천기는 강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소일초는 눈빛을 조용히 가라앉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아는 사람은 안다.


{나는 물론 소아도 너희들을 거부한다.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순간 한천이기의 전신에 가는 경련이 일어났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만 것이다.
그들이 만들고자 했든 마교지존은 결코 소일초와 주소아 같은 자들이 아니었다.


그렇다,


그들은 철저하게 천지파멸을 위한 앞잡이 마교지존을 만드는데 실패한 것이다.
마교지존이라면, 그들이 만든 마교지존라면


완전히 인간의 이성을 상실한 악마의 화신이 되어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오직 그들 한천이기의 뜻에 따르는 살아있는 도구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데 한천이기가 처음 깨어났을 때 부터 사건은 잘못 진행되고 있었다.


뜻 밖에도 두 사람의 남녀가 마장탑에 들어 마교칠십이절기를 익혀버린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완벽하게 인간의 이성을 지니고 있다.


어떻게 해서 마장탑에 서려있는 마공들의 마기와


칠십이기재들의 몸에서 발산되는 마기들에 의하여


마성(魔性)에 물들지 않았는 지는 자다깨도 모를 일이었다.
마성이 잠재해 있으리라고 까지 자위하면서 그들을 지켜봐 왔는데...
한천이기는 탄식을 터뜨렸다.
그리고 원천기가 타이르듯 말했다.
{소일초! 너는 충성수의 힘을 감당할 수 없다.


지금 까지 우리의 뜻대로 등천마세를 장악한 이상 계속 우리의 뜻대로 움직여 주기 바란다.


허용되는 한도에서 너희들에게도 원하는 모든 것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충성수 따위 약물을 너무 믿는구나 원천기...}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원천기는 입을 다물었다.


한천이기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소일초 당신은 죽을 수 밖에 없지!}
원천기의 말은 무겁게 떨어졌다.
{이제야 오랫만에 의견일치를 보는군,


나는 마장탑에서 부터 내 비위를 건드리는 너를 죽이고 싶은 걸 참아왔다.}
소일초가 주소아를 뒤로 보내며 한 걸음 나섰다.
그의 눈빛은 오랫만에 대하는 적수로 인하여 강렬하게 타올랐다.
한천녀가 한숨을 쉬었다.
{당신은 정말 두려움을 모르는군,


충성수도 충성수지만 우리는 마교칠십이절기를 완벽하게 익혔을 뿐만 아니라,


마교지존을 제압할 수 있는 극성무공(極性武功)인 등천마룡을 지니고 있는데...}
주소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소일초의 무공에 대해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죽는 것은 너희들이야.


직접 싸워보면 너희들이 얼마나 우물안의 개구리였던가를 알 수 있을 거야.}
{등천마룡을 능가할 수 있는 무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원천기가 냉소를 지었다.
{저 사람은 칠 세 때 이미 무림 십이 대 고수의 하나로 꼽혔어.


마장탑에서도 마교칠십이절기 정도는 안중에도 없었지.


너희들이 무적이니 어쩌니 떠들던 그 수법들도 저 사람에게는 조금도 통하지 않았어.}
주소아의 말에 한천이기가 눈이 소일초를 향했다.


그들의 눈은 사실인가를 묻는 듯 했다.
주소아가 잘라말했다.
{너희들의 무공이 당금 무림에서 십위 안에는 들겠지.


하지만 저 사람은 삼위는 차지하고도 남아!}


{나는 천하무적이다.}
원천기가 강경한 어조로 주소아의 말을 부정했다.
{무림에 상당히 어둡군,


바른대로 말하면 너희 정도의 무공을 지닌 자는 헤아릴 수 도 없이 많아.


당금 무림에는 고금제일인이라고 불리웠던 분이 계신데


어떻게 너희 따위가 고수로 자처할 수 있을까?}
{고금제일인? 혈기자말이냐?}
{그렇다. 그분의 무공은 추측할 수가 없다.


이미 신선이 돼셔서 불사의 생명을 얻으셨다. 그리고...}
한천이기는 주소아의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기로서니 신선이 되어 불사의 생명을 얻다니...
{그분 다음으로 고강하신 분은 백인장의 장주이신 도왕 소선풍 대협이시다.


그분은 무적의 도법을 연성하셨고 내공의 깊이는 측량할 수 조차 없다.


수 백 년동안 최강의 세력으로 불리워진 백인장을 이끄시는 분으로


혈기대종사 외에는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분이시다.}
{...}
{등천마교를 없애버린 고수들인 삼수마저도


그 분을 협공하고서야 겨우 동패구상을 당했을 정도였으니,


그분은 혼자서도 등천마교의 모든 힘보다 더 강하셨다고 할 수 있다.}
주소아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비록 그녀가 자기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 만을 거론할 지라도,
한천이기는 그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다음이 바로 저 사람이다.


먼저 말한 두 분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저 사람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직접 싸워보면 실감하게 되겠지.}
{...}
{사위 부터는 이루 헤아릴 수 조차 없는 많은 고수들이 존재한다.


천하를 세세히 들여다 보면, 너희들 정도 되는 고수들은 백 명도 더 될 것이다.


백인장에만 해도 백인도객 중 적어도 이십 명 이상은 너희들과 겨룰 수 있는 실력이 있을 거야.}


한천이기가 정말로 무림에서 백위 정도의 고수 일 리는 없다.
그리고 백인도객 중에서도 한천이기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고수가


이십 명 이상이 있을리도 없다.


몇 명이라면 혹시 모를까?
단지 주소아가 그들을 위축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일 뿐이다.
믿든 말든 백위에 거론 된 후에 삼위에 거론 된 자와 싸운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일 수 밖에 없다.
주소아는 자기의 조부를 당연히 제일로 꼽았고 다음으로 소선풍을 꼽았다.
그리고는 대뜸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인 소일초를 꼽은 것인데


소일초가 진짜 삼위에 해당될지 안될지는 그녀도 모를 일이었다.
{한천이기 시작해 보자! 공부는 그만하면 됐다.}
소일초가 주소아의 말이 대충 끝난 것 같자 나섰다.
그때,
{한천이기 나는 가만히 있을 테니 잘해보라구!


진정한 고수가 어떤 것인지 잘봐두야지 서열 백위 고수들...}
주소아가 한천이기의 기를 마지막으로 꺽는 말을 했다.
한천이기는 아무말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소일초가 판 함정에 걸려든 기분이었다.


소일초의 행동을 통제하겠다고 따라나선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느끼는 그들이었다.


원천기는 한천녀의 앞에서 있었다.
그의 앞 오장 정도의 거리에는 소일초가 서있으며 그 뒤에 조금 떨어져서 주소아가 서있다.
살기는 팽배해 있었고 앞에선 소일초보다 주소아가 더욱 긴장해 있었다.


순간 원천기의 뒤에 서있던 한천녀가 회오리처럼 돌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원천기의 머리위로 서서히 내려왔다.
원천기의 두 손이 한천녀의 두 발을 받쳐든 순간,
고오오오!
그들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오르는 듯 하더니 한마리의 묵룡이 되었다.
바로 그들이 천하제일의 무공이라고 자부하는 등천마룡(登天魔龍)이었다.
두사람이 동시에 합격하여 펼쳐낸 등천마룡...


이는 한천녀와 원천기가 따로따로 펼쳐 보일 때와는 전혀 달라보였다.
사방 이십 장을 뒤덮는 거대한 묵룡(墨龍),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칠십이기개들이 자신의 꼭두각시인 마교지존을 최후의 순간에 죽이기 위해 만든


비장의 무공이 바로 이것이다.
강기로 뭉쳐진 묵룡,


이것을 막아낼 수 있는 무공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묵룡은 소일초는 물론 주소아까지 휘감아 갔다.


주소아의 안색이 변하며 소일초의 옆에 바짝 다가가 섰다.
그러나 소일초는 그녀의 어깨를 누려며 앉으라는 신호를 했다.
갈대와 광통거의 물결마저 묵룡의 위세에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순간 소일초의 오른손이 다가오는 묵룡의 거대한 머리를 향해 죽 뻗어졌다.


뻗어짐과 동시에 그의 손에는 환상처럼 마황검이 치솟았다.
사부인 검마를 무적의 검객으로 만들었던 검공,


오직 일초로서 모든 무공을 파괴하고


적을 죽이는 공포의 검공 검벽신공(劍壁神功)이 펼쳐졌다.


마황검의 끝이 작은 원을 그리며 묵룡의 머리를 찔러갔다.


그 검의 끝에서 형성되는 기류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감아버릴 듯 하던 묵룡을 오히려 뒤집어 씌워버렸다.
그물 속에 갇힌 듯 묵룡은 발버둥 치고 소일초의 검은 묵룡을 가두고 있었다.
일초검공은 검으로서 공간을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검을 사용하는 수법은 한가지로 언제나 동일하지만,


그 똑같은 자세 속에 들어가는 요결에 따라서 수 많은 조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지금 소일초의 검은 묵룡이 움직일 공간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강기로 형성된 묵룡일 지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강기로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이나 다른 어떤 것이었다면


모두 가루가 되어서 흩어져 버렸을 것이다.
묵룡이 순간적으로 소일초의 검에 의해 제압되어버리자 한천이기는 경악했다.
자신들의 몸에서 일어난 묵룡은 자신들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소일초의 검을 쫓아 이리저리 춤을 출 뿐이다.
소일초가 검으로 한천이기를 가리켰다.


순간 묵룡이 어지럽게 비틀리면서 한천이기에게로 날아갔다.
{헉!}
{헉!}
한천이기는 헛바람을 삼키며 전력을 다해 묵룡을 되돌리려 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통제력을 잃어 버린 후이다.


그리고, 묵룡은 그들의 원신을 섞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반항할 여력도 없다.
자신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한 마교지존,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등천마룡,
이 모든 것들이 자신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이미 늦었다.


묵룡은 날려서 오고 그들에겐 저지하거나 피할 힘이없다.
원천기의 손바닥 위에 서있던 한천녀가 미끌어져 내려오며 원천기를 꽉 안았다.


그리고 두사람은 격렬한 입마춤을 하면서 눈을 감고 말았다.
눈을 감고 있는 그들의 곁으로 묵룡이 땅을 스치며 지나갔다.
소일초의 검은 묵룡을 풀어주었고


묵룡은 다시 한천이기의 몸으로 스며들어갔다.
주소아가 일어서며 소일초를 뒤에서 꼭 안고 그의 등에 얼굴을 부볐다.
무서운 정적이 감돌았다.
소일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한천이기가 서로의 포옹을 풀면서 소일초를 쳐다보았다.


마지막 순간에 함께 죽고자 포옹했던 그들의 표정은 이미 다른 사람인듯 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먼저 원천기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왜 우리를 죽이지 않았소?}
이것이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의혹이었다.
소일초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죽이려고 했었지만 너희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소아가 죽이지 않길 원할것 같아서...}
한천녀가 역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인간의 무공으로 어떻게 등천마룡을 단 일초에 제압할 수가 있었습니까.


세상에 어떻게 그런 무공이...}
쉴 새없이 그들의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주소아가 소일초를 안은채 말했다.
{이 사람은 소일초지 소일초!


오직 일초(一招)면 어느 누구도 죽일 수 있는...}
소일초는 그녀에게 팔을 두른 후 광통거 물가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한천이기에게 더이상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하늘이 높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니


다시는 사닥다리로 올라가려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천기가 가만히 한천녀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두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일초...!}
{징벌장(懲罰掌)을 실험해 보고 싶어서 그러나?}
소일초가 걸어가면서 말했다.
{아니, 다시는 너앞에서 무공을 쓰고 싶지 않다.}
{잘 생각했어.}
{우리를 살려주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최근에 우리 일생중 가장 행복한 날을 보냈다. 오늘...}
원천기는 한천녀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너로 하여금 하늘에 정의가 있음을 느꼈다.


너희 마교지존도 우리 손에서 만들어졌고 등천마룡도 우리에게서 나왔는데


오히려 모두가 우리를 죽이려 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지!}
소일초가 말했다.
{그렇다.


우리가 천지파멸의 악을 뿌리려 했기에


하늘이 우리 손으로 우리가 죽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찾겠다.}


{...}
{한(恨)도 저주보다도 지금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잘됐군, 그럼 등천마세나 잘지켜, 몽땅 죽이지 말고...}
한천이기는 가만히 서서 멀어지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다정한 모습을 언제까지나 바라 보았다.
진정으로 지키고 가꾸어야 할 것은 인간의 사랑이고 평화스러운 환경이라는 것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