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신행마동

신행마동 (제3권) 第 二十五 章 百刃莊의 行方

오늘의 쉼터 2016. 6. 7. 17:32

신행마동 (제3권)


第 二十五 章 百刃莊의 行方

 

소일초와 대치한 채 창밖에 서있는 인물은

일신에 희디흰 백의(白衣)를 걸친 중년인이었다.

머리에는 역시 흰색의 머리띠를 매고 있었으며 등에는 비스듬히 검을 메고 있었다.
{무적검, 들어가도 되는가?}
백의인이 정중하게 물었다.
그러자 취풍녀가 몸을 일으켰다.
{이사형(二師兄)! 오랜만입니다. 들어오셔요.}
취풍녀의 말에 창밖의 백의 중년인은 몸을 돌려 문으로 돌아와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는 빨아들일 듯이 소일초만을 주시했다.

그런 그의 전신에 감도는 은은한 긴장의 빛...!
하지만 소일초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좋아! 대단하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그는 취풍녀를 향해 싱긋 웃어보인다.
{사매! 훌륭한 사내를 택했군, 축하한다.}
그런 다음,
{무적검! 잘해보게!}
소일초에게 한 마디 던진 그는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스스스!
그러자 그의 신형은 원래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소리없이 꺼져버린다.
주소아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그녀는 백의중년인이 자신이 흩어놓은 내공을 결집시키지 않으면

당해낼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소일초는 취풍녀를 주시하며 말했다.
{그가 제이교주 마금석(馬金錫)이겠지?}
{맞아요! 그가 등천마세의 이교주 마금석이지요!}
{음!}
소일초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이교주 마금석!

신형검기(身形劍氣)를 사용하고 있다.

구마존의 무공을 완벽히 보완하여 자신 만의 검공으로 만든 모양이군!

그 정도면 칠십이기재의 한사람보다 처지지 않는 능력...!)

-신형검기(身形劍氣)!

이교주 마금석이라는 인물은 검장권지의 무공을 모두 넘어서

모든 것을 검으로 통일 해낸 것이다.
그가 장(掌)을 뻗어도 검이며 권(拳)을 뻗어도 검이다.

몸에서 발산되는 기도는 검기이며 전신이 완벽한 움직이는 검인 것이다.
그러나 이교주 마금석은 오늘 상대를 잘못 만난 것이었다.
소일초는 마교칠십이절기에는 얼렁뚱땅했지만

자신의 일초검학 검벽신공은 끝없이 발전시켜온 것이다.
마교칠십이절기의 장점들 마저 흡수하여 일초검학을 거의 완벽하게 만들었으니...

스스로 어느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단 일초에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몸으로 검기를 발산시키지는 않지만

바로 폭발치듯 일초검공을 펼쳐낼 수 있는 준비가 언제라도 되어 있는 것이다.
이교주 마금석은 조금이라도 더 다가갔다가는

폭발해버릴 것 같은 소일초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이때, 취풍녀는 의기양양해 지고 있었다.

언제나 자기를 가볍게 보고 틈만 나면 덤벼들고 하던 마금석이

진땀을 흘리고 도망가 버린 것이다.
소일초가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일어버린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 분만 곁에 있으면 어느 누구도 나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어.

나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나의 삶을 찾는 거야.)
그녀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주소아가 긴장을 풀면서 말했다.
{대단해! 무림의 열 손가락 안에 들 고수야.

당년의 천수마영 사진성과 맞먹을 수 있을 정도야!}
소일초가 고개를 저었다.
{사진성보다는 약해. 비록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취풍녀는 어린 주소아가 무공을 평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무지 다섯 살짜리 꼬마의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은근히 그 어린 꼬마에게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알 수 없는 어떤 힘을 숨기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 ×

{빌어먹을 사마귀 자식들!

이곳에 엎드려 있었다니... 천산갔다더니...}
소일초는 화를 내고 있었다.
사마귀의 도움을 받았으면 사파에 관해서는 훤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우기 그들의 특별한 능력과 무공이었으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저력이 있었다.
사진성에게 역으로 당했을 때도 사마귀가 그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아예 그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마귀는 정뇌(井牢)를 탈출할 때

소일초에게 무림에 나오기만 하면 자기들을 찾으라고 했던 것이다.

또 녹림맹에 가면 자기들을 찾을 수 있다고 일러주기 까지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일초는 중원제일의 신비인이라는 황녹천을 찾아가

비밀을 까발리겠다고 허풍쳐서 그들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색귀는 그게 늘 서있다면서...!}
주소아가 소일초의 귀에 대고 묻는다.
{외간 남자 물건에 관심 갖는 건 정숙한 부인네가 할 짓이 아니야.}
{농담일 뿐이야.

그런데 사마귀가 이제 널 알아 볼 수도 없을 텐데 네말을 들으려 할까?

그리고 알아본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사부라고 큰 소리치면서 너를 부리려 할 지도 모르는데...}
소일초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한다.
{나에겐 비장의 수단이 있어, 그들은 결코 나를 거역하지 못해.}
{왜?}
{나는 백인장의 소장주(小莊主)야.

얼마든지 그들을 다시 잡아서 정뇌에 가두어 버릴 수 있어.

그들은 아버지에게 죄를 지은 게 있기 때문에 다시는 백인장 근처에 가려고도 하지 않아.}

주소아가 그의 몸위에 올라가며 말한다.
{그럼, 지금 한천이기에게 부탁해서 그들을 찾아달라고 할까?}
{나둬! 어차피 이곳은 한천이기의 손에 다 들어가게 돼,

이곳에 삼수가 없는 것을 알았으니까 빨리 다른 곳에 가볼 생각이나 해봐.}

× × ×

숭산(崇山) 태실봉(太室峰)에 있는

정천보(正天堡)의 넓은 대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지금 한결같이 슬픔과 애도의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과연 그들은 무슨 이유로 이런 애도의 표정을 짓고 있단 말인가?
대전에 가득 모인 무림인들은 무더위에도 아무 불평없이 모여있다.
그렇다.

그들은 단지 슬픈 것이다.
중원의 정기를 수호하고자 등마제에 잠입했던

수많은 중원의 젊은 혼이 누구를 위해 죽어갔단 말인가?
그들의 죽음이 그토록 숭고한 것이었기에

그들의 넋은 무림인들의 뜨거운 슬픔을 받아 당연한 것이었다.
오늘은 그들의 장례를 치르는 날,

각지에서 그들을 애도하기 위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금 누군가가 단상에 올라서 죽어간 정천수호군의 용사들을 애도하는 애사를 낭독하고 있다.

-피끓는 협혼(俠魂)들아!
한 줄기 정의라도 지키고자 목숨마져 바쳤던 의협(義俠)들이여!

그대들은 죽었으나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남아 있으니

그대 죽어 슬픔 대신 영광을 얻으라!
그대은 이제 영원하 중원의 혼이 되었도다.
중원의 정의를 중토에 영원히 뿌리내리고,

살아남은 우리들은 그대들을 본받아

이 땅에서 사마(邪魔)의 무리를 영원히 제명하는데 한 목숨 다 바치리라.

-정천수호군,

정의로 무장했던 젊은 의인(義人)들이 모였던 이 의혈의 조직은

그러나 등마제주와의 결전에서 무참히 패배하고

칠백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삼백 명이 채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살아서 돌아왔다.
그 일로 인해 등천마세의 위세는 오히려 높아만 졌고,

무림인들은 정천보의 힘에 회의를 품게 하는 계기가 되기까지 했다.
허나 그들은 최선을 다한 것이다.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들은 죽어서도 무림인들에게 숭고한 분향(焚香)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 뜨거운 의혈(義血)을 가슴에 담은 중원의 정파인들은

아무말 없이 차례로 분향을 하고 있었다.
대전의 한쪽에 마련된 칠백여 개의 위패(位牌)!
그것은 정천수호단의 죽은 영웅들의 것이다.
대파산에서 회수해온 시신들은

그 신분을 알아볼 수 없으리 만큼 짓이겨진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관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서로의 살점과 뼈가 뒤섞여 있는 것이다.
분향을 하는 무림인들의 표정은 허탈하고 침통한 것이었다.

한데 문득,
{소림사의 고승들께서 오셨습니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과연, 서른 명 정도의 승려들이 가사차림으로 나직히 불호를 외우며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동안 분향은 중단되고

스님들이 정천수호군의 위패 앞에서 나직하게

그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경을 외우고 있었다.
점점 그들의 합창 소리는 대전을 가득 매우고 분향객들의 마음을 엄숙하게 만들었다.
얼마 후 분향은 다시 시작되었고 분향한 사람들은

정천수호군의 장렬함과 등마제주의 악랄함을 말하고 있었다.
그때, 네 사람의 영기발랄한 청년들이 단상으로 올라서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본 정천보의 위대하신 보주(堡主)님께서 잠시 후에 중대한 말씀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 분향객들께선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전안은 갑자기 조용해 졌다.

신비에 싸여있는 정천보주가 중인(衆人)들을 상대로 이야기 한 적은

지난 이 년 동안 한번 도 없었던 일이다.
일순 어디선가 잔잔한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가 싶더니,

다음 말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 하고

다시 사방에서 들리기도 하는 신비로운 음성이었다.
{본좌의 불찰로 말미암아 원통하게 죽어간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오신 무림의 영웅들께 감사드리오.}
물같이 잔잔한 음성, 세상을 달관한 듯한 어조는

대전의 모든 무림인들로 하여금 경복하게 하고 있었다.
{다시는 무림에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여러분 앞에 다짐하면서

본좌는 오늘 탕마사십사객(蕩魔四十四客)을 무림에 내보내겠소이다.}

그 음성은 듣는 이의 영혼을 맑게 씻어내리는 무한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음성만 계속 들리는데...
{탕마사십사객은 오로지 피로써 악인들을 처단하게 될 것이외다.}
탕마사십사객!
대전에 있는 중인들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이 누군지를 모른다.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신비하게 들려오는 정천보주의 음성으로 보아

그들은 일천 명의 정천수호군 보다 더 가공할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탕마사사객(蕩魔四四客)은 지금 당장 무림으로 떠나라.

마(魔)를 척결하고 이 땅의 정을 수호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라!}
더이상 정천보주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분향객들은 새롭게 들려오는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명을 받듭니다.}
천지사방에서 크지도 않은 목소리가 합창하듯이 들려왔다.

아마도 탕마사사객이 출발한 것이리라!

-정천보주!

그는 주소아의 새로운 표적이 되고 있는 인물인데...,
그리고 파양호의 깊은 호수속에서는 하나의 섬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곳에는 주소아 그녀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것들 중 하나가 있는데 그녀는 알까 모를까?

* * *

파양호 물밑에 있는 어떤 섬(島)!
위에는 잎이 상해버린 무수한 수목이 귀신처럼 흐물거리고

숲 안쪽에는 회색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거대한 석조건물이 있다.
수초들이 그 거대한 석조건물을 뒤덮고 있고,

물고기떼가 숲사이를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석조건물의 안에서도 헤엄치고 있었다.
누가 물밑에 이런 건물을 세워놓았나?
마치 고대의 유적지를 보는 듯한 이곳은

불과 몇 년 전까진 파양호위에 유유히 떠있던 섬이었다.
바로 수백 년의 세월을 최강의 문파로 이어온 백인장의 고토(故土)가 그것이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처량하게 물밑에 가라앉아

수초를 몸에 감고 있는 거대한 석조건물,

어이해 이곳에 가라앉아 버렸나?
한때 소선풍이 회복하기 위해서 몸을 눕혔던 곳도

이제는 물고기떼의 보금자리가 되어버렸는데...
가라앉은 부주(浮舟)의 석조건물 밑에는 물이 스며들지 않는 또다른 공간이 있다.
그곳엔 거대한 광장이 있고 무수한 방들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사라진 백인장의 모든 가족들,

그리고 청옥검궁의 핵심요인들이었다.
그 수중 장원의 어느 화려한 방안에서는

지금 십 수 명의 사람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주! 이제 우리의 힘은 예전에 못지않게 회복되었소.

하늘을 향해 도(刀)를 높이 치켜들고 소장주와 먼저 간 원로들의 복수를 할 때가 왔소이다.}
소리높여 말하는 이 사람은 절정의 도객답지 않게 지혜로 충만하여

고요로운 눈빛을 가졌던 제일원로 동평선생(東平先生)이다.

동료들의 죽음으로 성격마져 변해버렸는가?

그의 음성에는 조급함이 배어있었다.
{그렇습니다. 이제 무림에 나가 삼수(三秀)의 흔적마저 없애버려야 합니다.}
이주용의 검에 찔려 죽을 뻔 했던 수혼도객(收魂刀客) 역시

이대봉공의 자격으로 재청하고 나온다.
그러나 상석에 앉아 묵묵히 듣기만하고 있는 도왕(刀王) 소선풍은

이 번에 그의 작은 부인인 조예진을 바라본다.
조예진은 다시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이주용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제 의견은 간단해요.

우리가 모두 죽는다고 해도 원수는 갚아야 한다고요.

하지만, 시기에 대해서는 급하지 않아요.

모든 결정을 당신과 언니, 그리고 여러 원로들에게 맡기고 단지 따르기만 하겠어요.}
이주용이 소선풍의 눈을 바로 보면서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제히 나가도록 해요.

우리 태봉(소일초의 어릴때 이름)이 원수를 갚아야죠.}
표정을 굳히고 원로들을 쭉 돌아본다.
{원로들께서도 저와 생각을 같이 하시겠지요?}
그녀의 말은 강요에 가깝다.
백인장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있다면

전에는 소일초였고 지금은 화해하고 돌아와 있는 이주용이다.
이 모자(母子)는 사람괴롭히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인 것이다.

백인장에서 큰 마님인 이주용에게 잘못보이면 편한 세월은 다간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잔소리 쟁이 원로들도 그녀 앞에서는 항상 찔끔한다.

무슨 수단으로 자기들을 괴롭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원로들 역시 대부분이 밖으로 나가자는 데 찬성이지만

이주용의 눈길을 받고 의견을 낼 것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당연히 그렇소이다.}
제일원로인 동평선생은 그들을 보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밤낮 눈총만 받으면 아첨부터 하고보는 못난 녀석들...)
그는 먼저 의견을 냈기 때문에 눈총받지 않아서 그럴 수 있는 지도 모른다.
그때, 소선풍이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말은 강요지 어떻게 의견을 묻는 것이라 할 수 있소? 그만 두시오.}
{그럼 대체 당신 생각은 어떻단 말이예요?

삼수에게 한 번 당하고 나니까 겁이라도 생겼어요?}
그녀는 발끈하는 성미를 여전히 고치지 못하고 소선풍에게 달려든다.
원로들은 고개를 숙이고 모른 척하고...
동평선생은 다시 중얼거린다.
(쯧쯧! 저 못된 성미하고는...! 그저 성질대로라면...

저러니까 쫓겨나고 법썩을 떨었지. 그저 작은 주모 반만 돼라!)
소선풍이 이주용을 진정시키면서 무심군자(無心君子)에게 말한다.
{좌봉공, 우리가 계획했던 것이 몇 년이었소?}
{십 년 입니다.}
{지금은 몇 년이 되었소?}
{불과 오 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무심군자는 그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는 듯 차분하게 말해준다.
{좌봉공이 생각하기에 우리의 힘이 얼마나 강해졌다고 생각하시오?}
{먼저 장주께서 일으나셨으니 천하에 우리가 이기지 못할 세력은 없을 것이며

원로들께서 몇 분 남지 않으셨지만 원체 고강하신 분들이니 말할 것없으며...}
무심군자의 차분한 말에 원로들이 미소를 지었다.
{주력인 백인도객 중에서도 절정에 도달한 인물들이 다수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백 십여 명에 불과 하지만

천군 만마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이주용이 다시 소리쳤다.
{그것 봐요. 지금도 얼마든지 된다잖아요.}
소선풍이 벌떡 일어섰다.
{그 정도의 힘은 언제든지 있어왔다.}
그의 큰 목소리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당신은 우리 백인장이 어떻게 해서 소수의 사람들로도

수 백년을 무림의 최강세력으로 존재해 올 수 있었는 지를 모르고 있다.}
{...!}
이주용은 입을 다물고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정말 그와 같은 일은 있기 어려운 것이었음에도

백인장은 신화를 이룩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백인장의 장주로서 수백 명의 식구들을 이끌어가는 가장(家長)이다.

백인장의 식구 어느 누구고 나에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수 백년을 함께 내려온 형제요 피붙이나 다름없다.}

{...!}
{한데도 나는 오 년 전,

내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저 사람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여

치정에 따른 결정을 하고야 말았다.}
조예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는... 원로십팔도객이 아무도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눈물로서 그들을 보냈다.

그때 생명을 잃은 그들은 나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인해 죽은 것이다.}
일곱명의 원로도객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장주, 당치않은 말씀이외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선단 말입니까?}
소선풍은 머리를 저었다.
{다행히 열 한 분의 살신성인으로 인하여

나머지 분들이나마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음에 대해 나는 하늘에 감사했소이다.}
소선풍은 이주용을 바로 응시했다.
{당신에게 우리 백인장의 힘이 수백년동안 조금도 위축되는 법이 없이

보전될 수 있었던 비결을 말해 주겠소.}
{...!}
{백인장주는 절대로 백인장의 가족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소.

그들을 죽을 장소로 보내는 일은 없었소.

장주는 오히려 그들을 위험으로 부터 보호해 왔소.}
원로들과 봉공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주는 자기를 위하여 그들을 부리지 않았소.

그것이 우리 백인장이 수 백 년을 최강의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요.

희생시키지 않기에 힘은 강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오.

강요하지 않기에 그들은 따르는 것이오.}
소선풍은 고개를 숙였다.

{한데...오 년 전 그때 나는 수 백 년을 내려온 장주의 율법을 어기게 되었소.}
{장주...!}
원로들이 일제히 외쳤다.
{그로 인해서 백인장의 세력은 크게 줄게 되었으며

나는 이렇듯 잠적을 감행하게 된 것이오.}
소선풍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의 나는, 장담하건데 삼수(三秀)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그들을 다 감당할 수 있소. 하나!,}
{...}
{그들의 세력으로 인해서 우리 백인장의 식구들 중에 적지 않은 사상자가 나올 것이오.

그들의 수하들은 삼 년 전에도 수 만을 헤아렸소.

우리 백 여 사람들 중에는 적지 않은 사상자가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오.}
{...}
{나에게는 장주로서 그들을 죽이기 보다는

한 사람의 가족이라도 더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소.}
그의 어조는 아주 단호했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머리에 관을 쓴 금포노인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나라도 내보내 주게.}
그는 소선풍의 장인이자 청옥검궁의 궁주인 검왕(劍王) 이극송이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그를 맞았다.
{갑갑해서 더는 이 안에서 못 살겠네,

나는 죽을 날이 멀지 않았으니까 지금 나가서 죽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그의 말에 소선풍도 선뜻 결정을 못내리고 가만히 있었다.
그때 조예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우리가 직접 삼수와 부딪치지는 않더라도

강호로 나가서 활동해야 할 필요는 있지않겠어요?}
그 말에 이극송이 껄껄웃었다.
{내 생각이 바로 그걸세, 자네는 잘 생각해야 하네.

내 성미도 자네 큰 마누라처럼 급하고 못된데가 있다네.

만약 나가지 못하게 하면 이 수중 부주(浮舟)를 깨뜨려 버릴 지도 몰라.}
그의 말에는 소선풍이 입이 막혀버렸다.

이렇게 하여 백인장의 숨어있던 고수들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주력은 여전히 숨어있지만 일부나마 활동하게 된 것이다.

삼수의 흔적을 쫓아다니며...

× × ×

분주히 돌아다니며 공작을 하는 또다른 사람들이

파양호에서 수 천리 떨어진 서천목산(西天目山)에 있었다.
바로 한천이기(恨天二奇)다.
지금 그들은 한 명의 흑의노인과 한 명의 흑의청년을 보고있었다.
노소의 그들 두 사람은 지금 묘한 자세로 앉아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단검의 끝을 서로 맞대고는 다른 손은 뒤로 돌려 버린 다음에

한 손으로 단검을 밀고 있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조금이라도 상대방 단검의 끝에서 자기의 단검이 벗어날 경우

자기도 죽고 상대방도 죽는 것이다.
전력을 다해 밀고 있는 것이기에 검은 그대로 서로의 가슴을 꿰뚫어 버릴 것이다.
원천기가 그들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두 사람의 뇌호혈(腦戶穴)에 올려놓았다.

{등천마세의 주인은 누구인가?}
{...!}
{말하지 않으면...}
원천기는 두 사람의 몸을 흔들었다.
노인과 청년은 급히 검을 흔들리지 않게 조정하면서 땀을 흘렸다.
{등천마세의 주인은? 답하지 않으면 다시 흔들겠다.}
그가 다시 흔들려고 하자 노인이 소리를 질렀다.
{당연히 대교주인데 무슨 소리야!}
화가 나서 말을 내뱉는 순간 기가 흩어지면서 그의 단검이 뒤로 밀렸다.
원천기는 이 번에는 청년의 몸을 흔들면서 다시 물었다.
청년은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듯 했다.
{바로 당신이란 말인가?}
이번에는 그의 검이 뒤로 밀리고,

원천기는 자기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노인의 몸을 흔들면서 다시 물었다.
다급해진 노인은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그래 원천기다 원천기}
청년은 원천기가 자기의 몸을 흔들기도 전에 말했다.
{원천기, 원천기!}
원천기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당신들이 인정했으니 내가 어떻게 하든 내 말을 듣겠지?

그럼 당신들은 충성수(忠誠水)를 마시도록.}

그는 말을 하면서 그들의 뇌호혈에서 손을 떼고 품에서 작은 옥병을 꺼냈다.
순간 청년과 노인의 눈이 반짝였다.
쉭-!
쇄액!
서로를 겨누고 있던 두 자루의 단검이

옆에서 옥병을 꺼내는 원천기의 목과 가슴을 노리고 찔러들어갔다.
근접한 거리, 빠른 공격,

예상키 어려운 상황, 실로 급박한 기습이었다.
그러나 원천기의 왼손이 환상처럼 움직이며 두 개의 단검을 소매로 감아버렸다.
그리고 그의 발이 그들의 명치를 제각기 가격하자

그들의 입이 순간적으로 벌이지는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원천기가 우수에 들었던 옥병의 충성수를 부어넣었다.
{헉!}
{윽!}
놀라는 사이에 이미 비명과 함께 충성수는 그들의 목으로 넘어가 버렸다.
짝짝!
원천기는 손을 털었다.
충성수가 목으로 넘어간 이상 일은 다 끝난 것이다.

두 사람은 무조건 그의 명령에 따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세 달 후에는 전신이 살점이 떨어져 내려

뼈만남은 모습으로 죽게 될 것이다.

물론 해약을 먹으면 괜찮겠지만...
원천기는 그들에게 무적검에게 복종할 것을 지시했다.
그들은 등천마세에서 서열 이십위 내에 드는 고수들이었지만

원천기에게 꼼짝도 하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충성수!.
이는 칠십이기재들이 만든 일종의 독약(毒藥)이다.

보통 물과 똑같이 보이고 맛도 똑 같지만

삼 개월에 한 번씩 해약을 먹지 않으면 전신의 살이 흐물흐물 녹아 내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