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신행마동

第 十六 章 死地의 奇緣

오늘의 쉼터 2016. 6. 2. 11:52

第 十六 章 死地의 奇緣


절지(絶地),
이곳은 완벽히 차단된 지하의 어느 곳이었다.
보이느니 사방은 물론 위까지 가로막은 검은 석벽이요,

자욱하게 깔려있는 구름같은 안개 뿐이었다.
아니 그 지하의 공동(空洞) 한 곳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 마치 거대한 석순(石筍)처럼 솟아있는 기이한 나무들이 있었다.
가지도 줄기도 입도 보이지 않고 마치 기둥처럼 위로 곧게만 자란 이상한 나무!

나무둥치에 비늘같은 것이 온통 뒤덮인 이 나무들의 굵기로 보아 족히 수천 년 이상은 자란 것이리라!
스스스!
바로 이 석순같은 나무의 숲에는 파도처럼 출렁이는

안개와 사기(邪氣)와 마기(魔氣)가 가득 차 흐르고 잇엇다.
이것들은 마치 지옥의 한부분을 형성하는 귀화(鬼火)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사방이 밀폐되었기에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분명한데...
한데 돌연 이 기괴한 나무의 숲 한 곳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미약한 신음과

낮은 울음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으으으!}

{흑흑흑!}
신음과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 그곳은 어느 나무의 뒤였다.
일견하기에 그 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확연히 틀린 것이었으니...
우선, 그 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엄청나게 컸다.
거기에다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어둠속에서도 은은한 백색(白色)의 광채가 피어나고 있는 데다가

마치 천상의 향기(香氣)인 양 신비롭기 이를 데 없는 향기마저 뿌려지고 있었다.
또한 그 나무의 주위에는 무수한 작은 나무들이 땅에서 돋아있는 것이니...
바로 그 신음과 울음소리는 이 나무의 벌어진 틈에서 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나무의 벌어진 틈에는 놀랍게도

두 명의 인간이 흰색으로 빛나는 나무 틈에 몸을 눕히고 있지 않은가?
한 사람은 전신(全身)이 피투성이였는데

작고 탄탄한 몸에 귀엽기 그지없는 얼굴의 소유자였다.
소일초!
그렇다.

그는 바로 화산 옥녀봉에서 폭발과 함꼐 사라진 소일초가 아닌가?
그렇다면 신음을 흘러내고 있는 그의 옆에 엎드려 울고있는 또 한 사람은

하늘 아래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 주소아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주소아가 눈물을 닦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미 변신이 풀려 다시 어린 계집애의 몸으로 돌아간 그녀의 몸은 산산히 찢어져

속이 여기저기 들여다 보이는 풍성한 옷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녀는 소일초의 이마를 짚어보곤 안개가 자욱한 석동(石洞)으로 나가 작은 연못으로 갔다.

그리고는 한 입 가득 물을 머금고 돌아와 다시 소일초의 입에 넣어주었다.
소일초의 낮은 신음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비틀거리는 그녀 역시 정상의 몸은 아닌 듯 했다.
{벌써 칠일은 지나갔을 거야!

그런데 일초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녀는 소일초의 얼굴을 닦아 손으로 쓸어주면서 폭발당시를 회상했다.

철검을 던져버린 소일초가 그녀를 안고 허공으로 몸을 뽑았지만 이미 늦었었다.
그들은 강렬한 폭발에 휘말려 석평과 함께 산정호수로 빠져들고 만 것이다.
폭발의 충격에 주소아는 칠공으로 피를 쏟았지만

육척의 거구로 변한 소일초가 안고서 보호하는 바람에 다른 외상은 그다지 입지 않았다.
그러나 소일초는 온몸으로 바위와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냈으니...

금강체의 그의 몸도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드디어 수중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소일초는 정신을 잃었지만 반대로 주소아는 물 속에서 더욱 정신이 맑아졌다.

그녀는 신기하게도 호흡의 지장을 전혀 받지 않았던 것이다.
물 밖에는 틀림없이 사진성,

그녀를 길렀던 세 사람의 효웅 중 한명인 천수마영 사진성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빠르게 판단한 그녀는 소일초의 몸을 안고 가라앉는 거대한 바위를 잡고 물밑으로 내려갔다.
그러다 한 줄기 수중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정신을 잃고 말았는데

바로 이 기괴한 석동(石洞)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폭발 때의 충격 때문인지 그녀의 내공은 산산히 흩어져 버리고

평범한 여자아이, 그것도 상처입은 여자 아이에 불과해져 있었다.

그녀에게 안겨있는 소일초도 다시 어린 소년이 되어 신음하고 있고...

그녀는 깨어났지만 소일초는 여전히 혼수상태에서 신음만을 내뱉고 있다.
몸은 한기를 느끼는지 덜덜 떨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 역시 물에서 강렬한 한기를 느끼고 손마저 담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에게는 소일초의 입으로 물을 옮겨주는 것도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녀가 숲을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나 희미하게 빛나는 이곳을 발견했을 뿐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극심한 허기로 인해 무엇이든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녀였다.
헌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는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향기(香氣)!
지상의 향기가 아닌 듯 청아한 향기가 돌연 그녀 우울한 정신을 맑게 하며 어디선가 퍼져 나오는 것이었으니...

이 향기는 나무의 머리 갈라진 틈,

바로 그들이 있는 곳의 한 쪽 구석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에서 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이상한 꽃,
도대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 신비로운 꽃은 마치 버섯의 줄기를 가진 오직 한송이의 꽃이었다.
한데, 꽃은 아주 작은 버섯에 꽃을 꽂아놓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감히 눈이 부셔 마주 대할 수 없는 백색의 광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라!
이 거대한 나무의 몸체를 감싸고 돌던 은은한 백색 광휘는

바로 이 조그만 꽃에서 피어난 광채가 전해졌던 결과였던 것이다.

이 조그만 꽃에서 피어난 광채로 인하여

그 어마어마한 나무의 갈라진 틈이 은은한 광채를 뛰고 있었던 것이니...

꽃이 땅위에 올라온 지금,

희미한 어둠 속에 있던 석동의 주위 오십여 장이 이 광채의 영향권에 들었다면

그 광채가 얼마나 극렬한 것인지 짐작이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이 꽃은 이 신비한 백광을 발하는 꽃은

분명 아득한 옛날 인간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존재 했다는

지송목(地松木)이라는 상고(上古)시대의 거목에 기생한다는 그 백송균화(白松菌花)가 분명하다.
다만 전설일 뿐이어서 인간이 세상에 출현한 후에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는,

영원히 인간으로서는 볼 수 없다고 이야기 되어져 왔던 백송균화...

-백송균화(白松菌花)!

전설에 의하면 이것은 땅의 정기를 빨아서 자라는 지송목(地松木)이란

고대(古代)에 존재했던 괴목(怪木)에서 다시 그 정기를 훔치면서 자란다고 한다.
오직 만년(萬年) 이상을 자란 지송목에서만 서식하며,

또한 이것은 평소에는 그 모습이 흙속에 존재하고

오직 은은한 백색 광채만 주위에 뿌려내고 있다가 수 만 년에 한 번

모습을 바깥의 바람에 쐬일 뿐이었다.
하나 그 모습을 드러낸 시각은 불과 일각(一刻),

그 일각이 지나면 다시 땅 속으로 스며들어 버리고 그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다 완전히 성장하여 꽃을 피우게 되면 찬란한 백색 광채를 향기와 함께

사위에 뿌린 후 먼지로 화해 사라지면서 사방으로 그 씨를 퍼떠린다.
이 백송균화의 영험함은 땅의 모든 축복을 훔친 것이다.
무공과는 전혀 상관없이 생명체의 본질을 전해주는 백송균화...
그러나 신체의 구성을 생명의 영기로 가득차 주게 하는 것이니

땅위의 모든 생물들에게는 최고의 보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소아의 온 몸이 백송균화를 보면서 덜덜 떨렸다.

그녀는 전설 속에서만 전해오던 백송균화를 알아본 것이다.
인간으로서 백송균화를 본 최초이자 마지막 사람이 될 그녀였으니...

그 장엄한 광경에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향기,
이 백송균화의 향기가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백송균화에서 발산되는 백색 광휘가 더불어 찬란해지니

천지만물은 일시에 이 향기와 광채로 젖어 들어갔다.
그러데 그 향기에 따라 여태 혼수상태에 빠져 들어 있던 소일초의 정신도

그만큼 맑고 뚜렷해지고 있었으니...
지금 이 순간, 소일초는 최초의 의식이 찾아들기 시작했고,

그 의식은 극심한 허기로 이어졌다.
{소아! 배가 고파.}
주소아가 백송균화에 넋이 빠져 있다가 펏득 정신이 들었다.

소일초가 신음을 멈추고 힘없이 눈을 뜨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격동을 감추지 못하고 소일초를 얼싸안았다.
{우린 살았어! 우린 살았어!}

세상 인간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백송균화는

나오자 마자 두 남녀의 입으로 나누어져 들어가고 말았다.
순식간에 땅의 축복을 훔친 꽃 백송균화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전신에 빠르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남녀는 서서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도대체 하늘은 어쩔려고 이 골치 아픈 소년소녀에게 백송균화를 안배했단 말인가?

어쩌자고...

* * *

{아아악!}
{아악!}
비명!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에서 터지는 비명은 얼마나 계속되었는지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사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의식을 조금이나마 찾았다가 다시 고통의 나락속에 빠져들어가기를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그들의 몸은 전신 뼈마디가 수 없이 이동하고,

다시 수없이 근육과 오장(五臟)이 이그러졌다가 재위치를 찾았다.
그에 따라 그들의 몸도 백색의 찬란한 광휘를 피워냈다.
잃었던 의식이 다시 찾아들었고

의식은 다시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 혼절하기를 몇 번 인가?
헌데 지금 그러한 상황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옷이 터져나가 버린 알몸에

돌연 지금까지의 백색 광채와는 다른 우유 빛 옥(玉)처럼 투명한 서기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옥처럼 투명한 서기는 더욱 현란히 피어나더니...

급기야 그 서기들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몸을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게 만들어가지 않는가?
거기에다 언제 그쳤는가?

그들의 입은 부드럽게 다물어져 있고,

언제 변해 버렸는가?

그들은 완전한 성인(成人) 남녀의 모습이 되어

고통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얼굴이 되지 않는가?
급기야는 그들의 나신에 강렬한 서기(瑞氣)마저 어려

신이 빚은 미녀와 미남을 보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실로 기적과 같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본시 백송균화는 땅의 축복이 응축된 영물중의 영물로써 워낙 그 영효가 뛰어나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약효를 지닌 것이었다.
축복이 큰 만큼 복용시의 고통 또한 컸으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증명해 주면서

두 사람의 전신을 엄청난 고통 속에서 재조립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전설의 백송균화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몸을 완전히 다른

체질과 모습으로 바꾸어 버리는 크나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두 사람...
비록 무공과는 상관이 없지만 가장 건강한 몸을 지니게 되어 그 수명을 추측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의 손에서 생명의 조화를 전할 수 있는 땅의 축복을 지녔으니...

× × ×

{으음! !}
소일초와 주소아가 동시에 천천히 의식을 회복한 것은

백송균화을 복용한 지 얼마가 지나서 인지 알 수 없다.
눈을 뜨고 옆을 돌아보던 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쳤다.
{살았구나!}
{누구냐!}
두사람의 몸은 역근천골공으로 어른으로 변신했을 때와는 완연히 달랐다.

그때는 억지로 만들어 낸 모습이었지만

지금의 모습은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완전히 성숙해져 버린 것이다.
만약 그들의 어리던 몸이 세월이 흘러

최전성기에 들게 된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몸은 변했지만 여전히 어린 본모습이 남아있고

특히 목소리는 여전히 비슷했다.
{너 소아구나.}
{그래, 나야!}
주소아가 기뻐서 소일초를 마주 안다가 너무나 크고 빵빵해져서

뭉클거리는 자기의 가슴을 인식하고 얼굴이 화끈해 지면서 밀쳐버렸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왠지 모르게 전에 봐왔던 소일초의 알몸과는 느낌이 달랐다.

전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듯 부끄러움이 밀려든 것이다.
몸을 돌리고 누워서 주소아가 말했다.
{기분이 어때?}
{아주 좋아!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역근천골공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 데도 몸이 커져버렸어.}
{아마, 백송균화 때문일거야!}
주소아는 지금까지의 일을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지송목의 갈라진 틈새에는 이제 은은하던 백광도 찬란하던 백광도 없어져 버렸지만

전혀 시력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원래부터 이 석동안은 이상하게도 그다지 어둡지 않았고

지금 그들의 어둠의 장애를 느끼지 않는 시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몸이 아주 편안해. 마음도 아주 편안하고...}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조금 불안한데...}

소일초가 느긋하게 하는 말에 대한 주소아의 소감이다.
{왜?}
{잘 모르겠어! 네가 옆에 있으니까 이상하게 자꾸 불안해.}
{...}
{네가 다시 장난친다면 나는 숨도 쉬지 못할 것 같아!지금도 자꾸 숨이 가빠져.}
여전히 소일초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주소아가 뛰엄 뛰엄 말했다.
{나도 숙쓰러운 것 같아!

우리... 어른이 돼버렸나봐. 헌데 우리가 여기에 들어온 게 언제지!?}
{잘모르겠어! 백송균화를 먹기 전에는 한 칠일 쯤 지난 것 같았는데...}
{설마...! 몸이 이렇게 커져버린 걸 보면 한 십 년 정도 흘러버린 것은 아니겠어?}
돌아누운 채 도란도란 속삭이는 그들의 전신(全身)에는 생명의 환희가 찬란히 용솟음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위대한 평화와 아늑함이 깃들어 있었으며

도저히 느낄 수 없으리 만치 몸은 가벼워져 있었다.

하나의 깃털보다 가벼워 입김만 <호> 하고 불어도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여기서 누워만 있지 말고 한 번 돌아보자...}
{혼자 갖다와. 나는 근처는 대충 돌아봤어!}
주소아는 돌린 몸을 웅크린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소일초는 일어서서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 성숙한 아름다움에 묘한 기분이 들어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전에처럼 마음대로 그녀를 주무르고 누르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혼자 간다. 여긴 완전히 지옥이군. 어디서 귀신이 나올지 모르겠어!}
밖으로 나가며 소일초가 중얼거린다.
순간 누워있던 주소아는 부쩍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귀신이 나오기라도 할 듯 주변은 침침했고 안개마저 깔려 있었다.
{같이 가!}
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소일초의 뒤를 쫓아 나갔다.

그녀의 백색 나신이 눈부시게 안개를 가로질렀다.

밖으로 나온 소일초는 의아심을 감추지 못하고 사방을 휘둘러 보았다.
허나 보이는 것은 짙은 안개와 소용돌이치는 미증유의 사기(邪氣).

그리고 거대한 석순처럼 끝없이 늘어 선 지송목의 숲뿐이었다.
소일초는 흠칫 몸을 떨었다.
(호...혹시 여긴 진짜 지옥이 아닐까?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까 죽었다면 분명히 지옥인데...)
소일초는 급히 자신의 오른 편에 있는 주소아의 손등을 힘주어 꼬집어 보았다.
{아얏! 왜그래?}
뾰족한 비명을 지르며 원망스런 듯이 쳐다보았다.

소일초의 꼬집는 솜씨는 여자 못지 않아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아픈 감촉이 전해진 것이다.
{음! 분명 죽은 건 아니야!}
{기가 막혀서! 내가 살아있다고 말했잖아!}
고개를 들이대면서 소리를 지르는 주소아다.
그러나 소일초는 못들은 척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곳은 산정호수 속이란 말이지!?}
주소아는 소일초가 자기를 무시하는 듯 하자 다시 대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평생 여기서 살거야?}
소일초의 소리가 들리자마자 성질을 죽이고 그녀는 소일초를 바라보았다.
{우선 이곳을 살펴보자.

꼼꼼히 둘이서 살펴보면 어딘가 밖으로 통하는 길이 있을 거야.}
소일초는 주소아를 끌고 앞으로 나갔다.

그들 두 사람은 새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기이한 안개의 소용돌이를 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쯤 상고시대에만 존재했던 지송목의 숲을 헤매었을까?
문득 걸음을 옮겨가던 소일초와 주소아의 발길이 우뚝 멈추어졌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굳어진 곳...

더이상 커질 수 없도록 크게 떠진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못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와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지옥과 같은 이곳에 저토록 큰 두개의 석탑(石塔)이 있다니...!]
놀랍다!
두 시간을 이 주위를 헤맨 동안 그가 본 것은 오직 지송목의 숲 뿐이 아니었던가?

헌데 뜻밖에도 이곳에서 인공(人工)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사방이 완전히 막힌 것 같은 이곳에

도대체 그 크기가 수 만년을 지냈을 지송목에 뒤지지 않는

거대한 두 개의 석탑이 웅크리고 있었으니...
언뜻 보면 석탑과 석순같은 형상의 지송목이 분간이 가지 않을 듯 했다.

그리고 불과 이십여 장쯤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석탑은 쌍둥이마냥 모양과 크기가 똑 같았다.

그 탑과 탑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사이한 안개는 실로 귀기(鬼氣)롭다.

그리고 몸서리쳐지는 공포(恐怖)가 어려 있었다.
헌데 그 탑과 묘의 주위에 나뒹굴고 있는 저 수 많은 백골(白骨)들은 또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것이 아닌가?
{여... 여기도 인간이 살았던 때가 있었나봐.}
주소아가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일초에게 말했다.
그리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의혹을 참지 못하고 급히 우측에 있는 검은 석탑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통마교(正統魔敎)>

석탑에 핏빛으로 쓰여진 단 네 글자...!
(정통마교?)
소일초와 주소아는 어디선가 들은 듯도 만듯도 한,

하지만 생소한 그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내 소일초는 엄청난 악(惡)의 기운(氣運)을 토한는 석탑의 문을 열었다.
쿠르르르!
기분 나쁜 굉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일층 석탑의 내부,
쿠쿠쿠!
싸싸싸!
엄청난 무형의 기운이 악마의 입김처럼 이동하고 있을 뿐...

한 눈에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석전은 텅 비어 있었다.

허나 석전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핀 소일초와 주소아는 실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석전의 바닥에 가득 널브러진 저 수 많은 백골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헉...!)
소일초와 주소아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발 끝에 닿는 백골의 섬뜩한 감촉,

그리고 밟자마자 부스스 먼지로 화하여 날리는 백골들을 보며

마음만은 아직 어린 소일초와 주소아는 찔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으음! 오래 전에 이곳에서 큰 혈전(血戰)이 벌어진 것 같구나.)
생각하며 소일초와 주소아는 계속 석전을 살펴나갔다.
헌데 문득 석전을 살피던 주소아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무엇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저...저것은?)
가슴에 검이 박힌 채 나뒹굴어져 있는 한 구의 백골,
기이하게도, 그 백골의 한 손은 썩지 않은 채 본래 그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은은히 혈광(血光)을 뿌리는 손!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 시체의 손을 봄으로써

알 수 없는 가공할 살기와 잔인한 무정을 느끼고 전율했다.
어느 새 그들은 그 손 가까이에 접근해 있었다.
그리고 그 손 주위를 살피던 중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그 손 옆의 바닥에 새겨진 몇 글자를 발견했던 것이다.

<부...분하도다. 마교(魔敎)의 처...

천년야망(千年野望)이 배신자들에 의해 물거품...되다니...>

백골의 주인은 마지막 순간에 이 글씨를 새긴 듯 손끝이 마지막 글자에 얹혀져 있었다.
{히유! 천년동안 품어온 야망이래!

이 뼈다귀는 천년이 대체 얼마나 긴지 알고나 썼을까?}
바람 빠지는 소리를 터뜨린 소일초와 주소아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교란 이름도 생소하지만 천년야망이란 가공할 욕망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의혹을 느끼며 또 다른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주소아와 소일초는 이내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호기심을 안고 석탑의 위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층(二層) 석전의 구조도 일층의 석전과 구조가 비슷했다.

수 많은 백골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역시 기이하게도 단 한 구의 백골 만이 글을 남기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새겨놓은 듯한 글자들에서

소일초와 주소아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석전에 백골로 나뒹굴고 있는 자들이

거의 정통마교(正統魔敎)란 신비단체의 인물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글자를 남긴 인물들이 마교의 공동 교주들인 구마존(九魔尊)에 드는 인물들이라는 것이었다.
마교의 주인인 구마존(九魔尊)!

그들은 각층마다 한 명씩 죽어 있었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계속 사층... 육층... 팔층의 석전으로 올라갔고,

석탑의 그 팔층까지도 상황은 똑같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상의 사실 외에는 소일초와 주소아가 알 수 있는 사실 또한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십층,
쿠우우우-!
기이한 소용돌이 만 가득찬 텅빈 석전의 내부 역시 수 많은 시신이 널부러져 있었다.
유심히 사방을 살피던 소일초의 눈에

언뜻 경악의 빛이 스치면서 주소아를 자기의 등뒤로 끌어당겼다.
{저기... 사...살아있는 사람이 있어.}
주소아도 그 것을 보았는지 손가락을 가르쳐 보였다.

석전의 한쪽 석벽에 반듯이 기대어 앉아있는 한 사람!
그는 백골이 아닌 완전히 살아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심해! 멀쩡해보여도 죽은 시신이야!}
소일초가 먼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내 주소아도 그 중년인이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시신임을 알 수 있었다.
한데 시신은 시신이었으되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시신이었다.

아마도 살아있을 때 금강불괴를 이루어 죽은 후에도 시신이 손상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차고 냉혹하며, 그러면서도 수려하기 이를 데 없는 중년인의 모습을 한 시신,
그의 맑고 깊은 눈에는 지금도 은은한 자광이 폭사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니...

이 자가 살아 있었을 때 얼마나 가공스러운 무공을 지녔는지 가히 상상키 어려웠다.
순간,
{마교! 마교! 마교!}
딱!
소일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중얼거리다가 자신의 이마를 쳤다.

{이런 멍청이...! 그새 마교(魔敎)란 이름을 잊어버리다니!

검마(劍魔) 사부께서 그렇게 당부했는데... 에잇. 폭발에 휘말려 머리가 어떻게 됐나봐!}
{마교를 알아?}
주소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마교란 작자들은 건방지게도 내 사부님이신 검마마저도 납치하려고 시도했었대!

물론 분수도 모르고 사부님께 깝죽댔던 놈들은 모두 황천으로 갔지만 말야!]
소일초는 검마에게서 들었던 옛일을 주소아에게 설명해주엇다.
이어 그는 생시와 똑같은 모습으로 죽어있는 인물의 시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시체를 봐! 죽은 후에도 오랜 세월 동안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가 있잖아!

이게 바로 마공의 최상승 경지인 극마(極魔)의 경지야!

그 나쁜 놈 천수마영(千手魔影) 사진성(史震聲) 역시 극마의 경지였어!

참! 너 기억은 되찾았어?}
{응! 하지만 별 내용이 없었어.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 해 줄께!}
소일초와 주소아는 한동안 경이로운 시선으로 중년인의 유체를 살폈다.
그러던 중 문득 그는 중년인이 기댄 석벽에 피로 쓰여진 글씨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본인은 구마존(九魔尊) 중 첫째인 천마존(天魔尊)이다.
아아! 그 어느 세월에 있어 본인의 글을 읽어 줄 자 나타날지 모르지만...

나는 이 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노라!
영원히 이 글을 읽어 줄 자 나타나지 않는다 하여도...

이 원통, 이 한스런 증오를 달랠 수 없기에 이 글을 적지 않을 수 없노라!

내 이제 여기에 마교(正統魔敎)의 탄생과 종말을 적으리니...

우선 이 글을 적을 때가 대명(大明) 임인년(壬寅年) 칠월(七月) 계해일(戒亥日)임을 밝히는 바이다.>

{임인년이라고? 그렇다면 대체 언제란 소리야?

벌써 육십년(六十年) 가까이 된 것같은데!}
소일초의 맑은 동공에 놀라움의 빛이 가득 넘쳐났다.
허나 그는 곧 가슴을 추스리고 주소아와 함께

한과 원이 절절이 배인 처절한 비사(秘事)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우리 정통마교는 본시 천 년 전에 탄생한 마의 기본이며 본산인 십만마교(十萬魔敎)의 본류(本流)이다.
이 땅에 마(魔)란 이름을 정착시킨 아홉분의 마의 주창자(主唱者)들!

본 마교에서 그분들을 제일대(第一代) 구마존(九魔尊)이라 칭한다.
그 분들은 영원히 마(魔)가 정(正)을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늘 부정해 왔던 인물들이었다.
그분들은 드디어 천년대계(千年大計)를 세우기에 이르셨다.

마로써 정을 제압하려는 천 년의 대 계획!

그 위대한 계획 아래 탄생한 것이 본 마교였다.
제일대 구마존들은 천 년의 원대한 계획으로 세상의 모든 정(正)을 쳐부수고 제압할 위대한 전사,

마교지존(魔敎至尊)을 탄생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준비의 첫단계는 천하에 산재한 모든 마공절예(魔功絶藝)를 모으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이 땅에 위대한 마교지존이 탄생할 때까지

자신들의 역할을 계속 수행할 제이대(第二代)의 구마존(九魔尊)을 점지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잃은 소일초와 주소아는 이 글의 광오함에 혀를 내둘렀다.

{대체 얼마나 산다고 좋은 일 다 제쳐두고 이런 쓸모 없는 짓을 천년 씩이나 할려고 했을까?

도무지 제정신이 아닌 미친놈들이야!}
소일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그 글의 광오함을 탓하면서 도 그들은 계속 읽어갔다.

<...이런 방법으로 구마존은 그 시대 가장 뛰어난 마공절예를 모았고...

또 그 후임자 즉 차대(次代) 구마존(九魔尊)을 찾아 그들의 역할을 물려주는 이 장엄한 진행은

우리들 제팔대(第八代) 구마존에 이르도록 철저하게 이행되었다.
헌데 제팔대에 이르러서는 약간의 변화가 발생했다.
제팔대 구마존들은 마공절예들을 더이상 모으기만 하는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공절예들을 체계화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천하에 산재하는 기재(奇才)들을 납치해 오게 되었다.
잡혀온 기재들은 마장탑(魔藏塔)에서 거처하며 오직 마공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그들은 무공을 절대 익힐 수 없도록

전신의 요혈(要穴)이 철저하게 파괴되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석벽의 비사(秘史)를 읽어 내리던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이 딱 벌어졌다.
천하에 산재한 기재(奇才)들을 납치하여 몸을 망가뜨리고 사악한 일에 동원하다니...
{무림에 때때로 있어왔다는 어린 기재들의 실종사건이 이들에 의한 것이었다니... 기가 막히는데?}

주소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튼 대단한 놈들이 대단한 짓을 하는군 그래.

그래봤자 자기들에게 고물도 떨어지지 않을 텐데...}
소일초도 서늘해지는 가슴을 느끼면서 말했다.
허나, 그의 시선은 다시 석벽의 비사를 자세히 더듬기 시작했다.

<세상을 뒤져 고르고 골라온 그들 칠십이명 기재들의 능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총 칠십이 명의 기재들,

그들은 팔대(八代)에 이르는 우리 구마존들이 마장탑(魔藏塔)에서

무려 팔백 년(八百年)의 세월에 걸쳐 수집된 수백 종의 엄청난 마공절기들을 자신들이 지닌 바

천재적인 두뇌로 새롭고 고강한 전혀 새로운 마공으로 통합해 가며 만들어가니...
그것은 실로 엄청나고도 거대한 작업이었다.

무림에 언제 이토록 많은 기재들의 힘이 한곳에 집결된 적이 있었던가?
무려 팔백 년의 세월에 걸쳐 난세마다 탄생한 최고의 무학들을 수집한 것에

그들의 두뇌가 결합되어 그 작업은 무려 백 년의 세월에 걸쳐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 제팔대 구마존은

제구대(第九代) 구마존을 점지하고 우리들의 모든 것을 넘겨 주었다.
헌데 우리의 모든 지식을 전하고 우리의 모든 무학마저 그들에게 전한 뒤의 그때에 배반!

가증스런 배반이 이루어졌다.
불과 약관의 나이로 구마존으로 점지된 새로운 구마존들이 일시에 배반을 한 것이다.
제구대(第九代) 구마존들!

그 배반자들은 마교에 충성하는 칠백 고수를 죽이고

자신들에게 동조한 다른 삼백고수들만을 이끌고 이곳 마의 성역(聖域)을 떠났다.

잡혀온 기재들이 만들고 있던 마교칠십이절기(魔敎七十二絶技)의 부본(副本)을 지닌 채!

이 어찌 분하지 않겠는가?
조천수(趙千手)!

제구대 천마존(天魔尊) 조천수(趙千壽)에게 마교의 모든 정령들이 저주를 내린다.

천년이 지나도 씻기워지지 않을 저주를...!>

순간 소일초와 주소아의 낯빛이 무겁게 일그러졌다.
{등천마교(騰天魔敎)의 교주 등천마황(騰天魔皇) 조천수가 마교의 제구대 천마존이었다니...

제기랄! 칭찬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소일초가 주소아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린다.

-등천마황(騰天魔皇) 조천수!

그는 바로 신주사패천중 등천마교의 교주로써 주소아의 부모를 살해한 원수의 이름이 아닌가?

비록 그 대가로 혈기자에게 처참하게 목숨을 바치고 등천마교의 멸망까지 가지고 왔지만...
그렇다면 등천마교는 이곳을 배반하고 떠난 제구대 구마존의 무리들에 의해 탄생된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분노한 천하제일인 혈기자의 손에 일제히 때죽음을 당했는가?
참으로 기가막힐 일이다.

배신을 하고 나간 그들이 불과 몇 십 년 되지도 않아서

시신조차 건사하지 못한채 처참하게 죽고 말았으니...
진정 하늘은 인간의 모든 선악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있단 말인가?
주소아는 망연한 표정인데...

소일초는 도무지 끝을 짐작할 수 없는 혈기자의 무공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마교의 배신자인 조천수 등의 등천마교 본단을

혈기자는 단장(短杖)하나로 하룻밤이 지나기 전에 몰살시켜 버렸던 것이다.

무려 이천칠백여 등천마교 본단의 인물들은 저항도 못해보고

일제히 머리가 터져나갔다는 것을 소일초는 수없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이 약했던가?

아니면 혈기자의 무공이 진정 신과 같단 말인가?

하긴 무림사에 유래가 없는 진짜 반로환동을 한 분이니...!)
소일초는 자기의 무공에 자만할 수 없었다.
자기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구마존같은 고수들을 단 한 수에 죽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사 검마의 일초무적검인 검벽신공(劍壁神功)으로 죽인다고 하더라도

어찌 조금의 반항조차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주소아를 보았다.
{조천수! 그가 우리 집안의 모든 행복을 앗아간 장본인이야!

그자만 아니었으면... 부모님도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테고...

할아버지도 숙백부들에게 혈겁을 일으키게 하지 않았겠지!

그럼 그들도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을 테고... 나는 할아버지와 행복하게 살고있겠지!}
주소아는 <조천수>라는 이름을 보면서 원한에 찬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소일초가 그녀의 어깨를 당겨안으며 점점 희미해져가는 글자를 다시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아아! 이로써 마교의 천 년 안배는 모두 깨졌다.
허나 불행 중 다행으로 배신자들은 마장탑에 갇혀있는

칠십이기재들의 손에 의해 완성됐을 마교칠십이절기(魔敎七十二絶技)를 탈취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미 그들의 배반을 예감했음인가?

칠십이기재들은 미리 마장탑의 모든 통로를 완벽하게 폐쇄해 버린 것이다.

결국 마장탑은 칠십이기재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으니 어느 세월엔가,

그 어느 세월엔가 누구든 마장탑에 드는 자 마교칠십이절기를 얻어 진정한 마교지존이 되리니...
바라건데 마교의 배신자들을 처단하고

마교지존(魔敎至尊)으로서 무림 위에 군림(君臨)하기 바라노라!>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더이상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글이 끝난 때문이다.
{친구 미안하게 됐네!

이미 배신자들은 씨도 남기지 않고 다 자네 곁에 갔다네!

혈기자 그 젊은 형씨께 감사하게나.}
소일초는 주소아를 웃기려는 듯 해학적으로 말했다.
주소아는 그의 말에 웃음을 띄면서 그를 밀쳤다.
{비켜봐! 어딘가에 옷이 있을 거야!}
{그대로가 더 좋은데...!}
풍만하고 탄력있으며 우유빛이 어려있는 주소아의 알몸 아래위를 스윽 훑어보며 소일초가 말한다.
{색마! 덩치가 클 때나 작을 때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구나.}
과연 주소아는 석전의 이구석 저구석으로 알몸으로 뛰어다니더니 두 벌을 옷을 찾아냈다.
{쳇, 여자건 없어. 기분이 찜찜하기는 해도 별 수 없지!.

우리 이제 마장탑인가 하는 데나 가보자.}
옷을 재빨리 걸쳐입으며 주소아의 얼굴에 강려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그녀의 무공에 대한 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무림에서 잡혀온 칠십이 명의 기재가 창안했다는 마교칠십이절기가 몹시 궁금한 것이다.
소림(少林) 칠십이절기라면 몰라도 마교(魔敎) 칠십이절기라니...!

그녀의 관심은 이제 조천수 따위는 잊어 버리고 온통 마교칠십이절기로 가 있었다.

그때,
{우리 밖에 없는 데 옷은 무슨 옷이야. 지금이 가볍고 좋지!}
소일초가 이미 그녀의 성숙한 나신에 익숙해져 투덜거린다.
{너 때문에 옷을 입는 거야. 혹시 무슨 짓 하자고 달려들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