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十四 章 百刃莊의 哭聲
사위가
모두 잠든 것 같은 깊은 밤,
소선풍은
시선을 천정에 두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데,
그
사이 도대체 조예진은 지금까지 주소아의 서찰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서른
번... 적어도 서른 번은 읽었으리라.
그리고
그녀가 터뜨린 눈물과 오열은 또 얼마나 했던가?
그러나 지금도 그녀는 또다시 서찰을 읽기 시작했고,
새롭게
솟구치는 눈물로 오열한다.
(안돼!일초는
내 아들이야!! 비록 다른 사람의 몸에서 났지만 분명히 내아들이야.
일초도
자기 생모보다는 나를 훨씬 더 좋아 할거야. 내가 결코 이대로 있을 수 없어!)
돌연
서찰을 읽다 말고 조예진은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와락 서찰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마치
그 서찰이 소일초이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침상에 누워있는 남편 소선풍에로 시선을 돌렸다.
이어
절규처럼 터지는 처절한 음성,
{제가
가겠어요. 차라리 제가 사형들과 싸우겠어요!}
하나,
{당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당신 사형들의 상대가 될 수 없어!
삼년 전에 그들은 두 사람이 합공을 해서야 나를 이길 수 있었지!
당시에
어린도만 손에 있었어도 내가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저 보고 어쩌란 말이예요?
이대로 일초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보고만 있어란 말이예요?}
그녀는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던 태도로 소선풍에게 반박했다.
{원로십팔도객을
모두 동원해. 정뇌(井牢) 따위는 팽개쳐 버리라구.
당신 사형들의 무공은 그때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었어.
지금은
얼마나 강해졌을지 짐작할 수 도 없어.}
소선풍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
고마와요. 그리고 미안해요! 당신한테 화를 내서...!}
조예진이
소선풍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
아들인걸! 오히려 내가 고맙지!
두
달, 두 달 만 더있어도 내가 일어날 수 있을 텐데...}
그의
목소리에는 진한 안타까움이 배어있었다.
(아마도
원로십팔도객 중 아무도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하겠지!)
× × ×
이튿날 아침,
백인장은
발칵 뒤집혀 버렸다.
날이
채 밝지도 않았는데 하나의 백영이 미친 듯이 소리쳐
소선풍을
부르면서 백영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소선풍!
소선풍! 이 미친 작자! 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놈아!}
어슴푸레한
가운 백영이 소리치며 백인장을 날아들자
파수보던
젊은 도객이 깜짝 놀라며 가로막았으나 일검에 튕겨 나가 떨어지고…
잇따라
연무장에서 새벽 연무를 하던 도객들이 고함치면서 백영을 막았으나
이 검을 받아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적이다!}
{적이다!}
휘이익!
휘이익!
길고
날카로운 휘파람 경보와 아우성으로 백인장은 떠들썩해졌다.
{소선풍!
이 나쁜 놈! 어디 있느냐? 당장 기나와라!}
마구
욕을 해대며 검을 떨쳐내는 그 백영은 얼마나 빠른지 모습을 분간할 수도 없었다.
그때,
{모두
손을 멈춰라!}
우렁찬
고함이 울려퍼지며 두 노인이 연무장에 내려섰다.
{좌우봉공이
주모(主母)님을 뵙습니다.}
{흥,
수혼도객(收魂刀客), 무심군자(無心君子)! 나를 알아보기는 하는구나.
잔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소선풍을 나오라해라.}
백영이
멈추어 서자 그때서야 다른 도객들도 백영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바로 소선풍의 전처인 이주용(李珠蓉)이었던 것이다.
{주모를
뵙습니다.}
비로소
이주용을 알아본 백인장의 뭇 도객들이 일제히 우렁찬 소리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시끄럽다.
당장 소선풍, 그 파렴치한 놈이나 나오라고 해라.}
{주군께서는
나오실 수 없습니다. 자중하십시오 주모...}
수혼도객은
음성이 침중하게 흘렀다.
{뭐라고?
자식은 죽도록 밖에 내보내 놓고 아직도 여우같은 계집이나 끼고 누웠단 말이냐?}
이주용이
서릿발 처럼 얼굴을 굳히며 거친 음성을 칼날처럼 내뱉었다.
{주모!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수혼도객이
고개를 바로 들면서 소선풍을 욕하는 이주용을 쳐다보았다.
{수혼도객!
네가 감히 나에게 대들다니... 간덩이가 부었구나.에잇!}
이주용의
검이 수혼도객의 가슴을 그대로 관통했다.
{윽!}
그러나
수혼도객은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무심군자와
다른 도객들의 안색이 홱 변했다.
이주용이
검을 뽑자 수혼도객의 오른쪽 가슴에서 피가 샘솟듯이 쏟아지며
그의
몸이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좋다.
소선풍이 나오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들어가겠다. 비켜라!}
{못들어가십니다.
주모.}
무심군자가
다시 그녀의 앞을 막았고,
다른 도객들도 일제히 도를 뽑아들고 그녀를 포위했다.
그들의
눈에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어려있었다.
{이것들이
죽고싶어서 환장했구나. 좋다! 그럼 어디 한번 해보자.}
{...}
{네
놈들을 몽땅 죽이면 설마 소선풍이 기나오지 않고는 못배기겠지!
오늘
무슨 수가 있어도 소선풍과 사생결단을 내야겠다.}
이주용,
그녀는 신주사패천의 하나이고 강북무림의 제일 세력인 청옥검궁(靑玉劍宮)의 공주(公主)다.
그녀의 검 역시 적수를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다.
[이야압-!]
날카로운
기합을 지르면서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무심군자를 찔러갔다.
무심군자의
소매속에서 파란 도가 튀어나오며 그녀의 검을 가로막는 순간,
이주용은
벌써 몸을 돌려 그 옆의 젊은 도객을 찌르고 있었다.
[으악!]
젊은
도객이 그녀의 빠른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어깨에 검을 맞으며 쓰러졌다.
무심군자가
재빨리 이주용을 공격해 갔으나
그녀는
그와 마주치지 않고 다른 도객을 공격하면서 양떼속의 이리처럼 날뛰었다.
여기저기서
젊은 도객들의 비명이 터져나오고...
무심군자는
초조해서 어쩔 줄 모른 채 이주용을 쫓아다녔다.
이주용은
백인장의 도법들의 대부분 초식들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다.
그야말로
백인장 도객들의 천적이나 마찬가지 였다.
게다가
자신들의 주모인지라 마음대로 공격도 펴지 못하는
백인장의
도객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그때,
{멈춰라!}
나지막하면서도
깊은 공력이 깃든 목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메아리쳤다.
바로
조예진이었다.
그녀가
밖의 소란을 듣고는 몸소 나선 것이다.
{언니께서
오신 줄은 몰랐습니다. 들어오시지요.}
말을
하면서 연무장에 쓰러져 나뒹구는 도객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흥,
소선풍. 그 매정한 놈은 어디있는가?}
{꼭...
만나보시겠습니까?}
조예진이
손짓을 하여 도객들을 물러가게 하면서 주저하듯이 말했다.
{나는
오늘 그 작자와 사생결단을 내려왔다.}
조예진은
그녀를 판히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
그렇다면 따라오십시오.}
이주용은
검을 공중으로 휙 집어던졌다.
그리고
조예진을 따라 걸음을 옮겼는데 그녀의 표정에는 결연한 빛이 어려 있었다.
철컥---!
검은
아슬아슬하게 검집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가고...
연무장은
부상자들을 메고 가는 도객들로 부산해졌다.
× × ×
소선풍의
침실 앞에서,
{여보!
이(李)언니께서 오셨어요.}
조예진이
안으로 전갈했다.
{비키게.
바로 들어가겠네!}
차갑게
말하며 이주용이 문을 밀쳤다.
창-!
그녀의
청강검은 어느새 손에 쥐어졌고,
{소선풍!
나와 사생결단을 내자.}
흉악하게
소리치며 침실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찾은 소선풍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흥,
상당히 게을러졌군. 아직도 일어나지 않다니...}
쏴악---!
침상의
휘장이 그녀의 일검에 베어져 나갔다.
이주용의
청강검이 누워있는 소선풍의 목을 겨누었다.
{소선풍!
일어나라. 나 따위는 누워서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냐?}
{부인,
오랬만이요.}
소선풍의
목소리는 추호의 동요도 없이 부드럽게 울려나왔다.
{닥쳐라!
누가 네 부인이란 말이냐?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찌르겠다.}
서릿발
처럼 차가운 눈빛을 쏘아내며 이주용이 소리쳤다.
{나는...나는...
나흘 밤낯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네놈을 죽이겠다는 심정하나로...!
어떻게...어떻게
하나뿐인 어린 자식을 사지로 내몰고 편안히 누워있을 수 있단 말이냐?}
그녀의
눈에서는 주루루 눈물이 쉬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른
것은 다 용서할 수 있다.
네가 열 처(妻)를 거느리든 백 첩(妾)을 거느리든 상관하지 않겠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 뿐인 아들을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이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삼성무림청의 수뇌가 등천마교의 교도 수 만명을 쳐죽였던
혈기사신재(血旗四神才)라는 걸 모를 줄아느냐? 이놈아!}
그녀의
마지막 말은 차라리 절규였다.
소선풍은
입을 굳게 다물고 천정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인한 그의 두 눈에도 눈물이 어리고 있었다.
{할
말을 다했는데... 네놈이 일어나지 않으니 그대로 죽여주마.}
이주용은
실성한 듯이 낮게 중얼거리며 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때,
{언니!
그분은 삼 년 전부터 일어날 수 없었어요.}
조예진
역시 쌍장을 치켜올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빠르게 말했다.
순간,
{뭐...뭐라고?}
{그분은
침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몸이라구요.}
조예진은
참을 수 없는 듯 울먹이는 목소리는 겨우 말했다.
소선풍의
두 눈에도 마침내 구슬같은 눈물이 뚜르르 굴러내리고...
이주용은
넋을 잃고 바닥에 검을 떨어뜨렸다.
{천하에...
누가...누가 이 사람을...이길 수...있단 말인가?그토록 강한 사람을?}
목소리가
덜덜떨려 나왔다.
이주용의
눈이 누워있는 소선풍을 바라보았다.
{정말인가요?
정말... 어떻게 그럴 수가?}
누구도
대답이 없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말해요. 벌떡 일어나 보란 말이예요.
벌떡 일어나서 옛날처럼 못된 계집이라고 뺨이라도 쳐보란 말이예요!}
그녀는
소선풍의 목을 끌어안고 소리쳤다.
한순간
어린 마음에 다른 여자를 맞이하겠다는데 화가 나서 집을 나간 그녀였지만
어찌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지 않았겠는가?
야속하고
무정하여 원망한 날이 더 많았던 지난 세월이지만
한
시도 잊을 수 없었던 남편이고 아들이었다.
너무도
강하여 절대로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남편이
전신불구가
되어 병상이나 지키고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
지금
소선풍의 침실 안팎에는 때아닌 울음소리는 가득찼다.
소선풍을
염려하여 원로십팔도객들과 백인장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백인도객이
일제히 연락을 받는 즉시 몰려와 있었던 것이다.
주군의
비참한 신세가, 울부짖는 주모들, 울지 않을 수 없는 정경이었던 것이다.
그들
중에는 아예 목을 놓아 큰 소리로 엉엉 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백인장의
모든 식구들이 이 소리를 듣고
소선풍이 사망하기라도 한 줄알고 일제히 땅을 치고 통곡하여
백인장은
울부짖는 곡성으로 아무 말도 주고 받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떠났던
큰 주모가 왔다는 소식이 들리자 마자 곡성이 터졌으니
틀림없이
소선풍이 죽었다고 단정지은 것인데...
한
두 사람, 앞에 왔던 사람들로 부터 사실을 전해 듣고
다른 사람에게 입에서 입으로 사실이 모두 전해지자
천지를 진동시킬 것 같던 곡성은 스르르 잦아지고..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 싶어 숙스러워 하면서 슬금슬금 자기들 처소로 돌아가고 말았다.
{동생! 동생이 말해보게. 대체 누가 이사람을 이렇게 만들 수 있었단 말인가?}
눈물을
씻어내며 이주용이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훌쩍!
다 저 때문이랍니다.
제가
박복해서... 훌쩍... 그분을 다치게 한 것입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그때,
{누구
탓도 아니야. 내 몸을 부수어 놓은 것은 바로 자네가 말한 삼수고...
다
내 무공이 모자란 때문이지!}
속이
후련하다는 듯이 소선풍의 말이 흘러나왔다.
× × ×
백인장에서 피가 튀고 눈물이 쏟아지고 급기야 응어리졌던 한(恨)이 풀리고 있는 이 아침,
그
커다란 말썽의 원인이었던 소일초와 주소아는 서안(西安)에서 객점을 찾고 있었다.
하늘
아래 그 어떤 사람보다 멋진 용모와 훤칠한 키의 무적검으로 변신한 소일초,
그리고,
소일초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면사를 쓰게 됐으나
그
몸맵씨 만으로도 천하사내들의 넋을 빼버릴 것같은 미녀인 주소아,
지난
밤에도 몇 번이고 다듬고 다듬어 창출한 그녀의 최고 걸작이 지금의 몸매였다.
<풍운루(風雲樓).>
서안의
대로변에 자리한 거대한 객점(客店)이다.
바로
이 객점의 문을 밀치고 막 그들이 들어서는 순간,
시선!
수십 쌍의 시선이 일제히 소일초의 얼굴에 꽂혔다.
{오...!}
{허!
정말 아름다운 젊은이로군.}
{천상(天上)의
선인(仙人)같지 않은가?}
객점에서
술이나 음식을 들고있던 객손들은
아예
두 눈이 부신 듯 치켜뜬 눈을 도대체 거둘 줄 몰랐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다시 경악으로 부풀고 또 다른 탄성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아!}
{저
여인의 자태 좀 보게.}
{넋...
넋이 빨려드는군!}
{오오!
저런 미태가...!}
한데
그때였다.
비틀비틀...
돌연
경악으로 굳은 객손들의 사이를 뚫고 갈지자 걸음을 바람처럼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움직였다 싶을 순간 주소아의 곁에 이르러 있더니...
{이리와!
빌어먹을! 제 아무리 둔갑해도 너희들인줄 알고있다고...
이
무슨 꼴인가? 제기랄...}
확!
술기운을
풍겨내며 소일초와 주소아를 이끌고 가는 사람,
홍건개(紅巾개)!
개방
일천 년 사상 가장 뛰어난 기재(奇才)인 바로 그였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변신한 자기들의 모습을 아무도 알아 보리라 생각지 못했다.
한데
홍건개가 대뜸 알아차리자 내심 크게 놀랐다.
비틀비틀거리며
객석을 누비던 홍건개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하나의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자!
한 잔 받아!}
홍건개는
땟물이 주르르 흘리는 손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엇...
저런...!}
{저
거지는 누구야!!}
객석의
손님들은 이 광경이 흥미진진한 듯 숨소리마저 죽이며 이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한데
이것은 또 무슨 기변인가?
무어라 화를 낼 줄 알았던 저 젊은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는
아무말
않고 주는 술을 받아서 단숨에 마셔 버리는 것이 아닌가?
(별일일씨!)
(허!
별 희안한 일도 다 있군!)
주객들은
혼란스런 눈빛으로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세 남녀를 바라았다.
{그
잔은 본 홍건개가 타인(他人)에게 주는 최초의 술...제기랄... 운도 좋군.!}
홍건개,
이
개방 천 년의 기재는 오늘 무슨 일로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나타내고 술을 권하는가?
{술이란
말이야 마시면 마실수록 느는 거라구.
그러니
앞으로 영웅행세를 하자면 남 부끄럽지 않게 술 실력을 키워야 한다구.}
{...!}
{어이
친구! 빌어먹을 무슨 표정이 그래?
아름다운
부인을 얻었으면 기뻐해야 할 게 아냐? 우라질...!1}
소일초의
표정은 더욱 어이없게 변했다.
술잔을
손에 쥐자 주소아가 한 잔가득 부어주었다.
{아무튼 좋아,
이
홍건개가 염려해서 하는 말인데 화산 옥녀봉의 약속은 취소해 버려.}
{...}
{어린
네가... 빌어먹을...
그자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모한 일이야.}
그때
어이없는 표정이로 술을 들이키던
소일초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이어,
술잔 가득히 술을 부어 주소아에게 건네주며 홍건개에게 말했다.
{너는
남의 일에 무조건 간섭하는 악취미가 있군.}
순간
홍건개의 두 눈이 파릇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벌컥벌컥
술을 들이키며 투덜거렸다.
{끄윽!
빌어먹을 저놈의 고집...! 제기랄... 제기랄...}
{그리고
우리를 어떻게 알아 보았는지는 묻지 않게다.그러나...}
벌컥벌컥...
{우라질...빌어먹을...}
{나의
일에 이번에도 귀찮게 간섭하고 나선 다면, 먼저 네놈의 목을 베겠다.}
벌떡,
소일초는
몸을 일으켰다.
{가자!}
순간,
주소아는 손에든 잔을 재빨리 비우고 소일초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벌컥벌컥!
홍건개는
소일초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도 거푸 술만 들?켰다.
{바보...
끄윽... 멍청이 같은 자식...!}
소일초의
귀에 꽂히는 홍건개의 음성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자비감(自卑感)이 느껴졌다.
{미친
놈!}
순간,
홍건개의 몸이 격렬한 진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안타깝게 터지는 전음,
{충고한다.
화산에 가게되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내가 건방진 애숭이 네가 좋아서 이런 줄 아느냐?
다
네 녀석의 약혼녀라는 주소저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순간,
주소아와 함께 객점을 나서던 소일초의 얼굴에 무서운 기색이 피어났다.
그의
손이 어느새 백의장삼 속의 철검을 거머잡는데
주소아가
눈치를 채고 그의 소매를 잡아서 저지시킨다.
{마지막
경고다. 다시는 우리들 앞에 보이기만 해도 죽여버리겠다.}
차가운
음성이 전음으로 홍건개의 귓속을 파고들고...
홍건개는 목에서 흘러내리는 선혈을 닦아내고 있었다.
귀신도
곡할 솜씨로 소일초가 수정검우를 발출하여 그의 목에 상처만 낸 것이었다.
객점에서
멀어지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보면서 홍건개는 몸을 떨었다.
(죽이려는
마음만 있었으면... 죽이고도 남았다.
저
꼬마의 무공은 이미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섰다.)
홍건개는
주소아의 아름다운 모습이 꿈결처럼 멀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 *
-은파하(銀波河),
서안의
교외(郊外)를 감싸고 흐르는 그리 크다고 말할 수 없는 강이다.
이
은파하의 맑은 물 위로 휘영청 밝은 만월이 은가루처럼 부서져 내리는 밤이었다.
바로
이 아름다운 은파의 강변을 따라
훤칠한 키에 영준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의 소일초와
달빛이
무색할 아름다운 자태의 주소아가 거닐고 있었다.
이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돌연 영롱한 주소아의 음성이 소일초의 귓전에 울려퍼졌다.
{어떻게
아침의 그 거진 우리를 한 눈에 알아봤을까?}
{그
기분나쁜 자식 애기는 꺼내지도 마!}
{그
거지 애기를 하자는게 아니고...}
소일초가
몸을 돌려 주소아를 바로 응시했다.
{너도
참 멍청해 졌구나.}
{?}
{이
바보야! 네 귀를 잠시 막았다가 열어봐.}
{바로
이것 때문이었구나.}
주소아는
손을 귀로 가져가다가 소리쳤다.
{너나
나나 계속 같이 있다보니까
네몸에서 나는 소리에 익숙해져서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다르겠지,
소리가
갈 수 록 약해지고는 있지만 고수들이라면 누구나 다 들을 수 있어!}
{쳇,
소리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진 변신해도 말짱 헛고생이겠군,
그래도 얼마전에 기가막힌 미행자는 따돌렸었는데...}
주소아가
돌멩이를 발로 차면서 다시 말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지!?}
{이제
다 왔어!}
소일초의
말에 주소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강변의
갈대만 보일 뿐 색다른 것은 눈에 뛰지 않는다.
{설마
여기서 이상한 장난이나 치자고 온 것은 아니겠지?}
그러면서도
불안한 듯이 소일초의 얼굴을 들여다 보던 주소아가 화석처럼 굳었다.
허공,
달빛이 찬란히 쏟아져 내리는 휘황한 허공에,
일렁일렁...
무엇일까?
몹시
완만하게 선회하며 네 곳의 방위에서 맴돌고 있는 네 개의 물체는?
그것도
피빛 광휘를 사위로 흩뿌리는 소름이 끼치는 등(燈)이 아닌가?
일렁일렁...
이
네 개의 핏빛 등은 언제 나타났는지
두
사람을 중심으로 네 방위를 좁혀오고 있기까지 했다.
{죽음의
살수(殺手) 사등객(死燈客)!
인간의
영혼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사등을 부리는 자야.}
그때
소일초의 음성이 담담하게 흘러나왔다.
사등(死燈)...
그리고
사등객(死燈客)이라니?
그렇다면
핏빛 혈등(血燈)을 이끌고 다닌다는
팔십 년 전의 전설적인 살수 사등객이 다시 무림에 나타난 것이란 말인가?
-그저 세상을 조롱하는 한 살수로 남고 싶었노라!
그리하여 나는 네 개의 등을 이끌고 천하를 뒤지는 살수가 되었노니...
울어라! 울어라 피야! 짖어라! 짖어라 내 싸늘한 검날아!
그렇다.
바로
이 초유의 살수인 사등객(死燈客)이 네 개의 등을 이끌고
소일초와
주소아를 목표로 팔십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스스스스...
문득
네 개의 등이 허공에서 찬란한 이동을 하는가 싶더니,
콰아아아!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하나로 합쳐지는 게 아닌가?
아니
합쳐졌다 싶을 순간 이미 분명히 장엄한 빛이었되 육안으로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속도로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꽂혀갔다.
이
엄청난 빛!
그것이 하나의 검광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검은 두 사람을 목표로 하여 일 장 앞을 꿰뚫고 있는 중이었으니...
이제
주소아와 소일초의 몸은 그대로 두 동강이 나고 말 판국이었다.
한데
그때 돌연 주소아의 앙칼진 교갈이 터져나왔다.
{천풍환상도(穿風環象刀)!}
순간
그녀의 손에서 파란 빛줄기가 어지럽게 뻗쳐나갔다.
치익
칙!
두사람을
향해서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던 검은 둥실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고,
주소아의
손에 있던 파란 빛줄기가 변화를 계속했다.
{작열광풍(灼熱狂風)...!}
다시
그녀의 짤막한 음성이 터졌다 싶을 순간,
쏴아아아!
그녀의 손에서 변화를 계속하던 파란 빛줄기가 허공으로 그물처럼 뻗어나가는가 싶더니
그대로
핏빛 혈등에 싸인 검광을 휘몰아쳤다.
{크흑...!}
다음순간
핏빛 혈등 속에 목젖이 타는 신음이 터지는가 싶더니
그
엄청난 사등의 광휘가 급작스럽게 흩어졌다.
파파팟!
그리고
그 속에서 선연한 피보라와 함께 박살난 검이 허공에 흩어지고...
파아앗!
동시에
핏빛 기류가 완전히 흩어지고
피의
비와 분해된 살점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팍!
급기야
사등(死燈)마저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리고,
희대의
대살수는 이렇게 주소아의 기괴한 초식에 의해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때,
{네
이름을 불패도(不敗刀)라기보다는 필살도(必殺刀)라고 해야겠는데...
그처럼
잔인한 무공은 처음이야.}
{내가
마음대로 만든 것 중의 하나일 뿐이야!}
주소아의
낮은 음성이 사위를 때리고,
{볼
일 끝났으면 가서 잠이나 자자.
한데
너 아는 것도 많다. 어떻게 너같이 어린애가 사등객 같은 살수를 다 알지?}
{신행마동이
그정도도 몰라서야 쓰나!
알고 있다는 걸 남들이 알아버리면 귀찮은 일이 상당이 많이 생겨서
아예
모른 척 할 뿐이지!}
스스스...
두 사람은 갈대를 헤지고 객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성가신 미행자를 처치해 버린 깨운함을 가지고...!
× × ×
-화산(華山)!
중원오악(中原五嶽)중
성악(西嶽)으로 불리는 도가(道家)의 성산이다.
그
화산에 퍼부어지는 황혼은 아름다웠다.
그
황혼빛 속에서 화산과 인접해 있는 넓다란 평야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주소아와
소일초!
바로
이들이었다.
{나도
같이 싸울까?}
{그럴
필요없어.
넌
삼수(三秀)나 눈여겨 봐. 그래야 빨리 기억을 되찾지!}
{이제
그딴 것은 알고 싶지도 않아.}
{그럼
내 몸을 깊이 알고 싶어?}
소일초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음험하게 웃으며 물었다.
{또
엉뚱한 소리... 남은 심각한데...}
주소아의
어여쁜 이마가 상큼 찌푸려지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산에서 자게 될것 같은데... 흠흠!}
소일초는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흥, 아무리 졸라대도 오늘은 안돼!
오늘
부터 칠 일간은 무슨 수를 써도 소용없어!}
{왜?}
{여자가
이렇게 말하며 안된다고 하면 그대로 들어주는 법이야.}
{법
네맘대로 잘도 만드네. 내겐 내가 법이야.}
{꼭
이유를 말해야 알아 듣는다면 넌 아직도 남자자격이 없다는 말 밖에 안돼.}
짝---!
소일초가
손뼉을 쳤다.
{달거리구나.}
{바보같이...!
더크게 소리치지 그래?}
주소아가
화를 내면서 톡 쏘아부쳤다.
{그런데
너 앞으로 큰 일이다.}
{왜?}
소일초가
염려스러운 듯이 하는 말에 주소아도 불안한 듯 물었다.
{우리
작은 어머니가 그러시던데
여자는 아기를 낳기 전에 무공이 너무 고강해져 버리면 아기를 낳을 수 없데!
무가(武家)에
자식이 귀한 이유가 다 그 때문이래.}
{...!}
순간
주소아의 얼굴이 바짝 굳어졌다.
{우리
작은 어머니를 봐!
얼마나
예쁘고 무공도 고강해? 그런데도 아기를 못 낳잖아!}
{...!}
{너도
무공이 나이답지않게 고강하니까
어쩌면
앞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다분해...}
{그럼...어떻게
해야되지?}
주소아가 심각하게 물었다. 아기가 얼마나 귀여운데...
그
아기를 낳을 수 없다면 무척 슬플 것 같았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
{?}
{하나는
더이상 무공을 연마하지 않고 있다가
후에
아기를 낳은 다음에 다시 연마하는 거야!}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다른
한 가지는 좀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울 거야.}
{뭔데?
난 다 할 수 있어.}
{음!
그건...}
{빨리
말해. 속태우지 말고...}
{무공이
더 강해지기 전에 아기를 낳아버리는 거야.}
{너...
또 나를 놀렸구나.}
주소아가
손을 들어 소일초를 때리려 했다.
{아니야,
모두 사실이라구.
의심나면
우리 작은 어머니한테 물어보면 될거 아냐?}
소일초는
짐짓 진지한 척 말을 했고,
주소아는
진짜이면 어떡하나 싶어 불안해 졌다.
{네
무공은 날마다 달라지니까 내일이면 늦을 지도 몰라!}
오늘
당장 뭐 달라는 식의 소일초의 말에도
주소아는
여전히 불안해 하면서 반박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돌연 겨울 들판에 가득한 갈대꽃 속에서
순백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바보...!}
스스슷!
동시에 갈대꽃 속에서 솟아난 소녀(少女)가 하나 있었다.
뼈가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맑은 피부를 지녔으며 눈보다 흰 백의를 걸친,
마치
순수와 아름다움의 요정을 연상케 하는 소녀였다.
그렇다.
그녀는
바로 장강의 강변에서 시체 위를 누비고 다녔던 사옥상(史玉祥),
바로
그녀였다.
찰랑찰랑!
그
아름다운 사옥상의 몽롱한 동공에 눈물이 가득했고
그녀는
금방이라도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리고
안타까움이 배인 음성으로 말했다.
{바보!
옥녀봉엔 가면 안돼!}
순간
기이할 정도로 순수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느끼게하는 사옥상의 얼굴에
동그란
눈물이 보석처럼 부서져 내렸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녀를 발견하고 꿀먹은 벙어리 처럼 가만히 있었다.
{바보야!
네가 아무리 모습을 바꿔도 나를 속이지는 못해.
내가 주었던 의정패(依情牌)는 언니가 가지고 있던 의정패와 서로 교감을 가지는 것이야.
아무리
네 모습이 바뀌어도 의정패를 버리지 않는 한 소용없어.}
소일초가
나직한 침음성을 터뜨렸다.
{음!
}
하나
이내 고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랬만이다
사옥상! 네 말이 맞아 나는 바보야!}
{바보,
가지마. 가서는 안된단 말이야.}
{사옥상! 너는 지금 적으로서 내 앞에 서 있는 거야?
아니면 친구로서 서있는 거야?
설마
전에 푸른 계곡에서 했던 우리 경고를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나는
그런 어려운 말은 몰라.
내가
아는 건 네가 저 옥녀봉을 올라가면 안된다는 거야.}
소일초의
음성이 싸늘하게 변했다.
{약속,
이것은 내 이름으로 한 약속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누구도 내 일에 간섭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설사
내 결정이 잘못되어 죽는다고 하더라도...}
{...}
{남의
결정에 따라서 사는 것 보다는 낫다.}
그러자
사옥상의 얼굴은 더욱 안타까움으로 일그러졌다.
{가지
말아 제발! 지금 은상언니도 병이 들었어!
마음의
병이야! 네게 인질로 잡혔다가 돌아온 후부터...}
{...}
{한데...
그 언니가 더욱 더 심한 병을 앓고 있어.
그런 언니가 나를 붙들고 울었어! 그리고 말했어! 너를 살려야 한 대.
너를
화산의 옥녀봉에 오르는 것을 막아야 한대.}
{옥상언니!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요.
얘는
결코 듣지 않아요. 대신 내가 감사할께요.}
문득
사옥상의 얼굴에 조급한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무엇엔가 쫓기고 있는 것처럼...
이어
쉴 새없이 대답도 기다리지 ?고 입을 여는 사옥상이었다.
{어서
도망가. 우리 사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어!
설사
하늘의 신이라도 우리 사부를 이길 수는 없을 거야!}
그때였다.
돌연 무엇을 느낀 것인가?
사옥상의 얼굴이 무서운 두려움에 떨었다.
화르륵...!
이어
허공으로 솟구쳐 섬광처럼 사라지는 사옥상,
{어서
가! 어서 도망가란 말이야! 바보야! 그렇지 않으면 넌 죽는단 말이야!}
소일초는
멀어지는 그녀의 음성에서 눈물을 읽을 수 있었다.
{흥,
옛날의 첫 여자를 만나서 기분이 좋겠네.}
주소아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것 같았다.
그때
이미 아득한 곳까지 멀어진 사옥상의 천리전음(千里傳音)이 소일초의 귀에 흘러들었다.
{죽어!
이 바보야! 지금 네가 있는 곳도 완전히 포위되었단 말이야!}
{...}
{우리
삼성무림청의 살수각(殺手閣)의 삼십 육 명의 살수(殺手)들이 내리는 죽음은
중원천하가
함께 덤빈다 해도 피해낼 수 없어! 피해! 어서 피하란 말이야!}
(살수각의
삼십 육명의 살수!)
소일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계집애가
쓸데 없는 걱정까지 다해주네! 제길...전에는 몸도 편하게 해주더니...}
중얼거리는
소일초의 얼굴은 그다지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살수들따위 때문이 아니었다.
바보같이
구는 사옥상 때문에 느껴진 이상한 기분 탓이었다.
이제
더이상 사옥상의 애절한 전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주소아는
그의 안색만 살피고 있었다.
황혼,
황혼만이 무성한 갈대숲에 어지럽게 쏟아져 내리고 있을 뿐...
한데
돌연,
스스스!
흑의인,
흑두건에 강철처럼 차갑고 냉혹한 기운 속에 음충맞도록 꿈틀거리는
가공할
사기를 동반한 여섯 명의 흑의인들이 맞은 편의 갈대숲에서 소리없이 솟아났다.
여섯
명의 소름끼치는 살기를 동반한 흑의인,
이들은
분명 사옥상이 말한 살수각의 삼십 육 살수들 중 일부이리라!
{크크...}
흑두건
속에 휩싸인 공포스런 시선이 소일초와 주소아를 꿰뚫었다 싶을 순간
그들의
몸은 이미 허공을 날았다.
번쩍!
콰아아!
여섯
줄기 벼락불 같은 검광이 수 천 가닥의 검망을 치며
공간과
공간을 잇는 최단거리로 덮쳐들었다.
그러자
소일초의 얼굴에 맹렬한 전의가 용솟음쳐 올랐다.
이어
그는 옷자락을 확 헤치고 철검을 잡았다.
{호흡을
죽여!}
동시에
그는 주소아에게 낮은 목소리로 외치면서 철검을 떨쳤다.
슛!
소일초의
철검에서는 한 가닥의 기류가 형성되어 덮쳐오는 여섯 명의 살수들을 휘감았고,
크아악---!
참혹한
비명과 함께 기류에 휘말렸던 여섯 살수들이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떨어져 내렸다.
슈우욱!
그때
다시 갈대숲의 여섯 방향에서 시퍼런 검날을 폭출시키며 여섯 명의 흑의인이 뛰어올랐고,
이 여섯 명의 흑의인은 최초의 흑의인들이 쓰러지는 틈을 타서 소일초와 주소아에게 덮쳐들었다.
일검에
천지를 박살낼 듯한 가공할 검광!
슈웃!
순간
주소아가 미처 그녀의 체대를 발출하기도 전에,
소일초의
빠른 철검이 허공에서 회오리를 일으켰다.
푸하아악!
그러자
철검의 끝에서 여섯 줄기의 회오리가
흑의인들을
향해 각기 하나씩 몰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
회오리의 크기는 철검의 끝을 떠나는 순간 부터 무서운 속도로 자라면서...
{으-악!}
{크-아악!}
다음순간
황혼빛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리고
정확히
여섯 개의 시체가 회오리를 타고 허공에 솟구쳐 올랐다.
여섯명의
살수들을 일거에 휩쓸어버린 소일초는
이어
주소아의 손을 잡고는 미끌어 뜨리듯 신형을 옆으로 이동시켰다.
스스스스!
순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서 있던 곳을 비롯하여
열두
곳에서 열두 명의 흑의인이 벼락처럼 솟구쳐 올랐다.
번쩍!
번쩍!
천지폭멸의
가공할 검세가 십자로 비켜 소일초와 주소아를 천참만륙할 찰나,
슈아아앙!
소일초의
철검이 다시 빠르게 그들을 찔러나갔고,
시꺼먼
철검의 끝에서 하얀 실같은 검기(劍氣)가 가늘게 뻗어나오며 파도처럼 밀려갔다.
콰아아앙!
퓨퓨퓨퓨!
우주를
통째로 꿰뚫는 것 같은 엄청난 열두 개의 가공할 섬륜이 일었다 싶을 순간,
{크아아악!}
{크-악!}
흑의인들의
검은 산산히 박살난 채
그
주인들의 몸과 함께 처참히 허공에 비산(飛散)되어야 했다.
오오
직접 보지 않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일초의 철검의 위력이었다!
그러나
적의 공격은 파도처럼 연이어졌다.
푸슈슈슈슛!
주변에
있는갈대들이 확 잘라져 비산(飛算)하여 허공을 가득 메우더니
다음순간
숨많은 창살처럼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웅웅웅!
이번엔
땅 위를 완전히 점거하면서 무서운 바람소리와 함께
여러개의
철추(鐵鎚)들이 그들 두 남녀의 몸을 짓이갤 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과
땅, 가히 완벽한 조화를 이룬 공격이었다.
그러나,
소일초의 철검은 다시 허공을 가리켰고,
그러자 철검의 끝에서 형성된 기류 속으로 갈대들이 빠르게 빨려들어 갔으며
이내
철검이 휘둘러지자 사방으로 그 갈대들은 비산되었다.
쇄애액!
츠츠-촤!
크아악!
아아악!
갈대들이
창날처럼 도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단말마의
비명이 팔방에서 일제히 터져나오는데...
이
처참함이라니...!
여덟 명의 겸(鎌)과 철추를 쥔 흑의인들이
전신에 갈대를 꽂은 채 참혹하게 이개져 있지 않은가?
{나머지
네 명!}
소일초가
소리를 지르며 이 번에는 먼저 공격해 들어갔다.
슈욱!
소일초의
몸이 주소아를 안은 채 허공으로 떠오르고
동시에
그의 철검이 네 개의 원을 그렸다.
캐액!
큭-!
후두둑!
허공에서
네 마디의 비명이 터저나오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곳에서 네 개의 검은 시체가 떨어졌다.
그런
그자들의 가슴은 일제히 동그랗게 뚫려져 내장을 쏟아내고 있었다.
쿵!
꽈당!
정확히
서른 여섯 명의 목이 떨어져 나간 이 황혼의 갈대숲으로
주소아를
안은 소일초가 기괴한 정적처럼 천천히 내려섰다.
{이젠
끝났어! 굉장한 검법이야!
그
무시무시 자들을 단 네 초식으로 몰살시켜 버리다니...}
소일초의
품에 안긴 주소아의 놀람이 채 가시지 않은 음성이 들렸다.
{늦었어!
오늘은 화산에서 자기로 했잖아!}
슈우우!
자욱한
안개에 파뭍치며 소일초와 주소아의 신형이 아득한 화산의 옥녀봉으로 멀어졌다.
헌데
소일초와 주소아가 장내를 떠난 직후였다.
너울너울!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돌연, 기괴한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놀랍게도
그 기괴한 운무가 뽀얀 수증기가 되는 가 싶자
주위는 온통 사악하고 음습한 마(魔)의 기운(氣運)으로 표백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검은 운무속에서 돌연 한줄기 음울한 음성이 배어나왓다.
{살려둬서는
안될 놈이야!}
한
올의 감정도... 한 올의 인간적인 냄새도 느낄 수 없는 무색인간의 음성이었다.
스으으으!
이어
그 검은 수증기 속에 환상처럼 나타나는 한 사람의 모습이 있엇다.
섬뜩하게
피어오르는 검은 수증기가 너무 짙어서인가?
그
인물의 용모를 자세히 헤아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흑포(黑袍)에 흑의(黑衣)가 환상처럼 어른거리는 사이로
섬뜩하리만큼 가공할 무심일색의 눈빛과 삼라만상을 순식간에 표백시켜버리는
무형의
마기(魔氣)가 물살처럼 터지는 것이니...
문득
그 검은 수증기 속에서 다시 예의 무감정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도왕
소선풍의 자식이 저토록 뛰어나다니...
저런 기재가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기재는 우리가 길렀던 주소아 뿐인 줄 알았는데...!}
아아!
이 무슨 소린가?
주소아를 직접 길렀다니...
그렇다면
이 마기가 풀풀 흘러넘치는 인물이 바로 삼수(三秀) 중의 하나란 말인가?
어째거나
그 짙은 수증기 속에 쌓인 인영은 사위를 무형마기로 표백시키며 오랫동안...
참으로
오랫 동안 소일초가 사라진 방향을 주시했다.
그렇게
일다경이 흘렀을까?
다시금
검은 수증기 속에서 무심한 음성이 흘렀다.
{모두
가서 준비하라!!}
순간,
스스스스!
아무것도
헤아릴 수 없었던 허공에서
돌연 수백 가닥의 검은 기운들이 밀물처럼 삼백 육십 방위로 흩어져 나가는 게 아닌가?
형체도 없는 그림자들로 존재했다가 환상의 너울처럼 사라져 버린 수백의 무리들...!
실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수수!
그리고
검은 수증기같은 마기에 뒤덮힌 그 인물도 허공에 치솟는가 싶더니...
슈슈웃!
그도
이내 화산의 옥녀봉을 향해 한줄기 빛처럼 날았다.
그리고
그가 날아가는 뒤로 뿌려지는 죽어버린 음성이 황혼의 갈대밭 위로 흘럿다.
{신행마동
소일초! 반드시... 죽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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