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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40장 버리면 얻는다 [5]

오늘의 쉼터 2016. 4. 23. 23:14

<417>40장 버리면 얻는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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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마친 서동수가 한식당 ‘아리랑’의 밀실로 들어섰을 때는 오후 8시 10분 전이다.

서동수는 내무부장 안종관과 동행이었는데 방에서 기다리던 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선옥과 회색 머리칼의 백인이다.

다가간 서동수를 향해 백인이 동양식으로 머리를 숙였고 하선옥이 소개했다.

“존 더글러스 씨입니다.” 

“반갑습니다, 더글러스 씨.” 

서동수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더글러스는 55세, 일본 CIA 책임자였다가 본부로 돌아가 부국장이 되었다.

전에 중국과 한국에도 몇 년씩 있었던 터라 동양통이다.

넷이 자리 잡고 앉았을 때 종업원들이 한정식 요리와 술까지 한꺼번에 내려놓고 물러갔다.

익히고 뜨거운 요리도 있지만 효율적이다.

하나 먹어야 하나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음식 기다리느라 다른 일은 하나도 못할 것이다.

날씨 이야기를 하면서 서동수가 분위기를 이끌었다.

오늘 만남은 더글러스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비밀 회동이다.

그래서 서동수는 한랜드 내무부장 겸 비공식 정보책임자 안종관과 홍보담당 하선옥을 참석시켰다.

하선옥이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로 미국통인 이유도 있다.

한국산 소주를 보드카 마시듯이 한 모금 삼킨 더글러스가 갈색 눈동자로 서동수를 보았다.

넓은 얼굴에 웃음이 떠올라 있다.

“각하, 잘 아시겠지만 한반도는 150년 전부터 강대국의 각축장이었습니다.”

서동수가 명란젓을 집어 입에 넣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러시아산이다.

요즘은 명태가 한반도 근해에서 잡히지 않아서 그렇다.

명란젓이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다시 한랜드로 왔다.

더글러스가 말을 이었다.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까지 거들어서 한반도를 놓고 싸웠지요.


그리고 그 결과도 서양 사람들까지 다 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일본의 식민지시대, 남북 분단으로 러시아, 미군 진주,

그리고 6·25의 남북한전쟁. 서동수가 이번에는 새우젓을 집다가 놔두었다.

새우젓은 중국산이 들어와서 여기까지 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반도가 주도권을 쥐고 있군요. 강대국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그때 안종관이 헛기침을 했다.

어른 앞에서 잔소리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래서인지 더글러스의 말이 빨라졌다.

“미국은 이제 한국 중심의 동북아 방위선 라인을 형성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것은 극비 사항이지만 각하께 전해 드리라는 최고위층의 전언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서동수가 심호흡을 했고 안종관은 몸을 굳혔으며 하선옥의 목구멍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60년 가깝게 미국에 의존해서 안보 무임승차를 했고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이제 서동수가 머리만 끄덕였고 더글러스의 목소리에 열기가 더해졌다.

“따라서 미국은 조건 없이 각하를 지원해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전해 드리는 비공식특사 자격으로 온 것입니다.” 

서동수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제 시작이다.

미국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그때 더글러스의 말이 이어졌다. 

“아십니까? 북한 민생당과 남한 민족당의 핵심에 중국 세력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번 ‘동북아 대성장’ 사건도 터뜨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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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지 않으셨어요?”


더글러스와 안종관이 먼저 나갔을 때 하선옥이 물었다.

오후 10시 반이 되어가고 있다.

서동수가 머리를 저었다.


“사업에서도 일방적인 호의는 없는 법인데 국가 간의 대업(大業)은 오죽하겠소?”


 “동북아 대성장 루머를 중국 측이 주도해서 퍼뜨릴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요?”


하선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열중한 표정이다.


“앞으로 어떤 모략이 더 일어날지 두렵군요.”


 “미국이 내 대마도 회수 이야기까지 들었을 텐데 일본을 포기한다니 충격이군.”


 “그것도 믿을 수 있겠어요?”


소주잔을 쥔 하선옥의 손가락이 갸름했다.

매니큐어도 바르지 않았는데 손톱 밑은 분홍색이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하선옥이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탁자 위에 놓인 손이 주먹으로 변했다가 곧 아래로 내려갔다.


“왜? 내 시선이 레이저 같소?”


 “아닙니다.”


하선옥의 눈 주위가 금방 붉어졌다.


“하긴 선입견이란 거, 무시할 수가 없지.”


 “아닙니다. 저는 장관께 선입견 없습니다.”


 “난 지금 미국 이야기를 하는 거요.”


숨을 들이켠 하선옥이 시선을 내렸다.

붉어진 얼굴을 보자 서동수는 목구멍이 좁혀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당분간은 믿을 만하겠어.”


 “…….”


 “남북한 연방이 친중화(親中化)되거나 중국령으로 합병되면 일본은 무력화(無力化)될 테니까.”


 “…….”


 “독도는 말도 꺼내지 못할 것이고 대마도를 무력 회수해도 미·일 동맹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겁니다.”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하 사장, 난 장사꾼이오.”


 “압니다.”


하선옥이 시선을 내린 채 대답했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장사꾼은 항상 차선, 차차선의 대비책을 마련합니다.

올인은 도박사들이나 하는 거요.

수백, 수만 명 임직원과 수십만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는 사업장은, 곧 국가의 축소판 같습니다.”


서동수가 이번에는 하선옥의 가슴을 보았다.

우연이었는데, 그 시선을 느낀 하선옥이 목을 움츠렸지만 가슴이 줄어들 리는 없다.


“모든 경우를 예상해야 될 겁니다.

결코 평탄한 여정이 아니오. 잘 아시다시피 여론은 얇은 냄비 같고 언제 바뀔지 모릅니다.

흙탕물에서는 내가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고기를 잡아야 됩니다.”


 “…….”


 “하선옥 씨가 내 특사로 푸틴을 만나고 오세요.”


그때 숨을 들이켠 하선옥이 서동수를 보았다. 이제는 젖가슴도 잊고 목이 펴졌다.


“푸틴을요?”


 “만나서 오늘 더글러스한테 들은 이야기를 해요. 내가 전하라고 했다고.”


“그, 그렇게만 말하면 됩니까?”


 “대한연방이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싶다고 전해요.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 진작부터 생각했다고.”


 “알겠습니다.”


 “그럼 푸틴이 미국하고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겠지.”


 “당연하죠.”


 “미국과도 동일한 조건으로 동맹을 맺을 것이라고 전해요.”


 “알겠습니다.”


 “정직하게 말해야 돼요. 이런 경우에는 잔재주를 부리면 안 돼.”

그러고는 서동수가 길게 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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