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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40장 버리면 얻는다 [3]

오늘의 쉼터 2016. 4. 23. 20:06

<415>40장 버리면 얻는다 [3]


(826) 40장 버리면 얻는다-5



아름다운 몸이다.

무릎 위 20㎝ 정도나 올라온 원피스형 제복을 걸치고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

잘록한 허리, 어깨의 둥근 선이 그대로 드러났고 특히 두 다리가 눈이 부실 정도다.

마르지도 살이 붙지도 않은 저 미끈한 다리, 남조선에서는 마른 다리가 유행인지

그야말로 대나무 젓가락 같은 다리를 뻗으며 활보하는 여자들이 많다.

그것도 휘어진 젓가락, 과연 그들은 그 다리를 보는 남자들의 심중(心中)을 알 것인가?

왜 고운 몸을 그렇게 연탄집게처럼 만들었는가?

아우슈비츠 형 다리를 보고 누가 가슴이 따뜻해지겠는가?

가수의 노래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벌리는 입과 살랑살랑 흔드는 몸만 보인다.

요즘 누가 시작했는지 ‘목소리가 보인다’라는 말을 쓰더니 중구난방으로 ‘냄새가 들린다’

‘맛이 보인다’ ‘눈빛이 들린다’ 등 막 나갔는데 서동수 표정도 그런 식으로 표현할라치면

‘네 모습이 맛있구나’가 될 것이다.


“마음에 드십니까?”


옆에 앉은 김동일이 물었으므로 서동수가 정신을 차렸다.


“예, 정말 아름답습니다.”


서동수가 정색하고 말했더니 김동일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여자가 손을 내밀며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팔도 매끄럽게 잘 빠졌다.

둥근 얼굴, 짧게 자른 머리, 이제야 목소리가 들렸는데 꾀꼬리 소리가 이런가? 높고 비음이 섞여 있다.

저 여자의 탄성은 어떻게 터질 것인가?

그때 김동일이 말했다.


“이숙경이라고 합니다. 25세, 장관님 파트너로 아껴 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관님은 파트너가 많아서 내가 다 기억할 수가 없군요.”


 “죄송합니다.”


그때 여자가 노래를 끝내더니 둘을 향해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주빈인 둘이 박수를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김동일이 머리를 돌리자 뒤에 서 있던 장군이 다가왔다.

김동일이 낮은 목소리로 지시하자 장군이 곧 가수를 데려왔다.


“여기 앉아.”


김동일이 서동수를 눈으로 가리키며 웃음 띤 목소리로 말했다.


“장관께서 네가 노래를 잘한다고 하셨어. 여기서 시중을 들도록.”


 “감사합니다.”


가수가 다시 허리를 꺾어 절을 했는데 얼굴이 굳어 있다.

이마와 콧등에도 작은 땀방울이 솟아나 있고 숨도 가쁘다.

서동수가 빈 옆자리를 가리켰다.


“여기 앉아요.”


 “감사합니다, 장관 동지.”


여자가 앉을 때 향수 냄새가 맡아졌다.

초대소의 식당 안이다.

손님은 김동일과 서동수, 그리고 측근까지 10여 명이 원탁에 둘러앉았고

앞쪽 무대에는 악단과 무용수가 가득 차 있다.

술잔을 든 서동수가 이숙경에게 물었다.


“노래 잘하는구먼. 이런 자리는 자주 와봤어?”


 “처음입니다.”


몸을 똑바로 세우고 앉은 이숙경이 면접관 앞의 신입사원 후보처럼 대답했다.

이제 무대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연주되었고 술자리가 부드럽게 익어간다.

오늘 밤 김동일의 분위기는 밝았다.

자주 웃었고 이쪽저쪽에다 말을 걸어서 굳어 있던 고관들도 긴장을 풀었다.

그때 김동일이 웃음 띤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입니다. 형님,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서동수가 따라 웃기만 했다.




(827) 40장 버리면 얻는다-6



“내가 아직 젊지만, 한계를 알 정도는 되었습니다.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는 말이지요.”

서동수는 웃음 띤 얼굴로 머리만 끄덕였다.

서동수는 김동일을 좋아한다.

김동일도 마찬가지라고 믿고 있다.

지금 신의주에는 김동일이 투자자동차 공장이 연간 20만 대를 생산하는 중이다.

서동수가 신의주 장관 시절에 만들어준 공장이다.

그때 김동일이 말을 이었다.

“제 할아버지부터 저까지 3대(代)가 70년이 넘도록 북조선을 통치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이건 20세기 세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지요?” 

“예, 그것이…….”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시선을 돌렸다. 

그렇다. 20세기 세계사에 처음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3대가 70여 년을 통치해왔다.

그렇다고 지상낙원으로 만들어 잘 살게 해준 것도 아니고

1990년대에는 수백만을 굶겨 죽이면서 국가를 감옥처럼 만들어 통치했다.

그렇게 70여 년이 지난 것이다.

세상에서는 저런 국가도 있는가? 의아해 하다가 내막을 알고 나서 저렇게 오래 견디면

국민이 길이 드는구나 하기도 했다.

그때 김동일이 술잔을 들고 말했다. 

“나도 처음 3∼4년은 내가 아니면 이 나라가 망해서 미제의, 남조선 자본가 놈들의 노예가 된다고 믿었지요.

내 주변에서도 모두 그렇게 이야기를 합디다.”  

김동일이 턱으로 방 안을 가리키는 시늉을 했다.

둘이 낮게 이야기하는 중이고 방 안에 모인 수십 명의 고관이 자유롭게 담소를 했지만

김동일의 턱짓 한번에 잠깐 조용해졌다.

김동일의 시선이 곧 서동수에게 옮겨지자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만큼 김동일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증거다.

음악이 감미롭게 흐르고 있다.

가수 셋이 나와 인사를 하자 김동일이 건성으로 박수를 치고 나서 말을 이었다.

“지금 방 안에 모인 간부들, 그 부하들, 그리고 평양 시민, 지방의 당 간부, 군 간부들,

그들이 이른바 기득권 세력이죠. 남조선에만 기득권 세력이 있는 게 아닙니다. 여긴 더 지독합니다.”

한 모금 술을 삼킨 김동일이 상반신을 기울여 서동수의 귀에 입술을 붙였다.

“그놈들은 남조선 자본가들 뺨치는 놈들입니다.

그놈들이 내 주위에 모여서 권력과 금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지금도 필사적이지요.

그것이 내 권력 기반입니다.” 

“위원장님은 역사에 남으실 겁니다.” 

서동수가 겨우 입을 떼었을 때 김동일이 머리를 저었다. 어느덧 정색한 얼굴이다.

“내가 역사에 남으려고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도 없었어요.

체제는 다 정비되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김동일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신의주특구를 개방할 때 주변에서 그러더만요.

특구 주민이 개방화되고 그것이 북조선 주민한테로 오염되면 통치하기가 힘들다고 말입니다.”


술잔을 든 김동일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신의주특구 주민들보다도 내가 먼저 개방화되었고 오염이 되었단 말입니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김동일이 한입에 술을 삼켰다. 40도짜리 인삼주다.

“이제는 다 털고 자동차회사 사장이 되어서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어요. 곧 비행기 회사도 만들고 말입니다.” 

“그러셔야죠.” 

“같이 돌아다니십시다.” 

서동수는 문득 연방대통령도 그만두고 김동일하고 둘이 여행이나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비즈니스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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