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 36장 내란 [4]
(747) 36장 내란-7
“소매상들이 무더기로 잡힙니다.”
보고하는 유병선의 표정이 어둡다. 서류를 편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이틀간 소매상 37명, 마약 구입자 275명을 체포했습니다.”
오후 3시 반, 한랜드의 장관 집무실 안이다.
서동수는 잠자코 시선만 주었고 유병선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밀입국자 합숙소와 북한인 거주촌인 ‘북촌’을 경찰 병력이 집중 단속하고 있습니다.”
소매상과 구입자 대부분이 북한계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대부분인 북한계는 싼 가격으로 퍼진 마약에 무방비 상태로 빠져들었다.
“펭귄촌, 러시아인 거주지는?”
서동수가 묻자 유병선이 서류를 넘기고 나서 대답했다.
“중국계, 러시아계 순으로 마약이 퍼졌는데 전체의 40퍼센트 정도입니다.”
“일본 야쿠자가 뿌린 건 확실한가?”
“체포된 곽병택, 일본명 가네야마 한 명뿐인데 이자는 중간상이고 윗선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서동수는 길게 숨을 뱉었다.
치안 책임자인 내무부장 안종관은 요즘 마약사범 소탕에 밤을 새우고 있다.
지금까지 소매상 100여 명과 구입자 500여 명을 체포했으니 한랜드 개국 이후로 이런 사건은 처음이다. 그러나 아직도 끝없이 이어진 고구마 줄기처럼 마약사범이 솟아나오고 있다.
머리를 든 서동수가 유병선을 보았다.
“여론은 어때? 민심은?”
“그것은…….”
숨을 들이마신 유병선이 입을 다물었다.
한랜드에는 아직 여론조사기관이 없다.
한때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여론조사기관을 운영했고,
나중에는 여론조사기관이 여론을 선도하는 것처럼 보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소신과 자신감이 있는 지도자는 여론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이 알게 된 것이다.
서동수가 갑자기 여론 동향을 물어보는 바람에 조금 당황했던 유병선이 곧 헛기침을 했다.
“안 부장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북한계와 중국계 주민의 불만이 크다고 하더군요.”
“…….”
“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주민도 많다고 했습니다.
검문검색을 철저히 하는 바람에 일부는 반항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일본계 주민은 많지도 않지만 대부분이 고급 주택가에서 거주하기 때문에
검문검색이 드물다.
일본 야쿠자가 마약을 들여왔다는 소문이 퍼져 있어도 그렇다.
내무부에서 철저하게 캐보았지만 아직 결정적인 증거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책상 위의 흰색 전화기가 울렸으므로 서동수는 시선만 주었다.
직통전화다.
서동수의 눈치를 살핀 유병선이 전화기를 집더니 응답했다.
“예, 비서실장 유병선입니다.”
그러더니 유병선이 어깨를 부풀리는 것을 보면 숨을 들이마신 것 같다.
놀라는 시늉이어서 서동수가 긴장했을 때 유병선이 송화구를 손바닥으로 막더니 물었다.
“장관님, 고속도로 휴게소의 이옥영 씨라고 하는데요. 받으시겠습니까?”
유병선의 시선이 서동수의 가슴께로 내려와 있다.
자리에서 일어선 서동수가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어, 그래. 전화해 주었구먼. 무슨 어려운 일 있어?”
서동수가 떠들썩한 목소리로 물었더니 이옥영이 대답했다.
“장관님,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전화 드렸는데요. 지금 바쁘세요?”
(748) 36장 내란-8
한랜드는 오후 6시 반이면 어둡다.
일찍 어둠이 덮이면서 추위가 몰려온다.
한시티 북쪽은 별장지대라고 불리는 고급주택가로 안쪽에 장관의 별장이 있다.
숲 하나만 지나면 숲에 둘러싸여 중세 궁전 같은 푸틴의 별장이 드러나는데
이번에 서동수가 지어준 것이다.
별장 안, 응접실에 앉아있는 이옥영의 볼은 붉게 상기되어 있다.
페치카의 장작불 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이옥영은 휴게소에서 방금 이곳에 도착했다.
내무부 직원들이 은밀하게 빨리 모셔온 것이다.
응접실에는 이옥영 혼자다.
안내해온 직원은 마실 것까지 내려놓더니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린 지 5분쯤 되었을 때 응접실로 장관 서동수가 들어섰다.
웃음 띤 얼굴이다.
뒤에 지난번 휴게소에서 보았던 내무부장 안종관, 비서실장 유병선도 따라 들어선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옥영이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안녕하셨어요?”
“어, 그래. 잘 왔어.”
서동수가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뒤에 선 둘도 부드러운 표정이다.
이윽고 넷이 자리에 앉았을 때 서동수가 이옥영을 보았다.
“어쨌든 한랜드를 생각해주는 이옥영 씨한테 감동했어. 고마워.”
“아닙니다, 장관님.”
볼이 붉은 사과처럼 달아오른 이옥영이 재킷 끝을 손가락으로 비틀었다.
서동수가 머리만 끄덕이자 이옥영이 작게 기침을 했다.
“제 카페에는 밤 9시만 되면 손님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여서 24시간 영업을 하죠.”
그렇게 이옥영이 입을 열었다.
이옥영은 서동수에게 이번에 일어난 대사건에 대해 제보할 것이 있다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이옥영은 휴게소 카페에서 사내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는 것이다.
“장관님이 들르신 이틀쯤 후인데 밤늦게 손님들이 왔습니다.
모두 한국인이었지요. 그런데 한국인도 있었고 북한인도 있더군요.
저한테 카레이스키라면서 조선족까지 다 모였다고 했으니까요.”
이옥영이 준비를 한 듯 제법 조리 있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 앞에서는 이야기를 꺼렸습니다.
저도 들을 생각이 없어서 지나치다가 문득 ‘내란’이라는 말을 듣고 정신이 들었지요.
우즈베크에서 자주 들었던 말이니까요.”
이옥영이 반짝이는 눈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숨을 쉴 때마다 풍만한 가슴이 움직이고 있다.
“우리 가족이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데요?
이곳이 마지막 희망인데 내란이라니요? 말이나 됩니까?”
이옥영의 얼굴이 더 상기되었고 목소리가 떨렸다.
어깨를 부풀렸던 이옥영이 손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제가 주방에 숨어서 그 사람들 사진을 여러 장 찍었습니다.
한국제 휴대전화여서 확대해도 선명하게 나오더군요.”
안종관이 불쑥 손을 뻗었다가 멈추고는 서동수를 보았다.
“장관님, 제가…….”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이옥영에게 말했다.
“고마워, 이옥영 씨 희망은 꺾이지 않을 거야.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그때 안종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손에 이옥영의 휴대전화를 쥐고 있다.
그것을 본 이옥영이 말했다.
“자물쇠는 희망의 H자로 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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