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 36장 내란 [2]
(743) 36장 내란-3
1989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민족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따라서 이민족을 차별하고 배척했기 때문에 각국에서 고향을 향한 이주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 카레이스키의 고향은 어디인가?
그것이 중앙아시아에 남아 있던 이민족, 고려인의 현실인 것이다.
러시아의 고려인 숫자는 대략 55만 명, 국가별로 구분하면 우즈베키스탄 19만, 카자흐스탄 10만,
키르기스스탄 2만, 남부 시베리아 3만, 사할린 4만, 연해주 4만, 모스크바 4만, 남부 우크라이나 2만,
기타 7만 명이었는데 이제 그들의 고향은 한랜드로 정해졌다.
서동수가 다시 옆을 지나는 여자를 불러 세우고 물었다.
“장사는 잘되나?”
“곧 한시티로 들어가 식당을 하려고 합니다.”
씩씩하게 대답한 여자가 서동수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장관님이 자주 들러 주세요.”
“그러려면 이름하고 전화번호를 알려 줘야지.”
정색한 서동수가 손을 내밀었다.
“종이에다 적어줘.”
“그러지요.”
여자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을 보자 서동수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몸을 돌린 여자의 뒷모습에 시선을 준 서동수가 혼잣말을 했다.
“이곳에서 자리를 잡아야 할 텐데.”
“미주에서의 이민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유병선이 위로하듯 말했다.
“한랜드는 아직 희망의 땅입니다. 장관님, 한민족의 미래입니다.”
“그건 내가 만드는 게 아냐.”
그때 여자가 다가오더니 서동수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또박또박 잘 쓴 글씨다. 이옥영, 그리고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쪽지를 받은 서동수가 이옥영에게 물었다.
“한랜드에는 언제 온 거야?”
“반년 되었습니다, 장관님.”
“이 카페는 언제 차렸고?”
“넉 달 되었습니다.”
“돈은 모았어?”
“반년만 더 모으면 식당을 차릴 수 있습니다, 장관님.”
“돈 모아서 뭐할 거야?”
“더 큰 식당을 차리고 식구들도 부자가 되어야지요.”
이옥영이 다시 이를 드러내고 웃었으므로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
이렇게 사는 것이다.
더 큰 것, 더 많이, 더 행복하게, 서동수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어려운 일 있으면 전화해.”
“감사합니다, 장관님.”
명함을 받은 이옥영의 얼굴이 더 붉어졌고 불빛을 받아 반들거렸다.
잘 익은 사과 같다.
카페를 나온 서동수가 다시 차를 타고 한시티로 이동한다.
한동안 어둠에 덮인 창밖의 동토를 응시하던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어. 지금이 그 시기인 것 같아.”
한랜드의 급격하게 증가한 이민자는 한국에서 옮아온 제조업체가 대부분 소화했다.
한국에서 한랜드로 넘어오는 제조업체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고임금과 생산성 저하, 노사분규로 인해 경쟁력을 잃어가던 한국 기업들에 한랜드야말로
희망의 땅이었던 것이다.
한랜드는 신의주특구와도 다른 환경이다.
북한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충분한 노동력, 싼 임금, 그리고 철저한 기업보호 정책을 펴온
한랜드가 기업가들에게는 천국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다.
그것은 엄청나게 끌어들인 검은 자본이다.
(744) 36장 내란-4
식당을 나온 정용만이 숨을 들이켜면서 걸음을 멈췄지만 늦었다.
좌우에서 사내들이 다가와 양쪽 팔을 끼었고 뒤에서도 누가 밀었다.
“가자.”
팔을 낀 사내 하나가 말했다.
“반항하면 다친다.”
정용남은 놈들이 누구냐고도 묻지 않았다.
길가에 주차되었던 승합차가 그들에게로 다가오더니
안에서 문이 열렸고 정용남은 사내들과 함께 밀려 들어갔다.
오후 7시 반쯤 되었다.
추위가 몰려와서 지나던 서너 명이 그들을 보았지만 서둘러 갈 길을 간다.
그날 밤 11시에 서동수는 내무부장 안종관의 보고를 받았다.
“장관님, 마약 소매상 정용남한테서 중간 공급책을 알아냈습니다.”
서동수는 듣기만 했고 안종관의 말이 이어졌다.
“중간책 역할을 하던 놈이 고속도로를 타고 도주하는 것을 잡았습니다.”
“…….”
“방금 확인이 되었는데 조총련계 재일동포였습니다. 이름은 가네야마.”
“…….”
“야마구치조직 소속 하급간부더군요.”
서동수는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오후에 잡힌 사내는 김광도의 부인 장현주가 전에 거래했던 소매상이었던 것이다.
장현주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잡을 수 있었다.
그때 안종관이 말을 이었다.
“이 자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야쿠자가 마약 장사를 한다는 것은 확인이 되었지만
그 배후, 그리고 그 목적을 빨리 알아내야 될 것 같습니다.”
일본도 한랜드에 상당한 투자를 하는 중이었지만 한국과 중국, 러시아 다음 순서다.
오히려 미국이 일본을 추월하려는 분위기였다.
그 시간에 한랜드의 중심거리인 이승만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마사무네가 사토에게 말했다.
“가네야마는 도매상이 누군지도 몰라. 고문을 해도 대지 못할 거야.”
마사무네의 넓은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지금쯤 서동수가 침대에서 뛰다가 보고를 받고 있겠구먼.”
“일본 지역에 대한 검문 검색이 강화되지 않을까요?”
사토가 묻자 마사무네는 등받이에 몸을 눕혔다.
도요타 자동차는 빙판길을 조심스럽게 달려가고 있다.
“밀입국자 합숙소에 대한 검색도 강화되겠지. 예상하고 있는 일이야.”
마사무네가 말을 이었다.
“북한인이 대부분인 밀입국자들은 검문검색에 불만을 품을 것이고 말야.”
사토는 잠자코 시선만 주었다.
그에게 마사무네는 수수께기 같은 인물이었다.
대학에서 한국어과 조교로 근무하다가 갑자기 마사무네의 통역으로 추천되어
한랜드에 오게 된 사토인 것이다.
그런데 마사무네는 기업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었다.
거간꾼, 즉 거래를 만드는 인간 같았다.
이제는 비서 역할까지 하는 터라 사토는 마사무네가 만나는 인간들을 다 안다.
기업인, 야쿠자, 한랜드에 주재한 외교관, 한국인 조폭까지 만났는데
한국인들은 사토가 대신 만난 적도 있다.
방금 가네야마라는 마약 중간상이 한랜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사토가 헛기침을 하고 나서 물었다.
“사장님, 마약을 일본에서 들여왔다는 것입니까?”
사토는 마사무네를 사장이라고 부른다.
그때 마사무네가 정색하고 말했다.
“글쎄, 난 모르겠어. 연락만 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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