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 34장 남과 북의 꿈 [2]
{701) 34장 남과 북의 꿈-3
30분쯤 몸을 녹이면서 기다렸던 백진철이 안기춘을 보았다. 7시 반.
“가자.”
“어디로요?”
“204호실.”
이제 모텔 로비는 더 분주해졌다.
각 공사장에서 온 감독들이 소리쳐 인부들을 불렀고 시끄럽다.
안기춘의 시선을 받은 백진철이 결심한 듯 말했다.
“그놈이 뭐하고 나왔는지는 알아야겠다.”
“글쎄, 토끼처럼 뛰고 나왔다면서요?”
“만나면 알겠지.”
“형님, 그렇게까지…….”
“장 마담, 아니, 장현주가 몸을 판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그런다.”
그러고는 백진철이 앞장서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면서 머리 위로 말아 올렸던 마스크를 내리자 곧 눈과 입만 드러난 방한용이 되었다.
계단을 내려오던 투숙객들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204호실은 복도 안쪽으로 10m쯤 들어간 왼쪽 방이다.
복도에 오가는 투숙객이 사라질 때를 기다리며 둘은 204호 문 옆에 서 있었다.
이윽고 복도가 비었을 때 안기춘이 노크를 했다.
이곳은 문에 외시경이 없다. 노크를 두 번 했을 때 안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누구요?”
“예, 객실 당번입니다.”
백진철이 러시아어로 말했다.
“히터 파이프가 고장이 나서요.”
그때 문에서 고리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10㎝쯤 열렸다.
그 순간 백진철이 문을 와락 밀치며 뛰어들었고 뒤를 안기춘이 따른다.
문에 얼굴을 부딪친 사내가 뒤로 뒹구는 바람에 백진철은 배 위로 올라탔다.
안기춘은 등 뒤에 문을 닫으면서 재빠르게 방 안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손에 단검을 꺼내 들고 있다.
그때 백진철이 깔고 앉은 사내의 얼굴을 어지럽게 치면서 소리쳤다.
“방에 이놈뿐이지?”
“다른 놈 없어요.”
문을 잠근 안기춘이 다가와 버둥거리는 사내의 다리를 잡았다.
사내는 맞으면서도 비명이나 외침을 뱉지 않는다.
이윽고 둘은 사내의 팔다리를 묶었고 입에도 시트를 찢어 재갈을 물렸다.
“이 새끼, 수상하다.”
재갈을 물리고 난 백진철이 사내를 발로 굴려 반듯이 눕히면서 말했다.
“소리를 지르지 않아. 죄를 지은 놈 같다.”
백진철이 마스크를 벗었으므로 안기춘도 따라 벗는다.
곧 둘은 방 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묶인 사내가 정신을 차리더니 사지를 버둥거렸고 재갈이 물린 입에서 기괴한 외침이 울렸지만
둘은 상관하지 않았다.
“서둘러!”
사내의 가방을 침대 위로 쏟으면서 백진철이 안기춘에게 말했다.
“이 새끼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군. 장사꾼 같지도 않아.”
빈 트렁크를 침대 위로 던졌던 백진철이 머리를 기울이더니 트렁크를 당겨 보았다.
빈 트렁크가 무거웠기 때문이다.
곧 트렁크 바닥을 눌러본 백진철이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더니 바닥을 북 찢었다.
그 순간 백진철이 숨을 들이켰다. 비닐 주머니가 드러난 것이다.
커다란 비닐 주머니 안에는 수백 개의 작은 봉지가 있었고 봉지 안에는 흰색 분말이 담겨 있다.
마약이다.
“이것 봐라.”
백진철이 갈라진 목소리로 안기춘을 불렀다.
눈을 부릅떴고 어금니가 물렸다.
“이 새끼, 마약 장사다.”
{702) 34장 남과 북의 꿈-4
“죽였습니다.”
백진철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옆에 앉은 안기춘은 외면하고 있었지만 김광도의 반응을 예민하게 주시했다.
오전 9시 반, 둘은 ‘실크로드’로 돌아와 있다.
대기실에는 김광도까지 셋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로스토프도 부르지 않았다.
탁자 위에 놓인 헝겊 가방 안에는 204호실에서 가져온 히로뽕이 가득 담겨 있다.
이윽고 김광도가 물었다.
“뒷수습은 잘했겠지?”
“예, 방 안에 마약 봉지 100개쯤을 흩트려 놓았습니다.
경찰이 현장을 보면 마약 때문에 살해된 것으로 알 겁니다.”
“그렇다면 장 마담이 마약 장사하고 연관되어 있단 말인가?”
김광도가 혼잣소리처럼 묻자 백진철은 먼저 긴 숨을 뱉었다.
“형님, 그놈이 장 마담하고 그 짓을 하고 간 것이 아닙니다. 뻔하지 않습니까?”
“…….”
“마약 장사를 한 겁니다. 집에 온 놈들은 소매상이었겠지요.”
“그 돈으로 뭘 하려고?”
“곧 알게 되겠지요.”
“빌어먹을…….”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김광도가 둘을 번갈아 보았다.
“난 왜 이런 여자들만 걸리냐?”
백진철은 204호실의 사내를 죽여 침대 밑에 밀어 넣고 나온 것이다.
백진철이 가져온 사내의 신분증이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북한 여권이었는데 한랜드에는 밀입국했다.
기록이 없는 것이다. 러시아 입국 사증이 6일 전에 찍혀 있었고 이름은 고종우, 35세다.
김광도가 말을 이었다.
“장 마담한테는 비밀로 하고.”
“면목 없습니다, 형님.”
“무슨 소리냐? 그래도 장 마담 덕분에 아가씨들 구했다.”
“기반이 굳어지면 내보내지요, 형님.”
“인마, 마누라를 버리란 말이냐?”
외면하고 있던 안기춘이 놀란 듯 시선을 들었으므로 김광도가 빙그레 웃었다.
“난 결혼신고만 하고 자지도 않았어. 너도 알고 있지?”
김광도의 시선을 받은 안기춘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예, 사장님.”
“너도 수고했다.”
“아닙니다, 사장님.”
“이 마약은 치워라. 깊숙하게 숨겨 놓아. 절대로 손대지 말고.”
김광도가 마약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버리기는 아깝고 신고할 수도 없으니 꼭꼭 숨겨놓는 수밖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방 지퍼를 잠그면서 백진철이 말했다.
“눈 속에 숨기면 안전하고 오래갑니다.”
가방을 챙겨 든 백진철과 안기춘이 방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로스토프가 들어섰다.
백진철은 로스토프에게도 204호실에 찾아간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오랫동안 도망자로 지내온 백진철은 입이 무겁다. 로스토프가 말했다.
“김, 손님이 찾아왔어. 고향 친구라는데.”
로스토프가 말하자 김광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한랜드에서 고향 친구를 만나다니. 더구나 연락도 없이. 로스토프가 서둘렀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누구야?”
투덜거린 김광도가 밖으로 나갔더니 30대쯤의 사내가 서 있다가 벙긋 웃었다.
“신분을 밝히기가 그래서 고향 친구라고 했습니다.”
한 걸음 다가선 사내가 말을 이었다.
“행정청 내무부에서 왔습니다. 지금 장관님과 내무부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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