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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31장 후계자 [9]

오늘의 쉼터 2015. 6. 26. 11:03

<330> 31장 후계자 [9]

 

(655) 31장 후계자-17

 

 


그로부터 사흘 후의 오후 6시 정각.

청와대 소회의실에 둘러앉은 면면(面面)은 다음과 같다.

원탁의 중앙 상석에 한국 대통령 한대성이 있고,

그 좌우에 비서실장 양용식과 국무총리 조수만,

그 옆에 국정원장 박기출과 청와대 국정수석 장경수까지 앉았으니

사안이 중대하다는 표시가 되었다.

대통령은 회의 때 직접 관계된 인원만 부르되 행정부 책임자도 꼭 참석시킨다.

그리고 원탁의 양쪽 모서리 부분에 각각 신의주 장관 서동수와 후임 예정자 박세중이 앉았으며

대통령의 정면에는 북한에서 온 인사들이 자리 잡았다.

김동일을 대신한 호위사령관 겸 국방위 부위원장 박영진이 턱을 들고 앉았는데 사복 차림이다.

밀행이라는 증거다.

그 좌우에 앉은 인사들은 각각 무슨 무슨 사령관, 대장, 위원장으로 소개되었지만 건성으로 넘어갔다.

발언은 거의 박영진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과의 회의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시간을 끄는 것은 오히려 한국 쪽이다.

인사를 마쳤을 때 박영진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먼저 발언하겠다는 표시였고 대통령 한대성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여 보인다.

“자,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지요.”

박영진이 입을 열더니 곧 옆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왼쪽 끝의 사내 하나가 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녹음기를 꺼내더니 박영진의 눈치를 보았다.

모두 녹음기에 시선을 주었는데 비장한 표정이다.

대통령은 한대성은 어금니를 문 것이 드러났고 비서실장 양용식은 외면했다.

국정원장 박기출은 아무것도 없는 탁자를 보았으며 북한 측도 비슷했다.

서동수도 탁자 위에 내려놓은 손가락을 보는 중이다.

다만 한 사람만 녹음기를 말똥말똥 바라보고 있었는데 바로 박세중이다.

그때 박영진이 말했다.

“누르라우.”

마치 핵단추를 누르라는 말처럼 들렸는지 모두 흠칫했다.

이번에도 박세중만 녹음기와 박영진을 번갈아 보고 있다.

그때 녹음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로 사흘 전에 서동수가 들었던 내용이다.

10분쯤 지났을 때 각자의 앞에는 서류가 놓여 있다.

듣고 있는 동안 북한 측 대장 하나가 박세중의 자료를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박세중은 입을 꾹 다문 채 석상처럼 굳어져 있었는데 눈동자도 고정되었다.

다만 살아 있다는 표시는 난다.

얼굴에 땀이 솟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측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대성도 서류 표지만 내려다 볼 뿐 의자에 등을 붙인 채 숨만 쉰다.

그들은 진작 다 듣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박영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는 자료를 드렸을 뿐입니다. 결정은 한국 측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의자에서 허리를 뗀 한대성이 상반신을 굽혀 보이면서 사례했다.

“위원장님께도 감사드린다고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것으로 대국을 망치면 안 된다고 위원장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론입니다.”

머리를 끄덕인 한대성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앞에 놓인 물병을 쥐었다.

그러더니 조금 밝아진 얼굴로 묻는다.

“이런 경우야 없으시겠지만 북한 측에서는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물병을 쥐었던 박영진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아,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플라스틱 물병을 쥔 박영진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차 사고가 날 수도 있지요. 아니면 고층 빌딩에서 실족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서동수는 길게 숨을 뱉었다. 그렇구나.

 


(656) 31장 후계자-18

 

 


“어떻게 하실 겁니까?”

대통령 한대성이 그렇게 묻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불쑥 뱉었지만 서동수에게 물을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세중을 추천한 것은 한국 정부였고 서동수는 동의했을 뿐이다.

이 사태는 조사를 제대로 못한 한국 정부의 책임이다.

그러나 서동수는 정색하고 한대성을 보았다.

“새 후보자는 얼마든지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구 추천하실 분이라도…….”

한대성의 굳어진 얼굴을 본 서동수가 외면했다.

회의가 끝나고 서동수는 한대성의 집무실로 들어와 있었는데

방 안에는 비서실장 양용식까지 셋뿐이다.

벽시계가 오후 7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북한에서 온 박영진은 국무총리 조수만이 마련한 저녁 만찬장에 가 있을 것이다.

그때 한대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은 충격이 크겠지만, 사실 그대로 발표해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서동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이 한국식 방법이다. 길게 숨을 뱉은 한대성이 서동수를 보았다.

“장관님이 조금만 더 맡아주실 수 없습니까? 북한 측도 그것을 원하는 것 같던데요.”

“지금은 제가 없어도 잘됩니다.”

서동수가 상체를 바로 세웠다.

“큰 틀은 다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중요한 일은 양국 지도자께서 합의하신 후에 신의주에 통보해주시면 되지요.”

이것은 완곡한 거부다. 한대성의 얼굴이 실망으로 굳어졌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남북한에서 각각 부장관이 있으니 그들을 활용하시면 됩니다.

당분간은 부장관 둘의 합의제로 운용하시면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한대성과 양용식의 시선이 마주쳤다가 떨어졌다.

이윽고 길게 숨을 뱉은 한대성이 서동수를 보았다.

“후계자 선택이 참 어렵습니다. 나는 요즘 그 걱정뿐입니다.”

“이해합니다. 대통령님.”

“동성으로 돌아가시면 서울에는 자주 오시겠지요?”

“그럼요. 북한도 더 자주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김 위원장의 사업체를 관리하고 있어서요.

신의주에도 사업 관계로 자주 들어갈 것입니다.”

“그렇군요.”

한대성의 얼굴도 밝아졌다.

“결국 신의주가 남북한을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에 대마도 반환 문제를 기회로 동북아 지역의 지도가 변한 것도 그렇습니다.”

양용식이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으므로 서동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동수가 인사동의 한정식집 ‘전주집’에 들어섰을 때는 밤 9시가 되어갈 무렵이다.

기다리고 있던 유병선이 옆에 앉은 여자와 함께 일어섰다.

피부가 눈처럼 흰 금발의 서양 미녀다.

저절로 숨을 들이켜는 서동수에게 유병선이 말했다.

“카타리나 씨입니다.”

영어로 소개하자 여자가 한국식으로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카타리나입니다.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회장님.”

영어에 러시아 억양이 있다.

“반갑습니다. 카타리나 씨.”

서동수가 손을 내밀어 카타리나와 악수를 했다.

자리에 앉았을 때 서동수가 지그시 카타리나를 보았다.

러시아 미녀다.

서동수가 본 백인 미녀 대부분은 피부가 거칠었다.

솜털이 무성했고 자세히 보면 반점도 많은 데다 모공도 컸다.

그러나 카타리나는 다르다.

피부가 눈 위로 윤기가 흐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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