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그녀의 시간표

그녀의 시간표 8

오늘의 쉼터 2015. 6. 1. 23:23

그녀의 시간표 8


 

 

 

 

 

 

낮을 가리지 않고 그녀에게 매달렸다.

 

‘그녀 있는 곳에 내가 있다’,

 

구호를 파티션에 붙여놓고, 한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 입술은 그녀를 위한 칭송으로 침이 마를 새가 없었고,

 

내 손은 그녀를 위한 사랑시를 끼적이느라 쉼 없이 바빴다.

 

내 발은 그녀가 가는 곳은 어디든 여지없이 쫓아다녔다.

 

말하자면 난 그녀의 그림자였다.

 

“대체 왜이래요? 나… 돌아버릴 것 같아요.

 

당신의 가슴에 누가 금화살을 쏘았는지 몰라도요, 그 대상이 난 아니예요.”

 

그녀는 어쩐지 몰라도 난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무리 독하게 쏘아붙여도 사랑에 눈 먼 자는 그쯤 감수해야 한다.

 

“쿠피도의 화살이 여기 내 가슴에 콕 꽂혔어요.

 

사랑의 열병에 사로잡혔다 이 말입니다.

 

정말로 모르시겠어요?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 하기로 작정한 겁니까?”

 

“당신은 아폴로라면 난 페네이오스의 딸 다프네예요.

 

우린 악연이에요. 내가 월계수로 변해야 직성이 풀리는 건 아니겠죠?”

 

답답했다. 그녀는 왜 자신의 운명을 자꾸만 거역하려는 것일까.

 

나와의 만남은 이미 예정된 운명이거늘, 운명이란 절대적인 것이거늘….

 

이것을 어찌 그녀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 난감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고심했지만 뾰족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그녀가 자신의 운명을 이해하게 되기를,

 

그때까지 나는 사랑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남들보다 출근을 서둘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녀의 책상 위에 장미꽃을 놓아두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미꽃은 곧바로 쓰레기통 속으로 버려졌다.

 

때때로 줄기가 동강 분질러지거나 꽃잎이 구둣발에 무참히 짓이겨지기도 했다.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곧 영글어진 사랑의 열매가 얼마나 다디달기에 운명의 신은 이토록 큰 고통을 내게 요구하는 것일까.

 

차라리 열매가 조금 쓰거나 신 것이 낫지 않을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비죽 고개를 쳐들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노래방에서 이미 예감했었지만 역시나 험난한 길이었다.

 

그녀에게 전념하기에도 여념이 없는 형편인데,

 

나는 사무실 남자들의 지나친 견제에도 시달려야 했다.

 

시기와 질투로 똘똘 뭉친 그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드러내놓고 못마땅해 했다.

 

팀장은 사사건건 시비와 협박이었다.

 

“요즘 사무실 분위기… 아주 안 좋아. 업무시간에 자꾸 엉뚱한 짓거리를 하는 인간이 있는데…

 

그러다 내 손에 걸리면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마지막 경고니까, 명심해…”

 

그들의 방해는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나보다 출근시간이 빨라지더니, 그녀에게 붙박인 내 시선에도 일일이 트집이었다.

 

“저러다 눈탱이가 밤탱이 되고 말지. 그래도 남자인데,

 

소송이니 뭐니 하며 귀찮게 굴진 않겠지…”

 

“세상에는 곱게 말로 해선 안 통하는 인간들이 더러 있긴 있더라고…

 

혹시 모르지, 여기에도 있을지…”

 

처음에는 무시했다.

 

이놈의 회사 당장 때려치우면 그만이지, 간단하게 여겼다.

 

하지만 짧은 생각이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속이야 편하겠지만 매일같이 그녀를 어떻게 만날 수 있겠는가.

 

그만둬도 한날한시여야 한다.

 

그들의 따가운 시선에 대응하여 이제는 내가 은밀해질 차례였다.

 

고심 끝에, 방법을 수정했다.

 

 

'소설방 > 그녀의 시간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의 시간표 10  (0) 2015.06.01
그녀의 시간표 9  (0) 2015.06.01
그녀의 시간표 7  (0) 2015.06.01
그녀의 시간표 6  (0) 2015.05.31
그녀의 시간표 5  (0) 2015.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