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507)에필로그-1

오늘의 쉼터 2015. 4. 22. 21:27

(507)에필로그-1

 

 

 

 

 

유미의 마흔두 번째 생일이었던 어제는 ‘뻐꾸기둥지’의 개원 3주년 축하파티가 열렸다.

 

‘뻐꾸기둥지’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미혼모와 아기들을 위해 지은 집이다.

 

이곳은 유미를 낳고 평생 미혼모로 살았던 엄마가 유일한 유산으로 남긴 바로 그 땅이었다.

 

엄마의 사후에 이모로부터 땅문서를 건네받고 유미가 주변의 땅을 더 사들여 집을 지은 지

 

3년이 넘었다.

 

엄마의 넋이라도 위로하고 싶은 생각에 추진한 일이었다.

 

자신의 둥지에 알을 낳지 못하는, 아니 둥지조차 없는 가엾은 ‘뻐꾸기’들을 위한

 

안전한 둥지 같은 사설 보호시설이었다.

 

미혼모들이 편안하게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독립할 때까지 머무는 공동체 시설이었는데,

 

점차 시설을 확장해야 할 기로에 놓였다.

 

마침 YB그룹의 윤동진이 지원을 약속해서 어제 하객들을 불러 파티를 열었다.

유미는 다니엘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파리로 떠나 그의 임종을 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니엘과 유미는 결혼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니엘은 약속대로 그의 그림창고에서 유미가 원하는 그림들을 몇 점 고르게 했다.

 

피카소와 고흐의 유화 한 점씩을 골랐다.

 

그리고 다니엘은 화랑의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다니엘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그림을 미술관에 기증하고 떠났다.

 

에릭은 아파트 이외에는 그림 유산을 한 점도 받지 못했다.

 

유미는 용준과 더불어 화랑 운영에 힘썼지만, 다니엘이 떠난 그의 화랑은

 

옛날의 영화를 다시 찾기 힘들어 보였다.

 

다만 이유진의 특별 전시를 수차례 열어 그의 재기를 도왔다는 것에 유미는 깊은 만족을 느꼈다.

 

결국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화랑을 운영했던 유미는 에릭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한국으로

 

완전히 떠나왔다.

‘뻐꾸기둥지’ 3주년 축하 기념식은 그런 의미에서 유미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세리머니였다.

 

어느 인터넷매체에 ‘YB그룹, 뻐꾸기둥지와 결연식’이라는 기사제목이 ‘YB그룹, 뻐꾸기둥지와

 

결혼식’이라고 잘못 나온 바람에 한때 윤동진과 오유미가 결혼한다는 헛소문이

 

잠깐 네티즌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윤동진은 강애리와 작년에 합의 이혼했다.

 

윤동진은 어떤지 모르지만,

 

유미의 사전에 ‘리바이벌’ 같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바이벌’이라면 모르지만.

 

YB그룹 윤 회장은 비자금과 탈세 혐의로 인해 일선에서 물러났고,

 

그룹 경영은 두 아들이 나눠 맡게 되었다. 

 

그 사이에 지완은 재혼했고, 지완의 아버지 유 의원은 치매 증상까지 도져 고생하다가

 

올해 초에 세상을 떴다.

 

딱 한 번 지완과 요양원에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유미를 보고

 

자기 딸이라며 붙들고 울었다.

 

지완은 그런 아버지를 보고 치매가 더 심해졌다며 빨리 돌아가셔야 한다고 투덜댔다.

아버지 조두식은 여전히 감방에서 조용히 ‘발효’되고 있었다.

 

 ‘발효’라고 표현한 것은 그의 평생, 유일하게 고요하고 성숙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유미는 작년 이맘때 쯤 처음으로 그를 ‘아버지’라고 불러 주었다.

 

그 이후로 그는 지금까지 감방에서 소문난 모범수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박용준은 한때는 로즈갤러리에서 고재형과 개와 고양이 같은 사이로 지냈다.

 

유미에게 평생 충성을 다짐했던 그였지만, 결국 로즈갤러리의 큐레이터와 몰래

 

연애를 하더니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국 유미에게 늘 백년가약을 주장하던 고재형은

 

유미의 곁에 가장 많이 붙어 있는 남자가 되었다.

 

 게다가 그는 많은 아이들의 유일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