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 도약 11
데미안 허스트가 세계에서 제일 비싼 천억 가까운 자신의 작품인 다이아몬드 박힌
해골을 들고 유미의 갤러리 개관식에 나타나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이벤트이자
성공적인 홍보가 될 것이다.
세계 유수의 알짜배기 작품들을 소장하고 전시할 수 있는 로즈갤러리의 명망은
시간문제일 거 같다. 유미는 가슴 한편이 풍선을 불듯 부풀어 오르는 걸 지그시 누른다.
윤조미술관의 작품보다 더 멋진 작품들을 구비할 수 있다.
윤조미술관 측에서는 외적으로는 다니엘 화랑이 주축이 되어 거래를 했기에 물밑에서
작업한 사람이 오유미라는 걸 모를 것이다.
기껏 알아봤자 로즈라는 이름만 알게 되겠지. 하지만 유미가 세상으로 떠오르는 것
또한 시간문제다.
그때 윤 회장이나 윤동진의 모습은 어떨까?
그때 용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쌤, 뉴스가 있어요. 강 관장이 오늘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병원에 갔어요.
아들을 낳았답니다.”
“그래? 그 집 남자들 좋아하겠군.”
말은 그렇게 해도 왠지 가슴이 싸해졌다.
“그렇죠. 큰아들에게는 딸만 둘이라는데, 강애리 어디 복이 붙어있는지….”
“사랑받는 강아지 상이잖아.”
“그나저나 전시 오픈 앞두고 갑자기 애를 당겨서 낳았으니
난 이제 일복이 터졌네요. 로즈갤러리랑 투잡하는 거 힘들겠어요.”
“충성심의 문제지. 용준, 배가 불렀구나. 강애리만큼 만삭이구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뭐 기사는 많으니까.”
“아, 쌤! 그렇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합니다.
이번 전시만 하고 로즈갤러리로 건너가려고 합니다.”
“참, 윤동진 이사는 어디 있어?”
“요즘 몽골과 중국에 자주 가 있습니다.
현지에 수주받은 공사 지휘 감독하느라… 첫아들 낳았는데 조만간 들어오겠죠.”
“윤동진 들어오면 내게 알려주고, 서울에서 일정을 대충 알면 내게 귀띔해 줘.”
“알겠어요.”
첫아들과 첫 손자를 안고 기뻐할 윤동진과 윤 회장의 얼굴이 스크린처럼 지나갔다.
만족감과 승리감에 취한 강애리의 얼굴도 떠올랐다.
강애리의 임신으로 한방에 KO패를 당한 작년의 치욕이 새삼 다시 떠올랐다.
이렇듯 축복받는 아이를 낳는 여자의 기쁨이란 얼마나 클까.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 줄 모르는 여자는 얼마나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아이와 대면할까?
유미는 자신의 탄생을 떠올리고 엄마를 떠올렸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는 아버지가 누구인 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예전에 언뜻 보았던 엄마의 일기장엔 그런 진실이 숨어있을 것이다.
그 일기장이 없어졌다. 조두식이 갖고 있을까?
이제는 아빠가 될 윤동진의 심정은 어떨까?
그의 성적 취향에 강애리는 호응하지 못할 것이다.
만족스럽지 못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윤동진은 유미를 그리워했을까?
윤동진과의 특별한 인연이 다시 떠오르자 그를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 회장은 윤동진에게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조두식의 말대로라면 윤 회장은 지은 죄가 있어서 유미가 자기 딸인 줄 지레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흔히 재벌이나 고위층 인사가 심증은 있으나 끝내 혼외자식의 친자 확인을
하지 않는 이유로는 사실로 밝혀졌을 때의 두려움을 피하기 위함 아닐까?
유 의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도 유미가 친딸로 나타나는 걸 평생 원하지 않았겠지.
무엇 때문에? 체면 때문에? 스스로 고매한 체면을 지키며 살다가
눈을 감으면 진실이 묻혀진다고 생각하겠지.
그가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면 유미는
그저 한평생 침묵으로 비밀을 지켜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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