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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 프렌치 커넥션-5

오늘의 쉼터 2015. 4. 12. 23:56

(441) 프렌치 커넥션-5 

 

 

 

 

유미는 밀려드는 공포와 불안감으로 가슴을 누르며 노트북을 바짝 끌어당겼다.

 

일단 홍두깨가 미쳐 날뛰지 않게 진정시켜야 한다.

 

‘홍두깨’가 그야말로 ‘망나니의 칼’이 되지 않도록.

‘홍두깨님! 제 말은, 생각은 신중하게 판단은 빠르게 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합당한 조건이라면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가 당신을 꼭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수표는 갖고 나가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신속하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한 번만 만나주세요.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시면 제가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유미는 메일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노트북을 끼고 앉아 계속 수신확인을 체크했다.

 

아까와 달리 홍두깨는 약을 올리듯 메일을 열어보지 않았다.

 

새벽 2시가 넘어서 노트북을 닫으려고 마지막으로 확인하니

 

수신확인이 5분 전에 되었다.

 

그러나 홍두깨는 새벽 4시가 되도록 답을 하지 않았다.

 

유미는 계속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의 그 사건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이유진의 최후가 성가신 배너광고처럼 머릿속에서 명멸했다.

 

유미의 인생에 발목을 잡고 가슴 속에 가시로 박힌 그 일을 얼마나 묻어버리고 싶었던가.

 

그 이후 그 사건은 티끌처럼 정말 흔적 없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그 후, 너무도 말짱하고 감쪽같이 생이 이어지는 게 신기해서 유미는

 

마치 그 일이 현실이 아니라 희미한 악몽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악을 다스릴 수 있는 주술적이고 신비한 힘이 자신에게

 

부여된 거 같은 묘한 쾌감이 들기도 했다.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다.

 

선과 악을 잘 분리수거하면 악이 냄새를 피울 일은 없을 듯했다.

 

세상의 승리자는 사실 악을 잘 다스리는 자의 몫이다.

아아, 그런데…유미는 베개에 머리를 묻고는 악몽 같은 그때의 일을 떨치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끈질긴 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유미는 어금니를 꼭 다물고 다시 일어나 앉았다.

 

어차피 이미 행해진 악이라면, 피하지 말자.

 

차라리 악에 정면 대결하여 분석하고 그걸 전화위복이 되게 할 바늘구멍만한

 

숨구멍이라도 찾아보자.

 

살인의 추억이 끔찍하지만,

 

그때 그 시간 속으로 두려움 없이 걸어 들어가 보자.

 

유미는 술 생각이 간절했으나 일부러 욕실로 갔다.

 

몸에 걸친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찬물을 튼 샤워기 아래에 섰다.

 

눈을 감고 차가운 물세례를 맞으며 한동안 서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울 속에는 눈 속에 핀 겨울장미처럼 싸늘한 유미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니까,

 

그날 이유진 최후의 날이 파노라마처럼 거울 속에 아련히 펼쳐졌다.

 

당시 유미는 이유진과 나체촌에서의 조우 이후 2년째 연애를 이어오고 있었다.

 

이유진의 작품을 위해서 모델을 서는 경우도 많았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예술가들과 모델들의 관계처럼 유미는 이유진에게

 

연인이자 뮤즈의 역할을 다 하고 싶었다.

 

게다가 고아인 유미에겐 혈육 같은 오빠와 후견인 역할을 하는 그의 존재가 든든했다.

그러나 그는 비밀이 많은 남자였다.

 

유미가 함께 살기를 원했지만,

 

그는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길 바랐다.

 

유미에게 도움을 주는 독지가를 배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가 알면, 그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되는 거라며

 

유미와의 연애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를 원했다.

 

그는 파리에 작은 월세 원룸이 있었지만,

 

대부분 파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인 교외에 있는 작업실에서 기거했다.

 

유미를 만나러 오거나 파리에 일이 있을 때만 잠깐씩 원룸에서 기거했다.

 

그게 늘 불만이었지만, 유미는 새로 시작한 학업에 박차를 가하는데도,

 

또 이유진의 예술세계를 지켜주는 데도 서로 거리를 유지하고

 

독립적으로 지낼 필요가 있다고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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