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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위험한 약속-10

오늘의 쉼터 2015. 4. 9. 23:26

(429) 위험한 약속-10

 

 

그에게 그런 아픔이 있다니….

 

아마도 그의 어머니는 음습한 숲 속에서 흉측한 마지막 모습을

 

아홉 살 어린 아들에게 보여주었나 보다.

 

유미는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유미는 다니엘이 안쓰럽고 애틋했다.

 

갑자기 가슴 가득 그를 향한 연민의 감정이 홍수처럼 차올랐다.

 

유미 또한 자살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진 못했으나,

 

어머니들의 비슷한 비극을 그와 공유한 처지라니.

 

게다가 유미 또한 간혹 심신이 고통스러울 때 악몽을 꾼다.

 

죽은 이유진을 꿈에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유진은 유미와 평생 헤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다니엘을, 동병상련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의 어린 소년에게 생긴 그 트라우마가

 

그를 소심하고 심약한 남자로 만든 게 아닐까?

 

유미는 다니엘에게서 가여운 아홉 살짜리 어린 소년의 모습을 보았다.

“로즈는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는요. 멋진 그림들을 많이 갖고 있고 평생 가난을 모른다는 면에서는요.”

“이렇게 말하면 우습겠지만, 내겐 그런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

 

그냥 어머니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

땀이 식는 몸이 추운지 다니엘은 몸을 떨었다.

“당신이 내 곁에 누우면 좋겠소.”

유미는 양주로 더워진 몸을 다니엘의 옆에 누였다.

 

슈미즈를 입은 유미의 몸을 다니엘이 껴안았다.

 

유미도 다니엘을 안았다.

 

그의 젖은 셔츠에서 땀 냄새가 살짝 풍겼다.

 

그리 싫지는 않았다.

“아아, 따스해.”

다니엘이 어린아이처럼 유미의 가슴에 코를 박았다.

 

밖에는 추적추적 여름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가끔 천둥소리가 들릴 때마다 다니엘이 몸을 움찔거렸다.

 

곧 다니엘의 심장 박동이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가 가늘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의 체온이 따스하게 전해졌다.

 

유미 또한 아버지 같기도 하고 아들 같기도 한 느낌을 주는

 

남자의 몸을 안고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눈을 떴다.

 

다니엘이 만면에 가득 행복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렇게 개운하게 아침을 맞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로즈 덕분이야.”

아침을 먹으며 다니엘은 또 한 번 유미에게 말했다.

“내 약혼녀가 되어 주지 않겠소? 당신이 원하는 조건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리다.”

유미는 대답 대신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다음 날 저녁에 마침내 유미는 계약서에 사인했다.

 

계약기간은 3개월.

 

다니엘은 계약금 격으로 목욕하는 여인을 그린 발튀스의 그림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건 유미를 처음 보고 그가 욕실에 걸었던 그림이다.

 

계약기간 만료시에는 잔금 조로 나중에 유미에게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계약 파기 시에는 물론 이런 사항은 무효가 된다.

 

몰래카메라는 떼고 대신에 일주일에 이틀 밤을 함께 지낼 수 있으며

 

계약 약혼 기간 동안은 성적인 자유를 억압받진 않지만,

 

대신 공식적으로는 대외적으로 정숙한 약혼녀의 입장을 지켜줄 것을 유미에게 요구했다.

 

외부에 유미에 대한 추문이 발생하면 계약은 파기된다.

 

그것은 쌍방 합의 조건으로 다니엘에게도 해당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다니엘은 유미의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유미는 오히려 여지가 많은 두루뭉술한 계약조건이 더 마음에 들었다.

 

다니엘은 진지하게 말했다.

“무늬만 약혼이라도 우리 관계가 메마르지 않았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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