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오, 로즈(Oh, Rose)-9
유미가 용준을 호텔로 안내하고 나서려고 하자 용준이 유미를 붙잡았다.
“그냥 가시려구요?”
“시간도 늦었고 피곤하지 않아? 푹 쉬어. 내일 저녁에 중요한 약속도 있잖아.”
용준이 머쓱해져서 코끝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난 쌤이 아주 반겨줄 줄 알았는데….”
“나, 정말 반가워.”
“전 아주 고프단 말이에요. 쌤도 아주 외로울 줄 알았는데….”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식욕을 조절할 줄 안다는 거야.”
“쳇, 결국 난 영원한 2인자네요.”
“용준, 잘 들어. 우린 이제 섹스파트너라기보다 사업파트너로 관계가 진행됐어.
용준도 원한 일이고. 그래서 오늘은 나도 이리저리 생각할 게 많거든. 섹스는 필요할 때 해.”
“알았어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뭐. 오늘 좀 피곤하긴 하네요.
푹 쉬고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 놓을게요. 우리 옛날의 영화를 다시 되찾자구요.”
“알았어.”
유미가 미소 지으며 용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용준이 섭섭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유미는 용준의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하며 속삭였다.
“그래, 곧 옛날 실력 확인해 보자.”
용준을 호텔에 두고 집으로 돌아온 유미는 마음이 좀 착잡했다.
용준의 말대로, 외롭고 고픈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옛날처럼 섹스와 비즈니스를 짬뽕처럼 마구 뒤섞고 싶진 않았다.
모든 훌륭한 요리에는 레시피가 존재하듯이 유미는 이제 욕망의 완벽한 레시피를 만들고 싶다.
이제는 욕망을 관리하고 매니지먼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용준과 비즈니스를 잘 해내려면 감정의 과잉은 금물이다.
모든 약은 적당히 쓰면 명약이 되지만 지나치면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이건 조두식의 말인데, 가끔 그는 꽤 쓸만한 말을 하기도 한다.
유미는 그래도 허전한 마음에 포도주를 한 잔 가득 따라서 거실 소파로 와서 앉았다.
창으로 초여름 파리의 청명한 밤하늘과 가로등에 비친 마로니에의 초록잎이
무대장치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밤이다.
유미는 창을 열었다.
상큼하고 은밀한 밤의 미풍이 살랑댔다.
술을 세 모금 마시자 약간 기분이 들떴다.
입고 있던 원피스의 지퍼를 내리자 스르륵, 몸에서 흘러내렸다.
유미는 속옷도 벗고 소파에 길게 드러누웠다.
소파 위에 펼쳐둔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피의 갈색 털이 맨몸에 닿는 감촉이 싫지 않았다.
유미는 탁자 위에 놓인 깃털부채를 집었다.
다니엘의 집은 고전적이고 복고적인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어서 소품들
또한 명화 속처럼 예스러운 것들이 많았다.
포도주를 마저 마시고 깃털부채를 부치다가 깃털로 온몸을 부드럽게 쓸어보니
마치 몸이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깃털이 몸의 예민한 곳을 부드럽게 자극하자 유미는 기분 좋은 신음을 흘렸다.
어떤 남자의 부드러운 애무보다도 더 달콤했다.
유미는 눈을 감고 저도 모르게 벌어지는 입술을 느끼며 달콤한 잠으로 빠져들었다.
그때 공기 중에 미풍의 가느다란 흔들림을 느낀 것 같았지만, 눈을 뜨긴 싫었다.
자신이 마치 명화 속에 들어가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절대로 그림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런 달콤하고 부드러운 순간이 천국처럼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누군가의 기척이 살짝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유미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 순간, 유미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살짝 바람을 가르고 유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조용히 유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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