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 파멸 혹은 연민-3
“어데예!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전에 왔을 때 급할 때는 부산 사투리가 튀어나온다는 말을 한 게 기억나서
유미는 사투리 억양을 섞어 말했다.
“호오! 그래?”
윤 회장은 잠깐 반색하는 얼굴이더니 곧 침묵했다.
유미도 차를 마시며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어색해서 유미는 책상 위의 사진에 눈길을 두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사모님이….”
그러다 유미는 아차, 하며 입을 다물었다.
사모님이 참 고전적인 미인이십니다.
사진에 눈길을 주다가 이렇게 말할 뻔했던 것이다.
“사모님이 뭐라고?”
“아닙니다. 사모님이 안 계신다고 들었는데 적적하시겠어요.”
“늙을수록 혼자라는 게 더 적적하긴 해.
요즘엔 짝을 하나 만들까 생각도 들더구먼.
아들 놈 짝지어 주고 나면 좀 생각해 보려고 해.
근데 내 맘에 쏙 드는 여자가 잘 없어. 내가 좀 괴팍해서 말이지.
이런 이야길 하다 보니까 윤 회장도 별수 없이 외로운 영감이다.
“오늘은 우리 둘만 만난 게 첫날이고, 미스 김이 경험도 없고 하니 그냥 워밍업만 좀 하자고.”
“예… 제가 부지런히 안마를 배워 앞으로는 회장님을 만족스럽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오늘은 회장님을 어떻게 모실까요?”
유미가 입꼬리를 올려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난 노골적으로 꼬리 치는 여자는 딱 질색이거든.”
“예. 알겠습니다. 하라는 대로 할게요. 분부만 내려 주세요.”
이 영감, 제 입으로 좀 괴팍하다고 하더니 이상한 짓 시키는 거 아냐?
아들처럼 아버지도 이상한 취향이나 습관을 가진 거 아냐?
동진이 숨 쉬고 사는 이 집 안에서 그의 아버지와 이렇게 이상한 만남을 갖고 있는 게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윤 회장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제일 편할 거 같았다.
“미스 김….”
윤 회장이 다소 긴장되고 떨리는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예, 회장님.”
“우선 말이지. 이리 내 옆으로 와서 앉지.”
윤 회장은 자신이 앉은 긴 소파로 유미를 이끌었다.
유미가 윤 회장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윤 회장이 코를 킁킁거렸다.
“이거 쁘와종이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수라네.
지독하게 달콤한 것은 중독이 되기 쉽지.
유혹이든 섹스든 돈이든.
난 좀 중독이 잘 안 되는 체질이긴 하지만.”
중독이 잘 안 되는 체질이라고?
두고 봐.
서서히 중독시켜 버릴 테니까.
“분위기도 어색한데 영화나 한 편 보자고.”
“영화요?”
“그래, 영화.”
그가 대형 티비 화면을 가리켰다.
“난 말이야.
너무 급작스러운 건 싫어.
천천히 우선 영화를 보자고.
이거 보고 미스 김이 그대로 해 줘, 알았지?”
“그럼요.”
일단은 윤 회장의 말에 장단을 맞춰 주었다.
“난 옛날 포르노가 좋더라.
내가 몰래 감춰 둔 게 있거든.”
그가 책상으로 가서 책상 서랍을 열었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렸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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