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333> 무정부주의자-13

오늘의 쉼터 2015. 4. 6. 17:39

<333> 무정부주의자-13 

 

 

 

 

유미는 침착하게 운전하여 집 앞 마트에 들러 삼겹살 두 근과 쌈 야채, 그리고 소주 2병을 샀다.

 

아파트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휴대용 가스버너를 켰다.

 

그리고 프라이팬 위에 삼겹살을 구워 앉은 자리에서 소주를 반주로 천천히 고기를 다 먹어치웠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 그때마다 유미는 지갑을 털어 삼겹살을 구워 퍼질러 앉아 소주와 먹고 나면

 

모든 슬픔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없는년은 배라도 채워야지.

 

그렇게 꾸역꾸역 먹고 나면 어딘선가 또 기운이 솟아나왔다.

 

그렇게 포식을 하고 술에 취해 자고 나면 그 다음 날의 태양은 또 새롭게 보이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포식을 하고 술에 취해 세상이 돼지 콧구멍만 하게 보일 때 동진이 전화를 했던 것이다.

“뭐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다.”

“축하해.”

“일이 내 뜻과 달리 이상하게 진행됐어.”

“뭐가 이상해? 속도위반? 원래 자기 속도광이라 속도위반 잘하잖아.

 

스포츠카 운전도 좋아하고. 자기 뜻이 아니라면, 강애리를 운전한 건 누군데?

 

자기 씨가 아니라는 말씀? 재벌2세 주인공에 게다가 출생의 비밀까지?

 

참 통속드라마가 따로 없네.”

“…….”

“그렇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줄은 몰랐어.

 

한쪽에선 아이까지 임신시키고 한쪽에선 원하는 서비스를 받고.”

동진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강애리와 피치 못하게 잔 게 딱 두 번이야.

 

그것도 한참 됐어. 내가 다 얘기했잖아. 유미를 위해서 살신성인 한 거였다고.

 

그렇게 쉽게 임신할지 몰랐어. 유미하고는 그렇게 해도 한 번도 안 생기던 아이가….”

“바보 아냐? 그럼 내가 애를 가지면?” 

 

“그럼 아버지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유미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글쎄, 그랬을까? 유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분명히 아이를 원하지 않고 결혼도 원하지 않는다고 애리한테 절교선언을 했어.

 

애리가 임신을 이용해 아버지에게 결혼허락을 받은 거야.

 

그 집 어른들과 우리 아버지, 손자라면 꼼짝을 못하더라고.”

“그래서 D-데이 날에 자기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그런 소식을 내게 들려주기로 했던 거야?

 

재벌 2세는, 유명한 사람은, 그렇게 알리나보지?

 

나도 인터넷이라면 꽉 잡고 있어. 우리 소식도 인터넷으로 알릴까?

 

아마 파장이 클 거야. 사실 내가 인터넷에서 유명한 연애 블로그의 주인이야.

 

내가 실체를 밝히면서 사진 몇 장 올리면 그 결혼, 제대로 할 거 같아?

 

다만 그건 둘 다 파멸에 이르는 짓이라 내가 자제할 뿐이야.

 

나 또한 앞으로 큰일을 할 위대한 사람이니까 말이지.”

유미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면 변명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거 다 애리가 교묘하게 흘린 거야.

 

자기 절친에게 슬쩍 흘려 그 친구가 트위터에 잠깐 올린 걸 기자가 낚은 거지.”

“더 이상 구차한 변명 듣기 싫어. 나 미술관 사표 냈어. 너희 둘, 예술적으로 결합해 봐.

 

안 말려. 대신 각오해. 예술적으로 복수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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