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316> 갈림길-13

오늘의 쉼터 2015. 4. 6. 17:04

<316> 갈림길-13

 

 

 

 

“너 속이 답답하고 기분이 꿀꿀하다며?”

정희가 유미의 이마와 손목의 맥을 짚어보며 물었다.

“약이야?”

“프랑스 수도원에서 400년간 만드는 법이 비법으로 전해지는 약, 아니 약술이지.

 

130가지가 넘는 식물로 만들었어. 이거 조금만 먹으면 기분 좋아질 거야.”

“이거 무슨 마약 아니야?”

“그럴지도….”

정희가 웃었다.

“자연이란 게 참 신비로워. 독초도 있고 약초도 있거든.

 

그런데 명약에는 또 독초가 약간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대.

 

내가 눈이 밝으면 식물학자가 되고 싶어.”

“버섯 중에도 독버섯이 있고 또 환각을 주는 버섯도 있잖아.”

“그래. 너도 그런 것에 관심이 많구나.”

“그런데 저런 건 어떤 경로로 입수해?”

“중간에 사람이 있어.”

“환각 버섯 같은 것도?”

“꼭 버섯이 아니라도 그런 성분은 다른 식물에도 있어.

 

가끔 은밀하게 찾는 이들이 있어. 묻지 마 다쳐.”

선글라스 속의 눈빛을 가늠할 수 없지만 유미는 정희에게서 경계심을 느꼈다.

 

정희가 화제를 바꾸었다.

“좋은 허브차가 있어.”

정희가 물을 끓여와 차를 만들어 주었다.

 

차를 마시다가 정희는 약초술병을 유미 앞으로 밀어주었다.

 

유미는 약초술병을 보며 화제를 바꿨다.

“근데 이건 안주 없이 마시는 거야?”

“안주?”

정희가 웃으며 설탕 그릇을 가져와 열었다.

 

거기에는 각설탕이 들어 있었다.

 

작은 접시에 설탕을 놓고 정희가 그 위에 술을 몇 방울 따랐다.

“먹어봐.” 

 

“애걔? 쥐오줌만큼? 뭐야? 설탕이 안주야?”

“되게 독한 거야. 설탕을 입에 넣고 눈을 감고 침으로 조금씩 녹이며 음미해 봐.”

유미는 설탕에 흡수된 흑갈색 액체를 바라보다 입안에 넣었다.

 

눈을 감자 갑자기 코가 뻥 뚫리며 온몸으로 작은 오솔길이 뚫리는 것 같았다.

 

시원하고 상쾌한 향기가 온몸에 퍼지면서 머릿속이 맑아지고 가슴이 뻥 뚫렸다.

 

저절로 깊은 한숨이 쉬어졌다.

 

가슴속에 쌓인 울분과 슬픔 같은 것을 진공청소기가 깨끗하게 빨아내고 있는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다.

 

아니 속이 뻥 뚫리도록 시원한 건지 불처럼 타오르는 느낌인지 잘 분간이 안 갔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이 모든 것이 휘발되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심신이 아주 가벼워졌다.

“어때? 하나 더? 그거면 충분할 걸?”

유미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희의 말대로 충분, 아니 딱 좋았다.

“한 방에 뭔가를 싹 밀어내는 거 같아.”

“직방이지?”

정희도 설탕에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약술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저런 완벽한 몸짓을 보면 그녀가 맹인이 아니라 맹인인 척하는 것 같다.

 

정희는 그걸 입에 넣었다.

 

잠시 후에 하아, 하는 호흡을 내뱉었다.

“이거 많이 마셔버리면 어떻게 되는데? 죽나?”

유미가 약초술병을 들고 물었다.

 

병의 라벨에는 불어로 ‘elixir’, 요컨대 ‘묘약’이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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