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315> 갈림길-12

오늘의 쉼터 2015. 4. 6. 17:03

<315> 갈림길-12

 

 

 

 

그때 용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니, 어디 있어요? 화장실 간 사람이 소식도 없고.”

“아 미안. 내가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서 그냥 택시 타고 집에 왔어.

 

막걸리는 너무 잘 마셨는데 말이야.”

“막걸리 때문에 배가 아픈 건 아닌 것 같은데…?”

“용준, 미안해. 나 화장실이 급해서…”

유미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유미는 파스쿠찌를 나왔다.

 

거리에는 택시도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유미는 마침 눈앞에 보이는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섰다.

 

일요일이라 생각보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무심히 지하철 노선도를 보다가 유미는 그곳에서 지하철을 타면

 

맹인안마사 신정희의 집으로 가는 노선이 바로 연결된다는 걸 알았다.

 

차라리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정희가 편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유미는 ‘오유미’가 지금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잠시 ‘김지영’이란 존재로 바람을 쐬고 싶다.

 

유미는 정희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 지영인데 뭐해요?”

정희는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 듣던 중 반가운 목소리네!

 

뭐하긴 눈이 이렇게 와서 일도 못 나가고 집에 있어.

 

동생 기집애도 첫눈 온다고 데이트 나가고…”

“심심하겠다. 나도 심심한데…”

“그래? 웬일로 네가 다 심심해? 바쁘다며?”

“오늘은 그냥 꿀꿀해. 꿀꿀! 꿀꿀꿀!”

유미는 돼지 흉내를 냈다.

“그럼 집으로 올래? 물 건너온 좋은 약초명주가 있는데.”

“와우, 약초명주? 콜!”

기다리던 말이었다.

 

유미는 지하철을 타고 정희의 아파트로 갔다.

 

정희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실내에 있다가 유미를 반갑게 맞았다. 

 

“안 그래도 어제 윤 회장님 집에 가는 날이었잖아.

 

새끼 안마사는 잘 있냐고 물으시더라.

 

그 말만 하고 다른 말은 없었지만, 내가 누구니?

 

눈치로 보아하니 널 한번 데려왔으면 하는 눈치더라.”

“뭘 알아야 가서 안마를 하지.”

“그러니까 가끔 들러서 한 수 배워. 춥지? 저녁은 먹었어?”

“먹었어.”

정희를 성가시게 할까 봐 유미는 저녁을 먹었다고 했다.

 

아까 막걸리 안주로 먹었던 파전과 녹두전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았다.

“왜 무슨 속상한 일 있니? 술 냄새가 나는 거 같기도 한데. 음, 막걸리와 파전?”

“언니, 개코다.”

“눈만 깜깜이지. 다른 덴 더 밝아.”

그럼 성감대는 더 예민해? 그런 게 궁금했지만 유미는 입을 다물었다.

 

늘 눈을 감고 있으니 상상과 촉각에만 의지하는 섹스가 훨씬 더 자극적일 거 같다.

“오늘 같은 날은 정말 세상이 나만 빼고 돌아가는 거 같아.

 

외로워.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가슴이 답답해.”

유미는 어리광 부리듯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하소연했다. 그게 편했다.

“참, 내 앞에서 별소릴…”

“언니, 오늘 공치는 날이라며?

 

내가 돈 줄 테니 나 기분 좋게 마사지 좀 해 주라.”

“그럴래? 내가 너 오늘 가르쳐 주는 셈 치고 한번 해 줄게.”

정희는 능숙하게 장을 뒤져 약병 같은 갈색 병을 꺼냈다.

“그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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