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갈림길-11
“아니, 그렇게 밝히진 않았어요.”
“그런데?”
“강애리의 지인과 절친인 듯한 두 사람이 멘션을 단 걸 보니까
식도 올리기 전에 밀월여행이냐는둥, YB의 꽃, 복어 먹는 강아지는 복도 많지. ㅋㅋ…
우리끼리 놀리며 불렀던 강아지가 원래부터 별명이었던가 봐요.
자, 제가 찾아서 보여줄게요.”
유미는 계속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는 용준을 외면하고 주점의 유리문 너머
눈 오는 거리를 내다보았다.
윤동진이 강애리와 제주도에?
이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유미는 깊고도 날카로운 소외감을 느꼈다.
무엇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걸까? 모두가 나만 빼돌리고….
“아, 여기 있네. 여기 보세요.”
용준이 아이폰을 들이댔지만, 유미는 일어섰다.
“나 잠깐 화장실에 좀….”
유미는 가방을 챙겨 주점을 나왔다.
왠지 아무렇지 않은 척 용준과 히히덕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용준에게조차 동정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마치 겨울 재고 상품처럼 자신이 30프로, 50프로, 70프로 바겐세일하다가
땡처리의 운명으로 내몰리는 비참함 같은 게 몰려왔다.
눈은 폭설로 변했다. 한 시간가량 주점에 앉아있던 사이 거의 10센티미터 가까이 쌓였다.
도로 위의 차들이 굼벵이처럼 뭉기적거리고, 보도 위의 사람들만 눈길에서 종종거렸다.
어디로 가야 하나. 유미는 폭설 속에서 막막함을 느꼈다.
주변을 살펴보니 커피 전문점 파스쿠찌 건물이 보였다.
유미는 안으로 들어가 비교적 자리가 한산한 3층의 창가 흡연석으로 가서 담배부터 물었다.
무언가 조금씩 잘못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장애물이 오로지 윤 회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를 압박할 계획이나 자료 수집에 몰두해 있었는데.
뭐야, 이건 뭐지?
내가 결혼할 남자인 윤동진이 확고하지 못하면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람.
애초부터 윤동진을 믿은 내가 잘못인가.
윤동진의 바람대로 아내가 아닌 정부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가.
아니면 내가 맞힐 과녁이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
윤동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아났다.
만약 정말 나를 기만하고 배신한다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복수할 거야. 윤규섭에게 아니 윤동진에게. 아니 둘 다에게.
유미는 찢어진 깃털처럼 유리창에 부딪히는 폭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생각도 없다.
막걸리 냄새 나는 트림이 울고 난 후의 딸꾹질처럼 올라왔다.
유미는 담배를 또 한 대 물었다.
지난봄에 폭설이 내리던 날은 인규가 하루 종일 유미의 곁에 있었다.
폭설을 뚫고 인규의 차를 타고 모텔로 향하던 그날 밤이 영화처럼 떠오른다.
그때 인규가 ‘그때 그 일’을 두고 말했었다.
“오늘밤은 아무 생각 없이 하면 좋겠어.
마치 이 세상에 너와 나 두 사람밖에 없는 거처럼. 그때처럼…. ”
그 말에 유미는 이렇게 생각했었지.
그때처럼… 그래 그때는 길이 보이지 않았지.
독 안에 든 두 마리의 생쥐처럼 두 몸이 하나가 되어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디는 수밖에 없었지.
“가끔 난 생각해. 그때가, 그런 순간들이
오히려 정말 가장 행복하고 충만한 순간 아니었을까 하고.
그때만큼 너를 완전히 소유한 적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인규가 쓸쓸하게 말했었다.
“그만해. 우리 그때 얘기 다시는 안 하기로 했잖아.”
“알았어. 아, 폭설이 내려서 너와 내가 고립되고 갇혀버리면 좋겠다. 펄펄 더 와라.”
아아, 그때의 인규는 어디에 있는가.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소릴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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