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29장 새 세상 [2]
(597) 29장 새 세상 <3>
아베의 얼굴이 굳어져 있다.
지금까지는 계획했던 대로 이끌어온 셈이다.
중국과 한국이 여름밤의 모기처럼 가끔 신경을 건드렸지만
대일본(大日本)의 전진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대동아공영(大東亞共營)을 추구하던 대일본제국시대의 위세가 미국과의 적극적인 동맹을 통해
되살아났다.
그야말로 1000년 전 몽골의 침략을 막아낸 가미카제(神風)가 다시 불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일본은 축복받은 국가인 것이다.
보라, 100년 전 한반도를 제압하여 식민지로 삼고 중국 대륙을 무력으로 휩쓸었으니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야망을 300여 년 만에 실현시켰다.
중국 대륙은 물론, 싱가포르, 동남아까지 휩쓴 1900년대의 대일본군(大日本軍)의 위세,
이어서 1941년 12월 7일에는 진주만을 기습, 미국 태평양함대를 궤멸시키고 선전포고를 했다.
대일본의 질풍노도와 같은 전진, 대동아공영, 대일본인의 기개와 영광,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항복은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그러나 아베의 눈빛이 강해졌다.
전후의 참담한 미군 점령군시대는 3년도 되지 않아서 종결되었다.
수천 년간 ‘호구’의 땅이었던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한반도가 일본의 ‘먹이’가 되었다.
3년 동안 전쟁물자를 생산하면서 일본 경제가 도약한 것이다.
그것이 일본 재건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보라, ‘호구’는 한반도에 그치지 않았다.
중국도 ‘호구’ 노릇을 했다.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면서 공산세력에 대한 방파제 역할로 미국이 일본을 동맹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것이 전후 70년, 일본을 재건하고 다시 대일본을 건설하게 된 행운의 역사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꼴인가?
남북한 연방의 대두, 난데없는 대마도 반환 청구, 대마도 침공 소문, 미국의 은근한 뒷걸음질,
중국의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윽고 아베가 어깨를 펴고 앞에 앉은 방위상 나카무라를 보았다.
“나카무라 씨, 대마도가 점령당할 가능성은 있소?”
나카무라가 어깨를 펴고 아베를 보았다.
“예, 있습니다.”
주위의 시선이 모였고 방안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이곳은 총리실 안이다.
안에는 관방장관 이케다와 총리실 정보책임자 도쿠가와까지 넷이 둘러앉았다.
극비회의인 셈이다.
육상자위대 사령관 출신인 나카무라가 말을 이었다.
“부산에서 쾌속정으로 30분 거리입니다.
해공군이 경계를 하겠지만 1개 대대만 상륙해도 방어가 힘듭니다.”
“영토를 침입하면 바로 격침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이케다가 묻자 나카무라는 머리를 저었다.
“그렇다면 모든 선박의 대마도 입출항을 금지시켜야지요.
일·한 간 선박 운행도 차단시켜야 됩니다.”
“당분간은 그래야지요.”
“그건 전시 상황입니다. 양국이 선전포고라도 해야…….”
이케다가 입을 다물었으므로 방 안이 다시 정적에 덮였다.
아베의 시선이 도쿠가와에게 옮겨졌다.
“도쿠가와 씨, 북한 동향은?”
“특이한 동향은 없습니다. 하지만…….”
도쿠가와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군부의 선전 활동이 심해졌습니다. 특히 반일(反日) 구호와 선전이 증가했습니다.”
아베가 심호흡을 했다.
“내가 미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게 되니까 남북한, 중국까지 열을 받는 모양이군.
내가 일·미 동맹을 강조하면서 침략자는 반드시 대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할 거요.”
전후 70년 만에 일본 총리가 미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도 아베의 업적이다.
(599) 29장 새 세상 <4>
“참, 웃기는 놈이군.”
대통령 한대성이 말하자 양용식이 숨을 들이켰다.
한대성은 상대방을 비하하지 않는 사람이다.
더구나 욕을 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대성에게 욕을 얻어먹은 당사자는 일본 총리 아베다.
물론 이곳은 대통령 집무실이지만 양용식과 둘이 있다.
둘이 사담을 나누는 것이나 같다.
한대성이 말을 이었다.
“아베가 세상에 좋은 일을 한 가지 하고 있기는 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
“뭡니까?”
“잊어질 뻔했던 일본의 과거 행적을 기억에서 되살려 주고 있는 거.”
“과연.”
양용식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군요. 하마터면 100년 전, 70년 전의 일본을 잊을 뻔했습니다.”
“잊고 있었던 과거의 처참한 기억들이 망령처럼 이곳저곳에서 떠오르고 있어.”
“아베 덕분이죠.”
“100년 전, 일본 군국 시대에도 이런 식으로 국민을 끌고 갔을까?”
“글쎄요. 그것은…….”
“아베는 미국의 배경을 믿고 이러는 거야. 무슨 짓을 해도 미국이 밀어준다고 말이야.”
“안타깝습니다.”
오후 3시 반,
오늘은 한대성이 안보회의를 마치고 참석자들과 점심을 한 후에 방으로 양용식을 부른 것이다.
이제 4년 연임 법안이 통과된 데다 연임은 확정적이었으므로 정권은 가장 안정된 상태가 되어 있다.
임기가 5년 몇 개월이 남아 있는 셈인 것이다.
한 모금 커피를 삼킨 양용식이 한대성을 보았다.
“이것도 아베 덕분인데 일본이 과거 호전적인 지도자의 영향이나 지시를 받아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대성의 시선을 받은 양용식이 말을 이었다.
“간토대지진 때 간토지방의 조선인 수만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일본 정부에서 성난 민심을 조선족이 방화, 강간, 살인을 했다고 꾸며 일본인을 선동한 때문이지요.”
“…….”
“지금도 인터넷을 클릭하면 그때의 참상이 다 나옵니다.
난징대학살과 비슷하지요.
아니, 이것은 일본 민간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서 조선인들을 학살한 것이라
난징대학살보다 저 심각합니다.”
“…….”
“이것을 고려 말 기록으로 1년에 360여 회나 왜구가 침략해서 백성을 죽이고
노략질을 했다는 것과 연결시킬 수가 있지요.
고려는 왜구 때문에 망한 것이나 같습니다.”
“거기에다 임진왜란과 한일병합에 의한 식민지, 기가 막힌 역사 아닌가?”
말을 받은 한대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731부대를 기억하게 하는 전투기에 탑승한 선전 사진을 찍고 자위대법을 고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서 전범을 추모하는 그 행태로 아베가 얻는 것이 무엇일까?”
“일본 국민의 지지도가 높습니다.”
한 모금 커피를 삼킨 양용식이 가라앉은 시선으로 한대성을 보았다.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 지도자가 국민의 수준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머리를 끄덕인 한대성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아베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나는 일본이 우리의 우방이며 미국 다음가는 동맹국이라는 생각을 했어.”
머리를 든 한대성이 양용식을 보았다.
“그건 나뿐만이 아닐 거야. 이제 일본은 적국이 되어가고 있어. 아베 때문에.”
그때 양용식이 말했다.
“하지만 예전의 한반도가 아닙니다.”
(600) 29장 새 세상 <5>
일본이 경제 제재를 하면 한국 경제가 위험해집니까?”
김동일이 물었으므로 서동수가 머리를 들었다.
신의주의 장관실 안이다.
오늘도 김동일이 헬기로 날아와 조선항공과 조선자동차를 둘러보고 온 길이다.
“아니, 누가 그럽니까?”
둘이 있을 때는 형님 동생 하기로 했지만 서동수가 정중하게 묻자 김동일이 피식 웃었다.
“저도 소식통이 많습니다.”
“그럴 수가 있나요? 경제는 서로 얽혀 있는 데다 규정이 있어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그렇게 되겠지요?”
다시 불쑥 김동일이 묻자 서동수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거야…….”
“바이든 부통령은 북남한 연방과의 동맹에 관심을 보였지만 일본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이제 서동수는 머리만 끄덕였다.
바이든과 약속한 것도 없다.
남북한 연방과 미국과의 관계도 운만 떼었을 뿐이다.
아직도 미국과 일본은 엄연한 동맹국이며 일본 본토에는 대규모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오후 5시 반이 돼가고 있다.
오늘 밤 김동일은 신의주에서 머물 예정이어서 서동수는 연회 준비까지 해 놓았다.
김동일이 말을 이었다.
“대마도 관계나 위안부 문제, 기타 보상 문제는 한·일 간 알아서 하라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 같은데,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요즘처럼 남북한 대화 소통이 잘되는 시기는 없었다.
바이든이 한대성을 만나고 간 후에 한국에서는 즉각 북한으로 특사를 파견했다.
한국 측이 바이든과의 회담 내용을 낱낱이 알려준 것이다.
“그런데.”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김동일이 서동수를 보았다.
“우리가 대마도 문제로 일본의 독도에 대한 주장을 희석한 효과도 있지만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던 일이 있지 않습니까?”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그렇다. 김동일은 주제를 잊지 않았다.
일본의 과거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과 그에 따른 행동이다.
아베는 대마도 반환설로 길길이 뛰면서 오히려 국민들을 선동,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계속했고 위안부 문제를 덮었다.
일본의 극우 세력은 매일 혐한 운동을 증가시키며 아베의 기를 세워주고 있다.
김동일이 말을 이었다.
“거기에다 아베가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게 되면 미·일의 동맹을 재확인하는 셈이 되겠지요.
일본인들의 기가 살아나고 말씀입니다.”
“…….”
“미국놈들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형님.”
정색한 김동일이 서동수를 보았다.
“한국전쟁 때 남한을 도와주긴 했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중국을 막기 위해서는 일본을 끼고 있을 겁니다.
일본도 철저하게 그것을 이용하고 말입니다.”
서동수가 잠자코 커피잔을 들었다.
이것이 현실이다.
국익을 위해서는 어제의 원수도 친구가 되고 어제의 친구가 원수로 변하는 것이다.
의리, 약속, 조약 따위가 휴지처럼 버려져도 국민은 환호한다.
한 모금 커피를 삼킨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들이 대단해. 이 틈바구니에서 이렇게 성장해 왔다니.”
그때 김동일이 바로 말을 받았다.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말을 잇기가 거북한 듯한 호흡을 하고 나서 김동일이 작심한 듯 말했다.
“제 조부, 그리고 제 부친까지 말씀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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