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떠거운 눈물-11
서재로 들어가니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서 있는 윤 회장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이 내린 정원을 향한 커다란 창 앞에 선 윤 회장의 얼굴이 검은 유리창에 반사되어 보였다.
그는 자기만의 생각에 깊이 빠져 있어서 마치 표정없는 가면처럼 딱딱해 보였다.
그처럼 깊은 고뇌에 잠겨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머니의 투병 기간 이후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동진은 기침을 하며 인기척을 냈다. 윤 회장이 뒤돌아서서 동진을 보았다.
“거기 의자에 좀 앉거라.”
동진이 자리에 앉자 윤 회장도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술 한잔할래?”
윤 회장이 물었다.
동진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래. 어제 과음했겠지.”
한동안 윤 회장은 피우다 만 파이프 담배를 마저 피우며 침묵했다.
그가 헛기침을 몇 번 하며 입을 열었다.
“너도 많이 힘들 줄 안다. 나를 많이 원망하겠지.
나도 이제 마흔이 다 된 아들한테 옛날처럼 종주먹으로 막 할 수 없다는 거 안다. 하지만….”
윤 회장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얼마나 깊고 적막한지 귀뚜라미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걔는 안 된다.”
동진은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너는 지금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냐?”
“예.”
“그건 잘못된 만남이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알게 될 거야.
그래 설사 그게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결혼은 다른 문제야.
너 걔한테 결혼서약서 써 줬냐?”
동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걸 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정신 나간 놈. 걔가 그걸 갖고 장난을 안 칠 거 같았냐?
뭐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남자는 몇 번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자가 성공하려면 우선 결혼을 잘해야 하는 거야.
넌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있는데,
이 애비가 한시라도 빨리 바로 잡아주고 싶어하는 거다.
알겠니? 이 창자 빠진 놈아. ㅉㅉㅉ….”
윤 회장이 혀를 차며 동진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넌 원래부터 좀 모질지가 못한 놈이었어.
이번에 독한 맘 먹고 그 애를 끊어내라.
네가 그렇게 결심하면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하마.
걔한테도 섭섭하지 않게 해 줄 거다.
그게 걔 인생을 위해서도 훨씬 낫다.
그러니 네가 마음의 심지를 단단히 박고 그 애를 쳐 내야 한다.”
동진이 애원하듯 바라보며 윤 회장을 불렀다.
“아버지….”
“걘 우리랑 엮이면 안 되는 애야.”
“아버지…저는 아버지가 재산을 상속해 주시지 않아도 큰 불만 없습니다.
저는 일개 평범한 졸부로 살아도 좋습니다.
다만 제 곁에서 평생을 함께할 여자만이라도 제가….”
윤 회장이 언성을 높였다.
“걔가 평생을 네 곁에 있을 것 같냐, 이 모자란 놈아!”
“예, 아버지 보시기에 제가 모자란 놈이고 그 여자도 모자라겠지요.
저는 평생 아버지 눈에 못난 놈으로 살 텐데,
그 여자와 함께 있으면 편하고 행복한데 어쩝니까?”
동진은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에게 대들고 있었다.
그때 윤 회장이 책상 위에 놓인 무언가를 집어 동진의 얼굴로 냅다 집어던졌다.
검고 딱딱한 사각형의 물건이 동진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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