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 떠거운 눈물-10
YB건설이 커진 데는 아버지의 그런 완력과 성격이 불굴의 원동력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럴수록 동진은 자신이 분리되는 느낌을 맛보아야 했다.
겉으로는 아버지가 원하는 스라소니 같은 냉혹한 사업가가 되었지만,
속으로는 더욱더 두려운 나머지, 익숙한 고통과 자학의 편안함을 탐닉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늘 우려했던 나의 그런 약한 내면을 정확하게 보았는지 모른다.
어쩌면 또 아버지는 유미를 정확하게 자신의 적수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한 자는 강한 자를 알아본다.
유미가 나를 지배하고 어쩌면 자신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동진은 결국 유미에게 전화 대신 문자를 보냈다.
‘만나기 힘든 사정이 생겼어. 나중에 연락할게. 애타게 보고 싶지만, 정말 미안해.’
두 번이나 약속을 취소하다니.
기다리고 있을 유미에게 미안하고 눈앞의 고기를 놓친 낚시꾼처럼 허탈했다.
좀 있으니까 유미의 문자가 도착했다.
‘당신은 늘 너무 멀리 있는 거 같아. ㅠ.ㅠ’
동진은 왠지 마음이 아팠다.
두 번째 문자를 보냈다.
‘내 마음은 늘 유미 곁에 있어.’
유미가 다시 문자를 보내왔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유미가 고개를 젓는 모습이 동진의 눈앞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당신 왼쪽에 내가 있잖아. 바보야, 왼쪽 가슴에 손 얹어 봐.
거기 뛰고 있는 너의 하트가 바로 나야.’
그리고 하트로 여백에 도배를 해서 보냈다.
그런데 유미에게서 더 이상 문자가 오지 않았다.
동진은 유미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전원이 꺼져 있었다.
동진은 퇴근을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윤 회장도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가정부가 차려준 저녁 식탁에서 식사를 했다.
아무 일 없었던 듯 차와 과일까지 먹고 나자 드디어 윤 회장이 입을 열었다.
“좀 쉬었다가 내 서재로 내려오거라.”
“예.”
동진은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2층의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아까 전화로 노발대발했지만, 서재로 부른 것은 무언가 조용하게 할 말이 있다는 얘기다.
동진은 불안했다. 이 넓은 집이 감옥 같았다.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결혼을 하더라도 당분간 이 집에서 벗어나는 건 힘들다.
아버지는 결혼 후 5년간은 분가를 허락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아버지의 원칙은 이 집 안에서는 법이다.
형 부부도 5년을 채우고 재작년에 겨우 분가해 나갔다.
동진도 이 집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전처와 2년을 살다 이혼했다.
차라리 아버지가 연애를 하거나 재혼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들의 결혼에 혈안이 되어 있는 아버지가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쏟으면
그나마 숨통이 트일 텐데….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고 나자,
기운뿐 아니라 정력도 소진한 거 같았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독재적인 면은 있었지만,
다분히 모범적인 가장이고 흠 없는 완벽한 남편이었다.
물론 그렇게 보이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평생에 걸쳐 자식들에게 그렇게 증언했다.
속 깊고 정숙한 어머니의 증언이니 믿을 만했다.
그러나 췌장암으로 고통스럽게 투병했던 어머니의 임종 무렵의 어떤 장면을 기억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게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때 방 안의 인터폰이 울리고 아버지가 동진을 서재로 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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