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 미끼-18
“응, 뭔데?”
유미가 물었다.
“나 실비아라고 부르지 말아 줘.
나 민지 엄마라고 불러줘. 옛날 이름 불리니까 기분이 엿 같아.”
“그럴게. 그 마음 이해해. 결혼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 같아서 너무 좋아 보인다.”
유미는 진심으로 말했다.
“언제 한번 만나자. 보고 싶다.
너한테 중요한 일이라면 알아볼 수 있으면 알아볼게. 하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
내가 식당일 때문에 자유롭지가 못해. 남편 눈치도 봐야 하구…
식당에 한번 밥 먹으러 와. 고깃집인데 제법 잘 돼.”
“예쁜 아줌마가 하는 식당이니 오죽 잘 되겠어?”
“아유, 말마라. 넌 어떤지 모르지만, 나 그냥 푹 퍼진 아줌마 됐어.
너 보면 놀랄 거야. 참, 널 죽자사자 쫓아다니던 그 진호란 남자는 어떻게 됐니?
너, 그 남자랑 결혼하지 그랬니.”
그 진호가 지금은 정효 스님이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게 말이야.”
“얘, 어쩌려고 왜 여태까지 결혼도 안 했니?
한창 예쁠 때 골라잡았어야지.
지금 우리 나이엔 마담은커녕 포주 노릇도 힘들어요. ㅋㅋ….”
유미는 속으로 후훗, 웃었다.
“민지 엄마, 언제 한번 봐. 또 통화하자.”
유미는 실비아의 수다가 이어질 거 같아서 전화를 끊었다.
옛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 유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까 동진이 그윽하게 바라보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요. 뭐든지 늘 준비하고 있어요. 그게 오늘 밤이라도….”
하지만 그가 나갈 때 유미가 대답 삼아 했던 말에는 냉담하게 반응했다.
“모든 준비를 철저하게 해 놓겠습니다.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오늘 밤이라도….”
오늘 밤,
그가 올까?
어쨌든 그가 전화를 하겠지.
아까 사무실에서 서로 찻물로 입술만 축일 뿐 촉촉한 눈빛으로만 대화를 나눴던
그 짧은 순간이 떠올랐다.
그가 갈증을 느끼며 유미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 짜릿했다.
그의 갈증을 풀어주고 싶고 허기를 채워주고 싶은 욕망이 슬슬 피어올랐다.
세속적인 행운은 다 가진 듯 보이는 그가 왜 그렇게 피학적인 욕구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처입은 그를 마지막에 껴안아줄 땐 어느 땐 엄마 같은 심정이 되기도 했다.
배고픈 아이에게 가슴을 풀어 젖을 물리고 싶은 그런 욕망과도 닿는 데가 있었다.
어쩜 사랑이 아니라 연민인 걸까?
아니면 정이 들어가는 걸까?
여자가 사랑 때문에 섹스를 한다는 건 남자들의 이기적인 오해다.
여자들의 욕망은 여자들 스스로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단하다.
어느 책에는 여자가 섹스를 하는 이유에는 237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유미는 이유도 없이, 아니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겠지만
오늘 밤 동진을 간절하게 맞이하고 싶다.
그런데 수익과 오늘 밤 잠정적으로 만날 약속을 했던 게 떠올랐다.
윤 회장과의 만남 이후 수익과 만나기로 했던 걸 계속 연기했던 터였다.
수익이 너무 쉽게 유미를 장악하고 간섭하려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충만한 연애란 두 사람 간의 거리 두기와 묘한 함수관계에 있고
그 균형을 잘 조절하는 건 여자의 현명한 재능이다.
조두식도 말하지 않았는가. 줄듯 말듯 꼬리 치라고.
사실 꼬리춤은 주고 난 후에 더 잘 춰야 하는 법.
남자는 주고 나면 무조건 다 제 건 줄 아는 미련한 짐승이니.
유미는 고수익에게 약속을 취소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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