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253> 미끼-16

오늘의 쉼터 2015. 4. 3. 17:22

<253> 미끼-16 

 

 

 

 

“여보세요?”

“네, 말씀하세요.”

30대 후반 여자의 목소리로 여겨졌다. 유미는 잠시 숨을 고르다 말을 꺼냈다.

“저어, 이게 오래전에 제가 갖고 있던 번호라서 맞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실비아씨 아닌가요?”

“…….”

여자의 잠시 의아해하는 표정이 유미의 머리에 떠오르는 듯했다.

“실비아씨요? 저 성당 나가는 사람 아니에요.”

“아, 그게 세례명이 아니고요. 함께 일하던 곳에서 부르던 이름인데…

 

저는 나나라고 불렸고요. 당시엔 둘이 친한 친구였는데….”

“네에? 전화 잘못 거셨어요.”

“그럼 이 전화번호 언제부터 갖고 계신 건지….”

“아무튼 전 그런 사람 아닙니다.”

전화가 끊겼다.

 

역시… 기대를 한 게 웃기는 거지.

 

유미는 전화기를 머쓱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며칠 후,

 

귀국한 동진이 미술관으로 업무상 잠깐 들렀을 때였다.

 

그와 단둘이 유미의 사무실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동진은 유미에게 작품 수집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파리 미술 경매 시장의 추이를 늘 체크해요.”

“예, 알겠습니다.”

“준비하고 있다가 상황 봐서 필요하다면 출장을 신청해요.”

“파리에… 출장요?”

동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실장이 직접 나서기 뭐하면 다른 사람을 내세우더라도

 

현지에 가서 직접 체크하고 총괄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게 좋겠죠.

 

그 문제는 또 방침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고….”

“언제든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업무 얘기가 끝나자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적인 이야기를 할 만한 장소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저 눈빛으로만 말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박용준이 귀를 나팔처럼 길게 뻗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지도 몰랐다.

 

바쁜 동진이 잠깐 유미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일부러 구실을 만들어 들른 게 분명했다.

 

정말로 제약이 많은 만남이다. 윤 회장이 유미와 만난 이후에 동진에게는

 

아직 어떤 언질이나 반응을 보인 것 같진 않다.

 

금지된 사랑이라는 이유 때문에 억눌린 감정이

 

그의 눈망울에 터질 듯 응축되어 있는 걸 유미는 느꼈다.

 

금지된 사랑은 그것 자체만으로 아슬아슬한 폭발력을 갖고 있다.

 

동진의 얼굴엔 그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유미는 그 눈망울을 바라보며 입술은 움직이지 않고 눈으로만 포근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동진이 목이 마른 듯 녹차 한 잔을 입술에 축이고 말했다.

“그래요. 뭐든지 늘 준비하고 있어요. 그게 오늘 밤이라도….”

동진이 유미를 바라보며 한쪽 눈을 끔뻑했다. 유미가 알아듣고,

 

오늘 밤?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로만 물었다.

 

동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유미가 동진을 바라보자 동진이 말했다.

“괜찮아요. 받아요.”

유미가 휴대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상대가 잠깐 숨을 한 번 쉬더니 말했다.

“저어,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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