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210)좁은문-3

오늘의 쉼터 2015. 4. 2. 00:09

(210)좁은문-3

 

 

 

 

 

용준이 그들을 주빈석으로 안내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진의 옆에 그 여자가 앉았다.

 

여자가 동진에게 귓속말로 뭐라 하자 동진이 활짝 웃었다.

 

남의 일이라면 저 두 사람이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유미는 눈앞에 동진이 그 여자와 함께 있는 꼴이 빈속에 청양고추를 씹은 듯 쓰라렸다.

얼굴을 알 만한 재벌들도 몇 오고 상류층의 여자들과 문화계 인사들,

 

그리고 본사의 임원들이 다 모였다.

 

개관식에서 윤 회장은 공식 식사 외에도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몇 년 만에 이 윤조미술관을 재개관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사실 나는 1970년대 개발붐을 타고 땅을 팠던 1세대 기업가로 기업 연륜도 짧고 식견도 짧습니다.

 

집 지어서 파는 우리 회사가 비를 피하는 집이 아닌,

 

이제는 아름답고 편안한 집을 지으려고 추구하는 모토가 바로 이 예술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통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나는 이제야 좀 깨닫게 됩니다.

 

아름다움이라면, 소싯적에 우린 여자를 떠올렸습니다.”

좌석에서 드문드문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이제 그 아름다움이라는 게 자극적인 게 아니라

 

사람을 편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지고지순의 감정이라는 걸 나이 들면서 알게 됩니다.

 

그 감정을 알게 해준 사람은 이제 세상을 떠났지만, 그 사람의 유지를 받들어 만인이

 

그 감정을 즐기고 향유할 수 있도록 이 미술관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질을 제 둘째 아들이 이어받아 이 사업을 추진했는데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윤동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애리가 그런 윤동진을 보며 격려하는 몸짓으로 박수를 치는 손짓을 했다.

 

지루한 식순이 끝나고 손님들이 전망이 좋은 넓은 로비에 마련된 파티장으로 갔다.

 

잔잔한 실내악이 흐르고 있는 중에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윤동진은 윤 회장 앞에서 인질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그는 윤 회장을 보필하며 VVIP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 옆에 애리라는 여자가 휴대폰처럼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저 휴대폰은 배터리도 안 나가나?

 

윤 회장이 누군가와 소탈하게 웃으며 반갑게 악수했다.

 

그러자 애리가 그 노신사에게 얼른 팔짱을 꼈다.

“아빠! 여기 너무 멋지죠? 정말 맘에 들어요. 그림도 안목이 대단한 거 같구요.”

“허허, 애리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

 

윤 회장, 이거 애리가 군침 흘리는 선물인데…

 

뭐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내가 김칫국만 잔뜩 들이켜는 꼴인지 모르겠다만, 허허허….”

윤 회장이 맞받았다.

“김칫국 계속 마셔라. 떡이 워낙 커서 목에 걸릴지 모르니까.”

다른 데 신경 쓰는 척하고 있지만 유미의 귀는 안테나가 되어 그들의 말을 낱낱이 수신하고 있다.

 

마침 다가온 용준에게 물었다.

“저 노인네는 누구야?”

주머니에서 초청인사 명단을 꺼내 대조해보던 용준이 말했다.

 

 

“강호금융 회장 강호성인데요. 강애리와 부녀지간.”

“알았어.”

용준이 왠지 좀 안됐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쥐며 속삭였다.

“화이팅!”

유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윤동진 일행 주변에서 벗어나 미술관 책임자로서

 

인사를 하려고 VVIP들에게 다가갔다.

 

이름을 알 만한 실세들도 여럿 보였다.

 

이렇게 큰물에서 대어랑 놀다니. 순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유미는 그들에게 다가가 명함과 웃음으로 밑밥을 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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