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85)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봐-17

오늘의 쉼터 2015. 3. 29. 23:33

(185)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봐-17

 

 

 

 

 

 

다음날 술이 깨자 유미는 지난 밤 자신이 동진에게 부린 치기 어린 주사가 후회되었다.

 

다 마음이 불안한 탓이다.

 

사랑스러운 애인의 투정 정도라 그가 생각하면 좋으련만. 마침 아침부터 생리가 터졌다.

 

한 달에 한 번 피의 부름을 받는 여자들이 가끔 이렇게 제 정신이 아니란 걸 남자들이

 

이해할 수 있다면. 하지만 사랑한다면 큰소리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법은 없지 않은가.

 

만약 동진이 그걸 유미에게 요구했다면 유미는 그 자리에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얼굴에 난데없이 물세례를 받은 동진은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상처받는 데 익숙하지 않은 동진 같은 부류의 남자에겐 자존심을 건드리는 게 치명적일 수 있다.

 

유미는 궁리하다가 동진에게 먼저 전화를 하기로 했다.

 

별 거 아닌 일로 본질을 망가뜨릴 수는 없다.

 

여자의 앙탈이 도가 지나쳐 남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건 인간적으로 좋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전화벨이 오래 울렸으나 동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빠서 그러는 건지 일부러 받지 않는 건지…

 

이 남자 생까는 거 아냐? 전화를 끊으려는데 동진이 전화를 받았다.

“아직 할 말이 있나?”

아이, 어젠 내가 좀 취했나봐요. 기분 상했죠?”

“전화 끊지. 아무 말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연락할 때까진 전화하지 말아.”

“그냥 술 취해서 한 작은 실수예요. 애교로 봐 줄 수는 없나요?”

“실수? 애교? 하여간 어제도 얘기했듯이 이유가 뭐가 되었든 당분간 연락을 자제하는 게 좋겠어.”

“본질을 깨는 결정적 실수도 아닌 거 같은데…사랑에 대한 확인을 좀 더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여자 마음을 그렇게 몰라요?”

“그렇게 경박한 여잔 줄 몰랐어. 아니 한편으론 짐작은 했지만.”

 

“알겠어요. 연락하지 않을게요.

 

경박한 여자는 대체로 인내심이 부족해요.

 

그런데 이미 많이 자제했어요.

 

우리처럼 맘대로 잘 만나지 못하는 연인들도 별로 없어요.

 

이건 뭐 남남북녀도 아니고. 제 참을성에도 한도가 있겠죠.”

“협박이야?”

“내가 뭐 깡패예요?

 

그냥 그렇다고요.

 

자존심에 상처 입었다면 미안해요.

 

그랬다면 그건 사과할게요.

 

그럴 의도는 없었어요. 잘 지내세요.”

유미는 전화를 끊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닌 남자와의 연애라 그런 걸까.

 

왜 이리 한판 붙기도 전에 진이 빠지는 걸까.

 

잠시 후 문자수신음이 울렸다. 동진이었다.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야.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신중하고 싶은 것이오.

 

확신을 얻고 싶은 것이오.’

유미는 당분간 윤동진과의 연애보다는 일에 더 매진하자고 다짐했다.

재개관이 다가오면서 해외의 초청작가들에게 초청장 발송은 물론 전화를 해서

 

컨펌을 받아야 했다.

 

특히나 언제부턴가 프랑스 작가 중에 폴의 친구인 초청작가에게 겸사겸사

 

폴의 연락처를 묻고 싶었던 터였다.

 

인규가 이유진의 일을 마무리하면서 폴에게 뒷마무리를 부탁했단 말을

 

얼마 전에 들었던 터였다.

 

용준은 홍두깨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외국에 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렇다면 홍두깨라는 인물은 어쩌면 프랑스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7년이나 세월이 흘렀지만 폴과 통화하면 어떤 끄나풀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몰랐다.

 

유미는 초청작가 리스트에서 폴의 친구인 위베르 드 펠리갸르의 전화번호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