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봐-7
한준수를 보내고 나서 유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윤동진에게 전화를 할까,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이렇게 심사가 사나울 때는 차라리 참는 게 낫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게 후회가 없다.
어제 윤동진이 할 말이 있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조만간 그가 연락을 해 올 게 분명하다.
기다리자. 때로는 입보다는 귀가 현명할 때가 많은 법이다.
윤동진에게 비밀로 하라던 한준수의 말이 떠올랐다.
윤 회장의 발상이 우습고 억지스러웠다.
윤동진이 그 정도로 마마보이, 아니 파파보이란 말인가.
아니면 이 오유미를 물로 보는 거야, 뭐야?
돈 몇 푼 집어주면 인간의 감정이나 사랑 따위도 모두 삭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일단은 일방적인 통고를 한 윤 회장의 처사에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내가 죄인도 아닌데 강제추방이라니.
약한 놈에게 약하고 강한 놈에게 강한 오유미의 성질을 그 영감탱이가 모르는구나.
그때 사촌 수민에게서 전화가 왔다.
“유미야, 나 오디션 됐어.”
“정말? 축하해.”
“그래서 오늘부터 갑자기 밤에 무대에 서게 되었어.”
“당장 오늘부터?”
“아마 새벽에나 들어가게 될 거 같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수민이 방을 얻을 때까지 함께 지내야 하는 것도 갑자기 짜증이 났다.
그때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김 교수였다.
“어머! 파파 교수님.”
“오랜만인데 잘 지내지?”
“예, 그럼요. 죄송해요.
제가 요즘 일에 얽매여서 자주 연락도 못 드려서…
제가 강의 있는 날엔 학교에 안 계시는 거 같던데.”
“그래, 나도 요즘 전시준비다 뭐다 바빴어.
참 종강 언제야? 학교 오면 밥이나 한 번 먹지.
곧 모집요강이 나갈 거야.
이번에는 차질 없이 내가 좀 밀어보려고 해. 서류 준비 미리 해놔.”
“다음 학기부터 바로요?”
“아마 그럴 걸. 아니면 내년 새 학기부터인지…
교수만 됐다 하면 그 직장 그만두지 뭐.
내가 조만간 뭐 큰 거를 하나 맡을 것도 같은데 그것도 같이하면 좋을 거 같고.”
“어머, 그러세요? 뭔데요?”
“아직 비밀이야. 안 가르쳐 줘.”
“알았어요. 잘 되면 좋겠어요.”
“전에 이사장님과 등산이나 하자 했는데 날이 더워
그것도 좀 그렇고 한번 내가 자리 함께 만들게.”
“아, 예….”
“관심이 많으셔.”
김 교수와 전화를 끊고 유미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자신에게 가능성이 있는 미래를 따져보았다.
대학교수가 된다. 재벌 2세의 부인이 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목돈을 갖고 외국에 나가 산다.
죽거나 망하지 않으면 그리 나쁜 미래는 아니다.
유미는 퇴근을 하면서 주차장에서 용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녁에 한잔할까? 내 차로 와.’
잠시 후 용준이 차로 왔다.
“어쩌죠? 정말 그러고 싶은데….”
“왜 무슨 일 있어?”
용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완씨랑 만나기로 했어요. 계속 미뤘는데 오늘은 도저히 피할 수가 없네요.”
“요즘 지완이랑 만나?”
“그쪽에서 자꾸 연락을 해 와요.”
“정말?”
“요즘 무지 심란해서 그런 거 같아요. 남편이랑 이혼을 고려 중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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