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49)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6

오늘의 쉼터 2015. 3. 28. 01:38

(149)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6

 

 

 

 

 

유미가 모텔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박 PD는 집으로 돌아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하여간 유부남이라는 족속들은! 끝까지 곁에서 함께 있지 못하고 돌아간 그가 미웠다.

 

필름이 끊어졌는지 어젯밤의 일이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박 PD와의 마지막 세리머니가 싱겁게 끝난 게 분명했다.

 

여자의 협조 없이는 어떤 능력 있는 남자도 혼자서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그게 섹스의 법칙이다.

 

섹스가 협업이라는 걸 남자들은 가끔 까먹는다.

 

그저 자기 엔진의 힘만 좋으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여자는 엔진을 다루는 엔지니어다.

 

어제 목석처럼 널브러진 유미와의 섹스가 그도 즐거울 리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유미가 입의 혀처럼 그를 샅샅이 자극하고 불을 지폈는지 그도 깨달았을 것이다.

남자들이 펌프질을 잘했다면 그건 유미가 충분히 마중물로 그들의 능력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이라고 과대망상 하길 좋아한다.

 

유미는 그런 남자들의 심리를 잘 알고 부추겼다.

 

당신 정말 완전 힘 좋네! 와우! 대박이다!

 

그렇게 과대포장 해주면 유미에게도 나쁠 건 없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하물며 거북이가 머리를 바짝 들고 춤을 추게 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렇게 그들의 거북이뿐 아니라 자존심을 세워주면 유미에게 덕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박 PD와의 공식적인 관계는 끝이다.

 

아, 이렇게 또 하나의 인연이 스러지는구나.

 

그동안 나쁘지 않았지만, 미련 또한 없다.

 

그러나 이렇게 모텔방에서 이른 아침에 혼자 눈을 뜨는 일은 싫다.

 

유미는 뒤척이다 라디오 방송을 그만두는 결정은 잘한 일이라고 위안한다.

 

유명인이, 공인이 된다는 건 그만큼 자유의 제한을 받는 일이다.

게다가 갑자기 어제 받은 메일 생각이 났다.

 

유명세라는 것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부와 명예를 꿈꾸던 유미는 먼저 사이버세상에서 유명해졌다.

 

그 여파로 라디오 작가와 유명 강사도 되었고 교수의 꿈도 목전에 두고 있다.

 

게다가 명예는 결국 돈줄과 연결이 되므로 윤동진을 만나게도 해주었다.

 

아아, 고지가 바로 저긴데…좀 있으면 다 이루었도다,

 

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도 있을 텐데…어두운 파멸의 그림자가 설핏 비치다니.

 

유명한 자, 그 이름으로 망할지니.

 

인터넷에 그 동영상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유미는 고개를 흔들었다.

 

최신 아이폰을 장만해서 요즘 유행하는 트위터를 열심히 해서

 

그 추종자들을 고스란히 트위터 팔로어로 만들어 개인 미디어 왕국을 꿈꿨는데…

 

그 계획은 오히려 위험천만하다. 내 손으로 무덤을 파는 일이다.
 

유미는 일어나서 객실의 컴퓨터를 부팅해서 메일을 확인했다.

 

홍두깨에게서 답신이 왔나 살폈다.

 

그러나 메일은 상대가 수신확인도 안 한 상태였다.

 

이건 어쩌면 고도의 심리전일지도 몰라.

 

사이버 세상의 어느 곳에서 얼굴 모르는 사람이 악마 같은 웃음을 흘리고 있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유미는 포털사이트로 들어가 검색을 해 보았다.

 

이,유,진. 수많은 인물들이 떴다.

 

어제 받은 첨부파일의 동영상 이미지에 1분30초간 나왔던 남자.

 

그 화면에서 유미와 함께 생생하게 육체의 향연을 즐기던 남자.

 

V를 그리며 소년처럼 웃던 남자.

 

추억 속에만 있는 남자.

 

그가 혹시 사이버 세상에 살아있는지…

 

그러다 유미는 픽, 웃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어떤 유미의 그물에도 이제는 걸리지 않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