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47)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4

오늘의 쉼터 2015. 3. 28. 01:35

(147)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4

 

 

 

 

 

 

퇴근 전에 외국에서 온 메일이 있을까 싶어 메일박스를 열었다.

 

그런데 스팸메일과 업무용 메일 속에 ‘단미님께’란 제목이 붙은 메일이 끼어 있었다.

 

요즘은 예전보다 블로그 관리를 약간 소홀히 하는 통에 그런 메일이 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유미의 블로그는 알 만한 블로거들은 다 아는 데다 연애에 관해 한 수 배우고 물어보려는

 

사람들이 가끔 메일을 보내곤 했다.

 

아니면 지난해 설희 담임이었던 안지혜처럼 넋두리로 가득 찬 메일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싱거운 남자들의 엉큼한 제안도 있었다.

 

이론에는 밝으신데 실전으로 저와 한판 붙어 보심이?

 

또는 제 물건이 이러저러하니 한번 진상하여 평가를 받고 싶다는 둥….

편지를 보낸 사람의 아이디는 ‘홍두깨’였다. 홍두깨가 뭐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노골적이잖아? 유미는 킬킬대며 메일을 열었다.

‘단미님, 안녕하세요? 사이버 세상에서 단미님은 모든 여자나 남자가 원하는

 

아이콘이 되어 있으시더군요.

 

하지만 사랑은 감성이나 달콤한 말보다는 뭐니 뭐니 해도 섹스.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여기 단미, 아니 현실세계의 유미의 S파일이 있습니다.

 

이론이 있으면 실제도 있어야 하는 법. 맛보기로만 조금 보냅니다.

 

환상적인 섹스를 보여 줄 뿐 아니라 당신에게는 옛 추억을 되찾는 파일일 겁니다.

 

즐감하삼.’

장난 메일 같기도 해서 삭제하려다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도 설마, 했다. 왜 예전에 이런 일도 있지 않은가. 당신의 부정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 그 현장의 몰카를 제가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냥 무작위로 메일을 보내 돈을 입금하라고 하면 반 이상이 입금을 한다지 않는가.

유미는 첨부파일을 열었다.

 

다운로드되자 1분30초 정도의 동영상이 나왔다.


아! 그런데 장난이라 하기에는 그 안에 유미가 생생히 들어 있었다.

 

유미뿐 아니라 유미의 상대 남자도 생생히 들어 있었다.

 

캠코더를 고정시켜 놓고 촬영한 듯 화면에 등장한 남녀는 침대에서 정신없이 얽혀 있었다.

 

마지막 장면은 절정이 지났는지 유미가 침대에서 젖가슴을 드러낸 채 반쯤 일어나고,

 

남자가 장난스레 브이(V)자를 그리며 카메라 앞으로 다가오는 장면에서 끝나 버렸다.

유미는 살이 떨렸다.

 

남자는… 남자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남자.

 

그가 화면에서 생생히 웃고 있는 게 소름이 끼쳤다.

 

눈을 의심하며 다시 한번 재생시켜 보았다.

 

아, 기억난다.

 

분명히 그 남자와 함께 이 장면을 촬영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의 고조된 신음 사이로 TV를 켜 놓았는지 프랑스어가 들렸다.

 

8년 전의 어느 날. 프랑스 파리. 한때 저 남자를 사랑했었다.

 

남자는 유미와의 정사를 캠코더로 촬영하고 싶어 했고, 유미는 허락했다.

 

카메라가 돌아가자 오히려 더 적극적인 건 유미였다.

 

그 이전에 잠깐 에로 비디오를 찍었던 경험을 살려 추억의 장면이 되더라도

 

멋지게 연출하고 싶었다.

그것은 지난번에 없어진 에로 비디오테이프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두 사람만이 알고 있고 공유하는 추억일 텐데

 

왜 이런 파일이 나돌아 다니는 걸까.

 

그가 죽은 걸 알고는 곧바로 그의 집에 가서 모든 물건을 처리하지 않았던가.

 

메일을 보낸 사람은 누구인 걸까?

 

혹시 죽은 그가 메일을 보낸 건 아니겠지?

그가 누구든, 그는 이 동영상 파일을 협박용으로 쓰려고 하는 거겠지?

 

그런데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