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5
한때 유명 연예인들이 동영상 파문으로 신세를 망친 일이 있다.
유명 연예인, 특히 여자에겐 그것이 목숨과도 같다.
그 이후 그녀들은 무덤 속에서 세월을 견뎌야 했다.
단미님이라 시작한 메일은 분명 나의 유명세를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연예인급은 아닌데….
그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는 그저 우회적으로만 말했을 뿐이다.
‘이론이 있으면 실제도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이 문구를 보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이 살짝 들어가 있다.
하지만 옛 추억을 운운하는 것은 무엇일까?
보통 남자 애인이 변심한 여자 애인의 마음을 돌리고자
이런 짓으로 협박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옛 애인인 그는 죽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유미는 당장 직설적으로 묻는 메일을 쓰려고 하다가 그만둔다.
이럴 때 인규에게 전화를 걸어 넋두리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인규의 상황이 어떨지 몰라 핸드폰도 못하고 있는 요즘 상황이 답답할 뿐이다.
인규의 상태가 저러니 잘못하면 지완에게 딱 걸리기 십상이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전전긍긍하던 유미는 다시 메일을 열어 답장을 썼다.
피하지 말고 정공법으로 부딪쳐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홍두깨님,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메일은 잘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첨부파일도 보았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당신의 행위는 무척 비열하게 여겨집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신원을 밝혀 주시고,
제게 의도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면
진지하게 대화에 응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럼 답을 기다리겠습니다.’
메일을 보내고 나자 기운이 빠졌다.
집에 들어가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박용준이라도 붙잡고 저녁이나 먹을 걸 그랬나?
클럽에라도 가서 부비부비를 할 시간도 아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런 것도 재미가 없어졌다.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이럴 때 어디 쌈박한 호스트바나 알아두었으면….
그때 마침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박 PD가 전화했다.
허전하고 심란했던 유미는 그의 전화가 오히려 반가웠다.
벌써 봄 개편 때가 되었나? 세월 참 빠르다.
안 그래도 일정이 바빠져서 라디오 방송 원고를 쓰는 일이 부대꼈다.
그 일을 그만두려고 차일피일 상황을 보던 중이었다.
“어머, 박 PD님! 안 그래도 생각이 꽂혀서 전화하려 했는데. 텔레파시가 통하나 봐.”
“오늘 비가 와서 그런가?
술이 당겨서. 오랜만에 한잔 합시다.
나 오늘 아주 한가해요.
괜찮은 막걸리집 아는데….”
“좋아요. 오늘은 저도 위로를 받고 싶은 날이네요.”
박 PD를 만나 막걸리를 마시던 유미는 방송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박 PD에게 잘 보일 일이 없어졌으니 그의 요구를 무시해도 된다.
“그러면 우리, 오늘이 마지막 회동 아냐?
좋아. 그럼 오늘은 그동안의 성의에 내가 보답하지.
오늘은 내가 풀 서비스 한다!”
거나하게 술이 오른 그가 큰소리를 쳤다.
그 말에 유미는 긴장을 풀고 정신줄을 놓고 마셨다.
그가 술값을 치르고 유미를 모텔로 옮겼을 때 유미는 이미 떡이 되도록 취해 버렸다.
그러나 마지막 아쉬운 기회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은 박 PD는 퍼진 떡을 치기 위해
떡메에 온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유미의 입에서는 교성 대신 계속 잠꼬대 같은 소리만 흘러나왔다.
“야! 홍두깨 너 죽었어.”
그 소리를 자꾸 듣다 보니 정말 그의 물건이 시나브로 죽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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