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3
뱀. 그렇다. 꽃뱀. 말해놓고 나니 괜히 지완에게 꽃뱀을 연상시킨 것 같았다.
자격지심이겠지만, 어쨌거나 지완에게는 그런 비유조차 자존심 상한다.
사람 간을 잘 보는데다 입마저 싼 용준에게 유미는 잠깐 화가 났다.
똥찬 제비 같은 놈! 헛된 욕망에 갈대처럼 흔들리는 줏대 없는 놈.
가진 거라곤 쌍방울밖에 없어서 이리저리 껄떡대느라 경망스레 방울소리만 울려대는 놈.
하지만 타고난 환경이 인간을 지배하는 법.
유미는 박용준이란 인간을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한다.
사실 아직 소문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재벌 2세인 윤동진의 낚시에 물릴 타이밍이
점점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일과 사랑을 모두 얻게 된다.
“그래, 유미야. 어쨌든 얼른 좋은 사람 물어서 너도 행복해야지.
결혼도 하고…. 널 보면 바람 앞의 등불 같아.”
지완이 유미의 기분을 알아챘는지 적당히 얼버무린다.
“글쎄, 난 이 생활도 좋은데…. 나, 안 좋아 보이니? 넌 결혼, 재미 없다며?”
“결혼은 처음과 끝만 좋은 거 같아. 처음에 설레는 시간 잠깐과 노후에 말야.
사실 중간은 지루한 터널이지. 너도 노후를 생각해야지.”
“얘, 그만해. 할망구 같다.”
“사실 나도 요즘 이혼하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
애들 아빠가 요즘 남자가 아니라 다 큰 정신지체아 아들 같아.
하지만 이 나이에 이혼하면….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된다고 하지만
이혼해서 찢어지면 많지도 않은 재산 남아나지도 않아.
암튼 중요한 건 경제공동체로 뭉쳐야 재산도 몇 배로 불어나는 거야.
그러니 능력 되면 재벌이랑 결혼하면 얼마나 좋니?”
지완이 수다를 풀어놓았다.
인규도 그랬지만, 지완도 결국 결혼을 지키는 힘이 돈이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재산을 지키는 게 결혼이라는 제도인 것이다.
만약 유미가 지완처럼 부잣집 딸이라면 인규는 예전에 지완과 이혼을 감행하고
유미와 재혼했을 것인가.
지완과 전화를 끊고 나서 유미는 씁쓸했다.
그때 윤동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 잘 나가? 나, 내일이면 귀국해.”
“잘 나가죠. 그런데 너무 비싼 옷을 입은 것처럼 좀 거동이 불편해요.
남들이 누군가가 뒤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런 게 싫어요.”
“왜 그렇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분수에 안 맞으니까 그렇죠.”
“내가 뒤에 있는 게 싫은가?”
“치이, 그렇다고 뭐 평생 그림자처럼 내 뒤에 붙어있을 거도 아니면서.”
유미는 입을 삐죽거렸다.
“원 없이 뒤에 붙어 있을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윤동진이 낄낄거렸다.
“그거 내가 좋아하는 자센데….”
“아이, 참. 점점 이상해져.”
“응. 나, 유미씨랑 이런 말 할 수 있는 게 좋아. 나 야한 속옷도 사간다.”
“야한 속옷? 어떤 건데? 뭐 그물 빤스 이런 거 아냐?”
“안 가르쳐줘. 참 그건 그렇고 아버지가 유미씨를 보고 싶어 해.
이번 주말에 집으로 한번 데려오라는데?
나도 자세한 건 몰라. 하여간 서울 가서 보자.”
이번 주말이라면 오늘이 화요일이니 며칠 남지도 않았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희망의 속삭임이길 유미는 바랐다.
그러나 30분 후,
유미는 희망의 속삭임 대신 악마의 속삭임을 들어야 했다.
'소설방 > 유혹'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8)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5 (0) | 2015.03.28 |
---|---|
(147)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4 (0) | 2015.03.28 |
(145)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2 (0) | 2015.03.28 |
(144)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1 (0) | 2015.03.28 |
(143)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0 (0) | 2015.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