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2
용준이 머뭇거리더니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유미도 화제를 돌렸다.
“왜 송민정, 걔도 외제차 탄다며?”
“안 태워 줘요. 내가 무슨 전염병 환자나 되는지,
젠장! 송민정 얘기는 꺼내지도 마세요.
그러고 보면 지완씨가 참 따듯한 여잔데….”
지완과 통화한 지도 꽤 됐다.
인규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고 했던가.
인규와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유미는 이 상황에서 그저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완씨와 한 번 만났어요.
남편이 폭식을 하고 공황 증세를 보인다며 울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된 거 같다고.”
“그래?”
“결혼생활이 별 의미가 없지만, 남편이 불쌍해서 지금 당장 헤어질 수도 없다며….”
“그래서? 용준씨 마음이 흔들렸구나?”
“저도 지완씨가 불쌍해서 당장 헤어질 수도 없더라고요.”
“부처와 보살이 따로 없구먼.”
유미가 비꼬듯 말했지만, 사실 궁금한 건 인규의 상황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 인규가 아닌 지완에게 전화를 걸어 인규의 상태를 점검해 보고 싶었다.
오후에 유미는 지완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서로 안부를 묻다가 유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남편은 좀 어때?”
“말이 없고 우울증 증세도 있고 무엇보다 불안해하는 거 같아.
다행히 말은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로 하기 시작했어.
그 사람 얼마나 입담이 좋았니?
그런데 가끔 멍 때리고 앉아서 먹을 것만 쫓아다니는 게 영 딴 사람이 된 거 같아.”
“뭘 불안해한다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물어도 대답도 안 해.
아마 가출해서 다친 그날 밤의 일과 연관이 있는 거 같긴 한데….
전화도 아예 다 꺼 놓고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는 거 같아.
이러다 우리 베네치아 망하겠어.”
“그래, 네가 고생이 많겠다. 내가 도와주지도 못하고 어쩌니?”
“어떻게 되겠지. 어쨌든 그 사람 몰래 아버지가 따로 좀 조사를 하는 거 같긴 해.”
“아버님이?”
“응. 아버지는 이 사건을 다른 각도로 보시는 거 같아.
뭐 정적(政敵)의 복수 같은…. 우리 아버지, 정의파잖아.”
“으음… 그래?”
“하여간 미치겠어. 어쩔 때는 내가 먼저 돌아버릴 거 같기도 하다니까.
유미야, 언제 나랑 술 한잔 마시자.
아니, 나 좀 재미있는 데 데리고 가 줘.”
지완이 한숨을 쉬었다.
“용준씨와는 연락 안 해?”
“그 껄떡쇠가 얌전히 있겠니? 한 번 만났어.
걔 때문에 이렇게 됐는가 싶어서 안 만나려 했는데 내 처지가 서글프다 보니까
또 유혹에 빠지게 되네.
유미야, 인간은 왜 이렇게 나약한 거니?”
“인간의 역사가 유혹의 역사 아니겠어?
뱀이 이브를 유혹하고 이브는 아담을 유혹하고 그렇게 시작된 역사잖아.”
“그나저나 용준씨가 그러는데 너야말로 유혹의 달인이라더라.
네가 재벌을 물었다며?”
“뭐? 걔는 무슨 남자가 말도 안 되는 입방정을 떠니?
내가 무슨 뱀이니? 사람을 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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