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38)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5

오늘의 쉼터 2015. 3. 28. 01:20

(138)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5

 

 

 

 

 

“그랬었지. 너는 나를 죽인 거나 다름없었지.”

“난 진호 네가 당연히 자살할 줄 알았지. 나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며 늘 죽으려고 했잖아.”

“너 떠나고 다시 병실에서 깨어나니 그때가 석가탄신일이었어.

 

거리의 연등이 흐릿하게 보이는데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가 빛처럼 쏟아졌어.

 

그 길로 나는 예전에 고시 공부하던 암자로 들어가 출가를 결심했지.”

“네가 죽었다고, 아니 너를 내가 죽였다고 생각하며 살았어.

 

너를 생각하면 죄의식으로 너무 무거웠어.

 

그런데 네가 중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는 얼마나 배신감이 느껴지던지… 후후.”

유미는 담배 연기 사이로 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떠난 거 잘한 거 같아. 이런 인연으로 다시 만난 것도 감사하고.”

“나무 관세음보살….”

“그때만 해도 이런 그림이 그려지진 않았는데… 웃겨.

 

사람의 앞날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더니.

 

하지만 모든 일이 인과관계가 있는 거지?

 

불교에서는 그걸 연기설이라고 한다고 했나?

 

그럼 나는 어떻게 나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지?

 

난 예전의 유미가 아니라고 끊임없이 세뇌하고 살았어.

 

 너도 알다시피 난 그런 지하세계의 여자였고

 

그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다람쥐처럼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어.

 

그때 누군가가 돈을 지원하며 프랑스 유학을 권했고 난 새로 태어나고 싶었어.

 

그래서 너를 버렸던 거고.”

유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정효는 몇 가지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계속 유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게 지금 자신이 유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내 인생은 변했지. 지금 난 조금씩 비상을 하는 새처럼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어.

 

난 자신 있어. 난 이제 남자들의 노예가 아니라 그들의 훌륭한 파트너로

 

또는 그들을 내가 가진 재능으로 지배할 수도 있어.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의 과거가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거야.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자처럼… 무언가 자꾸 내게로 조여 오는 느낌이야.

 

그래서 요즘 두려워.”

 

유미가 정효의 품으로 더욱더 파고들자 정효는 유미의 몸을 쓸었다.

“누군가 나를 노리고 음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주변에서 서성이기도 하고

 

내 가까운 사람을 해치기도 하고….”

유미가 일어나 앉았다.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예전에 내가 에로비디오 찍은 거 알고 있지?

 

누가 그걸 집에서 빼 갔어. 혹시 네가 그런 건 아니지?”

유미가 정효에게 물었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아닐 줄 알았어. 그냥 물어본 거야.

 

네가 우리 집 현관 번호를 아는 사람이니까.

 

누군가가 그걸 가져갔다면 무슨 목적이 있을 거야.

 

나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려 한다거나….

 

그런데 뭐 그런 건 견딜 수 있어.

 

결국 시간이 흐르면 그런 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 가지.”

유미가 담배를 비벼 껐다.

 

정효는 지금보다 십여 년 전의 풋풋했던 처녀 시절의 유미를 기억했다.

 

비디오를 찍기 위해 에로배우를 하겠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은 물건을 집어 던지며

 

격렬하게 싸웠다.

 

돈이 되면 뭐든지 하려는 유미는 당시 배 속에서 3개월 된 정효의 아이까지 지우고

 

비디오를 찍었다.

갑자기 유미는 간절하고 진실하게 무언가를 고백하고픈 욕구가 솟아났다.

“그런데 말야. 죽어도 잊히지 않는 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