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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

오늘의 쉼터 2015. 3. 26. 17:46

(134)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1

 

 

 

 

 

 

갑갑한 며칠이 지났다.

 

유미는 사무실에서 일도 하고 하루대학에 강의를 나갔으며 방송 원고도 썼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윤동진으로부터는 연락이 없었고 더더군다나 인규로부터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사람의 인연이 이렇게 안개처럼 흐려지고 결국 잊히게 되는 것인가.

 

하지만 차라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평화로웠다.

 

모든 것을 마음에서 내려놓으니 안달복달할 일도 없었다.

 

갑자기 바닷가 암자에 있을 진호가 생각났다.

 

모든 세속 번뇌에서 벗어나 그가 가끔 머무는 암자로나 한번 찾아가 볼까.

 

하지만 그는 소문처럼 거기 가끔 머문다고 한다.

 

그는 바람 같은 존재. 저인망 그물 같은 유미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을 바람 같은 존재다.

 

요즘 몇 번 전화를 해 봤으나 전원이 꺼져 있었다.

그 무렵 지완이 전해 온 인규의 소식에 유미는 더욱더 마음이 우울해졌다.

“인규씨가 점점 회복이 되고 있어. 정말 다행이야.”

“이제 실어증에서 벗어난 거야? 말을 해?”

“아니, 아직. 조만간 하게 될 거 같아.

 

그런데 정신이 또렷하고 의사 표현도 강하게 하고 있어.”

“말을 못하는데 어떻게 의사 표현을 한다는 거야?”

“필담을 하거나 문자메시지로 해.”

“그래?”

“그런데 일부러 말을 안 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

“왜?”

“그냥 그래. 무언가 두려운 게 있어서….”

“두려운 게 있다고?”

“전에 아버지한테 이 사람이 이렇게 된 상황을 암암리에 수사를 부탁한 적이 있다고 했잖니.

 

그런데 이 사람이 모든 것을 그만두라고 반발하고 있어.

 

본인은 거기에 대해 입을 꽉 다물고 있으면서 말이야.

 

파지 말고 캐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몇 번이고 글로 문자로 말을 하고 있어.”


그런데 지완과의 통화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미에게 문자가 왔다.

 

놀랍게도 인규가 보낸 것이었다.

 

그의 휴대폰 번호가 찍혀 있었으니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무서운 일이다. 조심해라.’

유미가 고심하다가 답을 보냈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아요?’

그러나 답은 없었다.

 

괜히 답을 보냈나, 불안하고 후회되었다.

 

어쩌면 인규는 지완의 말대로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 모른다.

 

무엇을 은폐하기 위해 스스로 벙어리가 된 건지도 모른다.

 

그때의 그 일과 연관이 있는 걸까?

 

하지만 그 일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인규와 유미 둘뿐이다.

 

당사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유미는 마음의 격랑이 느껴질 때면 어디 호스트바 같은 데라도 가서

 

광란의 밤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인규와 미친 듯 술을 마시며 울면서

 

세상의 끝에서나 할 법한 섹스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냉정해져야 한다.

그나마 낙이 있다면 동네에 새로 생긴 조용한 칵테일 바에 들러

 

독한 바카르디 같은 걸 몇 잔 마시고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자는 거였다.

 

그러면 꿈도 없이 잘 수 있었다.

 

누군가를 부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더 허무한 기분이 될 거 같았다.

 

세상의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은 분명 허전한 무엇을 채우는 것이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찰나적 쾌락일 뿐이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게 바로 진리다.

유미가 술에 취해서 흔들거리며 아파트로 들어섰다.

 

그때 유미는 퍼뜩,

 

누군가가 집 안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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