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안개 속으로-11
“집으로요?”
“특별한 경우이긴 한데, 아무튼 미술관 재개관 일을 정리 잘 해서 말씀드릴 준비를 하세요.”
“언제요?”
“나도 정확히 몰라요.
다분히 독재적이고 변덕스러우시니까…
내가 알게 되면 금방 연락할게요. 그리고….”
“네….”
“사람 묘하게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 있는 거 알아요?”
“무슨 말인지…?”
“사람 성의를 그렇게 무시하는 겁니까?”
“네…?”
“선물을 뇌물로 착각하는 못된 버릇이 있는 거 아니에요?
내가 뇌물을 바치는 겁니까? 그렇게 고고해요?”
유미는 짐작이 갔다.
“아, 그건 제가 요즘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자동차 하나 고르는 데 그렇게 오래 걸려요?
남자와는 눈만 맞으면 속전속결로 하면서?”
“뭐라구요?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거 같은데요.”
“그럼 뭐하느라 요즘 그렇게 정신이 없어요.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자동차는 제가 곧….”
“집어치워요.
나는 오유미씨에게 자동차나 바치면서 알랑대는 골빈 벼락부자가 아니에요!”
윤동진이 화를 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선심이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상처를 받는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음에 틀림없다.
유미는 요즘 자신이 윤동진에게 소홀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실수라면 실수였다.
유미는 애조 띤 목소리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요즘 마음이 좀 우울한 일들이….”
“그러게 그게 뭔지 나한테 말하려 해 본 적도 없죠?
나는 오유미 영혼에 스며들 수 없는 놈인가요?
그저 수갑과 채찍만 갖고 노는 어린애로 보는 겁니까?”
“아아, 그게 아니라….”
윤동진이 유미의 말을 듣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왜 또 일이 이렇게 꼬이나.
생각해보니 유미도 화가 났다.
자동차는 분명히 자신이 기사니까 주면 아무거나 고맙게 받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골라주겠거니 생각했다.
사실 자동차를 선물 받는 입장에서 요것조것 따지는 것도 속물스럽다.
속물이긴 해도 속물 티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게 유미의 처세술 아니던가.
속물은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만 유미는 눈앞의 이익에는 초연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한다.
그깟 자동차 하나 선물 주면서 유세를 떠는 윤 이사가 오히려 맘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속이 좁은 인간이란 말인가?
그러니 내가 그에게 무슨 영혼의 고민을 털어놓겠는가.
그가 나 오유미를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유미는 고개를 저었다.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생각을 하자 유미는 가슴 절절하게 외로워졌다.
누군가를 붙들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인생이 혼자라는 걸 일찍부터 깨달은 유미였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어렸을 적부터 ‘들장미 소녀 캔디’라는
만화의 주제가를 홀로 부르며 캔디처럼 살아온 유미였다.
이런 고통들이 내 존재에 과부하가 되어도 난 결국 짐을 나눠가지지 못하고
홀로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건 아닌가.
혹시 나도 엄마처럼 모든 비밀과 고통을 안고 자살을 택하는 건 아닐까?
가끔은 그런 무서운 생각도 들어 놀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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