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안개 속으로-9
유미는 천천히 문을 열고 인규의 병실로 들어갔다.
“여보, 유미가 병문안 왔어.”
지완이 말했다.
머리를 온통 흰 붕대로 감고 있는 인규는 얼굴이 부어 있었다.
게다가 눈이 퉁퉁 부어 있어서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눈의 깜박거림으로나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표정을 알기는 쉽지 않았다.
인규는 지완의 말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미가 그의 앞으로 다가가자 달라졌다.
눈꺼풀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무언가 감정의 동요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유미는 이렇게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넬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했다.
유미는 인규의 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지완의 말마따나 그의 가늘게 벌어진 두 눈 사이로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느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 속에서 나오는 눈빛으로 유미는 인규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눈빛에는 둘만이 알고 있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숨겨져 있다는 것도.
그는 그걸 견디지 못했는지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피곤한가 봐.”
지완이 유미에게 속삭였다.
“그래. 여보, 걱정 말고 한숨 푹 자.”
지완이 링거액을 점검하고 인규의 시트를 다시 여며주었다.
그때 문 밖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어머, 아빠!”
지완이 소리쳤다.
유 의원이 지완의 오빠 지훈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있고 걸음이 약간 불안정했지만 외모는
예나 지금이나 영락없는 노신사였다.
“오빠,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네.”
“응. 그렇게 됐어. 좀 어때?”
“지금 방금 눈 감았어. 참 여긴 유미. 아빠 유미가 나 위로한다고 문병 왔어요.”
유미가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그리고 오빠….”
유 의원이 떨리는 손으로 유미의 손을 잡았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아버님, 여전하시네요.”
“여전하긴. 내가 요즘 건강이 좀 안 좋아서…
그래, 지완이가 그러는데 요즘 성공했다고…?”
“아이, 무슨 그런 말씀을…?”
유미가 지완을 장난스레 슬쩍 흘겨보았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예전에 비하면 용 된 거 아니니?”
유 의원이 헛기침을 하더니 인규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래, 황 서방은 아직도 말을 못하냐?”
지완이 인규를 깨웠다.
“여보, 여보. 아버지 오셨어.”
“자면 깨우지 말아라.
그나저나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내가 안 그래도 꼭….”
그때 인규가 눈을 떴다. 지완네 식구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이 사람아. 나 알아보겠나?”
인규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어서 일어나서 베네치아를 다시 지어야지.
건강만 되찾으면 내가 얼마든지 지원해줌세.”
유 의원이 인규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어떤 놈이 그랬는지 어서 자네 입으로 얘길 해줘야지.
당장 그 놈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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