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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안개 속으로-9

오늘의 쉼터 2015. 3. 26. 17:38

(131)안개 속으로-9

 

 

유미는 천천히 문을 열고 인규의 병실로 들어갔다.

“여보, 유미가 병문안 왔어.”

지완이 말했다.

 

머리를 온통 흰 붕대로 감고 있는 인규는 얼굴이 부어 있었다.

 

게다가 눈이 퉁퉁 부어 있어서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눈의 깜박거림으로나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표정을 알기는 쉽지 않았다.

인규는 지완의 말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미가 그의 앞으로 다가가자 달라졌다.

 

눈꺼풀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무언가 감정의 동요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유미는 이렇게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넬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했다.

 

유미는 인규의 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지완의 말마따나 그의 가늘게 벌어진 두 눈 사이로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느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 속에서 나오는 눈빛으로 유미는 인규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눈빛에는 둘만이 알고 있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숨겨져 있다는 것도.

 

그는 그걸 견디지 못했는지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피곤한가 봐.”

지완이 유미에게 속삭였다.

“그래. 여보, 걱정 말고 한숨 푹 자.”

지완이 링거액을 점검하고 인규의 시트를 다시 여며주었다.

 

그때 문 밖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어머, 아빠!”

지완이 소리쳤다.

 

유 의원이 지완의 오빠 지훈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있고 걸음이 약간 불안정했지만 외모는

 

예나 지금이나 영락없는 노신사였다.

“오빠,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네.”

 

“응. 그렇게 됐어. 좀 어때?”

“지금 방금 눈 감았어. 참 여긴 유미. 아빠 유미가 나 위로한다고 문병 왔어요.”

유미가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그리고 오빠….”

유 의원이 떨리는 손으로 유미의 손을 잡았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아버님, 여전하시네요.”

“여전하긴. 내가 요즘 건강이 좀 안 좋아서…

 

그래, 지완이가 그러는데 요즘 성공했다고…?”

“아이, 무슨 그런 말씀을…?”

유미가 지완을 장난스레 슬쩍 흘겨보았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예전에 비하면 용 된 거 아니니?”

유 의원이 헛기침을 하더니 인규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래, 황 서방은 아직도 말을 못하냐?”

지완이 인규를 깨웠다.

“여보, 여보. 아버지 오셨어.”

“자면 깨우지 말아라.

 

그나저나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내가 안 그래도 꼭….”

그때 인규가 눈을 떴다. 지완네 식구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이 사람아. 나 알아보겠나?”

인규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어서 일어나서 베네치아를 다시 지어야지.

 

건강만 되찾으면 내가 얼마든지 지원해줌세.”

유 의원이 인규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어떤 놈이 그랬는지 어서 자네 입으로 얘길 해줘야지.

 

당장 그 놈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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