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30)안개 속으로-8

오늘의 쉼터 2015. 3. 26. 17:36

(130)안개 속으로-8

 

 

 

 

지완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유미는 다음 날 인규가 입원한 병원에 갔다.

 

인규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다리엔 깁스를 한 채 잠들어 있었다.

“오전에 잠깐 눈떴어.”

지완이 유미를 끌고 병실을 나갔다.

 

휴게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유미에게 건네며 한숨을 쉬었다.

“이만하기 천만다행이야.

 

다행히 MRI나 CT 검사에서 큰 이상은 없는 거 같다고 해. 두고 봐야지 뭐.”

“눈떠서 너는 알아봐?”

“그게….”

지완이 애매하게 말했다.

“말을 안 해.”

“안 해?”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래도 날 알아보는 거 같긴 해.”

“어떻게 알아?”

“눈빛으로 알지. 우리 10년도 넘은 부부야.”

“그래.”

유미도 한숨을 쉬었다.

“그 눈빛이 무얼 말하데?”

“복잡하더라. 어쨌건 난 딱 잡아떼는 얼굴로 예전처럼 대했어.”

“그래야지. 잘했어.”

“사실 그이가 그걸 안다는 증거도 없잖아.

 

그 부분을 나한테 확인한 것도 아니고.”

지완은 어느새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이 판국에도 앙큼하다.

 

유미는 지아비만 아는 순진한 여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지완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실어증은 고칠 수 있대?”

“의사 말로는 일시적인 충격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거야. 좀 더 두고 보자고.”

“충격?”

“응. 머리를 누군가 둔기로 세게 내리쳤다는 거야.”

“누가?”

“모르지. 우리 그이 성질은 좀 그렇지만,

 

인심도 넉넉하고 뒤끝도 없는 사람이잖아.

 

누군가에게 원한 살 일은 털끝만큼도 없는 위인인데….” 

 

“그러게….”

유미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빠하고 오빠한테 부탁을 좀 했어. 어떤 놈인지 꼭 잡아내야지.”

“참, 아버님은 안녕하셔?”

“아, 한 30분 후에 오빠가 병원에 잠깐 모시고 온다고 했어. 그래, 한번 보고 가.”

“아냐. 그냥 안부만 전해 드려. 건강도 안 좋으시다며?”

“너 보면 아주 반가워하실 텐데. 지금도 가끔 네 안부 물어보셔.”

“하긴 못 뵌 지도 정말 오래되었네.”

“너 대학 때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을 때니까 정말 오래됐지.”

지완의 아버지 유 의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완은 그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 유미는 그를 대학 졸업하고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너, 우리 아빠 좋아했잖아. 너네 아빠가 저런 분이면 좋겠다고.”

그랬다. 권력과 돈,

 

그리고 인물까지 훤한 지완의 아버지와 그의 딸로 태어난 지완이 질투가 나서

 

미칠 것 같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간호사가 지완을 찾았다.

“여기 계시네. 환자를 놔두고 자리를 비우시면 어떡해요. 환자 눈뜨셨어요.”

“그래요?”

지완이 헐레벌떡 병실로 향했다.

 

유미도 망설이다가 천천히 지완의 뒤를 따랐다.

 

지완은 시침을 떼며 인규를 대한다고 했지만,

 

자신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그날 인규는 어쩌면 지완에게보다 자신에게 더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규의 얼굴을 보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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